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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대왕 ㅣ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9
윌리엄 골딩 지음, 이덕형 옮김 / 문예출판사 / 2024년 11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문예출판사에서 출간된 문예 세계문학선 아홉 번째 책은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이에요.
소설은 영국의 비행기 추락으로 무인도에 떨어진 소년들이 어른들이 없는, 자신들만의 세계를 어떻게 만들어가는지를 보여주고 있어요. 첫 장면에는 덩굴에 떨어진 두 소년이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요. 뚱뚱한 소년이, "어른들은 하나도 없을까?" (9p)라고 묻자, 금발 소년은 근엄하게 어른인 척 굴면서 "내 생각엔 없어."라고 답하면서 무언가 야망을 실현했다는 희열에 사로잡히는데, 이 부분이 의미심장하네요. 뚱뚱한 소년은 친근하게 다가가 금발 소년에게 이름을 묻지만 랠프라는 금발 소년은 딱히 관심이 없다는 듯 이름을 묻지 않아요. 순진하게도 뚱뚱한 소년은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별명, 학교에서 아이들이 자신을 놀리며 부르던 새끼돼지라는 별명을 랠프에게 말해주고, 랠프는 비웃으며 새끼돼지라고 부르기 시작하면서 이후에 다른 소년들까지 그 별명으로 부르게 돼요. 랠프가 소라 껍데기로 나팔을 불듯이 소리를 내자 흩어져 있던 소년들이 모이게 됐고, 투표를 통해 대장을 뽑자고 제안하자 아이들은 덩치도 크고 잘생긴 랠프를 대장으로 뽑았어요. "지혜라는 것을 조금이나마 보여준 쪽은 새끼돼지였고, 리더십을 두드러지게 발휘한 쪽은 잭이었다. 그러나 앉아 있는 랠프의 모습에는 그를 다른 아이들과 구별 짓는 무언의 힘이 있었다." (31p) 아직 어리니까 외적인 요인만 따져서 대장을 뽑은 건데 어른들이라고 해서 합리적인 결정을 하는 건 아니에요. 정치는 잘생길수록 유리하다는 속설이 여러 연구 결과를 통해 입증되었으니 말이에요. 랠프는 자신이 대장 노릇을 하려는 속셈이 있었고, 뜻대로 흘러가는 듯 보이지만 예기치 않은 문제들이 생기면서
혼란과 갈등이 커져가게 돼요. 순진무구한 소년들이 고립된 무인도라는 세계에서 점차 야만적으로 변해가는 과정이 안타깝고 슬프네요. 내면의 욕망과 야만성이 드러나면서 더 이상 인간이 아닌 짐승 무리가 된 거죠. 악의를 가진 소수 권력이 어떻게 사회를 타락시키는지, 우리는 어떻게 해야 파리대왕을 제어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만드네요. 1954년 발표된 이 작품으로 윌리엄 골딩은 1983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어요.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빛나는 작품, 현재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