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나를 찾아라 - 법정 스님 미공개 강연록
법정 지음 / 샘터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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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를 배운다는 것은 자기를 배움이다.

자기를 배운다는 것은 자기를 잊어버림이다.

자기를 잊어버린다는 것은 자기를 텅 비우는 일이다.

자기를 텅 비울 때 비로소 체험의 세계와 하나가 되어

타인이나 객관적인 사물과 대립하지 않고

해탈한 자기를 알게 된다."

(19p)


《진짜 나를 찾아라》는 법정 스님의 미공개 강연록이에요.

오랜만에 만나는 법정 스님의 말씀이라 무척 반갑고 좋았어요. 법정 스님은 2010년 3월 11일 입적하셨는데 그 하루 전날 밤에 "모든 분들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금생에 저지른 허물은 생사를 넘어 참회할 것이다. 내 것이라고 하는 것이 남아 있다면 모두 맑고 향기로운 사회를 구현하는 활동에 사용해 달라. 이제 시간과 공간을 버려야겠다.'는 마지막 말씀을 남겼다고 해요. 이 책은 법정 스님이 1994년 만든 사단법인 '맑고 향기롭게'가 30주년을 맞게 되어 이를 기념하고자 그동안 책으로 출간되지 않은 미공개 강연을 모아낸 말씀 모음집이라고 하네요.

가장 오래된 강연은 1979년 부산중앙성당에서 하셨던 강연인데 음성 파일만 전하고 다른 기록은 남아 있지 않아서 정확한 일시는 모르지만 1978년 여름에 있었던 버스 사고를 언급하고 있어서 1979년으로 유추한 것이래요. 당시는 유신 정권에 저항하는 분위기가 정점으로 치닫던 때라서 정권은 긴급조치 제9호를 발령하여 집회와 시위를 제하하고 방송 통신 등을 억압했는데, 스님은 본강연 전에 "··· 미리 말씀드릴 것은 당국에서도 수고롭게, 기관에서 와 있습니다. 요즘은 제가 특별히 배터리를 충전하고 있는 그런 기간이기 때문에, 정부를 비방하거나 체제에 도전하는 그런 언동은 없을 것으로 미리 말씀드리니까 안심하시고 들으시기 바랍니다." (139p)라고 말씀하셔서 청중들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지만 실은 강연장 어딘가에서 듣고 있을 기관원을 향한 얘기였을 것으로 짐작하고 있어요. 현 정권을 반대하는 목소리는 틀어막고 방송과 언론의 공정보도는 법정제재로 압박하는 건 독재정권의 전형적인 모습인 거예요. 그래서 법정 스님이 "우리는 언론 자유가 충분히 보장이 되어 있죠."(145p)라고 말씀하신 부분이 역설적 표현이라는 건 그곳에 자리했던 사람들은 모두 알았기에 웃음으로 승화한 게 아닌가 싶어요. 또한 강연 내용 중에, 【 카뮈의 『전락』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어느 날 주인공이 비가 내리는 다리를 건너갑니다. 그때 한 여인이 강으로 투신을 해요. 주인공은 방관합니다. 무력감에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고 변명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인연이 단절되었으면, 그것으로 끝났으면 되는데, 주인공 기억 속에서는 여인이 계속 비명을 지르면서 투신을 합니다. 그때부터 주인공은 도덕성과 좌절과 고뇌로 이어집니다. 이것을 마치 혼잣말처럼 쏟아 냅니다. 우리는 인간성을 상실하고 괴물로 전락하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는 내 이웃을 보살피고 책임을 져야 합니다. 요즘은 대마초 이야기가 쏙 들어갔는데 한동안 유행했던 노래가 있었잖아요. "그건 너, 그건 너, 너 때문이야." 자기는 책임이 없고 그건 너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또 누구는 "내 탓이로소이다, 내 탓이로소이다." 하면서 가슴을 칩니다. 똑같은 시대에 살면서 한쪽에서는 "그건 너, 그건 너." 하면서 책임을 회피하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그건 나, 그건 나."하면서 책임을 집니다. (145p)】 라는 부분과 【 우리는 달라져야 합니다. 정말 자기답게 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끌려가는 노예가 아니라 역사를 창조하는 당당한 존재이기 때문에 순간순간 아무렇게나 살아서는 안 됩니다. 나답게, 우리답게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우리의 존재를 그리고 지금 이 시대를 명확하게 인힉할 수 있습니다. (150p)】 라며 끝맺는 말씀이 어찌나 마음에 와닿던지 한참을 묵상했네요. 1979년 서울 시내버스가 한강으로 추락한 사고에 대해 서로 남 탓을 하며 책임 전가하는 모습을 보며 큰 충격을 받았던 법정 스님은 그건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이며, 문제 해결의 출발점은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부터라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상식을 지닌 어른이라면 누구나 동의하고 공감할 내용이에요. 인간에게 있어서 도덕성이 결여됐다는 건 인간이길 포기한 것과 같아요. 도덕성은 성인군자만이 가지는 특별한 능력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춰야 할 조건인 거예요. 자기 이익만 좇느라 타인을 무참하게 짓밟고 책임을 회피하는 자들, 우리는 두 눈을 부릅뜨고 그런 자들이 마땅한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해요. 1979년 10월 부마 민주 항쟁이 일어났고, 12월에는 영화 <서울의 봄>에서 보여줬던 신군부 세력의 군사 반란을 일어나면서, 다음 해 5월 광주에서 5·18 민주화 운동으로 이어지는 역사 흐름 안에 이 강연은 우리 역사의 귀중한 자료이자 암울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다독이는 위로였다는 점에서 특별하네요. 하필이면 지금, 법정 스님의 말씀을 마주하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것 같아요. 공존공생, 모두가 다함께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우리는 변해야만 해요.


"가만히 눈을 들어 내면의 강을 보십시오. 

거기에 흐르는 삶의 윤슬을 읽으십시오." (24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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