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레슨이 끝나지 않기를 - 피아니스트 제러미 덴크의 음악 노트
제러미 덴크 지음, 장호연 옮김 / 에포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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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레슨이 끝나지 않기를》은 피아니스트 제러미 덴크의 음악 노트예요.

저자 제러미 덴크는 솔리스트이자 실내악 연주자로서 공연과 음반을 통해 바흐, 베트벤, 모차르트 같은 고전부터 현대음악까지 다양한 레퍼토리를 선보이는 피아니스트라고 하네요. 아주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를 배웠던 경험들을 바탕으로 직접 대면하며 말로 가르치는 음악 교습의 전통을 보존하고 싶어서 이 책을 썼다고 해요. 제러미 덴크의 회고록이자 저자의 말로는 "음악 교사들에게 바치는 러브레터"라고 표현한 책이에요.

왠지 읽기 전에는 클래식 고유의 진지함으로 가득찬 내용이라면 좀 지루할 수도 있겠다고 여겼는데 의외로 재미있었네요. 피아니스트의 어린시절은 어땠을까라는 궁금증을 가진 독자들에게 보내는 러브레터였네요. 음악은 잘 모르지만 그 음악을 대하는 마음, 태도는 충분히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신선하고 흥미로웠어요.

"모든 음을 들으라는 게 무슨 의미였을까? 알 수 없었다. 도움이 된 것 같지 않았다. 일주일 뒤에 빌은 '카덴차로 넘어가라'고 했다. 나는 모차르트에 매달린 두 주가 끝날 무렵에 몰랐던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앞서 익혔던 것과 똑같은 음악을 조성만 다르게 해서 배우고 있었던 것이다. 뭐야, 짜증나게. 그러다가 이것이 편의적인 방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십 곡의 소나티나와 소나타를 배우면서도 나는 소나타 형식의 핵심에 있는 대칭을 이해하지 못했다.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나머지 명백한 것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87p)

열두 살 소년이 열심히 음악이론을 공부하고 피아노 연주를 연습하면서도 투덜대는 모습을 상상하니 웃음이 났네요. 피아노 건반 위를 고군분투하더라도 본인이 기쁘고 즐겁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어요. 여섯 살 때 받은 첫 레슨을 시작으로 열두 살 소년 시절에 배웠던 음악 수업들이 화성, 선율, 리듬으로 이어지면서 본인이 교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레슨까지 보여주고 있어요. 음악이론을 배우면서 위대한 음악가들이 등장하는데, 물론 작품을 통해서 음악가들을 만나는 듯한 느낌을 공유할 수 있어서 좋네요. 베르디는 황홀함의 절정에서 늘임표를 구사한다면서 연주할 때도 음을 붙들어야 한다고, 저자는 선율의 요소들, 오르고 내리는 힘들이 샘물처럼 솟아나는 느낌을 받는다고 이야기하네요. 일반적인 보통의 오페라였다면 늘임표 다음에 열광적인 박수가 쏟아질 타이밍인데 베르디는 예기치 못하게 허를 찔렀다고, 가수가 상투적인 마무리 제스처를 취하며 네 여인이 소리내어 웃는 연출을 보여줘서 그 웃음이 충격적이었다고 해요. 베르디가 자신을, 그리고 청자들을, 어쩌면 자신까지도 조롱하고 있는 것 같다는 거예요. "늙은 현자는 선율의 순진함이 그렇게 순진하지 않다고, 그 유혹적인 선물은 좋게도 나쁘게도 사용될 수 있다고 우리에게 속삭인다." (323p) 음악과 관련한 일을 하다 보면 리듬의 선택에 의외로 도덕적 차원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대요. 메트로놈이 이끄는 대로, 리듬을 건축가와 같은 시간의 감각으로 존중한다는 것이 연주자의 견실함을 보여주는 태도인 것 같아요. 여전히 매일 음악에서 더 많은 것을 발견하고 있다는 저자는 그 발견이 줄어들지 않는 건 결코 사라지지 않을 굳건한 가치라서, 그리고 모차르트의 마지막 악장 론도에 나오는 특정한 패시지로부터 시작했다고 이야기하네요. 전례 없는 영감을 발휘한 모차르트 덕분에 음악 레슨은 끝나지 않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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