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스승 법정스님 - 맑고 향기로운 법정 큰스님 이야기
정찬주 지음 / 여백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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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하는 순간마다 나를 붙잡아주는 건 좋은 말씀이었어요.

세상에는 훌륭한 스승들이 많고, 그분들의 좋은 말씀이 사람들에겐 살아가는 지혜가 되네요.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과 같이." (41p)

《마지막 스승 법정스님》은 법정 스님의 재가 제자인 정찬주 작가님의 산문집이에요.

저자는 국어교사로 잠시 교단에 섰다가 월간 <불교사상>에서 편집자의 삶을 시작했고, 이후 샘터사에 입사하여 스님의 원고 편집 담당자가 되면서 인연을 맺은 지 6년 만에 스님으로부터 계첩과 '세속에 있되 물들지 말라'는 무염이라는 법명을 받고 재가제자가 되었다고 해요. 스님은 제자의 산방인 이불재에 가끔 차를 마시러 오셨고, 사랑채에 걸린 '무염산방'이라는 현판 글씨도 써주셨대요. 그도 스님이 기거하는 불일암을 자주 찾아가 맑고 향기로운 가르침을 받았다고 하네요.

이 책은 스님과의 개인적인 인연과 사연들을 가능한 한 모두 모아 한데 묶어낸 것이라 이미 발간되었던 글들도 있고 중복되는 내용도 있지만 굳이 책으로 발간한 이유는 칠십 고개를 넘어선 저자의 기억에 한계가 있으니 잊지 않기 위해서라고 하네요. 저자의 말에 따르면, "누군가의 지친 영혼에게 다가가서 문을 두드리듯 노크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다. 문은 두드리면 열린다고 했다. 종교계마저도 미세먼지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은 오늘, 내가 전하는 법정스님의 가르침 한줌이 산산한 삶으로 힘겨운 독자들에게 위로와 응원이 된다면 나로서는 더 바랄 것이 없을 듯하다." (8p)라는 진심을 전하고 있네요.

책장을 넘길 때마다 그리움이 애틋하게 느껴져요. 송영방 화백님이 그린 법정 스님의 소묘, 스님과 함께 찍은 사진들, 스님의 엽서와 편지, 유묵(생전에 남긴 필적)에 붙인 긴 사연들을 보면 스님의 진면목을 알 수 있어요. 강원도 오두막에 계시던 스님께서 2004년 5월에 보낸 엽서에는 "봐서 다음 주 중에 불일(佛一)에 한번 다녀올까 싶은데 그때 인연이 닿으면 한번 만났으면 합니다. 혼자서 지내려면 뭣보다도 자기관리가 철저해서 게으리지 않아야 합니다. 살아 있는 것들에 둘러싸여 있으면 게으를 수가 없습니다." (58p) 라고 적혀 있어서 부랴부랴 불일암을 갔더니 스님의 병색이 완연하더래요. 불일암의 유일한 토굴인 서전으로 자리를 옮겨 스님과 마주 앉아서 긴 법문을 들었고, 스님은 조계산 산자락에 달이 떠오르는 광경을 얘기하셨대요.

"무염거사, 조계산 달을 보고 가시오."

"스님, 이불재에도 달이 뜹니다."

"아, 그렇지. 거기도 달이 뜨지." (63p)

저자는 스님과 함께 조계산 달을 보지 못한 것이 내내 후회스럽다고 해요. 그날 서전에서 뵌 것이 스님과의 마지막 독대 친견이 될 줄 몰랐으니 말이에요. 아마도 스님은 알고 계셨던 것 같아요. 약속 없이 방문하는 불청객을 피해 서전에서 제자에게 긴 법문을 하셨으니 말이에요. 조계산 자락에 자리잡은 불일암 달을 보고 내려가라 하셨는데 밤눈이 어두운 탓에 해 떨어지기 전에 산방으로 돌아왔다는 저자는 그날을 돌아보며 밤눈만이 아니라 마음눈도 어두운 자신을 후회하고 있어요. 가슴에 사무친 그 기억이 어쩐지 남의 일 같지 않아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이 순간을, 우리는 어떻게 후회 없이 살 수 있을까요. 법정스님의 수많은 법문 중에서 저자는 스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길상사에서 하신 마지막 봄 말씀이 가장 마음을 적신 말씀이었다며 소개하고 있어요. "눈부신 봄날입니다. 다시 만나 다행입니다. 언젠가 내가 이 자리를 비우게 될 것입니다." (133p) 사람들과 현재의 자리에서 이심전심으로 꽃향기를 함께 느끼듯 마음을 주고받는 것이 가장 소중하다는 것을 알려주셨네요. 지금 이 순간 만나는 사람에게 사랑과 자비를 베푸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일이라고요. 자, 밤하늘을 환히 비추는 저 달을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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