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의 시작과 끝에 대한 사색 - 무한한 우주 속 인간의 위치
앨런 라이트먼 지음, 송근아 옮김 / 아이콤마(주)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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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에 과학를 배우면서 한 가지 의문이 들었어요. 이 모든 이론이 진짜일까.

안타깝게도 의심을 없앨 만큼 이론을 증명할 능력은 없으니, 그저 묵묵히 과학자들이 밝혀낸 사실을 믿어야 하는 처지인 거죠.

그래서 과학 분야의 지식을 접할 때는 마음을 열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로 했어요. 의심의 싹을 없애지 못할 바에는 잠재된 가능성의 세계를 확장시킬 수 있는 상상력을 동원하는 거예요. 과학은 불변의 진리가 아니라 끊임없이 발전해가는 이야기라고 생각했거든요.

여기 제 취향에 꼭 들어맞는 과학책을 발견했어요.

《모든 것의 시작과 끝에 대한 사색》 의 저자 앨런 라이트먼은 현재 MIT 인문학 교수이며, MIT 최초로 과학과 인문학 모두에서 동시에 교수직을 맡은 베스트셀러 작가님이에요. 세계적인 천체물리학자가 소설가로서의 재능까지 겸비했으니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대중들은 매료될 수밖에 없는 거죠. 이 책은 우주와 생명, 빅뱅 이전의 무(無) 그리고 원자, 마음의 과학적 구조, 우주적 생물중심주의, 무한의 개념을 다루고 있어요. 이것은 굉장히 놀라운 세계, 즉 무(無)와 무한(無限) 사이를 이야기하고 있어요. 과학자로서 현대 과학이 밝혀낸 사실들을 설명하면서 동시에 철학적 사색과 통찰을 보여주고 있네요. 솔직히 과학 이야기보다 문학 작품을 소개한 내용이 더 끌렸네요.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소설 『모래의 책』 을 보면, 의문의 불청객이 화자의 문을 두드리더니 인도의 한 작은 마을에서 얻었다는 성경책 한 권을 사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해요. 화자가 책을 펼쳐보는데, 각 페이지 위쪽 구석에는 예측할 수 없는 아랍 숫자가 적혀 있는 거예요. 행상인이 화자에게 책의 첫 페이지를 가보라고 하는데 아무리 넘겨도 항상 몇 장이 남아 있어서, '페이지들이 책에서 자라나는 것 같았다.'라고 표현하고 있어요. 반대로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찾으려고 했으나 실패하여, 화자는 이렇게 말해요. "불가능합니다. 이 책은, 이 책의 페이지 숫자들은 진짜로 무한이에요. 첫 페이지도 없고, 마지막 페이지도 없어요." 그 말을 들은 불청객은 이렇게 답해요. "만약 우주가 무한이라면, 우리는 공간 모든 곳에, 어디에나 존재할 수 있습니다. 만일 시간이 무한이라면, 우리는 모든 시간 속에 있는 것입니다." (예리한 독자를 위한 주석 : 우리는 모든 시간 속에 있을 수 없다. 앞 장에서 이야기한 대로, 우리의 삶은 우주 역사상 비교적 짧은 기간만 존재할 뿐이다.) (234p)

이 소설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우리 몸의 원자들이 별에서 만들어졌다는, 과학계의 상식을 완전히 이해하긴 어렵지만 우리의 생명이 유한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어요. 다만 죽음을 목격하면서도 자신의 죽음을 믿지 못하는 모순을 품고 있죠. 우리는 무한한 우주 속에 유한한 삶을 사는 존재이며, 살아 있는 순간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모래의 책처럼 시작과 끝을 찾을 순 없지만 이 세계와 우리의 삶은 책속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 우리는 살아 있기에 특별하고 의미 있는 존재라는 것.




'빅뱅 이전에는 무슨 일이 있었는가?'에서 다룬 대로, 시간의 방향처럼 근본적인 것조차 질서에서 무질서로 가는 움직임에 좌우된다.

왜냐하면 우리가 미래로 향함에 따라 모든 것이 질서에서 무질서로 바뀌기 때문이다. 어쩌면, 시간이 앞으로 가는 방향이 무질서가 증가하는 쪽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변화 없이는 이 순간과 그 다음 순간을 구별할 방법이 없을 것이다.

...

무질서는 "왜 아무것도 없지 않고, 무언가가 있는 걸까?" 하는 심오한 질문에도 답을 준다.

(이러한 질문들은 물리학자와 철학자들을 밤늦도록 깨어 있게 만든다.)

왜 순수한 에너지만 남아 있지 않고, 각종 물질들이 존재하는 것일까?

과학적 관점에서 봤을 때 이 질문은 1931년에 예측되었고, 1932년에 발견된 반입자 antiparicle 의 존재와 관련 있다.

... 1964년, 실험을 통해 입자와 반입자가 정확하게 같은 방식으로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고, 그 덕분에 우주가 탄생한 바로 직후의 입자들과 반입자들은 같은 수로 생성되지도, 서로를 파괴하지도 않은 것이다. 대량의 입자들이 짝꿍 반입자들과 함께 소멸한 후, 마치 학교 댄스 파티가 끝난 뒤에 외로이 벤치에 앉아 있는 어떤 소년들처럼 그대로 남겨진 입자들이 있었을 것이다. 이 남겨진 입자들과 그들을 만든 비대칭이 바로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이다.

(167-16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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