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믿지?
송순진 외 지음 / 폴앤니나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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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믿지?>는 당신의 배후가 되고 싶은 언니들의 소설집이에요.

모두 여덟 명의 작가들이 여성연대에 관한 테마로 쓴 단편을 모아놓은 책이에요.


"걱정마라, 네 뒤에는 언니가 있다!"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여성들에게 든든한 언니 한 명쯤 있다면 어떨까요?

여자들끼리 '언니'라는 호칭을 붙일 때는 마음을 열어제끼는 강력한 힘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언니 믿지?"라는 질문에는 바로 "응"하고 답해도 될 것 같은 신뢰가 깔려 있어요.

반면 "오빠 믿지?"는 절대 이런 말을 하는 오빠는 믿지 말라는, 하나의 예시문으로 쓰이곤 하지요.


송순진 작가의 <할머니는 엑소시스트>는 전형적인 남아선호 사상을 가진 할머니가 등장해요. 

벌써 11월이니, 서른일곱의 순영은 곧 서른여덟이 될 터. 다니던 회사가 연달아 세 번 부도 맞고 쓰러지자, 할 수 없이 가장 가까운 외할머니 집으로 옮겨 온지 3년째예요.

순영은 오랜 프리랜서 생활을 접고 구직 활동 중이에요. 순영은 큰외삼촌 생각만 하면 저절로 얼굴이 찌푸려져요. 왜냐하면 할머니는 외삼촌이라면 언제나 심장을 내어줄 듯 감격하며 사랑하는데, 그 잘난 아들은 엄마를 나몰라라 무심하니까. 이번엔 할머니 팔순 생신인데 제멋대로 사흘 전에 찾아와 식사 한 끼 사드리고 가버렸어요. 메뉴도 할머니가 드시고 싶은 쇠고기가 아니라 들깨삼계탕. 할머니는 들깨 알러지 때문에 못 먹는데, 말도 못하고 먹는 시늉만 하고 왔대요. 거기다가 봉투에는 달랑 30만원 넣어 줬다고, 할머니가 울컥해서 순영에게 하소연을 늘어놓았어요. 안쓰러운 마음에 순영이 나서서 할머니의 팔순 잔치를 준비하는데...

에고, 할머니~~ 평생 아들의 뒷바라지만 하다가 결국에는 아들 뒤통수만 바라보는 신세가 되셨네요. 속상한 마음 달래주는 건 딸과 손녀딸인 것을.

마지막 장면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이 허버럴 잡귀야! ... 썩 물러나라!"라고 외치고 싶었어요. 세상에 온갖 차별과 편견들이 못된 잡귀인 것을. 


김서령 작가의 <언니네 빨래방>은 유쾌했어요. 오지랖 떠는 아줌마조차 사랑스럽게 만드는 매력적인 이야기라서, 작가의 말처럼 이 소설이 판타지가 아닌 현실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최예지 작가의 <엄마한텐 비밀이야>는 세 자매 연희, 연제, 연우의 이야기예요. 소설도 소설이지만 작가의 말을 읽다가 웃음이 빵 터졌어요. 

"... 요새 자꾸만 둘째가 얄밉다. 

둘째에게 좋은 일이 생길 때마다 첫째가 안쓰럽고, 

저놈의 가시나 지 언니 먹을 것까지 다 빼앗아 먹네! 

혼자서 막 분통을 내고 그러는 거다. 내 마음이."  (123p)

자식을 키우는 부모 마음이냐고요? 꽤 비슷해서 착각할 수도 있겠지만 아니에요. 

첫째와 둘째는 바로, 요즘 한창 열심히 하고 있는 휴대폰 게임 캐릭터들이래요. 풉!


김지원 작가의 <에그, 오 마이 에그>는 서른여덟 살의 주인공이 난자동결을 하는 이야기예요. 아마 주인공과 비슷한 연령대의 미혼 여성이라면 한 번쯤 고민해봤을 내용이 아닐까 싶네요. 주인공의 이름은 한여름. 찌는 듯한 복날 더위에 엄마가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기면서 태어났다는 그 딸은 지금 병원에 혼자 와서 난자 채취를 하고 있어요. 그동안 맞은 호르몬 주사 때문에 온몸이 생리 직전처럼 부은 데다 두통까지 끊이질 않아 걸음이 천근만근 무거운데 그 순간 떠오른 사람은... 엄마...


이명제 작가의 <우리들의 방콕 모임>은 아낌 없이 주는 나무와 같은 엄마에 관한 이야기예요.

내 자식들을 위해서라면 온몸 사리지 않고 다 퍼주는 엄마, 그런 엄마의 잔소리는 무죄!  주인공은 다소 무뚝뚝한 딸래미지만 절친들의 도움으로 엄마의 마음을 붙잡을 수 있었어요. 그냥 엄마한테 미안하다고, 사랑한다고 말하지... 엄마는 얼마나 섭섭했을까요. 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엄마는 오늘도 딸에게 져주네요. 


정여랑 작가의 <한 사진관>은 다소 놀라운 이야기예요. 세상에 이런 엄마, 이런 언니만 있다면 좀 삐뚤어져도 안심하며 살 수 있을 텐데.

"언니들이야말로 든든한 배후다. 

우리도 당신의 배후가 되고 싶다."

   - 정여랑


윤화진 작가의 <안부를 물어요>는 가슴 아픈 사연을 묻고 사는 엄마의 이야기예요. 

"잘 때도 엄마 주름은 퍼지지 않네. 왜 저리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자는지 모르겠어.

내 걱정을 할 때면 늘 저렇게 인상을 쓰더니만, 걱정을 많이 해서 굳은 건가.

나는 엄마 걱정을 별로 해본 적이 없다. 엄마는 세상 제일 목석처럼 단단한 사람 같아서."  (261p)

우리가 알고 있는 엄마는 타고날 때부터 엄마가 아니었다고요. 엄마도 한때는 아기였고, 어린 소녀였고, 연약한 여자였다고요. 자식들을 그걸 몰라요. 엄마는 단단한 목석처럼 보여도 그 안에는 여린 마음이 숨어 있다는 걸, 그 마음을 사랑해줘야겠어요.


임혜연 작가의 <완벽한 식사>는 서툰 초보 엄마인 유나의 이야기예요.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식사는 무엇일까요. 유나는 자신의 엄마로부터 그 답을 들었어요. 아하, 엄마 덕분에 얼었던 마음이 사르르 녹았네요.

아무리 힘든 일을 겪어도 꿋꿋하게 버틸 수 있었던 건 전부 엄마가 든든하게 지켜준 덕분이에요. 새삼 이 책을 읽고나니 엄마가 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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