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버리다 -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가오 옌 그림, 김난주 옮김 / 비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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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은밀한 고백.

무라카미 하루키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기억하며 이 책을 썼다고 해요.

일단 책이 너무 작고 얇아서 놀랐어요.

삽화까지 포함하여 딱 100페이지.

사람이나 책이나 겉만 보고는 알 수 없는 것 같아요. 비록 책의 부피는 작으나 내용까지 가벼운 건 아니었어요.


이 책이 끌렸던 이유는 "처음으로 털어놓는 무라키미 하루키의 시간들"이라는 문구 때문이었어요.

이제껏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이름은 소설가로서, 그가 쓴 소설을 통해 널리 알려진 것이라, 인간 무라카미 하루키는 아는 바가 거의 없었어요.

이렇게 말하면 마치 그의 작품은 다 읽은 것 같지만 실제 읽은 작품은 몇 권 되지 않아요. 그러니 그의 작품을 안다고 말할 수도 없겠네요.

제가 아는 건 그가 꽤나 유명한 소설가라는 것.

그런데 이 책은 소설이 아닌 에세이, 무엇보다도 그가 털어놓는 이야기의 주제가 '아버지'라서 읽고 싶었어요.

'어머니', '엄마'라는 단어는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뭉클한데, '아버지', '아빠'는 굉장히 차분해져요. 두 분 모두 사랑하지만, 이 감정의 온도 차이를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궁금했어요.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아버지란 어떤 존재이며, 어떤 의미였을까.

사실 자신의 가족 이야기, 특히 부모님에 관한 은밀한 속내를 공개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남들도 다 알만 한 표면적인 설명 말고 진짜 자신이 품고 있는 마음을 털어놓는다는 건 매우 사적이고 민감한 부분이라 꺼려질 수밖에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아요.


"내가 이 개인적인 글에서 가장 말하고 싶었던 것은 딱 한 가지뿐이다.

딱 한 가지 당연한 사실이다.

나는 한 평범한 인간의, 한 평범한 아들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

그것은 아주 당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차분하게 그 사실을 파헤쳐가면 갈수록 실은 그것이 하나의 우연한 사실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 점차 명확해진다.

우리는 결국, 어쩌다 우연으로 생겨난 하나의 사실을 유일무이한 사실로 간주하며 살아있을 뿐이 아닐까.

... 한 방울의 빗물에는 한 방울의 빗물 나름의 생각이 있다. 

빗물 한 방울의 역사가 있고, 그걸 계승해간다는 한 방울로서의 책무가 있다.

우리는 그걸 잊어서는 안 되리라."   (93p)


외동아들이었던 그는 아버지와 살가운 사이는 아니었다고 해요. 오히려 갈등이 심해져서 직업작가가 된 후에는 거의 절연 상태였대요. 이십 년 이상 전혀 얼굴을 마주치지 않고 지내다가, 아흔 살 아버지가 죽기 얼마 전에 겨우 얼굴을 마주하고 얘기를 나눴다고 해요. 예순이 다 된 아들은 아버지의 인생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화해 비슷한 것을 했다는 고백이 의미심장하네요.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그건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관계라는 걸 죽음 앞에서 깨달은 게 아닐까요. 

<고양이를 버리다>는 저자의 말처럼 역사의 작은 한 조각일 뿐이에요. 지극히 평범한 아버지와 아들의 인생이 겹쳐지는 작은 한 조각이에요. 그 우연이 묘하게도 두 사람의 삶을 연결하는 고리가 되었네요. 아버지, 당신은 아버지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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