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정판 그르니에 선집 1
장 그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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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그르니에의 『섬』을 만난 건...

2020 서울국제도서전 [다시 : 이책]으로 소개되었기 때문이에요.

우리나라에서 이 책의 초판은 1980년 12월 10일 민음사에서 출간되어 독자들에게 변함없는 사랑을 받아 왔는데, 

사십 년 만에 완전히 새로 번역되어 개정판으로 출간되었다고.

그래서 궁금했어요. 어떤 책이길래 꾸준히 사랑받았을까.


우선 장 그르니에는 누구인가.

프랑스의 사상가, 작가, 철학가라고 해요. 

1922년 철학교원자격시험에 통과해 교사로서의 이력을 시작했대요.

1968년까지 약 40년간 아비뇽, 알제, 나폴리, 몽펠리에, 릴, 알렉산드리아, 카이로, 파리 등 방랑의 철학교수 생활을 보냈대요.

알제리에서 고등학생이던 알베르 카뮈를 가르쳤대요.

아하, 알베르 카뮈!

카뮈는 그르니에가 쓴 『섬』이 본격적으로 글을 쓰게 되는 계기가 된 인생의 책이라고 하네요. 

그래서 이 책 서문은 알베르 카뮈가 썼어요.


"알제에서 이 책을 처음으로 읽었을 때 나는 스무 살이었다. 

내가 이 책에서 받은 충격...

... 이십 년이 넘도록 나는 이 책을 읽고 있다. 

... 길거리에서 이 조그만 책을 펼쳐 본 후 겨우 그 처음 몇 줄을 읽다 말고는 다시 접어 

가슴에 꼭 껴안은 채 마침내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정신없이 읽기 위해 

내 방까지 한걸음에 달려갔던 그날 저녁으로 나는 되돌아가고 싶다.

나는 아무런 회한도 없이, 부러워한다. 

오늘 처음으로 이 『섬』을 펼쳐 보게 되는 저 낯모르는 젊은 사람을 

뜨거운 마음으로 부러워한다."    - 알베르 카뮈 (5-15p)


굉장한 극찬이죠. 한 권의 책을, 그 안의 문장들을 조금씩 아껴 읽을 정도로 소중하게 여기다니.

무엇보다도 그 첫만남의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다니.

저 역시 궁금해요. 스무 살에 처음으로 『섬』을 펼쳐보는 심정은 어떨까.

스무 살도 아니고, 카뮈도 아니라서 저한테는 영원한 미스터리가 될 것 같아요.


유난히 얇은 책인데 쉽게 책장을 넘기질 못했어요.

문장들이 자꾸 말을 거는 것 같아서... 내 생각을 묻는 것 같아서.

<공의 매혹>에서 장 그르니에가 예닐곱 살 무렵의 기억을 들려주고 있어요.

여기서 '공'은 '비어 있음'을 뜻해요. 

"어느 한 그루의 보리수 그늘 아래 가만히 누워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눈길을 던지고 있다가

나는 문득 그 하늘이 기우뚱하더니 허공 속으로 송두리째 빨려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그것이 내가 처음 느낀 무(無)의 인상이었다."  (23p)

저 역시 어릴 때 이와 유사한 기억이 있어서, 약간 놀랐어요. 정확히 제 느낌은 무(無)가 아니라 존재 자체에 대한 의문이 들었던 것 같아요.

잠시 내가 '나'가 아닌 하나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느낌 혹은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이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뭐라고 표현하지 못했던 생각들을 작가의 글을 통해 만나는, 묘한 경험을 했어요. 그건 일상에서 느끼는 공감과는 다른 것 같아요. 마치 신호탄처럼 그의 문장들이 제 안에 뭔가를 드러나게 만든 것 같아요.


"달은 우리에게 늘 똑같은 한쪽만 보여준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의 삶 또한 그러하다.

그들의 삶의 가려진 쪽에 대해 

우리는 추론을 통해서밖에 알지 못하는데

정작 단 하나 중요한 것은 그쪽이다."   (87p)


"섬들을 생각할 때면 왜 숨이 막히는 듯한 느낌이 일어나는 것일까?

난바다의 시원한 공기며 사방의 수평선으로 자유롭게 터진 바다를 

섬 말고 어디서 만날 수 있으며 육체적 황홀을 경험하고 살 수 있는 곳이 

섬 말고 또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섬에 가면 '격리된다(isole).' - 섬(lle)의 어원 자체가 그렇지 않은가?

섬, 혹은 '혼자뿐인' 한 인간. 섬들, 혹은 '혼자씩일 뿐인' 인간들."    (120p)


"세계는 오직 내가 깨어 있는 순간에만 자기가 부재함을 말한다.

... 내가 나의 가장 깊숙한 것 쪽으로 기울어지면 

나는 존재하기를 그치며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니다. - 그리고 남도 아니다. 나는 '그것'이다.

나의 가장 은밀한 사고와 나의 욕망들은 그것들을 불러일으키는 그이에 비한다면 한갓 환영들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잠들면 나는 '그것'에 가까워지고 내가 죽으면 나는 그것과 하나가 되려 한다.  나는 돌이 우물 속 깊이 떨어지듯 그의 속으로 떨어진다."  (14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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