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지 않게 슬픔을 이야기하는 법
마실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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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이야기 속에서 숨겨두었던 나를 보고야 말았네요.

<슬프지 않게 슬픔을 이야기하는 법>은 마실 님의 에세이예요.

다음웹툰 작가 '아실'님이 '마실'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이 살아 온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어요.

왠지 사춘기 시절에 썼던 비밀 일기장을 몰래 꺼내보는 느낌이었어요.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거쳐 성인이 될 때까지 모두18번의 이사를 했다고.

17번과 18번 사이 삼 남매가 모두 독립하면서 현재 본가에는 부모님 두 분만 남게 되었다고.

그 본가는 여전히 월세집. 각자 떨어져 살게 되면서 아빠는 '가족 모임 정례화'를 선언했고, 매달 가족 모임이 시작되었다고.

문제는 돈. 가족 모임의 비용은 아빠가 쏘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가장의 품위는 맛도 있고 가격도 저렴한 가성비 맛집 덕택에 유지되었다고.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라며 읽어가다가 왈칵 눈물이 났던 장면이 있어요. 부모님과 함께 남이섬에 놀러 갔다가 돌아온 저녁에 햄버거 가게에서 있었던 일.


"각자도생이 생활신조인 우린 당일치기 여행도 철저하게 예산을 나눴다.

식비는 나, 교통비는 아빠, 입장료는 엄마.

저녁 식사는 일정에 없었기에 으레 그래 왔듯 더치페이를 하려는 모양이었다.

큰돈도 아니니 그냥 내가 사겠노라 했다.

부모님은 10만 원 넘는 한정식을 대접받은 것처럼 고마워했다.

뭐가 그리 고맙냐고 물으니 그냥, 다, 고맙다고 했다.

같이 놀아줘서 고맙고, 기차를 예매해줘서 고맙고, 사진을 찍어줘서 고맙고,

날씨가 좋아서 고맙고, 그냥, 다, 고맙다고 했다.

그 말에 안 그래도 퍽퍽한 감자튀김이 목에 퍽 걸린 것만 같았다.

...

부모님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자식 눈치 보는 중년이 되었다.

그러나 무게가 바뀐 것일 뿐 중심이 바뀐 건 아니었다. 

누가 더 무거운지 누가 더 앞장서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 중심엔 '우리'가 있으니까.

그러니까 나는 아빠가 더는 자식이 이끄는 삶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부모를 이끌만큼 번듯하게 잘 자란 자식을, 그리고 그 자식을 키운 당신을

자랑스러워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우리가 더 견고해졌으면 좋겠다."   (53-55p)


슬프지 않게 슬픔을 이야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슬픔의 크기보다 내 마음이 더 커지면 돼요. 시간이 지난다고 슬픔이 사라지는 건 아니라고, 그래서 우리는 마음을 더 키울 수밖에 없다고.

제 말이 아니라 어떤 영화 속에서 선생님이 제자를 위로하면서 했던 대사였어요.

그 말이 어찌나 마음을 울리던지, 영화 제목이나 줄거리는 다 잊었는데 그 말이 그대로 마음에 콕 박혀버렸어요.

담백하고 솔직한 마실 님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그 대사가 딱 떠올랐어요. 마실 님은 슬픔보다 더 커다란 마음을 가진 어른이 된 것 같아요. 그리고 가장 소중한, 가족이라는 '우리' 편이 있어서 더욱 굳건해진 것 같아요. 지난 과거가 아프고 슬펐던 사람들에게, 마실 님의 이야기는 따뜻한 포옹이 될 것 같네요. 꼬옥 안아주며 토닥토닥~

 

"난 네 그릇이 정말 크다고 생각했어. 장독대 같달까."  (13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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