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뇌과학 - 이중언어자의 뇌로 보는 언어의 비밀 쓸모있는 뇌과학
알베르트 코스타 지음, 김유경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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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신비로움을 느꼈던 순간이 있어요.

갓난아이가 울음소리로 표현하다가 옹알이를 거쳐, 어느 순간 말하기 시작할 때.

와우, 놀라워라~

어떻게 아기는 언어를 배우는 걸까요. 


<언어의 뇌과학>은 이중언어 분야의 권위자 알베르트 코스타가 알려주는 이중언어 습득의 비밀을 담은 책이에요.

이 책의 핵심은  '이중언어 사용 (bilingualism)'에 관한 뇌과학 연구라고 할 수 있어요.

저자는 자신의 연구를 '하나의 뇌에 두 언어가 어떻게 공존하는지 알아보는 여행'이라고 소개하고 있어요.


두 언어에 노출된 아기는 어떻게 학습할까요.

미국 로체스터대학교의 제니퍼 사프란 교수와 동료들은 8개월 된 아기들이 소리(음절) 사슬의 규칙성을 추측할 수 있다는 가설을 증명하는 독창적인 연구를 했어요.

아기들의 언어 지식(이 경우는 영어)이 영향을 주지 않도록, 영어와 전혀 상관없는 단어들을 지어냈어요. 2분간 소리 사슬을 들려준 후에 단어가 될 때와 비단어일 때 주는 자극에 아기들이 주목하는 모습을 관찰한 거예요. 아기들은 언어 친숙화 단계에서 단어가 될 때보다 안 될 때(비단어일 때)의 자극에 더 반응했어요. 이 실험 덕분에 아기들도 말의 신호 안의 규칙성을 매우 민감하게 알아차린다는 걸 확인하게 됐어요. 따라서 요람에서부터 두 언어에 함께 노출된 아기는 이미 두 언어가 경합 중이며, 놀랍게도 별문제 없이 노련한 이중언어자가 된다는 걸 보여주고 있어요. 

그렇다면 이중언어자의 뇌는 어떻게 작동하는 걸까요.

이중언어자의 뇌 활동과 관련된 연구는 아주 많다고 해요. 자기공명영상 실험, 양전자 단층촬영, 자기뇌파검사[MEG] 등 다양한 기술과 실험이 동원되며 다양한 언어 쌍으로 연구가 진행되었어요. 그 연구에서 발견한 내용을 살펴보면, 일반적으로 이중언어자의 두 언어 처리 과정과 표상에 관여하는 뇌 영역은 같다고 해요. 이것은 제2언어의 습득 나이와 지식 수준, 두 언어 사이의 유사성 등의 변수에 따라 다르지만 아주 복잡한 방식으로 상호 작용한다는 것을 의미해요. 

연구 결과를 종합하면 이중언어자는 저글링하는 곡예사와 같다고, 저자는 설명하고 있어요. 매우 정교하게 두 언어를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다는 것. 이 과정을 밝혀내는 것이 언어학자들의 관심사이며, 바로 이중언어 처리 과정 중 언어 통제와 관련된 신경과 인지 과정 연구라고 해요.

최근 어떤 연구에서는 이중언어 사용이 특정 인지 능력을 보다 효율적으로 향상시킨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어요. 그러나 이중언어자들이 더 똑똑하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어요. 저자의 연구는 이중언어 사용 경험이 언어 처리와 다른 인지 및 개인의 뇌 발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분명한 것은 일부 인지 능력 면에서 이중언어자와 단일언어자의 특별한 차이점이 보인다는 거예요. 비교한 결론은 차이점이지, 무엇이 더 뛰어나다는 의미는 아니에요.

단일언어 사용 경험과 비교해서 이중언어 사용 경험이 미칠 수 있는 영향 중 하나는 어휘량이 감소할 수 있다는 거예요. 다른 변수를 일정하게 유지하면, 이중언어자가 단일언어자보다 각 언어에 덜 노출되므로, 잘 사용하지 않은 단어는 배우지 않거나 잊어버리게 될 가능성이 높은 거죠. 이것은 이중언어 사용이 어휘량에 영향을 미치는 하나의 변수일뿐이지, 가장 중요한 요인은 아니라는 거예요. 

시카고대학교의 캐서린 킨즐러와 보아즈 케이자 교수가 진행한 연구 결과는 매우 흥미로워요. 실험은 간단하지만 독창적이에요. 이 실험에는 두 사람이 참여하여 한 명은 감독이 되어 무슨 실험인지 알고 있고, 몇 가지 지시를 따르며 참가자와 동행해요. 감독은 상대편인 '순진한 참가자'(실험의 목적을 알지 못한다)에게 방향을 제시해요. 두 사람은 다양한 물건이 놓인 작은 방안에 따로 들어가요. 어떤 물건은 순진한 참가자에게 보이지만 감독에게는 보이지 않아요. 이 정보는 두 참가자가 모두 알고 있어요. 감독과 순진한 참가자의 관점에서 바라본 목표물의 위치가 그림으로 나와 있어요. 만일 참가자가 자기중심적 경향을 보여 상대방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자기 관점에서 생각한 물건을 주게 될 거예요. 단일언어를 사용하는 4~6세 사이의 아동의 약 절반은 잘못된 대상을 선택한 반면, 이중언어 사용 환경에서 성장한 아동은 20% 정도만 잘못된 대상을 선택했어요. 이 결과는 이중언어 환경 속에서 자란 아동에게는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할 줄 아는 능력이 더 일찍 발달하고, 자기 관점을 상대방의 관점에 따라 바꿀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어요. 이처럼 두 언어에 노출된 아동이 단일언어만 사용하는 아동보다 더 일찍 마음 이론을 발달시킨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들이 있어요. 


여기서 단일언어자와 이중언어자의 뇌 구조를 비교한 연구 결과를 놓고 인과적 해석의 문제가 생겨요. 즉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인 거죠.

이중언어 경험이 뇌 모양을 결정한 것인지 아니면 특별한 뇌 구조를 가진 사람들이 언어를 배우는 데 더 수월한 것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어요. 두 변수는 서로 관계가 있으나 인과 관계는 아니라고 볼 수 있어요. 예를 들어 농구 선수와 축구 선수의 키를 비교해보면 서로 다른 것을 알 수 있지만 그것이 농구를 하면 키가 더 커지고 축구를 하면 키가 작아진다는 뜻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예요. 이런 식으로 보면 특정 뇌 영역에서 회색질 밀도가 높은 사람이 더 쉽게 제2언어를 배우고, 이중언어자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해요.

다른 연구에서는 제2언어 습득 연령이 뇌 구조에 끼치는 영향을 분석했더니 흥미로운 특징이 나타났어요. 유년기 이후 제2언어를 배운 이중언어자는 단일언어자보다 좌측 전두회의 회색질이 더 많고, 우측 전두회의 회색질은 더 적었어요. 놀랍게도 동시적 이중언어자(출생부터 둘 이상의 언어에 동일하게 노출되어 둘 이상의 언어가 동일하게 발달한 사람)와 단일언어자는 이런 결과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거예요.


이중언어 사용과 관련된 수많은 연구들을 보면 같은 실험에도 긍정적인 효과가 나올 때도 있고, 부정적인 효과가 나올 때도 있어요. 이 결과는 뇌가 얼마나 유연한지, 그리고 두 언어를 배우고 사용하는 활동이 어떻게 뇌의 조직과 발전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주고 있어요. 이중언어 사용은 언어 처리와 관련된 뇌의 부분에만 국한하지 않고 주의 통제와 관련된 뇌의 부분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알츠하이머나 그 외 신경퇴행성 질환 연구에도 활용될 수 있어요. 또한 의사 결정 분야 연구에서 외국어가 유발하는 감정성 감소 가설은 놀라워요. 성인이 되어 배웠거나 사회적으로 거의 사용하지 않고 학문적으로만 배운 외국어는 언어 사용에 따르는 감정 반응을 감소시킨다는 것. 그것은 기술적인 용어로 똑같이 들리지 않는 언어라고 해요. 저자의 연구 결과는 모국어로 말할 때보다 외국어로 말할 때 실용주의적 반응이 두 배나 많이 나타났다고 해요.

언어의 사용은 인류 역사에서 진화론적으로 중요한 특징이에요. 특히 사회적 지표가 된다는 점에서 강력한 사회적 범주화 요인이라고 볼 수 있어요. 따라서 이런 사실을 인식하고 이해한다면 개인과 사회 집단의 편견과 부당한 차별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어요.

이 책으로 언어의 비밀을 다 풀어낼 수는 없지만, 하나의 뇌 속에 공존하는 두 언어를 보여줌으로써, 우리를 흥미로운 언어의 세계로 이끌어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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