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의 역사
자크 엘리제 르클뤼 지음, 정진국 옮김 / 파람북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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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오르는 이유는 저마다 다를 거예요.

중요한 건 산에 오른다는 그 자체가 아닐까 싶어요.

산은 묵묵히 그 자리에서 그들 모두를 품어주는 것만 같아요.


<산의 역사>는 자크 엘리제 르클뤼의 인문 에세이예요.

저자는 전문적인 산악인은 아니에요. 쭉 도시인으로 살다가 시끌벅적한 도시를 벗어나고 싶었을 뿐이에요.

첫 문장부터 저자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요.


"슬펐다, 살아가는 일에 지쳐 버렸다. 진심으로 사랑했던 소중한 사람들을 잃었다.

계획이 무산되고, 희망도 물거품이 되었다. 

친구라던 이들은 초라한 내 모습을 확인하고 등을 돌렸다.

자기 이익만 챙기려고 들떠 싸우는 인간들이 추해 보였다. 

가혹한 운명이다. 

그래도 어차피 죽을 것이 아니라면, 정신 차리고 다시 기운을 내든 해야지,

마냥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6p)


절망에 빠져 있던 저자는 산에 오르자 기쁜 마음에 온전히 휩싸였고, 바위와 숲 그리고 완전히 새로운 세상 덕에 과거를 잊을 수 있었어요.

더 나아가 진심으로 산을 좋아하게 되었어요. 서로 거리를 뒀던 목동과도 같이 지내면서 신뢰가 쌓였어요. 목동은 그에게 작은 식물의 이름을 가르쳐주고, 보석으로 손질될 암석을 캐내어 보여주었어요. 높은 산마루에 올라 골짜기들을 짚어가며 급류가 쏟아지는 물길을 가르쳐 주었고, 그 지역의 전설과 역사까지 들려주었어요.

저자는 목동에게 자연의 지리적 과학적 내용들을 설명해주었어요. 그들은 자연이라는 주제를 더욱 깊이 이해하려고 애쓰는 학생이 되었어요. 

이것이 계기가 되어 산의 현재와 과거를 아우르는 역사를 알아보게 되었고, 은둔 생활이 탐구 생활로 바뀌게 되었어요.


여기서 잠깐, 자크 엘리제 르클뤼가 누구인지 알 필요가 있어요.

자크 엘리제 르클뤼(1830~1905)는 프랑스에서 태어나, 위대한 사상가이자 교육자로 벨기엘 브뤼셀대학교에서 교수로 지냈어요.

행동하는 지식인으로서 1871년 파리 코뮌 민중혁명운동에 참여했다가 정권의 핍박을 받고 스위스 산골에서 망명 생활을 할 때, <산의 역사>를 집필했어요. 


<산의 역사>는 지리학자이자 생태학자로서 자크 엘리제 르클뤼의 면모를 보여주는 책이에요.

산마루와 골짜기, 바위와 결정, 화석, 무너지는 봉우리, 흙더미와 돌더미, 구름, 안개와 뇌우, 눈, 산사태, 빙하, 빙퇴석과 급류, 숲과 풀밭, 산짐승, 기후의 변화, 산사람과 신화, 수호신과 인간. 

역시 사람은 전공 분야가 따로 있는 것 같아요. 스위스 산골짜기에서 지리학자로서 산을 탐사하면서 산의 생성과 인간이 함께 해온 역사를 새롭게 고찰했다는 점이 놀라워요. 처음에는 과학적 접근이었다면 점점 근본적인 질문으로 나아가는 인문학자로서의 관점을 보여주고 있어요.

마지막 장에서는 그것이 강력한 경고였음을 깨닫게 되네요. 이 책의 단행본은 1880년 출간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기후 위기는 전부 인류의 책임이라는 것.


... 진정으로 아름다운 정서를 깨닫는다면 자연은 더욱 아름다워질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인류 대부분은 지금 보다시피 거칠고 이기적이며 기만적으로 살 것이다.

지구에 서글픈 자취만 계속 남길 것이다. 

시인이 절망하는 외침이 정말 사실이 되지 않을까?


"도망칠 데가 어디 있어? 자연이 더러워졌는데......"  (225-22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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