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살인 1
베르나르 미니에 지음, 성귀수 옮김 / 밝은세상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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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찍한 죽음이야. 그런 식으로 사람을 죽이다니 분명 정신병자일 거야."

"아니면 대단히 분노했거나......"

세르바즈가 바로잡아주었다.

"Ira furor brevis est (분노는 짧은 광기다)."   (159p)


베르나르 미니에의 소설은 처음 읽어요.

책 날개에 저자의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영화 <양들의 침묵>에 나오는 한니발 렉터 박사와 흡사한 느낌이라서.

음, 엄밀히 말하면 배우 앤소니 홉킨스가 연기한 한니발이라고 해야겠네요.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의 연기를 너무 완벽히 해내는 바람에 제 머릿속에는 한니발의 이미지로 각인된 배우이기도 해요. 저자에겐 미안하지만, 지극히 주관적인 첫인상이니까, 설마 이 글을 읽을 리도 없을테고.

저자는 세관직원으로 근무하면서 소설을 써오다가 2011년 장편소설 <눈의 살인>으로 데뷔하면서 본격적인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네요.

데뷔작 <눈의 살인>은 코냑추리소설대상을 수상했고, 프랑스에서 6부작 드라마로 제작됐다고 하니, 탁월한 스릴러 작가임에는 틀림 없는 것 같아요.


<물의 살인>에서 피해자는 자신의 집 욕조에서 살해당했어요.

차마 그 장면을 묘사하지 못하겠어요. 그만큼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범죄 형태라서 섬뜩했어요.

피해자의 이름은 클레르 디마르, 나이는 서른둘, 마르삭고등학교 졸업반 교사예요.

살인 현장이 발견된 건 클레르의 집 건너편에 살고 있는 남자 올리버 윈쇼의 신고 때문이에요.

폭풍우 속에 들려오는 커다란 음악소리, 거실에서 정원으로 드나들 수 있는 대형 유리문이 활짝 열려 있고, 풀장 수면 위에는 인형 여러 개가 빗줄기에 넘실대고, 풀 가장자리에 걸터앉은 남자는 두둥실 떠다니는 인형들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어요. 남자의 멍한 눈빛, 헤벌어진 입이 보였고, 바로 경찰에 신고했어요.

현장에서 검거된 용의자 이름은 위고 보카노브스키, 한 달 후면 열여덟 살이 되는 소년은 마르삭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

그러니까 위고는 죽은 여성이 가르치던 학생이었어요. 술과 약물에 완전히 취한 상태였고, 자신이 발견했을 때 이미 클레르는 죽어 있었다고 진술했어요.

정황상 모든 증거가 위고를 살인자라고 가리키고 있어요. 

다만 딱 하나 걸리는 건, 위고의 진술에서 클레르 집에 도착했을 때 평상시와는 다른 음악이 틀어져 있었다는 거예요. 


그런데 왜 하필 그 저녁이어야 했을까요?

2010년 6월 11일, 남아공월드컵에 출전한 프랑스 팀의 첫 경기가 열리는 날이었어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그 시간!

축구를 좋아하는 위고 역시 친구들과 함께 있었는데, 매우 컨디션이 나빠 보였고, 경기가 시작될 무렵 사라졌다고 친구가 진술했어요.


사건을 맡은 툴루즈 경찰청 강력반 세르바즈 경정.

형사 경력 16년의 세르바즈의 사전에 우연의 일치란 없어요.

그렇다면 진범은 누구일까요.


구스타프 말러.

<킨더토튼리더 Kindertotenlieder , 죽은 아이들을 위한 노래>.

1963년 칼 뵘 지휘,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 노래.  (116p)


피해자 클레르 디마르의 CD 플레이어를 통해 흐르던 음악이에요. 위고의 진술에 의하면 클레르는 재즈 아니면 록, 힙합을 들었다고 해요. 

바로 이 음악 때문에, 세르바즈 경정은 단 한 사람을 떠올렸어요.

쥘리앙 알로이스 이르트만. 

이르트만은 주네브 법원 전직 검사로 무려 20여 년 동안 일하면서 동시에 40명이 넘는 여성을 납치 고문하고 살해했어요. 그는 2004년 6월 21일 밤 아내와 그녀의 정부를 살해한 혐의로 체포되었어요. 살인을 저질렀던 저녁에 이르트만이 선곡한 곡이 바로 <킨더토튼리더>였어요. 지적인 소시오패스 연쇄살인마는 여러 정신병원을 전전하다가 바르니에 치료감호소에 감금되기 직전에 탈주했어요. 깜쪽같이 사라져버렸어요.

그러니 지금 벌어진 살인 사건이 이르트만과 관련되었다는 증거는 전혀 없어요. 그저 심증뿐.


솔직히 연쇄살인마를 추적하는 것보다 세르바즈 경정의 개인사가 더 흥미로웠어요.

얽히고 설킨 관계 속에서 세르바즈의 상처입은 내면이 서서히 드러나게 되고, 사건은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들어요.

학창 시절에 친구였던 프랑시스 반 아케르는 세르바즈에 대해 이렇게 말했어요. 정말 세르바즈라는 사람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한 것 같아요.


"마르탱, 가만 보면 자네는 언제나 아타락시아*와는 거리가 멀어.

불의에 대한 자네의 그 예민한 감각, 자네의 분노, 그놈의 빌어먹을 이상주의....." (165p)

  《*아타락시아 Ataraxia , 에피쿠로스 학파의 핵심개념 중 하나로 '마음의 평정'을 의미한다.》


세르바즈 역시 사건 때문에, 오랜만에 반 아케르를 만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어요. 그를 향한 첫마디가, 왠지 자신에게 하는 말처럼 들렸어요.

아니,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일 거예요. 중요한 건 흘러간 시간에 집착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을 직시하는 것.

우리는 살아 있으므로.


"Fugit irreparabile tempus."

'흘러간 시간은 돌이킬 수 없나니.'

- 비르길리우스의 <농경시 Georgica>(BC.29)  

   (157p)


아직 결말은 알 수 없어요. 1권 끝, 그리고 2권으로 이어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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