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의 행복에 이르는 지혜 - 틱낫한 스님이 새로 읽고 해설한 반야심경
틱낫한 지음, 손명희 옮김, 선업 감수 / 싱긋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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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


무슨 뜻인지 아시나요?

『반야심경』이라는 불교 경전에 나오는 말이라고 해요.

이 문구의 의미를 처음 들었을 때, 고개를 갸웃 했어요. 마치 암호 같아서.

그런데 바로 이 문구가 『반야심경』의 정수라고 하니, 너무 어려워서 감히 더 들여다볼 시도조차 못했어요.


<최상의 행복에 이르는 지혜>는 틱낫한 스님의『반야심경』해설서예요.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틱낫한 스님의 책들을 읽으면서 마음의 평화를 느꼈던 터라, 이 책에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왜 틱낫한 스님이 『반야심경』을 새롭게 번역했는지, 그 이유가 나와 있어요.


"『반야심경』은 우리를 강 건너 참자유와 행복, 평화의 기슭으로 데려다 줄 힘이 있는 심오하고도 중요한 경전이지만

지난 1500년간 숱한 오해를 불러일으켰습니다. 

나는 『반야심경』을 편찬한 선사가 선택한 표현이 다소 서툴렀던 까닭에 이러한 오해가 생겼다고 믿습니다.

말은 한 마디만 달라져도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쉽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현실의 본질에 대한 가장 깊은 통찰은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다는 사실 역시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 스승은 제자들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자신이 최선을 다해 안내해야 한다는 사실 역시 잘 알고 있습니다."


틱낫한 스님은 현시대의 정신적인 스승으로서 우리에게 지혜의 말씀을 전하고 있어요.

아무리 심오한 가르침일지라도 우리가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한다면 오히려 해가 될 수 있어요. 그래서 가장 본질에 근접한 새 번역으로 해설해주고 있어요.

이 책은 틱낫한 스님의 영문본 『반야심경』을 우리말로 번역한 거예요. 부록에는 『반야심경』의 산스크리트어 버전과 직역한 영어 버전이 수록되어 있어요.

언어의 한계를 넘어선다는 게 참으로 어려운 것 같아요.

이 책에서는 '선(禪)'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영어로는 'Zen'으로 널리 쓰이고, 산스크리트어로는 '명상'을 뜻하는 '디야나 dhyana', 중국어로는 '찬', 한국어로는 '선', 베트남어로는 '티엔'이라고 읽는다고 해요. 서로 다른 언어지만 하나의 의미를 뜻하는 것처럼 우리 역시 그 의미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해요.


『반야심경』에 나오는 공(空)은 '비어 있다'는 의미 때문에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고 모든 것이 텅 비어 있다고 잘못 생각할 수 있어요. 새로운 번역본에서는 비어 있음이 자아와 현상의 부재나 비존재가 아니라 '분리된 자아가 없다'라고 해석하고 있어요. 삼라만상은 혼자서는 존재할 수 없고, 모든 것은 더불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 반야바라밀다의 핵심이에요. 그래서 사전에도 없는 새로운 단어인 '상호존재(interbeing)'로 표현하고 있어요.


"당신이 시인이라면 이 한 장의 종이 안에 흐르는 구름이 또렷이 보일 것입니다.

구름 없이는 비가 내릴 수 없습니다.

비 없이는 나무가 자랄 수 없습니다.

나무 없이는 종이를 만들 수 없습니다.

종이가 존재하려면 구름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구름이 없다면 이 종이 역시 이곳에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구름과 종이는 상호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45p)


따라서 공에 대한 우리의 기존 관념을 제거해야 해요. 산스크리트어로 '루파'는 대개 '색(色, form)으로 번역하는데, 몸을 의미해요. 좀더 의미를 확장하면 생물, 즉 살아 있는 물질로 볼 수 있어요. 새 번역에서는 '색'이라는 단어를 '몸'으로 대체했어요. 오늘날 물리학에서는 물질이 단단하지 않으며 빈 공간으로 가득차 있다는 걸 밝혀냈어요. 우리 몸을 구성하는 원자는 그 대부분이 빈 공간이며, 결코 고정되거나 정지되어 있지 않아요.  경전이 만들어진 당시에는 오늘날 같은 과학 용어가 없었기 때문에 '비어 있다', 즉 '공(空)하다'는 표현을 써서 물질의 본질을 묘사했던 거예요. 우리 몸은 비어 있기 때문에 비로소 몸으로 있을 수 있어요. 우리 몸은 생명으로 가득차 있어요. 마찬가지로 종이가 비어 있기 때문에 햇살과 벌목꾼, 그리고 숲이 종이 안에 깃들 수 있는 거예요.

모든 현상에는 온 우주가 담겨 있어요. 비어 있음은 무상(無常, impermanence), 덧없음이자 변화이며 곧 살아 있다는 뜻이에요. 숨을 들이쉬고 내쉰다는 뜻이에요.

서양 철학에서는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느냐를 문제로 삼았다면, 불교에서는 존재와 비존재가 문제 되지 않아요. 부처님은 현실을 바라보는 올바른 관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그것은 존재와 비존재를 초월하는 관점이라고 표현했어요. 이것을 불교에서는 정견(正見)이라고 해요. 


『반야심경』은 우리에게 상호존재라는 관점에서 자신과 세상을 들여다보라고 조언하고 있어요.

우리는 분리되어 있지 않아요. 우리는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책임이 있어요.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비극, 온 세상의 괴로움에 대한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는 걸 깨닫는 일이 바로 상호존재의 통찰이라고 할 수 있어요. 우리는 모든 것을 상호존재라는 본질에서 바라보아야 진정한 깨달음의 지혜를 얻을 수 있어요.

선과 악, 괴로움과 행복, 불행과 행복은 별개의 존재가 아니에요. 괴로움 없이는 행복을 누릴 수 없어요. 굶주려 본 경험이 있어야 먹을거리가 있다는 기쁨을 알 수 있어요. 전쟁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평화의 소중함을 알지 못해요. 세상의 모든 것은 더불어 존재한다는 것.


"행복에 이르는 길은 없다. 행복이 곧 길이다."  (148p)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세상 그 무엇도 항상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영원한 것은 없어요. 깨달음과 통찰, 행복과 해방조차 영원하지 않아요. 일시적으로 생성된 것이기에, 정성들여 보살피지 않으면 다시 또다른 무언가로 바뀌고 말아요. 

이제서야 공(空)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했어요. 비어 있어라, 그리고 깨어 있어라.


"... 강 건너 참자유에 이르는 지혜인 반야바라밀다를

찬탄하는 진언을 다음과 같이 이르노라.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갔네, 갔네, 건너갔네, 모두 건너가서 한없는 깨달음을 이루었네!)"  (17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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