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1 (특별판)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5월
평점 :
품절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들은 씨실과 날실처럼 촘촘하게 엮인 것 같아요.

전작 <죽음>에서는 영매를 통해 죽음의 실체를 추적했다면, 이번에는 <기억>을 통해 우리의 정체성을 탐구하고 있어요.

나이들수록 무서운 건 죽음보다 망각인 것 같아요.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치매에 대한 공포증이 생긴 것 같아요.

주변에 이른 나이에 치매가 발병된 사람들을 보면 인생이 서글퍼져요. 기억을 잃어버린 사람은 빈 껍데기가 되어버린 것 같아요.

우리가 알던 그 사람은 사라지고, 공허한 눈동자를 가진 낯선 사람만 남겨진 듯.


<기억>의 주인공 르네 톨레다노는 서른두 살의 고등학교 역사 선생님이에요.

어머니가 폐암으로 돌아가신 후 아버지는 우울증을 겪다가 치매 환자가 되었어요. 그토록 똑똑했던 아버지는 좀전의 일도 기억 못하고, 아들 르네의 얼굴도 못 알아봐요.

어느 일요일 저녁, 르네는 같은 학교 동료교사인 엘로디와 함께 <최면과 잊힌 기억들>이라는 공연을 관람 중이었어요. 무대에 선 최면사 오팔이 청중을 훑어보며 지원자를 찾았어요.


"당신이라고 믿는 게 당신의 전부가 아닙니다. 당신은 누구인가요. 당신이 진정 누구인지 기억할 수 있나요?"  (13p)


최면사 오팔이 관객석에 앉아 있는 르네를 가리킨 건 우연일까요, 아니면 운명일까요.

모든 사건의 시작에는 첫만남이 존재해요.

오팔은 르네를 최면에 빠뜨렸어요. 눈을 감고 머릿속에 계단을 떠올려 내려간 다음 무의식의 문 앞으로 인도했어요. 그 문을 열고 들어가자 두꺼운 빨간색 카펫이 깔린 복도가 보였어요. 번호가 붙어 있는 문들이 쭉 이어져 있는데, 가장 가까이 보이는 숫자가 「111.」이었어요. 그건 르네가 지금 나온 게 112번 문이라는 뜻이에요. 112번째 생을 살고 있는 거예요. 오팔은 가장 가보고 싶은 전생을 고르라고 했고, 르네는 가장 영웅적인 삶을 살았던 때가 궁금하다고 했어요. 그때 109번에 불이 들어왔고, 그 문을 열고 들어갔어요. 르네의 109번 전생은 어떤 삶이었을까요.

안타깝게도 르네가 기대했던 멋진 삶은 아니었어요. 오히려 너무 끔찍하고 충격적이라서 최면사가 깨우기 전에 비명을 지르며 공연장 밖으로 뛰쳐나갔어요. 그리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사고가 벌어졌어요. 109번 전생의 기억이 되살아난 데다가 사고까지 겪은 르네는 불안 증세를 보였어요. 


예전에 TV를 통해 최면으로 전생을 경험하는 내용이 나온 적이 있어요.

진짜일까, 가짜일까... 그보다 더 궁금한 건 피실험자의 태도였어요. 전생의 기억을 믿는 순간 굉장히 감정몰입이 됐는데, 이후에 그 감정이 어떤 영향을 줬을지.

우리의 기억은 늘 불완전한 것 같아요. 자신이 믿고 싶은 걸 기억하는 경우가 다반사라서, 똑같은 상황을 사람마다 다르게 기억하거든요.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는 우리가 누구인지 기억해 내기 위해서야." (276p)


최면사 오팔은 르네를 통해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어요. 

상상하지 못했던 놀라운 세계, 와우!  그러나 르네의 현실은 엄청난 위기에 직면하게 돼요. 

전생과 현실 세계를 오가는, 그야말로 스펙타클한 모험이 펼쳐져요. 역시나 우리가 상상했던 영웅의 모습은 아니지만 르네는 충분히 영웅적인 행동을 보여줬어요.

만약 나였다면, 문득 전생이 궁금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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