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이스 오페라
캐서린 M. 발렌티 지음, 이정아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5월
평점 :
절판


눈앞에 외계인이 나타난다면 이런 기분일까요?

그동안 상상했던 외계인의 모습과는 사뭇 달라서, 술이 덜 깬 데시벨 존스의 심정이 십분 이해가 됐어요.

사실 외계인 입장에서도 데시벨 존스의 반응은 예상 밖이었어요. 왜 아니겠어요, 그는 평범한 지구인이 아니거든요.

<스페이스 오페라>는 외계인이 지구로 내려와 동시접속하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어요. 

예전에 봤던 SF영화처럼 외계인 침공이 위압적인 공포 분위기는 아니었어요. 

은하계에서 뛰어난 지각력을 갖춘 외계인 에스카 종족은 이미 지구에 관해 많은 걸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거대한 우주선 대신에 작은 우주선을 타고 왔어요.

와, 배려가 넘치는구나 싶었는데, 더 놀라운 건 인간의 언어로 동시다발적으로 말을 걸어 왔어요. 

바로 그 순간, 지구에 살아 있는 70억 이상의 인간들은 일대일로 외계인의 부드럽고 우아한 목소리를 듣고 있었어요.

처음 마주한 외계인은 수려한 언어를 구사하며 인간의 연민과 애정을 자극하며 유혹했어요. 많은 인간들이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어요. 외계인의 지구침공은 인간의 마음의 문을 허물어뜨리면서, 1단계 성공했어요.


"자, 여러분, 새로운 단어에 겁먹을 우리가 아니죠, 그렇죠? 

물론이죠! 공부는 재밌다! 

'버스(verse)'는 그냥 당신들 언어 중에서 우리가 스스로를 지칭하는 말과 가장 가까운 단어라고 보면 돼요.

오늘 수업에서는 아주 재밌는 에스카의 계층사회학을 공부해 볼 거예요!

함께 새끼를 기르는 한 쌍과 이들의 새끼는 버스(verse), 어린 새끼들은 리릭스(Lyrics), 지배 계급은 코러스(Chorus), 프롤레타리아는 키(Key), 

그리고 상업에 종사하는 이들은 브리지(Bridge)랍니다.

어떤 행성에 살든 모든 에스카를 통칭해서 콰이어(Choir)라고 부른답니다.

다들 전부 다 외울 수 있겠죠?  잘할 줄 알고 있었답니다!

우리 종족 얘기는 이쯤 하면 됐고.

고향에서 당신들을 지칭하는 집합명사는 뭔가요? 

수업 시간에 함께 탐구할 문화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당신네 문화에 관심이 아주 많답니다."  (58-59p)


잊지 말아야 할 건 외계인이 지구에 그냥 놀러 온 게 아니라 침공했다는 사실이에요. 어차피 인간들을 잡아 먹을 거라면 왜 번거롭게 잡담을 나누고 있을까요.

그건 기회를 주려는 거래요. 인간들은 마지막 남은 도도새를 쏴 죽이기 전에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 새들에게 물어보지 않았지만, 외계인 종족 에스카는 인간보다 우월한 존재라서 나름의 절차가 있는 거래요. 그러면서 놀라운 제안을 해왔어요.


"인류여, 힘내시라! 당신들은 우주에서 가장 인기 있는 나이트클럽에 예약되었어요!

당신들은 유행의 첨단을 걷는 종들이 은하계 최고상을 받기 위해 모두 모이는 아름다운 리토스트 행성에 인류 대표를 보낼 거예요.

그럼 거기서 알루니자르, 케셰트, 이위즈, 에스카 같은 우주의 모든 종과 겨룰 거예요."  (69p)


이 무슨 봉창 두드리는 소리죠?

무시무시한 우주 전쟁을 예상했다면 반전이죠?  

일단 외계인의 모습이 만화 <루니툰>쪽에 훨씬 가까워요. 외계인 종족 에스카는 2미터 키에, 반은 플라밍고이고 반은 아귀처럼 생긴 군청색 깃털을 지녔어요.

와, 솔직히 책 속에 묘사된 우주 세계를 그려보다가 머리가 아팠어요. 

반가운 소식은, 영화 <라라랜드> 제작진이 <스페이스 오페라>를 영화로 만들 예정이라는 거예요.

혹시나 외계인이 등장하는 SF영화가 궁금한 사람이 있다면, 미드 <스타트랙>이나 1997년 개봉작 <제5원소>를 추천하고 싶어요. 

왜냐하면 <스페이스 오페라>에서도 '우주 그랑프리 가요제'가 등장하기 때문이에요. 줄거리는 전혀 다르지만 우주 은하계에서 펼쳐지는 음악쇼라서 뭔가 통하는 것 같아요.

외계 종족들이 이 노래 대회를 중요하게 여기는 건 은하 자원을 분배받는 일이 걸려있기 때문이에요. 

은하계 전체의 사회정치경제 조직체가 그랑프리 가요제 순위로 결정된다는 것이 신기하면서도 재미있어요. 자칫 잘못하면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한 상황들을 그들 나름의 지각력으로 다스리고 있는 거예요. 전쟁보다는 노래 대회가 훨씬 낫죠.

그런데 지구인 대표가 하필이면 한물 간 록 가수 데시벨 존스이라니!

그는 일렉트로펑크풍 글램록이라는 장르 자체를 만들어 내면서 세계적에게 가장 유명한 록 가수가 되었고, 그 인기는 얼추 30초 만에 끝났어요. 200만 장이 넘게 팔린 앨범 제목이 <끝내주는 우주인>이었어요. 데시벨 존스와 그의 밴드 앱솔루트 제로스가 누린 인기는 우주의 시간으로 보자면 딱 그만큼.

그 뒤는 술주정뱅이, 마약 중독자... 지구를 구해낼 영웅치고는 참으로 소박하다 못해 허술하네요.

그러나 외계인 에스카의 눈에는 데시벨 존스가 매우 흥미로운 존재였나봐요. 이 책은 음악을 틀고, 조명을 켜야 하는 디스코 볼 이야기예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리듬을 타면서 지켜보시길.


"삶은 아름다우면서도 또한 어리석다."라는 말은 소설 속에 자주 등장해요.  

데시벨 존스의 삶이 그러했고, 우주 은하계의 역사 또한... 음, 단정할 수는 없지만 소설에서는 우주도 다를 게 없더라고요.

과연 데시벨 존스와 앱솔루트 제로스는 제100회 우주 그랑프리 가요제에서 우승할 수 있을까요.

아마 우승 여부보다 더 놀라운 결말을 보게 될 거예요. 영상으로 본다면 우주적인 충격일 것 같아요.


" ... (우주는) ... 친절한 거대 디스코 볼이 된다.

음악 큐, 무용수들 등장.

내일이여, 입장."   (416-41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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