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잎처럼 - 도청의 마지막 날, 그 새벽의 이야기
정도상 지음 / 다산책방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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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꽃잎>이 떠올랐어요.

장선우 감독의 1996년 개봉작인데, 영화를 볼 당시에는 충격적인 장면들이 가진 의미를 잘 몰랐어요.

물론 그 이후 여러 영화들과 자료를 통해 5월 광주의 비극을 알게 됐어요.

그러나 아직 비극은 끝나지 않았어요. 계엄군의 발포 명령을 내린 사람이 모든 진실을 부정할 뿐 아니라 역사적 사실마저 왜곡하고 있으니...


작가 정도상의 소설 <꽃잎처럼>은 1980년 5월 18일부터 열흘간 이뤄진 광주민주화 운동의 마지막 날 밤과 새벽, 전남도청에 모인 오백여 명의 시민군들에 관한 이야기예요. 1980년 5월 26일 저녁부터 5월 27일 아침까지 시간순으로 들려주는 이야기는 소설이면서 동시에 소설이 아니에요.

주인공 '나'를 제외하고 나머지 등장인물들은 모두 실재했거나 실재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5·18 현장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어요. 

5월 26일 저녁, 도청 대변인실에는 외신기자들이 십여 명 와 있었고, 투쟁위원회 대변인을 맡은 상우 형이 기자회견을 했어요. 인요한이 통역을 맡았어요. 주인공 '나'는 상우 형의 곁을 지키는 경호원을 자처했어요. 그 이유는 사랑하는 희순의 요청때문이에요. 상우 형을 끝까지 지키라고 했으니까. 희순을 사랑한다면 그렇게 해야만 하니까.


"이런 소문이 있다. 도청의 지도자들은 용공분자라고.

왜 정부군에 투항하지 않는가?"

"당신의 부인이나, 딸이 정부군에 의해 무자비하게 살해되었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휴전선 북쪽을 향해 있어야 할 정부군의 총구가 왜 남쪽을 향해,

이 도시를 향하고 있는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 우리는 빨갱이가 아닙니다 ...

너무 억울합니다. 국가의 폭력 앞에 우리는 정당한 저항권을 가진 시민들일 뿐입니다."  (29p)


"오늘 밤 7시부터 이 도시에 거주하는 모든 외국인에게 철수 명령이 내려진 것에 대해 알고 있나요?"

"모르고 있습니다." 상우 형의 목소리는 담담했고 눈동자는 차분했다.

"한국의 정규군, 그 중에서도 공수부대는 특별히 강합니다. 도시 거주 외국인들에게 비행기를 제공하면서 철수시키는 것은 

곧 진압 작전이 시작될 것이라는 신호인데, 시민군이 정규군을 이길 수 있다고 보십니까?

제가 보기에 시민군은 결코 정규군을 이길 수 없을 것 같은데 왜 무기를 놓고 도청을 떠나지 않는 것입니까?"

기자의 질문이 날카롭게 내 가슴을 파고들었다. 상우 형을 쳐다보았다. 형이라면,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나라면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상우 형이 여기에 있으니, 나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게 사람의 일이다.'

아니다. '내일 희순을 만나기 위해 나는 오늘 밤 여기 머무르는 것이다.'  (30p)


그때 그 역사적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은 무장간첩이 아니라 평범한 시민들이었어요. 그들은 불 보듯 뻔한 패배를 알면서도 도청을 지켰어요. 오직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 그건 대단한 사명감 때문이 아니라 사랑 때문이었어요. 그런데 왜 계엄군은 도청에 쳐들어와 시민들에게 무차별 사격했나요. 선량한 시민들이 무참하게 학살된 그날의 기억들이 모여 이 책이 완성되었어요. 군화발에 짓밟힌 꽃잎처럼, 도청 옥상에는 피에 젖은 깃발이 펄럭였으니... 우리는 그날을 잊지 말아야 해요.

올해는 처음으로 옛 전남도청 본관과 별관이 있던 5·18  민주광장에서 제40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이 열렸어요. 문 대통령은 국가 폭력의 진상을 반드시 밝혀낼 것이라면서 이는 처벌이 목적이 아니라 역사를 올바로 기록하는 일이라고 말했어요. 발포 명령자 규명과 계엄군이 자행한 민간인 학살, 헬기 사격의 진실과 은폐·조작 의혹과 같은 진상규명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어요. 그러나 진실을 외면하는 자에게 용서와 화해는 가당치 않아요. 광주의 아픔이 헛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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