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해봐야 시체가 되겠지만 - 유쾌하고 신랄한 여자 장의사의 좋은 죽음 안내서 시체 시리즈
케이틀린 도티 지음, 임희근 옮김 / 반비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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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케이틀린 도티는 시카고 대학에서 중세사를 전공하면서, 

「시체에 관한 환상과 신화 : 파고파고 원주민들 사이에서 죽음의 해석」같은 제목의 학술 논문들을 독파하느라 4년을 보냈다고 해요.

놀랍게도 그녀는 시체, 장례식, 슬픔 같은 죽음의 모든 면에 끌렸고, 좀 더 적나라한 것들, 즉 진짜 시체, 진짜 죽음을 원했다고 하네요.

그리하여 선택한 일이 바로 장의사였어요.

이 책은 케이틀린 도티가 미국의 장의업계에서 일한 첫 6년의 경험을 담고 있어요.

『잘해봐야 시체가 되겠지만』

원제 : Smoke Gets in Your Eyes : And Other Lessons from the Crematory

죽음과 시신들에 대한 적나라한 묘사가 불편한 사람들에게는 적합하지 않은 책일 수도 있어요.

솔직히 저 역시 쉽지는 않았지만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건 "두려움을 응시하기"라는 저자의 말 덕분이었어요.

무엇보다도 케이틀린 도티는 저승사자가 아니라 유쾌하게 자신의 삶을 살며 이야기할 줄 아는 사람이란 걸 알게 됐어요.

책을 읽기 위해 대단한 준비를 할 필요는 없어요. 단지 한 장을 넘길 수 있다면 그다음은 술술.


애써 외면하려고 해도 죽음은 늘 우리 주변에 있어요. 매일 끊이지 않는 사고와 죽음들.

저자도 그걸 묘사하는 게 소름 끼친다고 표현하고 있어요. 중요한 건 눈을 감거나 도망치지 않았다는 것.

화장장 직원으로 일하면서 죽음을 직면하는 데 빠르게 중독되어 갔다고 이야기해요. 

점심 시간은 언제 오지? 나는 언제쯤 깨끗해질 수 있지?

화장장에는 먼지와 검댕이가 얇은 층을 이루어 모든 것 위에 내려앉는대요. 죽은 사람들과 기계에서 나온 재들이 남긴 흔적들인 거죠.

시체가 타는 화장로 앞에서 이따금 안을 들여다보며 시체의 상태를 파악해서 중간에 위치를 바꿔줘야 깔끔하게 탈 수 있다고 해요.


왜 그녀는 죽음에 대해 끌리게 되었을까요.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줘요. 어항 속 물고기의 죽음...과 같은 경험은 아마 다들 있을 거예요.

그러나 결코 잊을 수 없는 죽음의 기억이 있었으니...

여덟 살 때, 집 근처 쇼핑몰에서 할로윈 의상 경연대회가 있었고, 무도회의 죽은 여왕으로 변신해 무대에 올라 상금을 받았대요.

대회가 끝나고, 쇼핑몰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와 저 멀리 벤치에 앉아 졸고 있던 아빠를 향해 소리쳤대요.

그때 어떤 어린 여자아이가 에스컬레이터와 2층 난간이 만나는 지점으로 올라가는 것이 보였고, 그다음은 쿵!

10미터 아래로 떨어진 그 여자아이의 몸을 보자 양 무릎의 힘이 풀렸고, 그 쿵 소리가 마음속에서 자꾸만 되풀이해서 들렸대요.

지금이라면 그 소리들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한 증상으로 여겨졌겠지만 그때는 그저 유년에 울리는 북소리였던 거예요.

그날 밤에 무서워서 불도 못 끄고 그대로 앉아 있었어요. 그 전까지는 내가 죽는다, 사람은 다 죽는다,라는 걸 진정으로 이해한 적이 없었대요.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죽을 걸 알면서도 계속 살 수 있는지 궁금했다고 해요. 

이 경험에서 놀라운 건 여덟 살짜리 아이가 죽음을 목격했다는 점이 아니라 여덟 해를 꼬박 살고서야 비로소 죽음을 목격했다는 점이라는 거예요.

처음 죽음을 목격한 아이의 공포와 충격, 그 뒤로 죽음을 보기 시작했대요. 당시에는 죽음이 두려워서 그것을 통제할 방법을 찾으려고, 불안을 줄이려고 온갖 강박적인 행위와 의식을 다 했다고 해요. 좀 더 자라서 죽음에 대한 끊임없는 생각이 사라지면서 그 의식들도 끝났고, 시도 때도 없이 꿈에 나타나는 쿵 소리들도 멈췄다고 해요.

그러니까 이십 대 그녀가 섬뜩하고 오래된 화장장에서 일하게 된 건 과거 여덟 살 먹은 나를 치유하기 위한 방도였던 거예요.

스스로를 치유하기 위해서.

이 책은 자신처럼 죽음과 만난 첫 경험 때문에 생긴 트라우마를 겪지 않게 해주려고, 장의사로서 좋은 죽음을 안내하고 있어요.

분명한 것은 좋은 죽음이란 하나의 정답이 아니라는 거예요. 오히려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화두인 것 같아요.

당신에게 좋은 죽음이란 무엇입니까?  단순히 철학적인 질문이 아니라 현실의 문제라는 걸 깨닫게 하는 책이었어요. 

장의업이 대중을 속여 가로채고 있었던 건 돈보다는 '죽음' 자체였다고, 우리는 죽음과의 실제적인 상호작용을 하고 죽는다는 사실을 대면할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었어요. 죽음은 '알려져야' 한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어요. 어려운 정서적, 육체적, 정서적 과정으로서 사람들에게 알려져야 하고, 존중받아야 하며, 있는 그대로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이제 우리는 죽음과 죽음 산업을 이해하는 방식을 바꿔야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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