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고 푸른 사다리
공지영 지음 / 해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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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고 푸른 사다리.

'나무'를 떠올렸습니다.

땅에 뿌리를 내리고, 그 힘으로 높은 하늘을 향해 자라나는 나무.

아무리 높이 가지를 뻗는다 해도 결코 닿을 수 없는 하늘이지만 하늘에서 내리쬐는 빛과 비바람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나무.

그래서 '사다리'는 누군가의 간절한 마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책을 펼치기 전에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사랑'과 '죽음'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내 인생 어디쯤, 먼 기억을 뒤적거렸습니다. 다락방 깊숙히 쌓아놓은 사진첩 같은 기억들.

사실 읽다가 눈물이 났습니다. 그들의 사랑은 저마다 모습은 다르지만 너무나 똑같아서, 똑같이 아파서...

처음에는 세속적인 사랑을 보았고, 그다음은 숭고한 사랑을 보았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은 죄가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사랑하려고 할 때 그 모든 사랑을 무의미하게 느끼도록 만드는 것들이 악입니다.

악은 수많은 얼굴로 다가온다고, 그들이 우리에게 원하는 것은 단 한가지, 무의미라고 토마스 수사님은 말했습니다.


주인공 정요한은 신부(神父) 서품을 앞둔 베네딕도 수도회의 젊은 수사입니다.

그해 세 사람이 그의 곁을 떠나갔습니다.

수도원에 처음 도착한 날, 요한이 기억하는 것은 침묵이었습니다. 본관 입구에서 용건을 꺼내자 문지기 수사님이 아빠스(Abbas, 대수도원 원장)님이 기다리고 계신다며 안내했습니다. 수도원 내부로 향하는 문 입구에는 다음의 문구가 붙어 있었습니다.

"기도하고 일하라 (Ora et Labora)."

"당신이 진리를 사랑한다면 모든 것보다 더욱 침묵을 사랑하십시오."  ​(13p)

그리고 "휴대전화를 꺼주세요."라고 문지기 수사님은 말했습니다.

수도 생활을 각오하며 그 고요함을 동경했으나 침묵의 이 막강한 힘은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아빠스 신부님과의 면담에서 왜 수도사가 되고 싶으냐는 질문에 요한은 대답했습니다.

"저기 복도에서 대걸레를 밀고 계시는 저 노수사(老修士)님처럼 살다가 죽고 싶어서요."  (15p)

수도원의 모든 일과는 종소리로 시작되어 종소리를 끝납니다.

새벽의 기상이 너무 힘겨워 중도에 수도원을 떠나는 지망생들도 있었지만 요한은 그 종소리를 사랑했습니다.  

새벽의 찬 기운을 피하려고 검은 후드를 뒤집어쓰고 올려다보면

그것은 이 지상에 유일하게 허락된 영원에의 통로, 야곱이 보았다는 그 사다리가

소리를 타고 쏟아져 내리는 듯했다.

만져볼 수도 붙들 수도 머물 수도 없으나 분명히 거기 있는, 그런.   (23p)

그러나 요한은 그날 이후로 종소리를 저주했습니다. 아주 오랫동안...

"사랑하라, 요한. 사랑하라."  (133p)

곧 사제가 될 사람이, 평생을 주님과 함께하겠다고 맹세한 사람인데 사랑으로 인해 흔들렸습니다, 아니 사랑의 대상이 바뀌었습니다.

요한의 사랑이 봄에 피어나는 목련 같아서 아름답게 피고 졌다면, 미카엘과 안젤로의 사랑은 뜨거운 불꽃처럼 온전히 타올랐습니다. 아파도 견딜 수 있는 건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누구든 사랑한다면 사랑하기를 멈춰서는 안 됩니다.

결국 우리 인생에서 마지막에 남는 건 가장 소중한 그것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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