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우리였던 날들을 기억해요 - 우리였던 기억으로 써 내려간 남겨진 사랑의 조각들
박형준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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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의 한 구절 같은 책 제목,

우리가 우리였던 날들을 기억해요...

사랑했던 두 사람에게 '우리'라는 말은 왠지 더 특별하고 애틋하게 느껴져요.

저자는 이 책에 담긴 글들이 '나를 반짝이게 했던 그 사람을 기억하며 썼다고 해요.


이 책은 사랑으로 인한 상처에 살포시 붙이는 반창고 같아요.

저자는 열다섯 편의 영화와 함께 자신의 사랑 이야기를 들려줘요.

영화 <뷰티 인사이드>의 주인공 '우진'은 매일 다른 모습으로 삶을 살아요. 성별, 나이, 인종, 국적을 넘나드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 신기해요.

우진 역시 자신의 삶에 적응하며 살고 있었죠. 그런데 그녀 '이수'를 사랑하면서 고민하게 돼요. 그녀가 봤던 남자의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서 며칠 밤을 뜬눈으로 보내요. 우진의 비밀은 잠들었다가 깨어날 때 모습이 바뀌는 거라서, 잠들지 않으면 그 모습을 유지할 수 있어요. 그러나 아무리 버텨 보려고 애써도 평생 잠을 안 잘 수는 없는 노릇이죠.

결국 이수에게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지만 그들의 사랑은 순탄치 않아요. 이수는 매일 낯선 모습으로 바뀌는 우진을 감당하기 힘들어 해요. 그걸 바라봐야 하는 우진 역시 괴롭기만 하죠. 우진은 사랑하는 그녀를 위해서 이별을 선택해요.

"우리 헤어지자, 그게 좋을 것 같아." 남자는 여자의 손을 꼭 잡고 걸어가다가 이별을 말하고

"감기 들겠다, 얼른 들어가."라고 말한다. 군더더기 없는 짧은 이별이다. (27p)

이 영화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말해요.

그때 나는 사랑은 노력하는 거라 믿었노라고. 그녀를 위해 노력하는 만큼 그녀가 내게로 더 가까이 올 것이라고.

그녀가 조금 멀리 있다고 느껴지는 건 노력이 부족한 탓이라고.

그러나 사랑은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영화에서는 우진의 겉모습이 매일 바뀌는 설정이 우리를 놀라게 했다면, 현실은 정반대가 아닐까 싶어요.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처음의 마음이 점점 다르게 변하기 때문에 이별하는 거예요. 사랑이 식은 게 아니라 마음이 변한 거예요.

누군가를 사랑할 때 그를 사랑하는 이유가 우진의 모습처럼 언젠가 바뀌는 그 무엇이라면, 그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어요.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해요.

'그 사람의 무엇을 사랑하나요?'


중요한 건 이별하는 사랑일지라도, 그 사랑을 피할 수는 없다는 거예요.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그녀>,<가장 따뜻한 색, 블루>, <라이크 크레이지>,<블루 발렌타인>,<파수꾼>,<한 공주>, <맨체스터 바이 더 씨>,<1987>, <이터널 선샤인>,<컨택트>,<라라랜드>,<더 테이블>의 주인공들처럼.

"잘 가요, 내 삶의 또 다른 주인공이었던 당신."   (79p)


사랑했던, 사랑하고 있는, 사랑하게 될 당신은, 곧 시(詩)처럼 영화처럼 살게 될 거예요.

이 책은 남겨진 사랑의 조각들을 모아놓은 이야기예요. 사랑은 참으로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우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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