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로 사는 이유
에버하르트 아놀드 지음, 김순현 옮김 / 비아토르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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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현대인들의 특징 중 하나인 개인주의. 언제부터인가 ‘인간의 존엄’과 ‘자기결정’의 가치를 중시하는 수준을 뛰어넘어 ‘나 자신만을 위하는 태도’로 개인주의가 자리잡아 버렸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고, 몸 된 지체를 사랑하도록 부름받은 기독교에도 이런 개인주의가 깊숙이 침투한지 오래다. 많은 신앙의 선배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뒤로한 채 나만을 위한 삶을 사는 것을 현대 기독교의 큰 문제 중 하나로 꼽고 있다.
이런 작금의 상황 속에서 사도행전 2장과 4장의 모습을 재현하고자 모인 순전한 공동체가 있다. 바로 대표적인 기독교 공동체로 알려진 ‘브루더호프’다. 현재 브루더호프는 20개 이상의 공동체를 유럽과 미국, 호주와 남미 등에 두고 있다. 여러 나라·인종·계층 출신의 구성원들이 모여, 사유재산 없이, 매일 함께 노동, 식사, 기도, 예배, 찬양을 한다.

‘공동체로 사는 이유(에버하르트 아놀드, 비아토르)’는 브루더호프의 창립자인 에버하르트 아놀드가 ‘공동체 생활을 기리며 한 고백’(54p)에 ‘해설’과 그의 ‘전기’ 등을 덧붙인 책이다. 우리는 이 작은 책을 통해 10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온 브루더호프의 비결을 유추해볼 수 있음과 동시에 어떤 공동체를 만들어가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책의 각 차례들을 순서대로 따라가 보는 것은 의미 있는 과정이다. 트라피스트 수도회 수사이자 사제인 배질 페닝턴의 「Ⅰ. 머리글」은 ‘공동체로 사는 이유’를 고백한 에버하르트 아놀드와 그의 글을 ‘해설’한 토머스 머튼의 교차점을 통해 이 책의 전반적인 밑그림을 그리도록 돕는다.
「Ⅱ. 에버하르트 아놀드의 생애」는 에버하르트 아놀드의 아내인 에미 아놀드가 썼는데, 아놀드의 짧은 전기를 기초로 브루더호프 공동체의 역사를 함께 보여준다. ‘믿음과 경제’의 이유로 함께 하던 사람들과 결별을 하기도 하고, ‘게슈타포와 친위대, 경찰’이 브루더호프를 점령하기도 했지만 그들은 무너지지 않았다.
공동체를 향한 굳은 신념은 에버하르트 아놀드가 쓴 「Ⅲ. 공동체로 사는 이유」에 명백히 드러나 있다. 그는 공동체로 사는 삶에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성령의 도우심을 강조한다. “인간은 하나님 없이 자신의 현재 본성만으로는 공동체를 이룰 수 없(57p)”기 때문에, 하나님께 사로잡힌 ‘믿음’이 간절하다. 또한 “성령은 모든 사람에게 서로를 위해 살고 서로를 위해 수고하는 것을 기쁨으로 삼도록 닦달하신다.(70p)”, “우리는 공동체로 살아야 한다. 기쁨과 사랑의 성령이 우리로 하여금 우리 가운데 공동체를 갖고자 하는 소원을 늘 품도록 이끄시기 때문이다.(71p)”, “인간이 임의로 결성한 동맹이 아니라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참 교회, 곧 성령의 교회만이 모든 결속과 일치의 토대이자 근본 요소다.(84p)” 도우시는 성령만이 서로를 온전히 연합하게 한다.
‘공동체로 사는 이유’의 독일어판 편집자가 밝혔듯 에버하르트 아놀드의 언어와 문체는 난해한 편이다. 때론 거친 원석처럼 느껴지는 그의 글이 토머스 머튼의 「Ⅳ. “공동체로 사는 이유”에 대한 두 편의 해설」로 비로소 제대로 이해되기 시작한다. 첫 번째 해설에서는 공동체를 인간의 사랑이 아닌 하나님의 사랑 위에 세우는 것에 대해 말한다. “아놀드가 강조하고자 하는 바는 공동체는 사람이 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신다는 것입니다. 공동체는 하나님의 작품이며, 공동체의 기초는 친목이 아니라 믿음입니다.(100p)”, “공동체를 우리의 사랑 위에 세우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 위에 세우는 것이 중요합니다.(114p)” 두 번째 해설에서는 아놀드가 그 글을 쓰던 시기에 처한 환경(국가 사회주의자들과 공산주의자들 사이에 끼인 상태)에서의 교훈, 즉 “성령께서 이 두 입장을 초월해 계시니, 우리도 양쪽을 넘어서(119p)” “사랑이 있는 곳에 머물러야 한다.(120p)”고 주장한다. 세상의 특정한 정치적 입장에 얽매이지 않는 성령을 쫓아 사랑으로 나아가야 한다.
「Ⅴ. 후기」에는 브루더호프 공동체의 실제 사진과 현재 브루더호프 공동체를 개괄적으로 소개한다. 함께 사는 지역의 전경, 둘러 앉아 드리는 예배 현장, 결혼 예식, 노동하는 여성들, 놀이하는 아이들 등을 통해 글로만 읽었던 브루더호프의 공동체 생활을 훨씬 가깝게 느낄 수 있다. 그렇기에 이 장은 책을 처음 읽을 때 한번 보고 책장을 덮으며 한 번 더 보면 좋을 장이다.

책 전반에서 확인 가능한 브루더호프의 모습, 에버하르트 아놀드와 토머스 머튼의 가르침은 우리가 공동체로 살아가야 할 이유가 충분함을 보여준다. 하지만 다양한 상황과 여건에 따라 같이 사는 공동체를 이루지 못했다고 해서 낙심할 필요는 없다. 교회는 생활 공동체를 이루지 못했더라도, 삶을 공유하는 공동체는 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그런 교회는 아놀드의 말대로 “하나님 믿기. 서로 신뢰하기. 신뢰가 무너질 수도 있고 다시 세워질 수도 있음을 알기. 이 모든 것은 우리 삶의 한 부분(112p)”이라고 여기며 살아간다. “십자가로 차별을 분쇄(107p)”하며 부대끼는 공동체, 그런 공동체가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교회 공동체가 아닐까?
같이 사는 공동체가 될 마음이 없다고 이 책을 그냥 넘겨버리기에는 이 책이 온전한 교회가 되어가는 데 중요한 본질을 너무 많이 담고 있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진정한 공공체가 되기 원하는 성도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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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강한 교회 - 우리 교회는 이미 충분히 크다
칼 베이터스 지음, 조계광 옮김 / 생명의말씀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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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소개된 저자, 칼 베이터스가 썼다. 그는 미국의 유명한 작은 교회 운동가로서 ‘크리스채니티 투데이’(Christianity Today)에 ‘작은 교회의 가치와 필요성’에 관해 기고하고 있다. 이런 이력뿐만 아니라 이 책에 소개된 여러 예시들을 접하다보면 그가 ‘작고 강한 교회’에 대해 이야기할 자격이 충분한 사람이라고 여겨진다.
이 책의 원제목은 ‘small church essentials’로서 직역하면 ‘작은 교회의 본질적 요소’다. 그런데 국내에는 ‘작고 강한 교회’로 소개 되었다. 나는 원서 제목보다 번역서 제목이 이 책 내용을 더 잘 포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이 책이 지속적으로 ‘작은 교회’와 ‘(건)강한 교회’에 대해 말하기 때문이다.
책에 등장하는 ‘작은 교회’는 어떤 교회를 말하는가? 칼 베이터스는 ‘작은 교회’를 주일 평균 출석 인원이 250명 이하인 교회라고 말하였지만. 국내에 이 책을 소개한 편집자는 250명이라는 기준을 북미 교회를 고려한 숫자로 보고 한국의 경우 대략 100~150명 미만의 교회라고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31p). 즉, ‘작은 교회’는 지역이나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는 있겠지만 주일 평균 출석인원이 250명이 넘지 않는 규모의 교회를 지칭한다고 보면 무리가 없을 것이다.
사람에 따라 ‘작은 교회’라는 명칭이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큰 교회와 작은 교회를 구분하기 위해 이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인원수에 따른 특성의 차이가 분명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하고 있다. “교회의 규모는 교회의 기능과 사역 방식, 복음을 전해야 할 사람들의 부류, 교인들의 훈련, 교회를 인도하는 데 필요한 목회적 은사와 기술의 성격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이다(33p).” 이렇듯 교회 규모에 따라 교회 운영의 세부요소들이 많이 달라질 수 있다.
이 책이 작은 교회를 다룬다고 해서 오로지 작은 교회만을 지향하는 것은 아니다. 칼 베이터스는 작은 교회를 이상화하지 않으며, 큰 교회와 작은 교회 모두의 필요성을 인정한다. 저마다의 역할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교회가 작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교회가 위대해지기를 원한다(54p).”
교회의 위대함은 제목에 비춰보면 ‘(건)강함’과 연결된다. 가장 큰 계명과 지상명령(‘예수님을 사랑하고, 경배하는 것과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고, 섬기고, 제자로 삼는 것(108p)’)을 잘 수행하는 교회가 곧 위대한 교회, 건강한 교회다. 이 가치가 저자가 겪은 수많은 시행착오들과 학습을 통해 발견한 실천적 요소들과 어우러져 ‘작은 교회의 건강성’에 관한 지혜들로 탄생했다. (개인적으로 10장부터 16장까지의 내용이 많은 도움 되었다.)

“큰 교회는 비전, 과정, 프로그램에 우선순위를 둔다. 작은 교회는 관계(예수님·교인들 간·복음 전도의 대상자들과의 관계), 문화(교회의 정체성을 결정하고 어떤 일을 결정하거나 거부하는데 영향을 미치는 기본적인 전제들과 현실들), 역사(개척부터 시작된 역사)에 우선순위를 둔다(79p)”
“가치 있게 생각하는 것을 전면에 내세워라: 잘 하는 것을 부각시켜라(169p).” [우리 교회가 이미 잘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 우리 교회가 실제로 잘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 우리 교회가 어떤 교회로 알려지기를 원하는가? / 과녁을 빗나가고 있지는 않은가? / 잡다한 것을 제거하고, 우리가 잘하는 것에 집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171p)]
“항상 무엇인가를 변화시켜 나가라(Always Be Changing Something)(181p).”
“교회 지도자들이 저지르는 최악의 실수 가운데 하나는 장기간 동안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않다가 한꺼번에 여러 가지를 변화시키려고 시도하는 것이다.....주기적으로 변화를 시도하는 교회는 변화를 건강한 방식으로 능숙하게 잘 처리한다(183p).....교회에서 사역이나 프로그램을 새로 시작할 때도 일정 기간 동안 시험해 보는 것이 좋다. 사역이 효과가 없으면 실패가 아닌 종료로 끝마치면 되고, 효과가 있으면 기간을 연장하면 된다(198p).”
“교회가 친절할 것이라고 속단하지 말고, 친절을 우선순위로 삼으려고 노력해야 한다(235p).”
“제자 양육에 진정으로 관심이 있다면 훈련과정(커리큘럼)보다는 멘토링이 더 낫다(252p)”
“계획을 세워야 하는 이유는 자신이 목표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서다(270p).”
“다음 세대에게 복음을 전하려면, 교회 안에서만이 아니라 교회 밖에서 훨씬 더 능숙하게 사역을 행하는 기량을 기르는 것이 필요하다(281p).”

책을 다 읽고 책장을 덮던 중 뒤표지에서 책의 분류가 ‘목회’ 영역으로 되어있음을 발견했다. 이 책의 1차적인 독자대상은 작은 교회 목회자일지 모른다. 그러나 나 같은 작은 교회 평신도에게도 유용한 책이었다. 교회 안의 변화에 마음을 열게 해주는 유익, 내가 속한 교회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공해주는 유익, 나아가 작은 우리 교회에 대한 주인의식을 고취시켜주었기 때문이다. 부디 이 땅의 모든 교회들이 교인 수의 많고 적음에 가치를 두지 않고, 예수님의 뜻에 합당한 교회되길 바란다.

“교회가 큰 사역을 행할 만큼 커질 때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다. 예배와 제자 양육과 교제와 사역과 복음 전도를 온 마음과 영혼과 생각과 힘을 기울여 감당하고, 그 결과를 예수님의 손에 맡기라는 사명이 모든 교회에게 주어졌다. 교회의 크기에 상관없이 우리는 그런 일들을 할 수 있고, 또 잘할 수 있다(30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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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경이와 꼬마 쥐 - 제1회 다시 새롭게 쓰는 방정환 문학 공모전 대상작 아이스토리빌 36
오신혜 지음, 최정인 그림 / 밝은미래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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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보다 이 땅의 어린이를 사랑했던 사람 방정환 선생님. 그와 그의 작품을 기억하고자 마련된 ‘다시 새롭게 쓰는 방정환 문학 공모전’ 그 첫 번째 당선작인 오신혜 작가의 “휘경이와 꼬마 쥐”가 책으로 출간되었다.
방정환 선생님의 ‘시골 쥐의 서울 구경’과 ‘동생을 찾으러’가 결합된 이 작품은 아홉 살 휘경이가 친구가 된 꼬마 쥐와 함께 할머니가 계신 서울에 상경했다가 위기를 맞지만 기지를 발휘해 그 위기에서 벗어난 후 다시 부모님 품으로 돌아온다는 이야기다.

아이에게 이 책을 소개하기 전에 어른의 눈으로 이 책이 주는 의미를 한번 생각해보았다. (스포일러 주의)

<상상력>
아홉 살 휘경이와 쥐가 만나 대화를 나누는 것이 가장 첫 장의 이야기다. 화장실에서 쥐를 만나는 것이 실제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긴 하지만 그 쥐와 인간이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건 기발한 상상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을 읽은 아이가 화장실에서 꼬마 쥐를 부르더라도 당황하지 말자! 그 순간은 상상력이 아이를 행복하게 하는 순간이다.

<악>
문학작품에서 빠질 수 없는 위기! 서울에 상경한 휘경이가 마주한 아줌마는 매우 친절해 보인다. 초코 우유도 가득 부어주시고, 밥 먹을 때 잔소리도 하지 않으며, 양치질도 하지 않아도 된다고 가르친다. 하지만 그런 모습이 평소 엄마의 태도와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 장면에서 휘경이가 느낄 긴장감을 독자로써 함께 느낄 수 있었다. 서울 아줌마는 말하는 서울 쥐를 이용해 아이들을 유인하고, 유인한 아이들을 나쁜 일에 끌어들인다. 말을 듣지 않으면 볼모로 잡아둔 동생에게 나쁜 짓을 하겠다는 위협을 하며 순종을 강요한다. 세상에 팽배한 악의 다양한 모습들 중 일부가 표현되어있다.
[아무런 규범 없이 그냥 내버려두는 것(‘안 돼’라고 얘기하지 않는 것)이 어쩌면 악을 있는 그대로 허용하는 모습이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공동체>
휘경이는 서울 아줌마에게 붙잡혀 있는 은유와 도유를 비롯한 모든 아이들을 같은 처지에 놓인 한 공동체로 여긴다. 자신 혼자 탈출을 도모할 수도 있었지만 휘경이는 함께 탈출하길 꿈꾼다. 탈출 때 용이하도록 보물찾기 등을 통해 집에서 운동을 시키는 모습은 치밀하기까지 하다. 혼자 살아남기만을 가르치는 세대에 새로운 꿈을 꾸게 하는 장면. 악에 맞서는 새로운 연합 공동체!

<용서>
서울 아줌마에게로 자신들을 이끈 서울 쥐에 대한 휘경이와 꼬마 쥐의 분노는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다. 그 분노만이 휘경이를 휘감았다면 가장 첫 번째 복수의 상대는 보나마나 서울 쥐였다. 하지만 휘경이는 엄마 쥐의 회복을 위해 아줌마에게 약을 받을 수 밖에 없었던 서울 쥐의 상황을 이해하고, 자신이 처한 위기의 순간을 타계하기 위해 서울 쥐의 도움이 꼭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 탈출을 위한 계약 관계 맺기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서울 쥐에게 더 이상 아이들을 데려오지 않는 것을 약속받는 모습을 보면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온전한 회복까지 나아가고자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용서가 사람을 회복시킨다.

<새가족>
자식의 잘못에 대한 죄책감을 가진 서울 쥐의 엄마와 아빠가 아이들의 탈출 과정을 적극적으로 돕다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착하게 살아라는 마지막 메시지와 함께.... 다른 아이들은 모두 부모의 품에 돌아갔지만 서울 쥐는 그렇지 못했다. 그런 서울 쥐를 꼬마 쥐 가족과 휘경이 가족이 따스하게 품어준다. 새로운 가족이 되었다. 아픈 자를 품어주는 모습이 새로운 가족이 되는 것으로 표현되었다. 용서의 마지막 결과는 새로운 가족됨이다.

책장을 덮으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나는 과연 휘경이보다 나은 어른인가?”
모험심보다는 안정감을, 공동체보다는 개인을, 용서보다는 보복을 가르치기 쉬운 어른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책, ‘휘경이와 꼬마 쥐’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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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처럼 먹자 - 가난한 사람과 하나가 되는 40일
크리스 세이 지음, 최요한 옮김 / 죠이선교회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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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금식에 관한 책이다. 저자(크리스 세이)가 초대하는 이 ‘금식’은 단순히 먹지 않는 금식이 아니라 가난한 자들과 함께하는 금식, 가난한 자들을 기억하는 금식이다.
그가 직접 40일 간 금식하며 묵상한 글을 읽어가다보면 어느덧 우리도 가난한 자들의 곁으로 갈 용기를 얻게 된다.

매일 묵상글은 저자의 일상과 성경의 내용이 어우러졌다.
출애굽기를 중심으로 마지막 한주는 예수님을 묵상한다.
묵상글 뒤에는 묵상을 토대로 한 기도문과 세계 곳곳에 흩어져있는 가난한 나라의 아이들을 위한 기도가 있다.
내 눈길을 멈추게 한 부분은 가난한 아이들을 위한 기도인데, 생각보다 너무 많은 나라의 아이들이 오염되었거나 부족하기만 한 식수, 빈약한 영양소 같이 생존과 연결된 문제들로 허덕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아이들이 리빙워터 인터내셔널, 컴패션, 지역 교회 등의 지원을 받아 조금씩 회복되고 있다는 사실은 참 다행이다.

자기 자신과 나의 탐욕에만 머무는 관심들이 어느 방향으로 전환되어야 하는지 보게하는 책.
식탁 한 자리를 가난한 사람을 위한 자리로 내어주는 ‘넉넉함’과 약자들을 대변하고 그들과 가진 것을 나누는 ‘용기’와 내게 있는 것에 ‘감사’하는 것으로 우리를 이끄는 책이다.

그래서, 이제, 나는 무엇을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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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예수 - 평범한 급진주의자를 위한 정치학
셰인 클레어본.크리스 호 지음, 이주일 옮김 / 죠이북스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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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진적 복음주의자 쉐인 클레어본이 쓴 ‘대통령 예수’는 ‘미국’이라는 구체적인 대상의 제국주의를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그가 표현한 제국주의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내 삶으로 침투한 세상의 관점(자본주의 등)과 닿아있다.

이 제국주의에 반해 저자는 우리를 예수님의 제자로서, 그분을 따르는 삶으로 초대한다. 곧 믿는 이들은 예수님을 대통령, 왕으로 모시는 삶에 초대되었다. 이 초대가 낯설지 않지만, 진실되게 응하기란 무척이지 어렵다.

눈에 보이는 제국을 위해 살아가기 쉬운 우리에게 세상의 법칙이 아닌 예수님의 뜻하심을 따라 그분의 정치스타일로 우리의 삶 역시 조정되어야 한다는 것은 매우 큰 도전이다. 하지만 진정으로 거듭난 사람(제자)이라면 이 초대를 무시할 수 없다.

본서의 내용 중 온전한 교회됨, 상상력과 용기가 내 가슴에 남았다. 먼저, 우리는 예수님처럼 사는 법을 알고, 살고, 모여야한다. 그럴 때라야 비로소 제자, 교회로 칭해질 것이며, 교회는 새로운 사회의 서문을 열게 될 것이다. “제자를 삼는다는 것은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님처럼 사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발을 씻기고, 희년을 선포하고, 원수를 사랑하고, 낯선 자를 환영하고, 그리하여 그들은 ‘도(the Way)'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들의 공동체는 단순히 종교적 믿음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집단이 아니었다. 그들은 종살이와 가난, 전쟁, 억압으로 얼룩진 제국의 삶과 완전히 다른 삶의 방식을 구현했다. 그들은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었다. 그들의 복음을 믿을 수 있는 것은 그들의 삶이 그 복음과 한 치의 오차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실로 그리스도의 몸이었다. 예수님이 그들 안에서 살아 계셨다(구판, 145p).”, “교회는 세상과 다른 새로운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세상에서 따로 불러낸 사람들의 모임이다(구판, 238p).”

제국을 벗어나 예수가 대통령 된 새로운 나라를 살기 위해서는 상상력과 용기 역시 요구된다. “새로운 비전을 품고 살아가는 것은 외로운 길이다. 그래서 공동체가 필요하다.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려면 집단적 상상력을 통해 카이사르의 축제와 다른 의식을 만들어내야 한다(구판, 248p).", "우리는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기 위해 선지자적 상상력을 발휘해야 했다(구판, 304p).", "우리는 마음과 상상력을 새롭게 해야 한다. 세상을 파괴하는 패턴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단순히 신자일 뿐 회심자는 아니다. 그리고 오늘날 신자는 발에 차일 정도로 많다. 세상에 정말 필요한 것은 새로운 세상을 열정적으로 믿어 행동까지 나아가는 사람들이다(구판, 318p).", "정치에 참여할 방법은 무한히 많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상상력과 용기다(구판, 345p)."

책을 읽다보면 제국을 넘어 상상력 넘치는 교회로 살기에 대해 강한 도전을 받게 된다. 제국에서 예수를 대통령으로 삼아 새로운 삶을 살라는 도전 말이다. 2000년 전 초대교회의 비전이 쉐인 클레어본을 통해 현대의 우리들에게 재전달 된 책, 바로 ‘대통령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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