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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가지 식물로 읽는 세계사 - 사과와 장미부터 크리스마스트리까지 인류와 역사를 함께 만든 식물 이야기
사이먼 반즈 지음, 이선주 옮김 / 현대지성 / 2024년 12월
평점 :
길가의 풀 하나, 나무 한 그루, 꽃 한 송이.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지만 그만큼 하찮게 여겨지기도 하는 게 바로 식물이 아닐까. 식물은 움직임의 면에서 동물과 크게 다르다. 동물은 인간과 언어적 소통이 되진 않지만, 물고 울고 달리고 기면서 자신의 의사를 나타낸다. 동물의 움직임을 기반으로 인간은 동물과 교감하는지도 모르겠다. 반면 식물은 자발적 움직임이 없다. 매우 수동적이다. 인간과의 교감은 눈에 띄는 활동성이 없기에 불가능한 영역으로 비친다. 즉, 동물은 인간 친화적이고 식물은 인간 비(非)친화적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건 오산이다. 움직임이나 대화만으로 교감한다는 건 철저히 인간 중심적인 사고이고, 생활에 깊숙이 침투해 있는 식물에 대해 무지함을 고백하는 셈일 뿐이다.
<100가지 식물로 읽는 세계사>는 식물이 인간과 얼마나 가까이 존재했었는지 말해 주는 책이다. 100가지 식물 중에는 ‘장미, 풀, 해바라기, 벼, 사과, 보리, 고추, 대나무, 바나나, 소나무 등’ 인간의 생활 가까이에 있는 식물들도 있지만, ‘키겔리아나무, 서양메꽃, 매리골드, 디기탈리스 등’과 같은 낯선 식물들도 있다. 종으로 보면, 나무, 꽃, 균 등이 여기 ‘식물’에 포함된다. 이 식물들이 인간 생활에 얼마나 가까이 있었는지를 <100가지 식물로 읽는 세계사>에서 말한다. ‘식물’에 초점을 맞추지만, ‘세계사’를 다루는 책답게 동양과 서양, 고대와 현대를 넘나들며, 한 가지 식물에 대해 어떻게 이렇게 광범위한 조사가 가능할까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다양한 내용을 다룬다.
책에 따르면 식물은 인류 발전의 다채로운 측면, 곧 의학, 예술(그림, 시, 영화, 소설, 노래 등), 신화, 성경, 고전, 영양학, 요리, 인물, 건강 등의 소재로 다뤄져 왔다. 식물이 인간의 역사와 함께해 왔다는 생각을 저절로 하게 만드는 내용들이다. 책에는 빽빽한 글자의 나열만 있지 않다. 삽화, 사진, 포스터 등(총 160컷) 해당 식물과 관련한 시각 자료들도 가지별로 빠짐없이 등장한다. 이 책 한 권을 통해 쌓이는 교양이 어마어마하다. 그래서 최재천 선생님(“이토록 풍성한 식물 인문학 책을 소개할 수 있어 참으로 뿌듯하다”)도, 이정모 관장님(“재미있고 유익하다”)도, 이소영 작가님(“매일 쌀과 밀가루를 먹고 커피를 마시지만, 식물에는 딱히 관심이 없다고 생각하는 모든 도시인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도 이구동성으로 추천하였다.
나는 무엇보다 이 책에서 우리 인간이 식물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어 참 좋았다. “우리 인간은 스스로를 이성을 갖추고 자연을 뛰어넘은 고귀한 존재, 무한한 능력을 지니고 천사처럼 행동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신과 같은 존재가 되었고, 세상을 우리 뜻대로 주무르고 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여전히 식물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다. 우리의 과거는 모두 식물과 관련이 있다. 우리의 현재도 모두 식물과 관련이 있다. 식물이 없다면 우리의 미래도 없다. 그 100가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12쪽). “숲이 파괴되면 생태계가 훨씬 약해진다. 생물 다양성을 크게 잃으면서 생태계의 회복력이 약해지기 때문이다. 토양은 황폐해지고, 물은 오염되고, 나무가 없으니 홍수와 토양 침식이 빈번해지고, 토양의 영양분이 빠져나간다”(233쪽). “아름다움은 우리를 이끈다. 아름다움은 섹스, 음식, 집, 자식만큼이나 중요하고, 어쩌면 그 모든 것과 뗄 수 없는 관계일지도 모른다. 아름다움이 삶이기 때문에 우리는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아름다움 덕분에 삶을 견딜 수 있다. 아름다움 덕분에 삶을 살 수 있다. 좋은 책은 우리가 삶을 더 잘 즐기는 방법, 그리고 삶을 더 잘 견디는 방법을 가르쳐준다고 영국의 시인 새뮤얼 존슨이 말했다. 아름다움 역시 우리에게 그런 가르침을 준다”(271쪽).
시쳇말로 길 가다가 발에 밟히는 게 바로 식물이지만, 흔하다고 소중하지 않은 것은 아님을 우리는 ‘공기나 해’와 같은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식물이 없으면 우리 인간은 살 수 없다. 아시아인의 주식인 쌀이 없고, 빵이나 라면의 주원료인 밀이 없으며, 맛있게 즐길 과일도 없고, 무더위에 그늘을 선사해 줄 나무 역시 없는 인간 삶이 과연 상상이나 되는가? <100가지 식물로 읽는 세계사>를 통해 인류 역사에 선물같이 다가온 식물을 찬찬히 음미함과 동시에, 식물이 만들어 낸 인류 역사를 되짚어 보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 해당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지원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