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불능 낙천주의자 클럽 1
장미셸 게나시아 지음, 이세욱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4월
평점 :
절판


소설은 사르트르의 장례식으로 시작된다. 1980년 4월, “그는 영웅이었으나 학대자들을 지지했다.”는 감상으로 애도를 마친 미셸은 라스파유 대로의 보도에서 옛 친구 파벨을 만난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며 1959년을 회고한다. 

 

1959년, 미셸은 12세 소년이다. 부르주아의 아들로 태어나 파리 6구 어디쯤 살고 있고, 명문 앙리 4세 중고등학교에는 턱걸이로 합격했다. 학교 공부보다는 테이블 풋볼과 로큰롤, 문학과 사진에 흥미를 느끼며 강박적인 독서를 즐긴다. 하교 후엔 단짝 니콜라와 복식조를 결성, 테이블 풋볼 경기를 하러 다닌다. 테이블 풋볼 실력자 새미가 있는 14구의 비스트로 발토. 그 곳에 걸음했다가 우연히 사르트르와 케셀이 체스를 두는 모습을 목격하고, 이 뒷방 체스 클럽에 머무는 망명자들과 친구가 된다. 

 

이 소설은 마리니 집안 사정을 통해 60년대의 프랑스를, 체스 클럽 회원들을 통해 60년대 프랑스 국외, 철의 장막의 이면을 보여준다. 사춘기를 맞이한 미셸의 관심사와 주변 사람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역사를 반영한다. 엄청나게 재미있으면서도 쉬운 글이다. 미셸이 생일을 맞이한 1959년 10월에서 1964년 7월까지 소년의 눈으로 바라본 사건들... 소설의 전반부인 1권에서는 주로 프랑스 국내문제를 다루고 있다. 소설을 읽으며 인상깊었던 몇 가지를 소개하려 한다.

 

 

▶ 알제리 전쟁 (알제리 독립 전쟁)

 

1959년은 드골이 대통령에 취임한지 2년째 되는 해로, 알제리 독립 전쟁이 한참이던 시기다. 알제리는 프랑스의 식민지 중에서도 특별한 위치를 차지했다. 지정학적 위치-군사적 목적-이 제일이었고, 지리상으로도 다른 해외 영토들보다 가까웠기 때문에 많은 프랑스인들이 건너가 살았고, 사회적 인프라도 잘 갖춰졌다. 프랑스인들의 심리상 알제리는 식민지라기 보다는 프랑스 영토 내 한 지방에 가까웠다. 점령 후, 임의적으로 해체된 부족들-인종, 종교, 그들의 문화-는 무시당한 채, 알제리는 상위 몇 프로의 유럽인과 그들을 위해 봉사하는 식민지인의 계급사회로 공고화된다.

 

2차 대전이 발발한 후, 프랑스 정부는 북아프리카 연합 작전에 참가하는 조건으로 알제리 해방을 약속한다. 많은 알제리인들은 프랑스군에 입대하는데 이들을 아르키(Harkis)라 한다. 1945년 5월 8일, 파리는 해방을 만끽하지만 알제리 독립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반발한 시위대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알제리 국기를 든 소년이 총에 맞아 쓰러진다. 강경진압은 학살(세티프 학살)로 바뀌고, 이는 알제리 독립 운동을 점화하는 계기가 된다.

 

다른 식민지들의 독립은 승인되었지만 왜 알제리는 그대로 남아야 했을까.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알제리가 가지는 특별함 떄문이기도 했고, 식민지를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달랐기 때문이다.

 

대독일 전쟁은 국가와 국가 간의 대등한 전쟁이었다. 그러나 식민지인들의 독립 전쟁은 대등한 전쟁이 아닌, 봉기이자 반란일 뿐이었다. 인권과 자유의 나라, 프랑스의 입장이 이렇다니 아이러니하기도 하지만 실제로 그러했다. 회복 작전(Operation Resurrection) 같은 작전명을 보라... 심지어 이 전쟁의 공식명칭은 〈알제리 사태(Evenements d'Algerie)〉였다. 1999년이 되어서야 〈알제리 전쟁(Guerre d'Algerie)〉이라는 공식명이 채택되었다. 2012년 12월, 알제리 독립 50주년 기념행사에 초대된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전쟁 당시 벌어졌던 학살을 인정하며 애도했지만 식민지배에 대한 사과는 하지 않았다.

 

당시, 알제리 독립을 지지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60년 9월, 프랑스 지식인 121명은 성명을 발표(Manifeste des 121)하여 정부를 규탄한다. 참여한 지식인에는 모리스 블랑쇼, 로베르 앙텔므, 미셸 번스타인, 장폴 사르트르, 시몬 드 보부아르, 앙드레 브르통, 알랑 레네, 기 드보르, 마게리트 뒤라스, 앙드레 마송, 프랑수아 트뤼포, 폴 레비 등이 있다. 피에-누아(Pieds-Noirs, 알제리 출신의 프랑스인)였던 알베르 카뮈는 알제리 독립을 반대하고, 자치권 확대를 주장했다. 분노한 알제리인들은 알제리 내 카뮈의 흔적을 지워버린다.

 

《구제불능 낙천주의자 클럽》의 주인공 미셸 마리니의 외삼촌, 모리스 들로네는 피에-누아 루이즈와 결혼하여 알제에 가정을 꾸린다. 알제와 오랑의 부동산을 수십 채 거느리고 살던 그들은 프랑스 우파에 의해 조직된 OAS(Organisation armee secrete, 비밀 군사 조직)를 믿고 알제를 떠나지 않는다. 외할아버지도 드골 대통령이 알제리 상황을 좌시하지 않을 거라고 믿는다. 그러나 결과는... 독립 승인이 발표되자 신변의 위협을 느낀 피에-누아들은 프랑스로 돌아오고, 그 수는 90만에 이른다. 그들의 재산은 알제리에 그대로 남았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피해를 입은 이들은 북아프리카 연합 작전에 참여했던 아르키들이었다. 2차 대전 당시 프랑스군에 가담하여 싸웠기 때문에 민족반역자로 몰려 납치되어 고문, 학살 당했고 그 수는 5만에서 15만명까지로 추정된다. 프랑스인의 회사와 가정에서 일하던 알제리인들도 어떠한 보장 없이 그대로 남겨졌다. 돌아온 피에-누아들로 인한 프랑스 사회의 혼란, 알제리 독립을 둘러싼 분열은 《구제불능 낙천주의자 클럽》의 마리니와 들로네 집안을 통해 반영된다.

 

 

▶파리의 비스트로, 오베르뉴 사람들(Auvernat) 그리고 체스클럽

 

19세기, 프랑스의 중앙 산악지대(le Massif Central)에 위치한 오베르뉴(Auvergne) 출신 다수가 파리에 정착한다. 산지에서 땔감과 숯을 배달하러 왔다가 눌러앉은 이들이 대부분으로, 목욕용 물을 배달하거나 고철을 판매하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숙박과 식당업에 종사하게 되는데, 파리의 비스트로 주인장들은 오베르뉴 사람들이 많다. 이들은 보통 서민 동네에 자리잡았고, 《구제불능 낙천주의자 클럽》에 등장하는 비스트로 발토 역시 14구 당페르 로슈로 광장에 위치한다. 보통 비스트로에서는 프랑스의 가정식을 판매하는데, 특히 오베르뉴 음식은 보양식의 이미지라 하니 여기도 집밥의 신화가... (발토의 주인 마르퀴조 내외도 출신지인 오베르뉴의 캉탈에서 들여온 식재료를 사용한.)

 

오베르뉴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자면, 파리발 고속열차(TGV)가 없다. 지방철 TER만 운행했는데 얼마 전, 파리발 클레르몽-페랑행 TGV 라인이 신설되리란 발표가 있었다! 보통 파리에서 리옹으로 TGV를 타고 갔다가, TER로 환승하여 생-테티엔을 거쳐 클레르몽-페랑에 가야만 했다. 가톨릭의 큰 딸, 프랑스에서도 특이하게 이 지역의 다수가 개신교 신자였기 때문에 미운털이 박혀 그랬다는 말도 있다. 타이어 만드는 미슈랭이 향토 기업이다. 화산 지대인 퓌 드 돔과 먹거리로는 유제품, 꿀과 잼, 광천수 등이 유명하다. (생수 볼빅, 비쉬의 온천 등)

 

파리의 이방인이지만 후덕한 인심을 가진 마르퀴조 내외는 또다른 외부인들- 망명자 체스 클럽을 받아들인다. 체스 클럽에 대해서는 다음 리뷰에서 좀 더 얘기할 생각이다. 비스트로 발토는 라스파유 대로와 당페르 로슈로 대로 양 쪽에 면한, 광장을 보고 있는 규모가 있는 식당으로 손님들이 많다. 그러나 사람들은 가게 뒷편에 체스 클럽이 있다는 사실은 알아차리지 못한다.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집안 내부 문제로 옆집 문제에 소홀해지는 것처럼, 프랑스 내부 문제에 신경쓰느라 냉전의 희생자들을 살피지 못한 프랑스가 연상된다. 장미셸 게나시아는 망명신청/승인 담당자를 원망하는 클럽 사람들의 입을 빌려 프랑스의 행정을 꼬집지만, 동시에 자칭 백작 볼로딘을 등장시켜 담당자의 고충을 설명한다. 하 수상한 시대, 과거를 속이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의 신분을 증명할만한 서류를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얘기. 이 서류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웰컴, 삼바리뷰에서도 다룬 적이 있다. 2권에 등장하는 사샤가 핀란드로 넘어가기 전에, 챙기는 것도 그의 신분을 증명하는 서류들이다.

 

 

▶담배: 골루아즈와 지탄

 

소설 속에 등장하는 담배도 등장인물들의 속성을 반영한다. 미셸의 외할아버지, 들로네 씨가 피우는 지탄(Gitanes) 그리고 사르트르와 망명자들이 피우는 골루아즈(Gaulloise). 지탄과 골루아즈는 둘 다 프랑스의 국민 담배이다. 지탄은 주로 유산 계급- 기업가, 중간관리자들이 피웠고 골루아즈는 무산계급을 비롯한 예술가, 지식인들의 사랑을 받았다. 말보로 등의 미국 담배의 상륙, 정부의 흡연 정책 등으로 골루아즈는 프랑스 국외로 공장을 옮긴다. 골루아즈의 푸른 담뱃갑은 프랑스의 낭만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했는데 사르트르와 카뮈, 갱스부르가 피웠으며 파리에 잠깐 체류했던 조지 오웰도 피웠던 담배다.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에 언급된다.) 골루아즈는 골 족, 갈리아 족 여인을 뜻한다. 말 그대로 프랑스를 상징하는 골루아즈를 망명자들이, 지탄(집시)은 자본가가 피우는 아이러니...

 

 

▶문학: 계몽 그리고 기억

 

Monday burn Millay, Wednesday Whitman, Friday Faulkner, burn 'em to ashes, then burn the ashes. That's our official slogan. 월요일엔 밀레이를, 수요일엔 휘트먼을, 금요일엔 포크너를 불태워라. 재가 될 때까지 태우고 그 재도 태워라. 그게 우리 공식 표어랍니다. - 가이 몬태그의 대사, 레이 브래드버리의 《화씨 451》

 

미셸의 형, 프랑크의 친구 피에르는 혁명을 꿈꾸는 젊은이이다. 급진적인 개혁을 원하며, 생쥐스트의 사상에 감명을 받은 그는 국립행정학교(ENA)의 2차 관문 면접에서 2번의 탈락을 맛본다. 그가 이름 붙인 생쥐스트주의는 소수의 엘리트에 의한 통치를 바탕으로 한다. 그가 엘리트주의를 바탕으로 한 혁명을 주장하는 것은 그가 ENA 지원자이며 그의 집이 그랑 조귀스탱 대로의 으리으리한 아파트라는 점에서 수긍된다. 미셸을 존중하는 피에르는, 입대를 앞두고 어린 친구에게 로큰롤 음반을 빌려주면서 책 한 권을 건넨다. 바로 《화씨 451》이다. 몰래 파티에 참석했다 집에 돌아와 어머니께 혼이 난 미셸은 이 책을 읽고 작은 혁명(반항)을 시작한다. 피에르가 달아 둔 촌평은 '우리 모두가 몬태그?!' 였다.

 

가이 몬태그는 《화씨 451》의 주인공으로 Fireman, 방화수이다. 책이 외면당하는 시대, 정부의 금서목록에 오른 책을 찾아 태우는 직업이다. 화씨 451은 책이 불타는 온도인 것. 왜 이 책이 등장했을까? 장미셸 게나시아는 의미없는 장치를 하지 않는다. (그는 추리소설을 쓴 적도 있다.) 정부가 책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문학이 가지는 힘, 생각하게 하고 깨닫게 하는 힘 때문이다. 분서갱유를 피하기 위한 방법은 《화씨 451》에 등장하는 현자들이 알려준다. 2권에 등장하는 진주인공 사샤의 이야기와 겹쳐지는 장면으로, 사샤가 미셸과 우정을 쌓으며 도움을 주는 그 무엇들은 '기억'과 연관이 있다. 가이 몬태그는 클라리사라는 소녀를 만나 계몽되는데, 태우는 불이 아닌 따뜻한 불을 만나 문학이 권력에 대항하는 힘을 알게 된다. 영화 《이퀼리브리엄》에서도 비슷하게 연출된 바 있다.

 

 

▶마리니/들로네: 프랑스의 현실

 

주인공 미셸은 폴 마리니와 엘렌 마리니(들로네)의 차남이다. 형제로는 위로 프랑크와 동생 쥘리에트가 있다. 아버지 폴은 이탈리아 출신의 이민자 3세로 마리니는 무산계급, 철도 사업에 종사하는 집안이다. 야심 많은 폴은 집을 떠나 파리로 와, 들로네 씨가 운영하는 회사에 취직한다. 들로네의 딸 엘렌은 폴과 사랑에 빠져 임신하게 되는데, 폴이 징집되어 전장으로 떠난 뒤였다. 4년 후, 노동 수용소에 수감되었다 돌아온 폴과 엘렌은 프랑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결혼한다. 부부의 결합이 축복받지 못하게 되는 것은 결혼식 날이 들로네 가 막내의 다니엘의 전사일이라는데서 암시된다.

 

아직 어린 미셸은 12살 생일파티에서 자신의 두 가족이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데, 형 프랑크(7살 차이)가 들려준 이야기에 다소 충격을 받는다. 생일 축하를 하는 자리에서 마리니 집안은 노래만 부르고, 들로네 집안은 박수만 치는 장면은 섞이기 어려운 자본주의 사회의 두 계급-프롤레타리아와 부르주아-를 상징한다. 사회적 성공과 가정의 평화를 위해 급진적인 사회당 노선을 택한 폴과 달리 장남 프랑크는 공산당을 지지하여, 들로네 집안의 눈총을 받는다. 쥘리에트는 들로네 가에 가깝고, 미셸 역시 부르주아의 아들로 컸으니 부르주아가 될 것이란 생각을 한다.

 

들로네 가는 아마도 파리 강점 시기, 비시 정부에 충성하며 부를 쌓은 것으로 보인다. 폴이 이탈리아에서 수감생활을 한 것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누명을 벗었다는 엘렌의 외침은 공허하다. 모리스 들로네가 피에-누아 집안과 결합하여 알제 내 부동산을 불려가는 과정은 프랑스 부르주아지의 현실을 반영한다. 뼛속 깊이 마리니 집안의 아들인 프랑크는 모리스와 들로네 집안을 비난한다. 엘렌이 용납할 리 만무하다. 이는 알제리 전쟁을 두고 분열되는 프랑스의 국론을 떠오르게 한다. 크게 싸운 뒤, 25년이 넘도록 두 모자가 만나지도 대화를 하지도 않았다는 말은- 양측이 화합할 수 없음을 그리고 세대 간 갈등이 깊음을 보여준다.

 

자녀 교육과 훈육에서도 차이가 난다. 들로네 가는 미셸이 프랑크처럼 될까 봐, 뤼마니테 축제(공산당 축제)에 가는 것을 노심초사한다. 엘렌은 폴이 이탈리아어로 노래하는 것을 싫어하며, 품위를 지키고 들로네 집안이 원하는 가치에 동화되기를 바란다. 폴도 노력하지만 쉽지는 않다. 엄격하고도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자란 프랑크는, 상대적으로 편안하고 자유로운 아버지의 가족들을 가깝게 느낀다. 미셸에게 가족사에 대해 들려줄 때도, 자신이 태어났던 시기의 부모 사이와 미셸이 태어난 시기가 다르니 고민하지 말라는 얘기를 한다. 명문 앙리 4세 중고등학교를 졸업한 부르주아의 아들 프랑크가 어찌해서 청년 공산당에 입대하고, 입영 연기를 취소하고 알제리로 떠나는지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장남에 대한 부모의 태도도 차이가 난다. 프랑크를 찾기 위해 폴이 알제로 떠날 때에도, 엘렌은 회사가 더 중요하다고 한다. 알제에 있는 모리스가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후 폴이 계좌에서 500만 프랑을 빼내 프랑크를 돕고 미셸을 다독일 때, 엘렌은 돈의 행방을 추궁하며 프랑크를 신고하려 한다. 미셸을 혼낼 때도 손찌검을 한다. (프랑스는 애들 잘 때린다...)

 

1962년, 모리스가 가족들을 이끌고 파리로 와 이들의 집에 머물게 되는데 가정부 마리아가 그만두는 등 일상이 망가진다. 프랑크 문제로 부부 사이는 소원해진 상태고, 엘렌은 어떻게든 해보려 고군분투한다. 직전에 엔조 마리니가 집을 정리하고 이탈리아로 떠날 때, 파리 집에 머물까 염려하던 모습과는 딴판이다. (물론 상황이 다르긴 하다.) 

 

회사(들로네 씨는 딸 엘렌에게 회사를 물려줌)에서 폴의 자리는 모리스로 대체된다. 이는 소설의 전반부에서 엘렌이 참석하는 워크숍을 누가 추천했는가를 생각할 때 이미 예견된 것이다. 엘렌 마리니는, 엘렌 들로네로서 자라왔고 그녀가 공유하는 가치는 마리니 집안과 같지 않았다. 그녀가 프랑크를 가지지 않았더라면, 이 결혼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미셸의 눈으로 바라본 마리니 가족은 연신 휘청거린다.

 

한편 이탈리아로 돌아간 엔조 마리니는 평안한 노후를 보낸다. 이민자 2세로서, 프랑스 사회에 동화되기를 바라며 이탈리아 문화를 멀리 했던 그는 가족의 고향에서 평화를 얻는다. 그의 아들, 폴 마리니가 애지중지 하는 시트로엥 DS 19 프레스티지유(Citroen DS 19 Prestigieux)는 그의 성공을 상징한다. DS, 즉 Deesse(여신)인 이 자동차는 당시 기술력의 절정과 아름다운 바디, 최고급형으로 나온 모델이었다. 프랑크가 입대하는 날 망가지는 이 자동차는 이후 미셸이 언급한 '두 아들 때문에 힘들어진 인생'을 떠오르게 한다. 계급을 배신(숙명론자 엔조의 말)하고 프렌치 드림을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폴 마리니는 평화를 얻었는가?

 

너무나도 다른 두 집안, 60년대 파리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담은 이 소설에서는 푸자드 주의자 장마리 르펜 또한 언급되는데 프랑스의 극우, 국민전선의 현재 득표율과 행보와 함께 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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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에서는 미셸의 학교 생활, 친구들과 취미 그리고 집안 문제를 통해 프랑스의 내부 현실을 다룬다. 동시에 2권에서 드러날 체스 클럽의 망명자들- 냉전의 희생자이자 민낯- 소개 또한 진행된다. 2권의 리뷰는 동쪽에서 온 이들을 소개하고, 이 리뷰에서 못다한 이야기를 하려 한다. 정말 재미있고 멋진 작품, 장미셸 게나시아의 바람대로 그가 쓴 '인생소설'이니 많은 분들의 사랑을 받았으면 좋겠다.

 

 

* 프랑스의 여러 문학상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바로 〈공쿠르 상Prix Goncourt〉이다. 같은 날 발표되는 또 다른 문학상이 있는데 바로 〈고등학생이 주는 공쿠르 상Prix Goncourt des lyceens〉이다. 2천여명의 고등학생들이 참여한 투표로 선정되는 이 상은 독서문화 장려를 위해 제정되었고, 프랑스의 교육부와 기업 프낙Fnac의 후원을 받는다. 얼마 전 출간된 실비 제르망의 《마그누스》, 필립 클로델의 《브로덱에 관한 보고서》, 그리고 이 책- 장미셸 게나시아의 《구제불능 낙천주의자 클럽》 등이 수상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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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15-06-08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지탄이나 골루아즈 고루고루 다 태우곤 했는데_ 음 어떤 게 더 맛있었는지 기억이 나지를 않네요;; 에이바님이 좋다고 하시니 요것도 일단 장바구니에 퐁당_

에이바 2015-06-08 11:34   좋아요 0 | URL
지탄, 골루아즈 독하다는 얘긴 들었는데요. 생각보다 괜찮은가 봐요.. 제 친구들은 말아 피거나 말보로나 럭키스트라이크 피웠거든요. 요샌 전자담배가 대세라는 것 같고요. 그리고 이 책 진짜 강력 추천이에요!! 야나님 프랑스에서의 추억 소록소록 떠오르실 듯 해요.

cyrus 2015-06-08 2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등학생이 선정하는 문학상. 참 좋은데요. 독자가 좋은 책을 선정하는 문학상은 많지 않은데 우리나라도 이런 공식 문학상이 있으면 좋겠어요. ^^

에이바 2015-06-09 17:04   좋아요 0 | URL
청소년들에게 현대 소설을 읽히자는 취지라고 해요. 아카데미 공쿠르에서 후보작을 추려내면, 두 달 여 심사기간을 거친대요. 심사단으로 선정된 학급의 학생들이 교사들과 함께 읽고, 작가와의 만남도 가지고요. 올해 수상작 발표는 11월 15일이네요. cyrus님 말씀대로 한국문학 부흥을 위한 청소년들이 뽑는 문학상 제정, 좋네요! 10대들에게 동시대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이게 하고, 멀리 보면 문학애호가 육성의 방면이기도 하고요.

CREBBP 2015-06-09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경을 상세하게 알려주시니 더욱 재미있습니다. 읽고도 잊어버리거나 주의깊게 보지 않아 모르고 지나갈 뻔 했던 부분들을 많이 알았네요. 완전 추천!!!

에이바 2015-06-09 17:17   좋아요 1 | URL
저도 이번에 무릎을 탁 쳤어요. 특히 오베르뉴랑 비스트로요. 제가 알던 조각들을 이어본 계기가 됐어요. 이 책은 두고두고 읽을 듯 합니다. 아직 안 풀린 궁금증들도 있고요. 기네스님의 리뷰도 기다려져요!

CREBBP 2015-06-10 0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다 읽고 1편 앞부분을 다시 읽었는데.. 여전히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 있어요. 왜 프랑크와 피에로는 입대한거죠? 미룰 수 있었는데.. 그들이 공산주의자인 것과 관계가 있나요? 프랑크는 떠날때 미쉘한테 계급 운운하며 혁명때문에 입대한다고 했는데 말이 안되는 거 같아서요. 프랑스군과 알제리 독립군과 싸우는 전쟁이 아니었나요?

에이바 2015-06-10 19:12   좋아요 0 | URL
기네스님. 제가 고민하던 부분도 바로 그거였어요! 그것 때문에 다른분들 리뷰 기다리고 있었어요. 일단 제가 2권 리뷰 마지막 부분에 넣었는데요. 피에르는 입영 연기가 더 미뤄지지 않아서 입대했고요. 프랑크는 솔직히 잘 이해가 안 되는데 혁명 때문에 입대한게 맞는 것 같아요...

네오 2015-06-11 14: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등학생요? 음,,뭐,,그럴수 있겠죠? ^^ 프랑스 제국주의는 어떻게 생각해요? 그러니깐 알제리뿐만 아니라,,,인도차이나 에서 벌어지는 그런 정책적인 것들,,제가 얼마전에 프랑스와 베트콩을 다룬 역사서를 읽었는데 물론 번역본 없음요,,ㅋㅋ 뭘랄까 필연적인것 그러니깐 프랑스 기질같고는 아시아에서 살아남을수 없다는 인상을 받아거든요,,,

에이바 2015-06-11 14:47   좋아요 0 | URL
프랑스식 제국주의는 프랑코포니로 계속되고 있다는게 제 생각... 옛 식민지들을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프랑스인들 베트남 여행 많이 가더라고요~ 일하러 가기도 하고 향수를 찾는건지 뭔지 참.. 작년인가 마게리트 뒤라스 탄생 백주년인가 해서 France Culture 라디오에서 베트남 갔거든요. ˝연인˝ 특집으로.. 현지 여성이랑 불어로 인터뷰하는데 인터뷰어 짜증내더라고요. 현지 여성분이 불어를 자꾸 씹는다고 해야 하나 유창하진 않아서요. 그게 저한테는 일본인이 한국인에게 일본어로 말 걸고 왜 일본어 못해? 하는 거랑 똑같이 느껴졌어요. 아 그럼 통역을 데려가던가! 베트남어를 배우던가! 사정이 있었겠습니다만..

네오 2015-06-11 14:54   좋아요 0 | URL
네,,,,저도 이런면이 짜증이 나더라고요,,,,베트남이 원래부터 프랑스가 아니잖아요,,막 침략해서 그렇지,,,우리한테도 좀 그런게 규장각에 있는 도서 쓸어가고 나서 뭔지고 모른 상태에서 도서관에 쳐박아 놓고,, 달라니깐 그때서야 안돼다고 하고,,,,애네들한테 한때 선진국민 맞나라는 생각이 들정도로,,,테베도 로비로 해서 우리한테 넘기건 생각하면 읔,,,,마게리트 뒤라스가 인도차이나에서 태어난건 다행이지만요^^

에이바 2015-06-11 15:11   좋아요 0 | URL
문화종주국으로서의 자부심이 대단하지요. 다양성 문화 만든것도 프랑스잖아요. 우린 문화강국이다 하는... 외규장각 도서 찾아낸 것도 한국인이었잖아요. 협조도 안해주고. 원래 고고함과 찌질함은 한 끗 차이...ㅋㅋㅋ 테제베 성공시키려고 소피 마르소까지 델꾸오고 ㅋㅋㅋ 뒤라스 멋진 작가죠^^

네오 2015-06-11 15:15   좋아요 0 | URL
에이바님 그런데,,프랑스 다양성 다양성 그러는데,,그게 뭐죠? 진짜 모르겠슴다,,,

에이바 2015-06-11 15:38   좋아요 0 | URL
이게 프랑스 문화부가 꾸준히 밀고 있는 정책인데요. 미국으로 상징되는 문화제국주의에 대항하는 개념이거든요. 물론 그 선봉 아니 리더로는 프랑스가 있고요. 문화적 차이를 인정하고 다양성을 장려해야 한다, 여기서 문화란 삶의 방식 등을 포괄하는 총체적 의미입니다. 우리가 후대에게 물려줄 수 있는 유산과도 같은... 실생활에서 보자면 우리나라가 스크린쿼터제 할때 주장했고 프랑스에서 얼씨구나 지원하기도 했지요. 덕분에 다양성 영화들도 개봉하게 되었습니다만... 프랑스인들에게 문화는 공공서비스고 누구에게나 누릴 수 있는 권리라는게 문화부 지침이었나 그래요. 쓰고 보니 멋있네요 ㅋㅋㅋ

네오 2015-06-11 16:02   좋아요 0 | URL
네,,알겠어요,,멋있군요,,그래서 프랑스 갔다온 분들이 느끼는 한반도에 답답하는 측면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게 돼는군요,,,그런데,,저도,,,뭘라까,,일렬로 죽세우는 그런 것 좋아하는 아니 더 친숙하게 느껴지는 데 어떡하죠? ㅋㅋ 뭐,,저도 한국인이라도 어쩔수 없군요;; 그놈의 로케이션 본능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