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꺼삐딴리>에서 친일, 친소, 친미적인행동을 보이며 시류에 편승하던 삶을 살던 이인국 박사의 행동에 대해 저희 반대측은 정당화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그는 의사였고, 그의 사회적 지위를 이용하여 재산을 불리는 사람이었으며 자신의 안녕만을 위해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저희가 이인국 박사와 같이 시류에 편승하는 삶을 사는 것이 정당화 될 수 없다고 생가가하는 첫 번째 이유는 이인국 박사 자신조차도 스스로를 정당화 시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소설 곳곳에서 이인국 박사가 자신의 행동에 대해 두려움에 떠는 모습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친일타도이 네 글자만 보고도 두려움에 떨고, 아무리 씻어도 씻기지 않는 마음의 무거움을 경험했습니다. 만약 이인국 박사가 자신의 친일적인 행동, 즉 시류에 편승하는 삶을 정당화 하는 것에 성공했다면 그는 더 이상 두려움에 떨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정당화 시킨다는 것은 정당함의 의심이 가는 것을 정당한 것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의 행동이 옳지 않더라도 그가 이치에 맞아 올바르고 마땅하다고 생각했다면 그가 두려움에 떨 이유는 없습니다. 시류의 편승하는 삶을 살았던 바로 그 자신조차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 시키는데 실패했던 것입니다.

 

둘째로, 이인국 박사는 자신만의 정체성이 결여된 인물로서 타인에게 피해를 주었기에 그의 행동은 정당화 될 수 없습니다. 그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강대국의 편에 서는, 회색분자처럼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물론, 우리는 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행위를 비판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 또한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권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인국 박사의 경우는 이와 같지 않습니다. 그의 행동은 다른 이들에게 많은 피해를 주었습니다. ‘모든 인간은 주먹을 휘두를 자유가 있지만, 그 주먹을 다른 사람의 턱 앞에서는 멈추어야할 의무가 있다는 유명한 구절에서 알 수 있듯이 개인의 이익추구에 대한 권리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상황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이인국 박사가 시류에 편승하면서 이익을 추구한 행위는 직접적으로 그리고 간접적으로 자신의 이웃, 민족, 국가에게 피해를 입혔습니다. 일제를 위한 간첩행위, 출세를 위해 국가의 문화재를 다른 나라에 넘기는 행위 등이 그 예입니다. 이러한 그의 행동은 도덕적으로 결코 용납될 수 없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인국 박사의 행동을 정당화 시킬 수 있을까란 논제를 보편화 결과 검사법을 적용해 볼 때 그 결과가 부정적이기에 그의 행동은 정당화 될 수 없습니다. 만약, 그 시대의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인국 박사처럼 시류에 편승하는 삶을 살았다면, 그리고 그 행동이 사회 보편적으로 정당화 될 수 있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자신의 신념을 지키면서 살아온 사람들이 있었기에, 민족운동은 하지 않더라도 적어도 친일행동은 하지 않았던 사람들 덕분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기회주의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이 정당화 되는 사회는 과연 좋은 사회라고 칭할 수 없습니다. 인간과 인간 사이 신뢰는 기회주의적인 사람들에 의해 그의 가치를 잃게 될 것이고, 신뢰가 없는 사회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가히 불행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위와 같은 세 가지의 이유로 저희 반대측은 이인국 박사처럼 시류에 편승하는 삶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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