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레미제라블은 프랑스 대혁명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문학작품이다.

 레미제라블의 영향으로 많은 사람들이 프랑스 혁명을 말할 때 6월 혁명을 일컫는다. 그러나 1832년 6월 혁명은 1789년부터 1940년까지 계속된 프랑스 혁명의 일부일 뿐이다. 귀족과 성직자들이 하층민을 억압하던 사회에서 버티다 못한 평민은 결국 혁명을 일으켰다.

1789년 귀족들의 회의에 문제의식을 가진 평민대표가 국민 의회를 구성하고 테니스 코트에 모여 새로운 헌법이 제정될 때까지 해산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국왕이 강제로 이들을 해산시키려 하자 파리 시민들은 전제정치의 상징인 바스티유감옥을 습격하였다. 이것이 프랑스 대혁명의 시작이다.

 1793년 국민 공회는 루이 16세를 처형했고, 공화정을 선포했다. 루이 16세의 처형은 많은 유럽 국가에게 충격이 되었고, 영국, 오스트리아 등의 유럽 국가들이 동맹을 맺고 프랑스를 공격하기도 했다. 이후 로베스피에르가 혁명적인 정부를 수립하였으나 지나친 공포정책으로 오래가지 못했다.

혼란스러운 프랑스를 잠재운 것은 나폴레옹이었다. 나폴레옹은 프랑스 혁명의 업적을 유지하고 계승하는데 기여하였다. 나폴레옹이 워털루 전투에서 패하고 그의 시대도 막을 내렸다. 이후 왕정복고가 일어나고 하층민의 불만은 다시 커져갔다. 그들은 1830년 7월에 혁명을 일으켜 성공하였으나, 여전히 국민의 삶은 힘겨웠다.

 

               그래서 다시 일어난 혁명이 레미제라블의 배경이 된 6월 혁명이다.

 

 

장발장이 출소하였을 때는 1815년 왕정복고 시대이다. 이 비열하고 끔찍한 사회는 테나르디에 부부의 모습을 보고 알 수 있다. 사회에 혼란을 틈타 자신의 잇속을 채우는 비열한 사회상이다. 가난한 하층민들의 모습은 판틴이 대표하고 있다. 6월 혁명은 시민군의 선봉인 앙졸라를 대표로 이루어 진다. 그러나 시민들은 그들을 돕지 않았고, 결국 어린 아이들을 포함한 수백명의 시민군들은 2만 5천명의 정부군에 의해 모두 시체가 되고 만다.

 

 

프랑스 대혁명의 싸움은 길었고 치열했다. 그 도중에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들의 싸움이 나에게 헛되이 보였던 것도 사실이었다. 특히 영화 레미제라블을 보면서 시민군이 안쓰럽다 못해 어리석어 보이기 까지 했다. 시민들이 거리로 나오길 바라며 노래를 부르지만, 시민들은 창문을 닫고 만다. 열악한 상황에서 내부에서도 다툼이 끊이질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거리로 나온다. 그들을 지켜주는 것은 가구들을 쌓아 만든 엉성한 바리케이트 뿐이다. 그들이 정부군을 제압하지 못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이 결국 시체가 되어 버릴 것도 알았을 것이다. 뻔한 결과임에도 그들은 꿋꿋히 거리에서 장열하게 전사한다. 그러나 그들의 죽음은 헛된 것이 아니었다. 그런 시민군이 있었기에, 대부분의 나라가 독재가 아닌 국민이 주인이 되는 나라에서 살게 된 것이다. 그들의 붉은 피는 헛되지 않았다.

 

     그들은 우리의 마음 속에서 결코 그저 정부군에게 진압된, 패배한 시민군이 아니다.

                     그들은 우리의 영웅이자, 민주주의의 진정한 아버지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