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용이 떠나고 우리 집의 가장 열성적이었던 축구팬이 덜 열성적이어 졌다. 이제는 A메치도 잘 챙겨보지 않는다. 그러자 내 동생은 축구에서 배구로 또 야구로 빠져들었고, 야구를 무척 좋아하시는 아빠는 동지가 생겨 즐거워하셨다. 그렇게 우리집의 두 남자가 야구에 빠지자 작년부터 한 학기에 한두번씩 야구장 또는 배구장을 가기 시작했다. 요번 시험이 끝나고 우리가족은 모두 야구장에 갔다. 엘지와 한화의 경기였다. 우리 아빠는 류현진이 한화를 떠나자 한화팬에서 롯데로 갈아타셨지만 내동생은 일편단심한화이다.

 잠실경기장은 넓었다. 당연히 매점도 매우 넓었고 음식의 종류도 다양했다. 음식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그렇게 사람들 틈에서 이리저리 다니다가 경기장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내동생이 우리가족의 손을 잡아끌었다. 한화 선수들 차 앞에 이태양이라는 투수가 서 있었다. (일단 우리가 본 경기에서 선발이 아니었으나 방금전 했던 한화와 기아의 경기에서 선발이었다. 비록 한화가 패했지만 이태양은 무실점으로 내려왔다.  ) 야구의 문외한인 나는 그 사람이 누군지도 모랐지만 그냥 무작정 내 동생의 팔을 잡아끌고 싸인받으러 직행 했다.

 어머나 마이 데스티니... 기성용은 저리거라의 비쥬얼을 소유한 선수가 아닌가!  오흫~!!!고수인줄.

 뭐 그렇게 눈호강을 하고 경기장에 들어갔다. 내 동생은 글러브에 싸인을 받았다.

 

 당연히 한화 팬 석에 앉았다. 엘지 홈구장이 잠실경기장이었으나 의리있는 한화팬들이 가득이었다. 세월호참사로 인해 시구와 각종 행사가 빠졌고, 애국가만 간략히 불렀으며, 치어리더도 쓰지 않았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매우 날씨가 어정쩡 해서 경기관람이 힘들기도 했지만 즐거웠다. 뒤에서 1,2위를 다투고 있는 한화와 엘지의 경기는 치열했고 박빙의 승부였다. 앞심이 좋은 한화는 초반에 4점 차이로 이기기 시작하였으나 결국 막판에 또 밀리고 말았다.

 홈런을 한번도 보지 못해 안타까웠으나 안타로도 충분히 즐거웠고 가끔씩 날라오는 파울볼을 잡는것도 즐거움이었다. LG가 득점의 포텐을 터트리기 시작한 것은 내가 매점에 갔을 무렵부터였다. 잡시 마실것 좀 사겠노라 일어섰다가 돌아오니 점수차가 좁혀져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점수틑 금방 좁혀져 갔고, 연장전을 코앞에 둔 9회말 LG의 득점으로 한화는 아까운 패배를 다시 맛봤다.

 야구라는 종목은 너무 투수에게 의존하는 스포츠인 듯 하다. 선발이 다시 들어오면 게임이 바뀌기 시작한다. 특히 투수가 없는 한화는 투수가 바뀌면 전세가 금방 역전 된다.

 김태균, 피에, 김민수, 손주인, 엘버스 등의 많은 선수들을 알게 되었고, 일단 가족과 하루종일 있을 수 있어서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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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않겠습니다. 행복해 웃을 때도 죄송할 따름입니다. 죄송합니다.

 국민들은 '가만있지'않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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