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조선왕조실록 4 - 세종.문종 편
박시백 글 그림 / 휴머니스트 / 2004년 8월
평점 :
절판


이도 조선 제 4대 왕 (세종)

출생-사망 1397.4.10-1450.2.17

가족 아버지- 이방원(태종)

-양녕대군, 효령대군

특징 훈민정음 창체

정책 왕도 정치 추구, 집현전 설치, 유교 강화

재상권한 강화, 여론 중시, 농업정책 정비

을 위한 정치 , 민본정치를 폈다. 세종은 "민은 나라의 근본인 동시에 군주의 하늘이다"라는 이야기를 종종하였다. 그리고 그는 농민을 위하고, 농업을 발전시키는 정책을 폈다. 수령들에게는 농사철의 요역을 없애도록 여러 차례 지시하였으며, 농사가 발달한 지역의 농업기술을 수집하고, 그 결과를 모은 농사직설을 펴내 새로운 농법과 농기구를 전국으로 확산 시켰다. 그는 공법이라는 제도에 대해 찬반 논쟁이 치열하자, 그 뜻을 여론조사로 백성에게 물을 정도로 백성을 존중하였다.

(시크릿노트) 그러나, 그의 백성들은 행복하지 않았다. 사대로 인해 백성들에게 고통을 안겨 주었으며, 잘못된 정책으로 고통을 주기도 했다. 예로는 화폐 정책이 있다. 백성의 편리를 위해 화폐 유통을 적극 추진했으나, 백성들은 화폐의 가치가 유지 될지 우려하여,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자 세종은 화폐로 매매를 할 경우 가혹한 벌을 내리게 된다. 가산몰수, 벌금, 곤장 등 의 벌을 내렸고, 가산을 몰수당한 사람들은 사채를 빌리다 못해 자살하는 경우도 빈번했다.

취재노트-훈민정음을 만든 그를 취재하다.

기자: 안녕하세요? 훈민정음을 만드신 이유가 궁금해서 찾아뵈었는데요, 답변 부탁드려요.

세종: 한자와 우리나라 말이 달라, 같은 글자가 여러 음으로 발음되어, 어려움이 있었네. 뿐만아니라, 한자라는 글자가 워낙 그 수가 많고, 어려워, 백성들이 익힐 수 없어 자신의 의사를 충분히 나타내지 못하는 것이 안쓰러웠지.

기자: 깊은 뜻 잘 들었습니다. 그런데 기록을 살펴보면 1443년 12월 30일인 훈민정음을 발표한 날 이전에는 훈민정음에 대한 것이 아무 내용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집현전 학자들이 만들었다고 하나, 실록에는 분명 임금이 친히 언문28자를 지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니, 직접 만드신 것이 되는데, 어떻게 된 일인가요?

세종: 창제 작업을 공론화 시켰다간 반대 의견에 휩쓸려버렸을 거야. 그래서 비밀리에 작업할 수 밖에 없었네. 그러나 나 혼자 만든것은 아니네. 문종, 정의공주, 수양, 안평들이 나를 도왔지.

기자: 예상대로 반대는 심했습니다. 어떻게 대처하셨나요?

세종: 사대에 어긋난다, 오랑캐와 같아지는 일이다, 라며 나에게 반박을 했지. 특히 최만리가 그랬어. 그래서 내 뜻을 밝히고, 반대를 하는 사람들에게 적당한 처벌을 내렸지. 그랬더니 잠잠해 지긴 했는데 사람들이 즐겨 쓰진 않았어. 효율성은 인정받았지만. 그래도 지금은 모두가 내가 만든 글자를 써 줘서 얼마나 기쁜지 몰라.

기자: 좋은 답변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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