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농장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
조지 오웰 지음, 도정일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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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엇이든 두발로 걷는 것은 적이다.’

이 계명은 동물 혁명 계명의 1번 이었다. 메이저 영감의 ‘잉글랜드의 동물들’이란 노래를 시작으로 실행된 동물들의 혁명은 성공했다. 인간의 농장이었던 ‘메이너 농장’은 ‘동물농장’이 되었다. 그러나 혁명 이후에도 동물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돼지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계명들이 바뀌기 시작했고, 첫 번째 계명인 ‘무엇이든 두발로 걷는 것은 적이다’는 ‘네발로 걷는 것은 좋다. 그러나 두발로 걷는 것은 더 좋다’라고 바뀌었다. 인간을 몰아내고자 했던 동물들의 혁명은 돼지들이 인간처럼 행동하고 계명을 바꿈으로 실패로 끝났다.

혁명에 성공하고도 실제적으로 동물들이 그 유익을 얻지 못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일단 돼지들의 잘못이 있다. 나폴레옹은 개를 키워 무력으로 다른 동물들이 반항을 못 하게 하였고, 자신이 편하도록 모든 것을 바꿨다. 스퀼러는 말도 안 되는 말들로 동물들을 현혹 시켰다. 그들은 다른 동물들이 열심히 일할 때 자신들의 이익만 챙기며 욕심을 부렸다.

하지만 욕심을 본능이라고 이해한다면 돼지들의 행동은 오히려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권력을 쥔 주체가 그들의 욕심대로 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하는데 동물들이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복서처럼 아무 것도 모른 채 돼지들의 말을 그저 따라만 하는 동물들, 돼지들이 뭔가 잘못하는 것 같지만 개에게 물릴까봐 무서워 그냥 넘어가는 동물들의 잘못이 결국 ‘동물농장’을 다시 ‘메이너 농장’으로 만들었다. 동물농장의 실패는 돼지들의 잘못도 있지만 그것을 막지 못한 다른 동물들의 잘못이 더 크다.

동물농장에 나오는 동물들은 돼지 스노볼, 복서, 몰리 할 것 없이 모두 불쌍하다. 하지만 가장 불쌍한 건 벤자민이다. 그는 돼지들이 잘못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똑똑한 그가 다른 동물들한테 돼지의 부당함을 알리고 동물들이 다시 힘을 합칠 수 있게 했다면 돼지들의 잘못된 사회를 충분히 무너트릴 수 있었다. 그러나 벤자민은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다. 돼지들에게 거역하면 죽이는 사회의 두려움에 굴복하면서 점점 말을 하지 않는 당나귀가 되어갈 뿐이었다. 복서를 싣고 가는 마차에 쓰인 ‘말 도살업’이라는 글자를 보고서야 발을 구르며 “이 바보들아, 마차에 써 놓은 저 글자들이 보이지도 않아?”라고 했지만 그 땐 너무 늦었다. 두려움일 수도 있고 어차피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일 수도 있지만 벤자민이 아무 역할도 하지 않는 것은 참 안타까웠다. 그런 그가 불상했다.

돼지들도 그랬듯이 독재자들은 다른 이들이 공부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진시황이 책을 불태운 이유와 같다. 공부한 사람들이 늘어나면 자신들의 잘못된 행동을 알게 될 것이고 그것을 비판하기 때문이다. 독재자들이 지식인을 억누르고자 하는 것은 그들이 마음만 먹으면 세상을 바꿀 수 있어서다. 부당하고 잘못된 세상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은 아는 것이다. 잘못된 것을 알아야 고칠 수 있다. 지금까지 공부를 나를 위해, 내가 성공하기 위해서만 해 왔다. 그러나 글자를 점점 읽을 수 없게 된 동물들이 자신들이 이룬 혁명의 결실을 송두리째 뺏기는 것을 보면서 앎의 중요성을 느꼈다. 덧붙여 벤자민을 통해 아는 것을 올바르게 펼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았다. 난 용기도 없고 심지어 이기적이기도 하여 내게 피해가 올 일에 대해 간섭하는 걸 싫어하지만 그래도 ‘동물농장’을 몽땅 잃어버리고 싶지 않다. 이제 ‘앎’이 세상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공부를 좀 새롭게 바라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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