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레바퀴 아래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0
헤르만 헤세 지음, 김이섭 옮김 / 민음사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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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에 떨어진다고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었다.’

한스에게 가장 필요한 말은 이것이었을 지도 모른다. 아버지나 목사님, 마을 사람들의 “넌 할 수 있어.”란 말 보다 그에겐 이 말이 더 절실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에게 늘 “넌 우리 마을의 기대이다. 넌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넌 요번 시험에 꼭 붙어야만 한다.” 라고 말했다. 그에게는 쉴 틈이 없었고 그의 곁에는 공부밖에 없었다. 공부로 그는 즐거움, 행복, 친구 등 소중한 것을 잃었다. 행복하진 않았지만 그는 열심히 공부하여 118명중 36명만 뽑는 신학교에 2등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신학교에 들어간 후 성적은 떨어지고 급기야 문제아 취급까지 받았다. 더 이상 한스는 우등생이 아니었다. 그는 극심한 두통에 시달렸고, 신경 쇠약증에 시다렸다. 신학교를 마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마을로 돌아와 기계공이 된 그는 어느 날 밤, 만취 상태에서 죽었다.

그는 왜 신학교에 들어가서 성적이 떨어졌을까. 많은 이들은 잘못된 친구를 만나서 라고 한다. 그러나 한스는 워낙 공부를 잘했기 때문에 친구와의 잘못된 만남이 있어서 성적이 한번 떨어 졌어도 그는 충분히 다시 상위권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다시 올라가지 못 했다. 나는 그가 실패를 몰랐기 때문에 떨어진 것에 너무 낙담하여 다시 올라갈 수 없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동네에서 수재, 천재 소리를 들으며 컸다. 마을 사람과 그의 지도자들은 그에게 실패는 안 된다고 강요하였다. 그는 신학교는 자신의 학교와 레벨이 다르다는 것은 인지하였지만 자신의 성적을 받아들이지 못 하고, 공부만 하던 그에게 자유로운 생활을 하는 친구의 모습은 멋있어 보였고 그는 그 모습에서 강한 유혹을 느낀 것 같다. 한스의 장례식에 온 구두장이의 말처럼 그를 망하게 한 것은 실패는 안 된다며 공부만을 강요한 한스의 선생과 목사들이다.

<수레바퀴 아래서>를 통해 한스를 만난 것은 참 고마운 일이다. 좋은 것은 아니지만 한스와 나는 닮은 점이 많았다. 요즘 내가 경험하는 일이 한스가 겪었던 일과 흡사하였다. 그랬기에 이 책이 더욱 마음에 와 닿았다. 마냥 성적은 관심 없이 놀던 시절 이 책을 읽었더라면 이 책은 시시했을 것이다. 성적으로 힘들 때 이 책을 만난 건 행운이었다. 첫 중간고사에서 전교 2등을 한 후의 나는 예전보다 행복하지 않았다. 한스가 2등을 하고 다른 아이들과 자신을 다르게 생각하고, 어른들의 칭찬과 관심을 받으며 자랑스러워하듯, 나는 처음으로 받아보는 아이들과 선생님들의 인정어린 눈빛이 너무 좋았다. 옛날에 꼭 해보고 싶었던 ‘우리 반에서 가장 공부 잘하는 애.’도 되어보고. 그 기쁨은 정말 중독성이 있었다. 그래서 공부가 힘들어도 멈출 수 없었고, 공부의 압박감에 밤늦게까지 책과 씨름했다. 문제를 풀다 잘 안 풀리거나 푼 문제가 틀렸을 때는 시험을 못 보면 어쩌나 하는 공포가 살짝 밀려왔다. 공부가 안 되도 책상을 떠날 수 없었다. 스스로 절망했다가 또 스스로 과대평가했다가를 반복하면서 몹쓸 마음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옛날엔 하하 웃고 넘어 갈 일도 짜증을 냈다. 전교2등 이라는 이 자리를 지켜야 하는데 떨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들면 잠도 잘 안 왔다. 나의 이런 중증이 좋을 때는 오늘이 처음이다. 주인공 한스의 마음에 공감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내겐 한스의 구두장이 아저씨처럼 말하시는 부모님이 계시다. 지금까지는 부모님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듣지 않았다. 짜증내고 내 상황을 모른다고 심통만 부렸다. 이 책에서 가장 안타까웠던 부분은 한스가 구두장이 아저씨의 말을 내가 부모님의 말을 듣듯, 귓등으로 들은 것이었다. ‘만약 그가 구두장이 아저씨의 말을 마음에 새기고, 있었다면 공부를 포기하고 죽음에 이르게 되는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을 텐데…….’ 읽는 내내 이 말을 되뇌었다. 한스에게 구두장이 아저씨의 말을 들으라고 속으로 소리쳤다. 그러면서 부모님의 말이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 깨달았다.

한스의 구두장이 아저씨는 다른 마을 분들과 달랐다. 시험이란 단지 외형적인 것일 뿐이라고, 가장 탁월한 학생도 시험에서 떨어 질 수 있다고. 내게도 큰 힘이 되어준 이 말을 한스가 주의 깊게 들었다면……. 아니, 구두장이 아저씨가 아닌 다른 사람이라도 다시 이 말을 그에게 해 주었더라면 한스가 시험을 못 보아도 어려움을 극복하고 나중에 죽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쉽다.

한스의 죽음은 아쉽지만 이 책은 나에게 정말 고마운 책이다. 내 마음이 들으라고 소리내어 읽는다. 나중에 힘들 때 이 문구가 떠올라 힘을 얻을 수 있게. ‘떨어졌다고 부끄러워 하지 말아라. 시험은 단지 외형적인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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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nsang 2012-06-13 1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험이라는 것 쯤 가뿐히 건너버려.
왜냐구? 세상엔 시험 말고도 공들여야 할 게 많거든

jo 2012-11-19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안상님. 으으... 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