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바다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8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이경식 옮김 / 문예출판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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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어부 산티아고 노인

-어니스트 헤밍웨이 작 <노인과 바다>/문예출판사를 읽고

 

어부, 산티아고 노인은 84일 동안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그와 함께 배를 타던 소년도 부모의 말에 따라 다른 배를 타야했다. 이유는 그가 ‘살라오(최악의 사태) ’이기 때문이었다. 같은 어부들은 그를 놀리고 때론 슬픈 표정으로 바라봤다. 사람들은 더 이상 노인에게서 희망을 찾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사람들의 생각일 뿐이고 노인은 84일 째 하루도 빠짐없이 바다에 나갔다. ‘나갈 수 있는 한 멀리 나갔다가 바람이 바뀔 때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잠이 들면 사자의 꿈을 꾸고, 잠에서 깨면 큰 물고기를 잡기 위해 바다로 갔다. 산티아고 노인의 빈 그물을 가지고 돌아오지만 이제 바다에 그만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산티아고 노인은 커피 한 잔을 마시고 그 날 새벽에도 바다에 갔다. 깊은 곳으로 노를 저었다. 꽤 멀리 왔음을 알았다. 새와 바다의 거북과 해파리에 처지를 자신과 비교하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는 다랑어를 잡으며 혼잣말을 하는 자신을 보면 남이 어떻게 생각할지 상상하다가 고개를 젓는다. ‘지금은 꼭 한 가지 일만 생각할 때야. 그것을 위해서 내가 한평생을 살아오지 않았던가.’ 또 낚싯대가 움찔했다. 큰 것이 물렸다. 노인과 한 판 승부를 버릴 고기가 낚시에 걸렸다.

노인과 물고기의 아름다운 승부는 쉽게 끝나지 않았다. 노인은 바다에서 밤과 아침을 만나야했다. 그의 곁에는 얼굴조차 보지 못한 물고기만 있었다. 노인의 눈 밑이 찢어지고 피가 흘렀다. 왼손은 쥐가 나 빳빳이 굳었다. 그는 괴로움 속에서 디마지오 선수를 생각했다. 발뒤꿈치가 아프지만 경기를 계속한 디마지오 선수는 노인 자신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고통은 심해졌다. 등은 고통으로 무감각해 지고 손에서도 피가 흘렀다. 그러나 노인은 줄을 놓지 않았다. 이틀을 꼬박 고기와 싸웠다. 정신이 몽롱한 순간순간을 견디던 노인은 작살로 물고기의 심장을 관통시켰다. 물고기는 끝내 노인에게 잡힌다. 노인의 조각배는 물고기를 담을 수 없었다. 노인은 물고기와 배를 나란히 묶은 뒤 물고기와 함께 집을 향했다.

상어가 피 냄새를 맡고 달려와 고기를 뜯어 먹지만 않았어도 노인을 ‘살라오’라고 부르던 모든 사람들이 놀라며 감탄하는 멋진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그런데 노인과 물고기를 기다리는 것은 뜻밖에 지독하게 못된 상어들이었다. 노인이 다시금 최선을 다해 작살을 내리쳐 내쫒았지만 상어 수는 늘어만 가고 물고기의 살점은 상어들에 의해 뜯겨나갔다. 어느 순간 노인은 상어가 하는 대로 내버려둔다. 그의 조각배에는 앙상한 뼈만 묶여있었다. 산티아고 노인은 집에 돌아와 아주 깊게 평안하게 잠을 잤다. 사자의 꿈을 꾸면서…….

나는 <노인과 바다>의 산티아고 노인을 쉽게 이해 할 수 없었다. 어부라면 물고기를 많이 잡아 돈을 벌어야 하는데 바람이 부는 대로 멀리 나갔다가 바람의 방향이 바뀌면 돌아오는 그의 태도는 어부답지 않았다. 변변한 집도 가족도 없는 형편 역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더욱이 84일을 빈 배로 돌아오다가 마침내 잡은 물고기의 살을 상어에게 다 빼앗기고 편안하게 잠을 자는 노인은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만약 내가 산티아고 노인이었다면 화가 나서 발을 동동거리고 소리를 버럭버럭 질렀을 것이다. 어쩌면 성질이 나서 뼈를 바다에 던져 버렸을 지도 모른다. “날 그렇게 고생시키더니 결국 이 꼴이야.” 분하고 억울하고 원통하고 게다가 한심하고 아쉬워서 미칠 것 같은데 노인의 행동은 정말 의외였다.

만족스럽게 평온하게 잠든 노인, 게다가 사자의 꿈을 꾸는 노인은 처음부터 물고기를 잡는 목적이 달랐을 지도 모른다. 그는 자신이 예전처럼 큰 물고기를 잡을 수 있게 된 것, 그런 어부의 자존감을 회복하는 것이 소원이었던 건 아닐까? 약탈자 상어에게 물고기의 살은 빼앗겼지만 자신의 꿈을 이룬 것이어서 행복했던 것은 아닐까?

산티아고 노인의 삶은 내가 꿈꾸고 소망하는 삶은 아니다. 난 ‘살라오’라는 소리를 듣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노인의 삶에 비추어 반성할 게 있었다. 브랜드를 좋아하고 넓은 집에 사는 친구들을 부러워하고 맛있는 음식을 밝히는 나와 무척 다른 산티아고 노인을 만났기 때문이다. 내가 어부라면 무슨 목적으로 고기를 잡을지 생각해 보았다. 분명히 돈이었을 것이다. 돈을 벌어먹고 살기위해 고기를 잡았을 것이다. 노인처럼 돈과 관계없는 꿈을 갖기란 어렵다. 내겐 변호사가 되는 꿈이 있다. 솔직히 폼도 나고 돈도 잘 벌 수 있을 것 같아서 이 꿈을 갖게 되었는데 다시 한 번 내 자신에게 물어봐야겠다. 내가 꾸는 꿈이 돈을 버는 것인지 변호사라는 직업의 참 의미인지 말이다. 노인이 꾸는 ‘사자의 꿈’ 은 희망일 것이다. 그의 꿈은 아프리카의 사자처럼 바다에서 당당한 어부의 삶이다. 그의 불굴의 의지도 희망 때문에 가능했다. 사자의 꿈을 꾸며 다시 바다로 나갈 어부 산티아고는 얻은 것이 없으면 손해 봤고,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내게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것에 대해, 희망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물고기의 살은 잃어버렸지만 꿈은 잃어버리지 않은 노인을 오래오래 기억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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