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닷타 장자가 시타바나라고 하는 묘지에 이르렀을 무렵, 부처님께서는 여느 때처럼 일찍 일어나 산책을 하고 계시다가 그를 발견하였다. 수닷타의 마음을 읽은 부처님은 길 가에 자리를 깔고 앉아 그를 기다렸다. 그리고 수닷타가 다가오자 그가 그토록 보고 싶어 하던 부처가 바로 자신이라고 말해 주었다.
솟구치는 환희심을 감추지 못한 수닷타에 예배를 받은 부처님은 그에게 보시(普施)와 지계(持戒)의 공덕에 대해 설법을 해주셨다. 수닷타는 곧바로 부처님의 말씀을 이해하였을 뿐 아니라 크게 감동하여 부처님께 귀의하였고, 또한 교단과 함께 코살라국에 와서 법을 설해주실 것을 청했다.
부처님을 대신하여 코살라국을 가다
부처님은 수닷타 장자의 청을 받아들였다. 그러자 그는 매우 기뻐하며 부처님이 교단과 함께 코살라국에 오셨을 때 머무를 수 있는 정사(절)을 짓기 위해 서둘러 일을 마치고 돌아갔다. 코살라국으로 돌아가기 전, 수닷타는 돌아가서 교단이 머무를 정사를 지어야 하는데 자신은 모르는 것이 많으니 부처님께서 함께 가주실 것을 부탁했다.
부처님을 옹호하며 지지하는 빔비사라왕이 다스리는 마가다국과 달리 코살라국은 강대국이지만 어떤 국가인지, 어떤 외도들이 있는지, 어떤 분위기인지 알 수가 없었다. 독실한 불자(佛子)가 된 수닷타 장자 한 사람의 부탁만으로 교단이 움직이기에는 부담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진리의 가르침을 펼쳐달라는 요청을 받은 이상 가지 않을 수도 없었다.
부처님은 수닷타 장자에게 자신은 지금 교단을 떠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수닷타는 난처해하며 그렇다면 다른 제자라도 좋으니 자신과 함께 코살라국으로 가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이에 부처님은 사리불에게 그 일을 맡기셨다. 수닷타는 크게 만족해하며 사리불과 함께 코살라국으로 갔다. 과연 사리불은 부처님의 가장 믿음직한 제자였음이 분명하다.
코살라국에 도착한 수닷타 장자는 사리불에게 어떤 곳이 정사를 짓기에 가장 적합한지 물어본 끝에 수도 사왓티(사위성)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아름다운 숲을 찾았다. 하지만 그곳은 파세나디(波斯匿)왕의 아들인 기타태자의 땅이었다. 수닷타는 기타태자를 찾아가 부처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정사를 짓기 위해 태자의 숲을 사고자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태자는 자신은 숲을 팔 생각이 없다며 거절했다. 이에 수닷타는 돈을 얼마든지 주겠다며 거래를 제안했다. 기타태자는 자신에게 돈으로 거래를 제안하는 수닷타가 괘씸했다. 돈이라면 자신도 얼마든지 있었다. 확고한 수닷타의 얼굴에 부아가 치민 기타태자는 농담 삼아 수닷타에게 만약 숲을 황금으로 덮을 수 있다면 그 부분만을 팔겠다고 대답했다.
기타태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수닷타는 곧장 집으로 가서는 창고를 열고는 수레마다 황금을 가득 싣고 숲으로 돌아왔다. 생각지도 못한 반응에 당황한 태자는 그때서야 수닷타에게 자초지종을 자세히 묻고 부처님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금 자세히 들었다. 그리고는 황금이 덮이지 않은 땅을 비롯하여 정사를 짓는데 필요한 나무들을 자신이 보시하겠다고 말했다.
그리하여 기타 태자의 나무, 즉 기수(祈樹)와 급고독(給孤獨) 장자, 즉 수닷타 장자가 보시한 정사 기수급고독원(祈樹給孤獨園)의 공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수많은 경전에 등장하는 기수급고독원(祈樹給孤獨園)을 줄여서 기원정사(祇園精舍)라고 부른다. 부처님께 보시(普施)의 공덕에 대하여 배운 수닷타 장자는 그때부터 어려운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베풀며 도와주었기 때문에 아나타핀다카, 즉 가난하고 외로운 이들을 돕는 급고독(給孤獨)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교단이 머물 기원정사의 공사를 감독하다
이후 기원정사의 공사는 사리불의 감독 하에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사리불은 정사를 총 어느 정도 규모로 할 것인지를 비롯하여 계율과 교단의 관습 그리고 법도에 따라 어긋남이 없도록 다양한 사항들에 대하여 꼼꼼하게 지시하고 감독하였다. 또 비구들이 수행하는 장소를 어떻게 꾸며야 할지, 부처님께서 설법을 하실 곳은 어떤 크기로 어떻게 지어야 할지, 또 잠자리를 어떻게 지을 것인지 등 수많은 일들을 직접 결정하였다.
수닷타 장자는 사리불의 지시에 따라 수많은 일꾼들을 동원하여 1000명이 넘는 비구들이 생활할 승방(僧房)과 휴게실, 세면소와 목욕시설을 만들었다. 또한 기타태자가 보시한 나무들을 심어 산책을 하거나 참선을 할 숲을 꾸미고 연못을 파고 연꽃을 심어 아름답고도 편안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힘썼다. 이렇게 정성을 다해 완성된 기원정사에서 부처님은 평생 가장 오랜 시간을 머무셨을 뿐 아니라 가장 많은 법을 설하셨다.
코살라국 외도들의 도전에 응하다
하지만 사리불이 코살라국에 온 이유는 단지 기원정사의 공사를 감독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었다. 부처님께서 다른 누구도 아닌 사리불을 먼저 코살라국에 보낸 이유는 따로 있었다. 부처님은 자신이 코살라국에 방문했을 경우, 일어날 수 있는 갖가지 일들에 대하여 미리 알아보고 대처하기 위해 가장 믿음직스러운 제자 사리불을 보낸 것이었다.
과연 수닷타 장자가 부처님을 위해 기타태자의 숲을 사서 정사를 짓는다는 소문이 나자 코살라국의 바라문들은 충격에 휩싸였고 그 중 과격한 성품을 지닌 몇몇은 논쟁을 하기 위해 기원정사로 찾아왔다. 이에 사리불은 점잖은 태도와 논리 정연한 언변으로 이들을 상대했다. 지혜와 확신으로 충만한 채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외도들의 도발에 응하는 사리불의 모습에 어떤 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승복했고, 어떤 이는 침묵한 채 돌아갔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자신들의 명예가 실추되었음을 참지 못해 사리불을 위협하거나 실제로 해를 가하기도 했다.
사리불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았으며 두려움 없이 이들을 하나하나 상대했다. 그러자 일부 바라문들의 태도가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고, 코살라국 백성들 사이에서도 부처님의 명성이 서서히 높아졌다. 이처럼 지혜로움으로 무장한 채 외도들을 상대한 사리불의 활약은 부처님이 코살라국에 직접 방문하시기 전 ‘예고편’ 역할을 하기에 충분했다.
글 : 조민기(작가) gora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