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바나(죽림정사)에 도착한 사리불과 목건련은 부처님을 뵙자 의식대로 부처님 주위를 세 번 돌고 오체투지의 예로 예배를 드리며 제자가 되기를 간청했다. 그러자 부처님은 ‘오라, 비구여’라는 말씀으로 이를 허락하였고, 두 사람은 곧 정식으로 머리를 깎고 구족계를 받았다. 사리불은 부처님께 귀의한 후 15일 만에 아라한과를 증득하였다. 아라한과는 수다원-사다함-아나함-아라한 등 깨달음을 이르는 4단계 중 최상의 경지이다.

또한 그는 부처님의 제자가 된 후 정식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 전까지 아버지 ‘티샤’의 이름을 딴 ‘우파티샤’ 대신 어머니 ‘사리’의 이름을 딴 ‘사리푸트라(사리불 舍利弗 Śāriputra)’가 그의 새 이름이었다. 그 후 열반에 이를 때까지 그는 줄곧 사리불이라 불리었다.


마가다국 바라문들의 잇따른 출가
사리불과 목건련이 부처님께 귀의한 것은 당시 마가다국에서 큰 화제였다. 특히 두 사람은 이미 산자야 문하에서 최고의 후계자로 이름을 날렸었기 때문에 더욱 외도들과 바라문들의 주목을 받았다. 사리불의 스승이었던 산자야를 비롯하여 수도 라자가하(왕사성)의 많은 외도들과 바라문들은 그가 부처님께 실망을 하고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사리불은 이들의 기대를 보란 듯이 저버렸다. 그 뿐 아니라 논사(論師)이자 수행자로써 바라문들 사이에서 명성이 자자하던 사리불의 외삼촌 구치라(Kotthira)를 비롯하여 우파세나(Upasena), 춘다(Cunda), 레왓타(Revata) 등 사리불의 동생들도 줄줄이 부처님께 귀의하였다. 출중한 바라문인 사리와 티샤의 여덟 아들 중 절반이 동시에 부처님께 귀의한 것은 적지 않은 파장을 몰고 왔다. 이를 반영하듯 높은 학식과 덕망, 권위를 모두 갖춘 바라문과 찰제리 출신의 인물들도 연달아 부처님께 귀의하였다.

빔비사라왕은 이를 막기는커녕 아예 출신과 상관없이 원하는 자는 누구나 출가를 할 수 있다는 칙령을 내렸다. 그러자 마가다국의 바라문들은 몹시 당황하였고 부처님과 교단을 향해 온갖 악담과 비방을 퍼부었다. 그러나 반대로 진리를 구하기 위해 베르바나(죽림정사)를 찾는 사람들도 점점 많아졌다.


비구들의 시기와 전생의 인연
부처님은 진리를 구하며 가르침을 청하는 자에게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대해주셨으나 사리불과 목건련 두 제자에 대한 애정과 관심은 눈에 보일 정도로 각별하셨다. 모든 비구들은 출가한 순서에 따라 서열을 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출가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리불과 목건련에게 교단을 지도하고 관리하는 일을 맡긴 것은 물론 모든 비구들이 모인 자리에서 두 사람에게 계경(戒經)을 암송하는 일을 맡도록 지목하셨다. 그러자 먼저 출가한 비구들이 불만을 품고 반발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에게 전생의 인연을 들어 사리불과 목건련이 세세생생 동안 선근을 닦으며 부처님의 상수(上首) 제자가 되기를 발원한 끝에 이번 생에 태어났음을 설명해주셨다. 비록 지금은 다른 비구들에 비해 출가 순서가 늦었지만 이미 부처님과 만나서 먼저 인연을 쌓았음을 말해주신 것이다. 부처님이 깨달으신 후 처음으로 설법을 듣고 제자가 된 교진여(僑陳如 Anna-Kondanna)의 경우 마찬가지로 전생의 인연으로 만났지만 그는 상수제자가 아닌 첫 번째 제자가 되기를 발원하였기에 지금 최초의 제자가 되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만을 품는 비구들이 있을 때마다 부처님은 몸소 이렇게 말씀하시며 사리불과 목건련을 아끼셨다.

“비구들이여, 사리불과 목건련을 따르고 가까이 하라. 그들은 청정한 삶은 돕는 훌륭한 벗이다. 사리불은 그대들에게 생모(生母)와 같고, 목건련은 그대들에게 양모(養母)와 같은 사람이다.”


생모(生母)와 같은 사리불과 양모(養母)와 같은 목건련
어느 단체에서나 아버지 역할과 어머니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또 그런 역할 분담이 잘 이루어져야 편안하게 일이 진행된다. 부처님은 스스로 자신이 비구들의 아버지라 자처하셨다. 그렇다면 교단에서 어머니 역할을 부여받은 것이 바로 상수제자인 사리불과 목건련이었던 셈이다. 이는 어떻게 보면 스승과 제자 사이를 뛰어넘는 절대적인 믿음이라고도 볼 수 있다.

또한 다행히도 생모(生母) 사리불과 양모(養母) 목건련은 평생 같은 길을 걸어가는 친구로 깊은 우정을 지니고 있었고 서로가 서로의 뜻을 잘 알았으며 부딪힐 일이 거의 없었다. 이는 부처님에게 있어서도, 사리불과 목건련에게 있어서도, 교단에 있어서 행운 중의 행운이다. 탁월한 지혜와 현명함 그리고 비범한 능력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항상 겸손함을 잃지 않았던 두 사람의 모습에 비구들의 시기와 질투는 점차 자취를 감췄다.

한편 사리불은 부처님께 귀의하여 아라한과를 증득한 후에도 자신을 진리의 길로 인도해준 앗사지 비구의 은혜를 잊지 않았다. 그래서 사리불은 항상 앗사지 비구가 머무는 곳을 향해 예배하고 그쪽으로 머리를 두고 누웠다. 부처님도 앗사지 비구를 향한 사리불의 애틋한 고마움의 마음을 알고는 이를 허락하셨다.


수닷타 장자와의 만남
사리불과 목건련이 부처님께 귀의한 것은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으신 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깨달음을 이룬 이후, 부처님은 줄곧 마가다국에서만 설법을 해오셨다. 하지만 북쪽의 강대국 코살라국과의 인연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그 인연을 가지고 온 것이 바로 코살라국의 수도 사왓티(사위성) 출신의 장자(長子) 수닷타였다.

경전 속에서 종종 등장하는 장자(長子)는 단순한 부자가 아니라 신분과 부유함은 물론 사회적 명망과 덕을 고루 작춘 인물을 뜻한다. 어느 날 수닷타 장자는 일을 보기 위해 마가다국의 수도 라자가하(왕사성)에 왔다가 결혼한 여동생의 집을 방문했다. 그런데 평소 같으면 그를 보고 기뻐하며 환영해주었을 여동생과 매부가 온통 손님을 초대하는 일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수닷타는 내심 서운하여 매부에게 물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기에 이 처남을 본체만체 하시오?”
그러자 매부가 대답했다.

“처남, 나는 지금 몹시 바쁘다네. 내일 아침 부처님께 공양을 올려야 하기 때문이지.”

매부의 말에 더욱 섭섭해진 수닷타는 바쁘다는 매부를 붙들고는 부처님이 어떤 분이지, 왜 공양을 올리는지 꼬치꼬치 캐물었다. 매부는 하는 수 없이 잠시 일을 멈추고 수닷타에서 부처님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매부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수닷타의 마음속에 있던 서운함은 어느새 사라지고 부처님을 뵙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매부, 지금 당장 부처님을 뵙게 해 주시오!”

떼를 쓰듯 외치는 수닷타에게 매부는 부처님께서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시기 때문에 보고 싶다고 아무 때나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해 주었다. 그날 밤, 수닷타는 잠을 자다가 아침이 왔는지 확인하기 위해 세 번이나 일어났다. 하지만 밖은 여전히 깜깜하기만 했다. 결국 아침이 올 때까지 도저히 기다릴 수가 없던 수닷타는 집 밖을 나와 정처 없이 걷다가 동이 틀 무렵 시타바나라고 하는 묘지에 도착했다.  
 
 
글 : 조민기(작가) gora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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