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리불은 7일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산자야의 가르침을 모두 숙지하였을 뿐 아니라 스승의 인정을 받았고 또 젊은 나이에 250제자 중 으뜸이 되어 교단을 이끄는 위치에 서게 되었다. 산자야는 더 이상 가르칠 것이 없었지만 진리와 깨달음에 대한 사리불의 의문은 여전히 깨끗하게 해결되지 않았다. 결국 그는 스스로 깨달음을 구해보기로 결심하고 교단을 나오지 않은 상태로 잠시 스승의 곁을 떠나 따로 수도장을 마련했다.


앗사지(阿說示 Assaji) 비구와의 만남
그러던 어느 날 수도 라자가하(왕사성) 근처를 지나던 사리불은 길에서 한 비구를 보게 되었다. 그 비구는 머리를 빡빡 깎았고 수수한 옷을 입었으며 손에는 발우를 든 채 음식을 빌고 있었다. 사리불이 그 동안 보아왔던 온갖 수행자들과 비교했을 때 그 비구의 외양은 지극히 평범한 편에 속했다. 하지만 나아가고 물러서고, 앞을 보고 뒤를 보고, 굽히고 펴는 모든 거동이 점잖고 의젓한 모습에 왠지 그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또한 걸식을 하고 있으면서도 땅을 향한 그 비구의 눈에는 고요한 위엄이 깃들어 있었다. 이에 사리불은 자신도 모르게 감탄하며 중얼거렸다.

'아마 이 세상에 참다운 성자가 있다면, 이 사람이야말로 그런 사람임에 틀림없다. 내 이 사람에게 그 스승이 누구이며 그 가르침이 무엇인지를 물어보리라.'

이 상황을 가만히 곱씹어 보면 진리와 깨달음을 구하려는 사리불의 간절함이 참으로 대단하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는다. 또한 보통의 사람들보다 훨씬 뛰어난 지혜와 눈을 가진 사리불의 매서운 안목에 입이 딱 벌어진다. 게다가 겸손할 줄 아는 예의와 실천력까지 겸비했으니 과연 부처님의 상수(上首)제자 감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사리불은 곧장 그에게 다가가 공손하게 인사를 건네고 말을 걸었다.

“그대는 어떤 분을 스승으로 모시고 수행하는 사문이신가요?”

그러자 그 비구는 역시 공손한 태도로 인사를 하며 대답했다.

“예, 저는 고타마 붓다를 스승으로 모시고 수행을 하고 있는 앗사지라고 합니다.”

앗사지는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후 최초로 설법을 했던 녹야원에 머물던 5명의 비구 중 한 명이다. 젊은 나이에 스스로 깨달음을 얻었다는 석가족의 왕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던 사리불은 기뻐하며 다시 물었다.

“저는 사리불이라고 합니다. 그분께서는 어떤 법을 가르치십니까?”

“예, 저희 스승께서는 모든 법은 인연을 따라 났다가 인연을 따라 멸한다고 가르치십니다. 또 모든 것은 덧없어서 나면 멸하는 법이며, 났다가 멸하는 일이 끝나면 고요한 경지를 낙으로 삼는다(諸法從因生 諸法從因滅 如是滅與生 沙門說如是 『佛本行集經』)고 가르치십니다.”

이 말을 들은 사리불은 귀가 번쩍했다. 자신이 그토록 간절하게 바라던 진리의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선근이 깊을 뿐 아니라 빼어난 총명함과 진리에 대한 의구심을 항상 지닌 채 정진해온 사리불은 앗사지 비구가 말한 인연법을 듣고는 곧장 모여서 이루어진 것은 모두 소멸한다는 제행무상(諸行無常), 제법 무아(諸法無我)의 이치를 깨달은 것이다. 환희에 넘친 사리불은 계속해서 물었다.

“그렇다면 그 인연법이라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그러자 앗사지 비구가 정중하게 대답했다.

“저는 출가한지 얼마 되지 않아 더 깊은 것은 알지 못합니다. 다만 저의 스승께서 가르치신 대로 외우고 있을 뿐입니다. 더욱 자세한 가르침을 원하신다면 저희 스승께 여쭈어보십시오.”

공손하게 가르침을 청하는 사람에게 한 치의 거만함 없이 오직 아는 것만을 말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이야기한 앗사지 비구의 태도 또한 우아하고 아름다운가. 이 멋진 두 남자의 만남은 훗날 교단을 이루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만약 시간을 되돌리는 발명품이 등장하여 역사 속에서 보고 싶은 장면만을 골라서 볼 수 있게 된다면 이 멋진 두 남자의 만남이야말로 여성은 물론 남성 불자(佛子)들까지도 가장 보고 싶은 장면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목건련과 함께 산자야의 문하를 떠나 부처님께 향하다
앗사지 비구와의 만남 이후 사리불은 곧장 목건련을 찾아갔다. 그리고 자신이 이미 부처님의 제자가 되기로 마음을 정했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부터 산자야의 제자가 된 지금까지 항상 사리불과 함께했던 목건련은 이번에도 두말없이 친구의 뜻을 따랐다.

사리불과 목건련은 곧바로 스승 산자야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 했다. 기쁨에 들뜬 사리불의 이야기를 들은 산자야는 이 뛰어난 두 제자들이 자신을 떠나리라는 것을 직감했다. 하지만 그는 사리불과 목건련을 잃고 싶지 않았고 그렇다고 이제까지 자신이 누려온 명성과 권위를 버리고 제자들과 함께 부처님께 귀의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산자야는 사리불과 목건련에게 진리를 찾으려다 실패한 수행자들의 이야기를 해주며 자신과 함께 교단을 이끌자고 설득했다. 하지만 이미 앗사지 비구에게서 가능성을 찾은 그들의 굳은 의지를 바꿀 수는 없었다. 제자가 원하는 궁극의 가르침을 줄 수 없는 스승보다 무력한 존재는 없다. 산자야는 이미 두 사람이 자신이 깨달은 경지를 뛰어 넘은지 오래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동안 산자야를 대신해서 그들이 지도했던 250명의 제자들 역시 사리불과 목건련의 뒤를 따랐다.

라자가하(왕사성) 최고의 명성을 자랑하던 논사(論師)이자 뛰어난 제자까지 두어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부러움을 샀던 그는 손 써볼 틈도 없이 순식간에 사리불과 목건련 그리고 250명의 제자를 잃었다.


길을 열어라. 저기 내 훌륭한 상수제자가 오는구나
한편 베르바나(죽림정사)에 머물며 비구들에게 설법을 하던 부처님께서는 사리불과 목건련, 두 사람이 올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당시 부처님께는 이미 천여 명의 제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바라문이나 찰제리 등 출신이 제각각 달랐는데 부처님께서는 교단 내에 평등과 화합을 추구하셨기 때문에 일단 귀의한 후에는 출가 순서에 따라 서열을 정했다. 이를 확실하게 보여준 예로 석가족의 왕자들과 이발사 우바리가 출가할 당시, 우바리가 먼저 출가를 하자 부처님께서는 왕자들에게 교단 내에서는 그를 당연히 ‘선배’로 대할 것을 말씀하셨을 정도였다.

하지만 부처님 생전에 출가 순서에 따라 서열을 정하는 교단의 규칙을 벗어난 예외의 경우가 단 두 번 있었는데 첫 번째가 바로 사리불과 목건련의 경우이고, 두 번째가 마하가섭의 경우이다. 멀리서 사리불과 목건련의 선두로 한 250명의 제자들이 오는 것을 지켜보던 부처님은 설법을 멈추고 빙그레 웃으며 함께 있던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길을 열어라. 저기 내 훌륭한 상수(上首)제자가 오는구나.”  
 
 
글 : 조민기(작가) gora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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