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서 카펠
: 재능의 가치를 일깨워주고 사업의 기술을 가르쳐준 샤넬의 연인
결혼을 통해 야심의 발판을 마련하다
전쟁이 한창이던 1916년, 카펠은 〈승리에 대한 단상들과 국가 동맹 계획〉이라는 정치적 에세이를 발표해 호평을 받았다. 이로써 카펠은 정치 관련자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렸고 이듬해인 1917년에는 베르사유의 연합국 이사회에서 영국 측 서기관으로도 임명되었다. 이어 그는 한 단계 높은 목표를 세웠다. 그것은 바로 사회적 명망과 지위의 획득이었다. 카펠이 자신의 목표를 이룰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정계 진출이었다. 하지만 ‘정치’라는 새로운 세계에 수월하게 진출하기 위해서는 도움이 될 만한 인맥이 절실했다.
어느덧 마흔에 접어든 카펠은 결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결혼은 전통적으로 가장 효과적이고 확실한 인맥 구축 수단이기도 했다. 물론 샤넬은 카펠에게 매우 특별한 여성이었지만 그는 자신의 ‘신붓감’으로 훌륭한 신분을 지닌 현모양처 타입의 여성을 원했다. 운 좋게도 카펠은 적절한 시기에 자신의 희망 사항에 부합하는 가문의 여성을 매우 로맨틱하게 만났다.
전쟁으로 남편을 잃고 간호사로 활동하며 슬픔을 이겨내고 있던 라이블스데일 남작의 막내딸 다이애나 윈덤은 카펠이 원하는 이상적인 조건을 모두 갖춘 신붓감이었다. 다이애나의 유일한 약점은 미망인이라는 처지였으나 출신의 결함이 있는 카펠에게는 오히려 환영할 만한 요소였다. ‘정통 귀족’인 다이애나의 가족들이 보기에 카펠은 출생이 불분명하다는 점만 빼면 부유하고 장래가 밝다는 면에서 흡족한 상대였다. 또한 잘생긴 외모에 다정한 매너를 지는 카펠은 외로움에 지친 다이애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전쟁 중 병원에서 만난 두 사람은 얼마 지나지 않아 아름다운 성의 개인 예배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 당시 다이애나는 임신 중이었지만 아무도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 결혼과 함께 정식 귀족 가문의 일원이 된 카펠은 출생에 대한 상처를 치유할 수 있었다. 1919년 4월, 다이애나는 딸을 낳았다. 카펠에게 첫딸은 또 다른 행복을 가져다주었다. 유명 정치가인 클레망소가 대부를 서주면서 상류 부르주아 사회에서 공고히 인정을 받은 것이었다. 카펠의 인생은 안정적이고 순조롭게 흘러갔다.
행복의 절정에서 맞은 갑작스런 죽음
카펠이 영국에서 결혼할 무렵 샤넬은 9년 동안 그와 함께 살았던 파리의 집을 떠나 한적한 교외로 이사를 했다. 그녀는 300명이 넘는 직원을 거느린 경영자였지만 한편으론 사랑하는 단 한 명의 남자를 온전히 가질 수 없는 처지였다. 이 상실감을 채우기 위해 샤넬은 교외의 집에서 그녀와 함께 살아갈 가족 같은 직원들을 고용했다. 가정부와 집사, 요리사 그리고 출퇴근용 감색 롤스로이스를 운전해 줄 전용 운전사였다.
하지만 카펠의 결혼으로 두 사람이 헤어진 것은 아니었다. 샤넬 역시 사랑만큼이나 일과 성공에 대한 열망이 큰 사람이었기에 카펠의 선택을 이해했다. 카펠은 변함없이 바쁜 시간을 틈타 샤넬을 만나러 왔다. 카펠에게서 경제적 지원을 받는 정부가 아니라는 사실이 샤넬의 자존심을 지켜주었다. 자신을 이해해 주는 연인과 완벽한 가정 속에서 카펠도 행복했다.
하지만 그의 행복은 너무나 짧았다. 결혼 후 처음 맞는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두고 카펠은 칸 부근에서 자동차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죽음이었다. 신혼의 달콤함이 절정이던 그때 다이애나의 배 속에는 카펠의 아이가 자라고 있었다. 카펠의 장례식은 크리스마스이브에 항구도시 프레쥐스에서 치러졌다.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다이애나는 두 번이나 남편을 앗아간 프랑스를 미련 없이 떠났고, 카펠의 시신은 그가 태어나고 자란 영국에 묻혔다.
장례식에 참석할 ‘자격’이 없었던 샤넬은 사고 장소에서 홀로 눈물을 흘리며 카펠을 잃은 슬픔을 달랬다. 샤넬은 “보이를 잃었을 때 나는 모든 것을 잃었다.”라고 말할 정도로 깊은 슬픔에 빠졌다.
죽음, 그 후 샤넬의 연인으로 불린 남자
1920년 2월, 〈런던타임스〉에 카펠의 유언장이 공개되었다. 총 70만 파운드에 해당하는 카펠의 재산 중 62만 파운드는 부인인 다이애나와 두 딸에게, 남은 8만 파운드는 각각 4만 파운드씩 익명의 두 여성에게 상속되었다. 사람들은 익명의 여성들에 대해 수군거렸으나 다이애나는 현명하게 침묵을 지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유언장의 내용은 카펠만큼이나 빠르게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졌다.
익명의 여인 중 한 명인 샤넬은 이미 충분한 유명 인사였다. 독하게 성공에 매진한 샤넬의 집념은 현실이 되었다. 샤넬은 부와 명성을 이루었을 뿐 아니라 패션의 역사에 혁명을 가져온 여성이자 20세기를 대표하는 신화적인 인물로 자리매김했다. 카펠이 생전 이룬 것보다 훨씬 커다란 성공이었다.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거대한 패션 제국 ‘샤넬’의 여왕이 된 샤넬은 후에 자신의 인생을 회고했다. 물론 그녀의 회고에는 카펠의 이름도 등장했다. 샤넬의 기억 속에 자리한 카펠은 마치 공들인 수작업으로 정교하게 완성되는 옷처럼 아름답고 완벽했다. 샤넬은 카펠을 소중하고도 애틋하며 고마운 존재로 기억했고, 그와 함께했던 시절의 행적을 따스한 시선으로 세세하게 기억했다.
샤넬의 기억을 통해 세상에 공개된 카펠의 이야기는 제2의 샤넬을 꿈꾸는 수많은 여성들을 매혹시킨다. 어딘가에 분명히 있을 카펠의 후계자들이 ‘샤넬’처럼 숨은 보석 같은 여성을 만난다면 제2의 샤넬 혹은 샤넬을 능가하는 여성의 탄생 또한 얼마든지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