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니스 대처,    

조용히 바보로 취급당하는 것을 선택했던 수상의 남편-1 

 

순탄한 사업과 실패한 결혼

데니스 대처의 가족은 켄트 출신이다. 그의 할아버지는 20세기 초, 비소와 나트륨이 바탕인 온천을 발견해 자신의 사업처를 만들었다. 할아버지가 만든 사업은 그의 아버지가 이어받았다. 그의 아버지는 물려받은 가업을 농수산 관계의 화학 약품, 예를 들어 제초제와 양을 씻는 세제 등을 만들어 수출하는 회사로 발전시켰다. 데니스는 자연스럽게 아버지의 회사에서 일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사망한 후 가업을 물려받았다.

순탄했던 그의 인생에서 첫 번째 좌절은 바로 이혼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2년 그는 마거릿 캠프슨과 결혼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육군 포병대에 들어가 가정에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의 아내 마거릿 캠프슨은 남편이 부재중인 동안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불륜을 저질렀다. ‘전쟁 중’이라는 특수 상황이 만들어낸 비극이었다. 전쟁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데니스는 이혼으로 4년이라는 짧은 결혼 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성공한 이혼남과 야심찬 처녀의 만남

그 후 독신으로서 데니스는 상속받은 가업을 시대에 맞게 잘 꾸려나가며 36세에 회사의 총 지배인이 되는 등 성공 가도를 달렸다. 그의 회사인 아틀라스는 에리스에 위치해 있었다. 성공한 지역 사업가인 데니스는 에리스 납세협회 위원으로서 보수당협회와 관계를 맺고 있었고 자연스럽게 보수당의 인물들과 돈독한 친분이 있었다. 

그는 주변의 추천을 받고 주 의회 선거에 입후보한 적도 있었는데 결과는 낙선이었다. 하지만 데니스는 처음부터 정치가가 되는 일에 그다지 큰 뜻이 없었기 때문에 실망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낙선의 아쉬움보다 오히려 이제 막 정치의 뜻을 펴기 시작한 마거릿 로버츠라는 젊은 여성을 만난 기쁨이 더 컸다. 

마거릿 로버츠는 1950년 총선에 입후보한 인물 중 가장 젊은 여성 후보자였을 뿐 아니라 가장 열성적으로 선거운동을 펼친 후보였다. 하지만 노동당이 우위를 점한 다트퍼드에서 그녀는 1950년과 1951년 총선에 출마했고 두 번 다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데니스가 마거릿 로버츠를 만난 것은 1951년, 두 번째 출마한 그녀가 한창 뜨겁게 선거운동을 하던 시기였다.

당시 보수당원인 친구의 선거를 돕기 위해 마거릿의 선거 지역인 다트퍼드에 와 있던 데니스는 선거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려는 그녀를 자신의 차로 런던까지 데려다 주었다. 훤칠한 키에 호남 형이었던 데니스는 여유 있는 집안 출신답게 스포츠와 사업에 관심이 많았으며 정치에는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았다. 정치는 그의 사업에 도움이 되는 여러 가지 요소 중 하나이자 성공한 사업가로서 사교를 위해 필요한 사항일 뿐이었다.

마거릿은 데니스보다 열 살이 어렸다. 따라서 데니스의 눈에는 지나치게 열성적이고 자기주장이 강하며 투쟁적인 마거릿의 성격이 다소 ‘순수하고 귀엽게’ 비쳤다. 또한 인생에 대한 목표와 계획이 확고하고 투철하다는 점에서도 호감을 느꼈다. 독실한 감리교도이며 똑 부러진 성격의 마거릿은 그의 첫 번째 아내 같은 실수를 할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또한 정치에 대해서는 단호했지만 결코 페미니스트는 아니었다.

마거릿의 입장에서도 데니스는 이혼 경력이 있다는 점만 제외하면 매우 좋은 조건을 갖춘 남자였다. 중하류 계급 출신이라는 한계를 딛고 실력과 노력으로 아등바등하며 자신의 입지를 다져야 하는 마거릿에게 데니스와의 결혼은 중산층으로 가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길이었다.

  

 

 마거릿 로버츠와의 만남과 재혼

총선거 운동이 한창이던 1951년 가을, 마거릿과 약혼한 데니스는 선거 결과에 피해가 갈 수도 있다는 마거릿 선거 진영 참모들의 조언에 따라 약혼 발표를 하지 않은 채 묵묵히 그녀의 선거를 도왔다. 하지만 그의 노력과 무관하게 마거릿은 선거에 패배했다. 그해 12월 13일, 데니스는 두 번의 낙선 경험이 있으나 정치에 꿈을 버리지 않은 열렬한 보수당원이자 식품 잡화점의 둘째 딸인 마거릿 로버츠와 런던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이 결혼으로 데니스는 ‘결코 바람을 피우지 않는 아내’를 얻었고, 마거릿은 ‘든든한 경제적 후원을 해주고 영원히 그리고 무조건 그녀의 편이 되어주는 유일한 아군’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중하류 계층에서 중류 계층으로 신분 상승도 이루었다. 훗날 두 사람의 딸인 캐럴 대처는 데니스와 마거릿의 결혼을 ‘사랑이라기보다는 상호 편의에 의한 파트너십’ 관계였다고 보기도 했다.

데니스는 마거릿과의 신혼여행지로 포르투갈과 스페인 그리고 파리를 선택했다. 마거릿에게는 생애 첫 해외여행이었다. 영국 중부의 소도시 그랜섬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녀는 대학 시절을 보낸 옥스퍼드와 처음으로 직장(BX 플라스틱스) 생활을 했던 콜체스터 그리고 선거 지역인 다트퍼드 밖에서는 생활해본 적이 없었다.

한편 수출 사업에 종사하고 있던 데니스에게는 신혼여행이 출장 여행이기도 했다. 마거릿은 허니문까지 ‘일’을 싸들고 간 남편을 이해했다. 합리적인 성격의 그녀가 열 살 연상에 이혼 경력이 있는 데니스와의 결혼을 선택한 데에는 그의 부유함, 그리고 안정적인 생활에 대한 기대가 크게 작용했다. 따라서 그녀는 데니스의 사업이 허니문 때문에 영향 받는 것을 원치 않았다. 데니스는 사업 때문에 바쁜 자신을 너그럽게 이해해주는 어린 신부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칼럼니스트 조민기 gorah99@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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