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퀼트 - [할인행사]
조셀린 무어하우스 감독, 위노나 라이더 (Winona Ryder) 외 출연 / 유니버설픽쳐스 / 2007년 12월
평점 :
품절


..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이제는
어떤 가치도 갖지 못한 채 급속하게 허물어져가는 진리의 전당,
대학에서 깨달은 최고의 이념이다.

이전에 보았을 때 아무 감흥이 없던 영화들을
20살이 넘어서 다시 보았을 때
미처 느끼지 못하고 보지 못했던 것을을 나는 보고 느낄 수 있었다.
그때는 그때 나름대로 보고 느낀 것이 충분했을텐데...
두번째로 영화를 보면서 영화의 상황을 지금 나의 상황과
거의 모든 것에 대입해내는 내 능력에 실은 내가 더 놀랬다.

대부분 다시보는 영화들은 흥행도 별로였고 그다지 재미가 있는 영화들도 아니다.
하지만 그런 영화에서 얻어내는 것들은 놀랍게도 너무도 중요한 삶의 진리였다.
그것을 깨달은 다음부터는 어떤 영화도 허투로 볼 수가 없었다.
<아메리칸 퀼트>도 그런 영화 중 한 편이다.
위노나 라이더가 분한 주인공 '핀'은 또 다른 나였다.
그녀는 대학원 논문 주제를 3번이나 바꾸면서 학문의 길은 연장한다.
생산활동은 하지 않고 내키는 대로 공부를 하면서
끊임없이 흥미로운 것들을 찾지만 모든 것에 끈기없이 권태를 느끼는 핀.
그녀는 세번째 선택한 주제를 가지고 논문을 완성하기 위해
남자친구와 잠시 떨어져 이모 할머니들이 있는 시골로 내려온다.
시골은 물론 남부이다.
영화속에서 미국은 지역 설정이 매우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대학 이후 학문의 길을 연장하되 각종 학문을 한 학기 정도씩 수강하면서
전공을 바꾸어 가는 핀의 모습은 나의 이상이자 자아였다.
할 수만 있다면 나도 그렇게 살고 싶으니까.
내키는 대로, 그때 그때 하고 싶은 공부를 하면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핀이 내려간 시골 환경은 또 얼마나 나른하고 쾌적한가.
작은 마을이지만 과수원 비슷한 것도 있어 나무도 많고 따뜻하며
차를 타고 가면 수영장고 있고 산 뒤로 계곡도 있다.
집도 생활하기 아주 불편한 것은 아니다.
그런 곳에서 한달이고 1년이고 너무 오래는 아니더라도
머물면서 하고 싶은 것을 한다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때부터 '핀'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대신해주는 사람이 된다.
대리만족! 간접경험

그녀가 세번째로 선택한 논문 주제가 무엇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여하튼 그녀는 낡은 타이프로 치고 또 친다.
할머니들이 다 자는 밤에 달랑 가운 하나만 입고서
어둠 속에서 탁탁탁 타이프를 치고
더우면 컵에 가득 담긴 얼음을 꺼내 아그작 씹어먹기도 하고
얼음으로 얼굴을 맛사지하며 식히기도 한다.
그리고 할머니들이 아침식사를 다 마친 후에야 겨우 일어나서
뒤늦게 커피를 마시고 휴식을 취한다.
해질녘의 오후에는 마당 정자에 앉아서 이런 저런 담소를 나누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한다. 매우 편안한 자세로 마음대로 앉거나 누워서.
아..부러워라.

난 끈적거리는 습기가 일으키는 불쾌지수와 짜증을 동반하더라도
여름이 가지고 있는 그 따뜻한 색깔이 너무도 좋다.
해질녘은 주황색, 붉은 보라색 또 반대로 새벽녘의 서늘함...
그리고 보색을 이루는 나무들의 푸르죽죽함.
보기만 해도 싱그럽다.
땀 좀 나면 어떤가!
여하튼 지금 당장 내게 주어지지 않은 것들만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나는 순간 이상주의자가 된다.
돈 욕심도 사라지고 명예욕도 사라지고 자연인이 된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저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는 생각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치솟는 것이다.

그리고 핀은 자신에 비해서 지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좀 딸리는 남자친구를
배신하고 살짝쿵 바람을 핀다.
핀에게는 오매불망 그녀를 사랑하는 남자친구가 있다.
직업은 목수. 벌써 결혼 생각에 그녀의 서재와 작업실을 설계도면에
그려놓고 집을 구상중이다. 유후~건축가면 좋겠지만 그는 분명 목수다!
그런 그에게 짜증을 부려대는 핀.
그녀에게 나타난 남자는 시골에서는 보기 힘든 느끼함을 수반한 섹시가이.
어느 시골 구석에 가야 그런 넘이 숨어 있는지 경험상 도대체 알 수가 없지만
어쨌거나 영화니까 가능한 일이다.
게다가 그는 재력도 좀 된다. 시골인만큼 부동산으로 승부한다.
놀랍게도 도시의 바람둘이를 능가하는 느끼함까지 가지고 있다.
오~핀은 자꾸 흔들린다. 결국 데이트를 약속하는 핀.
시골에서 부시시하게 있다가 오랫만에 머리와 옷에 힘을 준 그녀!
홍조 띤 얼굴로 저녁을 먹으며 이모 할머니들의 관심어린 시선을 한몸에 받는다.
하지만 갑작스레 약속을 취소되고 실망한 그녀는 집 밖으로 나간다.
어둠이 주는 서늘함에 몸을 맡기고 있는 그녀에게 다가선 한 흑인여자.
핀보다 나이가 많은 딸을 둔 그녀는 핀에게 충고한다.
'충동적인 행동은 후회만 남을 뿐이라고'
그 말에 핀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난 젊기 때문에 무모할 권리가 있어요'

무모할 권리를 주는 젊은.
그 말에 난 무릎을 치고 가슴을 쳤다.
그 대사 하나로 <아메리칸 퀼트>는 내게 잊지 못할 영화로 남는다.
그래, 젊다는 것은 무모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무슨 일을 하더라도 용서와 포용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 얼마나 황홀한 자유인가.

영화는 길고 지루하며 4명의 여인들의 과거와 현재가 계속 나와서
삶은 진리를 말하주고 있었지만 나에게 그다지 감흥은 없었다.
영화잡지라고는 <스크린>과 <로드쇼> 밖에 없던 시절,
아메리칸 퀼트의 스틸 사진(고작해야 2장)이 실린 잡지와
요정처럼 이쁘게 세트장 속에서 포즈를 취하던 위노나 라이더의
이미지 사진(고작해야 2장)이 실린 잡지를 번갈아 보면서
비주얼적인 것에 현혹되어 어쩔줄을 모르던 시절이 있었다.
(나는 예쁜 것에 약하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어떤 것이던 아름다움에 약하다.)
그런데 그 사진 뒤에 감추어진 영화를 처음 보고
어찌나 무덤덤하던지 실망을 살짝쿵 했었다.
그런데 5년이 지나 다시 본 영화 속에는 여지껏 보지 못했던
새로움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발견, 이것이 내게 영화를 보는 재미를 준다.
그래서 나는 재미없는 영화도 항상 본다.
비디오 가게에 친구나 가족과 같이가면 항상 빈축을 사지만
나는 꿋꿋하게 특히 드라마 장르의 재미없는 작품들을 꼭 보곤 한다.

<아메리칸 퀼트>
내게 작은 삶의 진리를 깨우쳐 주고 용기를 준 영화!
젊다는 것은 무모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아직 젊은 것이다.
젊기에 조금 무모하더라도 그것은 나의 정당한 권리이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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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과 열정사이 - Rosso 냉정과 열정 사이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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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책장을 넘길 수록 숨이 가빠와 정신을 차릴 수가 없던 블루.
이유는 간단했다. 어서 읽고 로사를 읽고 싶어서.
도서관에서 예약 신청까지 하고 마침내 로사를 읽었을 때
난 온 몸에서 힘이 빠지고 말았다. 기대 이상이었다.

블루에서 멀쩡한 허우대를 가진 준세이가 그토록이나 사랑하던 여자,
아오이는 너무도 조용하게 등장했다.

Rosso의 목차 앞장에 나타난 글이 아니었다면 나는 그녀를 매우 고깝게 보았을지도 모른다.

"아가타 쥰세이는 나의 모든 것이었다
..중략...
만약 어딘가에서 쥰세이가 죽는다면, 나는 아마 알 수 있으리라.
아무리 먼 곳이라도, 두 번 다시 만나는 일이 없어도.."

그녀가 털어놓은 이 말로서 나는 그녀가 아무리 담담하고 침착하더라도
그 안에 들어있는 깊고 연약한 사랑을 알 수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 후 세상의 색을 읽어버린 여자 아오이의 생활이 정적인 모노톤으로 에쿠니 가오리 특유의 무심한듯하면서도 절절한 문체로 쓰여있다. 읽고 있으면 아오이의 감정이 손에 잡힐 것 같다.

한 사람의 시각에서 쓰여진 것이 아닌, 두 사람의 관점에서 각각 다르게 느껴지는 사랑의 감정을 독자에게 전달하는 점에서 냉정과 열정사이는 연인들의 심정을 가장 독특하고 진솔하게 이야기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서로를 그토록이나 사랑하는 그들은 이해와 대화의 단절로 헤어진다. 정말 간단하고 평범한 이유로. 부모의 반대와 오해. 60년대 신파?

하지만 사랑 이후 두 사람의 삶의 모습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서서히 중독이 되어간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원치않았던 이별후에 너무나 다른 곳에서 또 다른 삶을 시작한 여자 아오이는 단조롭고 고요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녀의 삶은 앤티크 샾에서 주 3회 아르바이트를 하며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고, 그녀를 너무나도 사랑하며 탄탄한 허벅지가 매력적인 마빈에게 맛사지를 받으며 느긋하게 목욕을 하것이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그녀의 삶이 어찌나 단조로운지 소소한 일상인, 매일 먹은 좋은 음식과 좋은 와인 하나 하나까지도 우리는 다 알 수 있다.
그녀를 너무나 사랑하는 남자, 마빈. 하지만 마빈은 외국인이다. 따라서 동서양의 만남, 결혼이 아닌 동거는 매우 비도덕적으로 보여질 수 있다. 아오이의 냉정하고 침착함은 이 모든 것을 한마디 설명없이 정당화시키지만.
책을 읽는 동안 내가 마치 아오이가 된듯 매우 침착하게 읽을수 있었다. 현재의 삶을 만족해 하면서도 뭔가 부족하게 느껴지는 아오이의 마음을 반영하는듯한 깊게 관계하기를 꺼려하는 듯한 문체, 에쿠니 가오리는 내용보다도 더욱 건조한 문체로 아오이를 표현하지만 거기서 오히려 더 큰 여운이 생긴다. 아오이는 종종 요리를 하는 것을 좋아하고, 설겆이 하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아마도 딱 그만큼 마빈을 좋아할 것이다. 때때로 아오이는 마빈을 진심으로 사랑한다 느끼지만 결코 표현하지 않는다.
내가 만약 남자라면 그런 아오이를 사랑하기는 힘들것 같다. 하지만 일단 그녀에게 마음을 주면 어쩔 수없이 빠질 것만 같다. 그녀의 쿨한 성격이 너무나 멋지기 때문에. 그래서 나는 여자로서 아오이에게 푹 빠졌다.

집에서나 아르바이트에서나 항상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는 아오이에게 마빈이 묻는다. 당신은 책을 좋아하는데 왜 사서 읽지는 않느냐고.

"저는 책을 읽고 싶을 뿐이지 소유하고 싶은 건 아니에요. "

마빈과 함께 살고있는 아오이의 생활 자체를 대변하는 말이다.

마빈을 아는 모든 사람은, 심지어 아오이의 절친한 친구조차도 평온한 그들의 사이 중간에 아오이에게 수시로 이야기한다. 마빈은 진심이라고. 그렇다면 아오이는 진심이 아닌가? 밖에서 보기에도 안에서 느끼기에도 아오이는 완전히 소유할 수 없는 여자처럼 느껴지는 것일까. 그들의 불안하지만 안정적이고 유쾌한 일상.
맛좋은 와인과 좋은 식사, 좋은 목욕탕과 좋은 그릇, 좋은 아파트와 어려운 청소를 맡아 하는 아주머니가 일주일에 한번씩 방문하는 안정된 삶을 보장해주는 마빈과의 동거 이전, 스무살의 아오이는 쥰세이와 격렬한 사랑을 나누었다. 그녀는 어느날 한통의 편지를 받으면서 쿨했던 아오이의 일상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마빈이 잠든 밤, 그녀는 참지 못하고 일본으로 전화를 한다. 준세이가 받는다. 하지만 아오이는 아무말도 못하고 잘못 것었다고 말한 뒤 그냥 끊어버린다. 전화기에 녹음된 빗소리를 듣고 밀라노의 날씨를 확인한 준세이는 그녀가 아오이임을 확신한다.

사랑하고 헤어진 뒤 같은 시간, 다른 삶을 살아간 두 사람 준세이와 아오이. 준세이를 그렇게나 애태운 그녀는 책이 거의 반이 지나도록 준세이를 언급하거나 떠올리지 않는다. 다만 그녀가 우리에게 이야기하는 것은 현재의 생활이다. 너무도 침착하고 조용한 그녀의 생활, 자신의 생활을 담담하게 말하는 그녀는 마치 다른이의 모습을 묘사하는 것처럼 자신의 삶은 관조한다. 그녀가 과연 10년 전 준세이의 아이를 가졌던 아오이가 맞는 것일까. 준세이의 수업이 끝나길 기다리던 그녀가 맞는 거일까.

어쨌거나 26,27,28? 이던가...
3년을 함께 살았던 마빈과의 생활은 어느날 준세이에게서 날아온
편지 한장으로 작게 균형이 흔들리다가 결국에는 깨지고 만다.
흥분하고 슬퍼하다가 돌아와 달라고 자신의 사랑과 기다림을 말하는 마빈과 달리
아오이는 마빈의 집을 나와 작은 아파트를 얻고 아르바이트 시간을 늘리고
조금 작은 욕조에서 목욕을 하고 머그잔에 와인을 마시며 다시 고요하게
자신의 일상을 만들어 간다.
대단히 현명하고 지해로우며 쿨하고 모든 것이 부러운 여자다.
그리고 촉촉한 듯 메마른 아오이의 가슴에는 열정도 있다.
30살 생일날, 끝까지 망설이기는 하지만 결국 정신없이 피렌체로 달려가
두오모에 오르는 그녀, 그곳에서 준세이와 다시 만난다.
약속을 잊지 않고 나와준 첫사랑이 있는 삶은 결코 단조롭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사랑과 이별, 재회를 넘어서 나는 생활이 바쁘고 정신없을 때면
로사의 아오이를 떠올리는 버릇이 생겼다.
종종 도서관에서 몇번을 더 대여해 읽던 나는 마침내 책을 구입했다.
너무 피곤하고 지칠때 로사를 펴고 느리게 펼쳐지는 아오이의 일상을 따라간다.
저녁을 먹고, 술을 마시고, 맛사지를 받고, 목욕을 하고, 책을 읽고, 늦잠을 자고, 요리를 하고, 일을 하고, 설겆이를 하는 그녀의 일상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나도 느긋하고 쿨한 그녀가 된 것 같다.

"아이를 지워" 이말을 듣는 것이 미리 두려워 차라리
"왜 그랬어"라는 말을 택하고 차이는 것을 선택한 아오이.
상처받기가 두려워 먼저 상처주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소소하면서
큰 감동을 준다. 다시만난 준세이에게도 결코 "마빈과 헤어졌다"고 말하지 않는 아오이. '너 때문이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너뿐인걸' 이말을 하지 못한다. 거절이 두렵과 준세이가 느낄 부담이 싫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30이 된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할 일만 남지 않았을까.
배경은 이탈리아다, 결혼이 뭐 대수인가. 사랑하면 그만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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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과 열정사이 - Blu 냉정과 열정 사이
쓰지 히토나리 지음, 양억관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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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과 열정사이 - 블루목차
1. 인형의 다리
2. 5 월
3. 조용한 호흡
4. 가을 바람
5. 회색 그림자
6. 인생이란
7. 과거의 목소리, 미래의 목소리
8. 엷은 핑크 빛 기억
9. 인연의 사슬
10. 푸른 그림자
11. 3 월
12. 석 양
13. 새로운 백년



이 책은 참...냉정한 주인공들과 어울리지 않게
닭살스러운 라디오 광고를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다.
그 뒤 한번 읽어 보려고 학교 도서관에 갈 때마다 찾았지만
번번이 대여중이곤 했다.
결국엔 반납한 책들이 그득 쌓인 책수레에서 간신히 발견한 <Blue>편을 먼저 읽게 되었다.
반질반질하게 닳아있는 겉장과 달리 침한방울 묻지 않은 속지들..
책을 읽는 사람이 어떤 심정으로 이 책을 대했는지 알 것 같았다.
책을 빌려 읽게 되면 이런 점이 종종 느껴질 때가 있다.

원래 일본 문학을 즐기거나 관심이 있지는 않았다.
종종 역사책을 읽다보면 의외로 중국사와 한국사의 장편들이
일본 작가들의 것이여서 놀란 적은 많았지만...
특히 두명의 무라카미가 한국 문학계와 출판계에서 돌풍을 일으킬 적에도
그려려니 했다.
국내 현대 문학에도 무관심한 내가 일본의 현대 문학을 읽기에는
궁금한 역사가 너무 많았달까.
여하튼 쓰지 히토나리 쓰고 양억관 번역을 해서 소담출판사 출간한 <냉정과 열정 사이 Blue>는
내가 처음으로 읽은 일본 현대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대여하기가 너무 어려워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숨박꼭질 끝에
간신히 손에 넣은 진부한 연애 스토리처럼
마침내 손에 넣은 책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갈아타기를 잊어버릴 정도로
단숨에 읽은 기억이 난다.

먼저 이 소설은 두 남녀의 연애담이다.
소설의 배경은 이탈리아이고 남자와 여자는 일본인이다.
남자의 이름은 준세이.
그는 미술복원사의 일을 하고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로, 티치아노, 미켈란젤로 거론하는 것만으로 숨막히는 대가들의 땅인 이탈리아만큼 고미술복원이라는 직업이 멋있는 곳이 또 있을까.
하지만 마냥 감탄을 하기에는 고미술복원이라는 그의 직업은 의미심장하다.
최고의 솜씨를 자랑하는 그의 복원능력은 잃었던 첫사랑을 다시 찾고 싶어하는 그의 내면을 형상화한 직업일 것이다.

건조한 듯 부드러운 히토나리의 문체는 준세이의 성격을 그대로 반영한다.
하얀 우유가 오랜 시간 상온에 있으면 위에 얇은 점막이 생긴다.
그 점막을 걷으면 희고 부드러운 우유가 그대로 있는 것이다.
준세이는 지난 사랑을 얇은 점막으로 가린 채 순수함을 그대로 간직한 사람이다.

책을 읽으면서 느낀 일단 준세이가 부러운 점 하나,
그는 매우 정적이고 관계가 단절되거나 단편적인 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 스스로 그 일을 좋아하며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타국에서 살면서 의사소통의 문제가 전혀 없으며 정확하게 등장하지는 않지만 빵빵한 집안으로 인해 재정적인 문제도 없다.
준세이는 10년 전 일본에서 대학을 다닐 때 한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공평하고 균등한 사랑...
그는 언제나 침착하고 자존심 강한 아오이와 만나 불 같은 사랑을 나눈다. 젊었지만, 너무도 젊었지만 그들이 나눈 것은 불장난이 아니라 사랑이었다. 비록 그 풋풋함이 유치하더라도 그것은 사랑이었다.
준세이가 아오이을 항상 몰래 관찰하는 부분에서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준세이는 아버지와는 사이가 썩 좋지 않다.
어린 시절의 문제도 있고 동양에서는 흔히 있는 부자간의 갈등이다. 그는 대신 할아버지와 오히려 친구처럼 지낸다. 준세이는 어느날 아오이가 임신을 했지만 혼자 아이를 지운 것을 알게된다. 크게 상처입은 그는 아오이에게 이별을 말하고 그들은 헤어진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그는 현재 이탈리아에서 고미술복원사로 일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일상은 어찌나 담담하고 평범한지 모른다. 그는 항상 아오이를 생각하고 있지만 그것은 너무 일상적이라 조금도 애절하거나 가슴 떨리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아침에 일어나서 화장실에 가는 것처럼 아주 평범한 일인 것이다.

그는 미술복원일에 사고가 생겨 일본으로 돌아 갔다가 대학시절의 한 친구를 만나 아오이가 왜 그 당시 아이를 지울 수 밖에 없었는지 이야기를 듣는다. 너무 허무하게도 아버지가 몰래 그녀를 찾아왔던 것, 진부하기 짝이 없는 구성이었다. 하지만 어수룩하고 단순한 준세이는 그 말에 심하게 동요하며 바로 사과의 편지를 보낸다. 친구에게서 알아낸 아오이의 주소로.
친구는 아오이가 미국인과 함께 살고 있다고 했지만 준세이는 그저 편지를 보낸다.
이런 점이 바로 준세이의 매력이랄까.
아주 단순한 점. 솔직한 점. 두 가지를 생각하지 않는 점.

그리고 그는 10년전의 약속을 기억하고 피렌체의 두오모로 간다. 20살에 사랑했던 그들은 10년 후, 아오이가 30살이 되는 날 그곳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었다.
그는 그곳에서 아오이를 만난다.
그리고 3일간 꿈같은 사랑을 나눈다.
헤어졌던 것도, 시간이 주는 어색함도 없이 그 열정 그대로 그들은 사랑을 한다. 하루 이틀이 지나자 두 사람은 서로 불안해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3일이 되는 날, 아오이가 먼저 돌아갈 것을 말한다.
준세이는 잡지 않는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그는 아오이가 탄 기차보다 먼저 밀라노에 가기 위해 달려간다.
그는 그녀를 사랑하니까.

계속 생각했다.
처음에는 도대체 아오이는 누구일까. 누구길래 준세이가 이토록 사랑할까. 생각했지만
읽을 수록 나는 블루는 준세이의 입장에서 써 내려간 글이었지만 아오이는 어떤 여성일까가 궁금했다. 누구길래 그녀는 준세이를 사랑할까가 더 궁금해진 것이다.
잔잔하고 고른 문장의 소설을 혼자서 숨가쁘게 읽으며 로사를 읽어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졌다. 블루는 로사를 읽기 위한 준비운동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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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지된 사랑 1
한혜연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1999년 8월
평점 :
절판


한혜연이란 만화가를 눈여겨 본 적은 없다.
그는 눈에 띄는 작가는 아니었다.
투철한 작가 정신이 빛나는 김혜린이나 김진 류도 아니었고,
고전적이면서도 풍성하고 다채로운 내용으로 장편 대작들을 척척 완성하며
그야말로 만화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황미나와 신일숙 류도 아니었으며
화려한 그림체와 속사포같은 대사, 완벽한 남자 주인공을 내세우는 원수연도,
10대의 불안정한 정서를 성숙하고 멋지게 표현하는 이빈도,
공주틱한 만화의 튼튼한 뿌리와 줄기, 잎까지 여전히 홀로 유지하는 것이 거뜬한
한승원도, 돌발적인 유머감각을 자랑하며 단숨에 입지를 굳힌 한승원의 시동생-
김동화의 동생이라는 김기혜도, 태풍의 눈 천계영도 아니고,
대단히 독특한 가치관을 투영해 내는 우리의 이정애도 아니었고,
고만 고만한 중단편을 그리는 작가였으니까.

한혜연은 연재할 때 한회 한회가 너무나 기다려져 펑크를 내면 안타깝다 못해
화가 날 정도록 정신없이 빨려 들어가거나 흡인력 있는 작품을 그린 적은 없다.
그런데 그의 만화는 마치 단편 소설이나 수필을 읽는 것처럼 묘한 울림이 있다.
그의 만화는 잡지를 펼쳤을 때 제일 먼저 찾게 되는 작품은 아니다.
그의 만화는 연결되는 내용을 알기 위해 황급히 보기보다는 오히려 차분하게
다른 만화를 다 본 다음에 다음 잡지가 나올 때까지 몇번이고 다시 보게 된다.
그의 만화는 연재라기 보다는 한 편이 하나의 미완성인 듯 하면서 독립된 내용과 테마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장 나중에, 가장 여러번, 가장 오래도록 보게 되는 작품이 바로 한혜연의 작품인 것이다.
그의 그림은 또 마감에 쫓기는 인기 작가들과 달리 언제나 한결같다.

한혜연을 눈여겨 보기 시작한 것은 <금지된 사랑>부터이다.
이슈나 윙크, 화이트 등에서 작품을 연재하던 시기와 달리 한혜연은
지금은 폐간되었지만 20대를 위한 만화잡지를 표방한 <나인>을 만나면서
180도 달라진 성장과 성숙을 보여준다. 아니, 어쩌면 그녀는 처음부터 그런
느린 호흡과 깊은 울림이 있는 작품을 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금지된 사랑>은 2권짜리 중편이다.
평범한, 아주 평범한 두 여자의 일상적인, 정말 일상적인 이야기다.
그런데 이 만화를 몇번이나 본 것 같다. 지치고 힘들때.
왜냐하면 그들의 이야기가 나와 겹쳐지는 적이 종종 많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될 지 모를 때 그냥 같은 상황에 있는 만화의 주인공들의 보는것만으로많은 위안이 되었다.
그리고 그런 경험이 하나씩 늘어날 수록 작품에 대한 이해는 어졌고 만화는 단순한 엔조이용이 아닌 소장용이 되었다.
2권이라는 분량은 군더더기 없이 똑 떨어진다.
어쩌면 그녀의 만화는 지루할지 모른다. 그리고 만화적 판타지는 등장하지 않아
재미가 없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녀의 만화에는 꽃을 배경으로 한 미남이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의 만화는 지극히 일상적인 여성들이 주인공이다.
지나치게 덤벙거리고 절벽 가슴을 소유했지만 휘황찬란한 남성에게 사랑받은 여성이 아닌,
거울을 보는 것처럼 우리와 닮아있는 여성이 주인공이다.
주인공이라고 할 수 없는 주인공.
하지만 입맛과 오감을 사로잡는 한 조각의 달콤한 케이크보다는
언제먹어도 한결같은 한 그릇의 정성어린 칼국수가 더 안질리는 법이다.
시간이 있을 때, 한잔의 차를 앞에 놓고 느긋하게 그녀의 작품을 즐겨보라.
그녀의 작품은 몰입하거나 숨가쁘지 않게 느긋하게 볼 수 있는 작품이다.
그래도 일단 손에 잡은 이상 끝까지 안 읽고는 못 베길 것이니...
편한 옷으로 편한 자세로 편안한 공간에서 가장 좋아하는 차를 머그잔 가득
따라놓고 천천히 오래오래 그녀의 작품에 빠져보기 바란다.^^

그녀의 다른 작품으로는 삼풍백화점을 소재로 한 <아마존-아름다운 마지막 존재>가
1권까지 나와있다. 1권이 나온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잡지 폐간 때문인지 다음
이야기가 나올 생각을 안한다. 비록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 작품이 꼭 완성되길 나는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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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dts, 1disc) - 할인행사
롭 마샬 감독, 르네 젤위거 외 출연 / 스타맥스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시카고를 보았다.
브로드웨이에서 에비타와 함께 거의 일년 내내 상영한다는 시카고.
이것이 영화로 만들어진 것이다.
뮤지컬 영화의 필요충분조건이 무엇일까.
맞다! 바로 극장에 가서 대형 화면으로 볼 것,
오늘 시네코아에서 시카고를 보았다.
언론 시사회라 보도자료도 얻었다. 이번에는 두개.
어제 써니랑 같을 때도 하나 더 달라그럴걸.
2개 가져올 수 있었다.
시카고는 춤과 음악 그리고 쇼 자체를 보는 재미가 대단해
그것만으로도 돈이 아깝지는 않을 영화다.

르네 젤위거 - 얼굴이 좀 촌스럽고 살이 많아 날씬한데 참 통통해 보이는 배우다.
캐서린 제타 존스 - 대단한 체격. 떡대가 있다. 물론 출산도 있었지만.

미국에서 둘을 비교한다면 르네는 캐서린에 절대 못미치는 배우란다.
그런 급에 있어서 캐서린의 카리스마나 재능이 굉장하다고 한다.
덤으로 남편 끝발도.

그리고 리차드 기어.
이 남자 키스 잘하고 나이 들수록 섹시하고 티벳 라마교 신도에다가
피아노까지 잘 치는 건 진작에 알았는데....여기에 노래, 춤이라니.
그 나이에 비하면 믿기 어려운 정열의 연기를 보여주는 리차드.
덤으로 텝댄스까지.
게다가 우리가 원하는 멋진 모습들도 계속 보여준다.
모니모니 해도 그는 돈 많은 쿨한 남자를 연기할 때 빛이 나지 않던가. 캬~~
어메이징 어메이징 어메이징

내용도 워낙 재밌고 볼거리가 정말 많은데다가 쉴새없는 음악의 향연도 대단~!
일단 한번 볼 것을 강추하고 싶다.
에비타나 물랭루즈도 일단 보고 나서 이야기해야 했듯이 그런 영화.

캔디가 밀항으로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후, 간호사가 된 도시가
바로 시카고가 아니던가. 그래서인지 가본 적은 없지만 왠지 친숙한 시카고.
뉴욕 - 맨하탄, 로스앤젤러스와 더불어 미국인들이 참 좋아하는 도시인 것 같다.
시카고! 영화에서 춤과 음악만큼이나 중요한 요소가 바로 이 시카고라는 도시다.
또 하나의 주인공이라고나 할까.

사족을 달아 또하나의 관점을 말하자면,
이 영화는 여자들의 영화이다. 성적인 묘사나 노출 수위도 상당한데...
여자로서 기분나쁘지 않고 정말 재밌게 보았다.
왜? 이영화에서 힘을 가진 것은 여자다.
그 나가요 같은 각종 의상들, 끈다리, 가죽 등등이 아주 멋져 보였다.
왜냐, 그녀들을 원하는 것은 남자들.
하지만 그녀들은 그 남자들 위에 군림한다.
특히 르네 젤위거의 남편은 바보의 표상이다.
남자 중에는 리차드만 빛이 난다.
남자들의 인기 때문에 살아가지만 그 자체를 를 즐기는 강하고 독하고 매력적인 여자들.
그리고 이 영화에서 여자가 남편 혹은 애인을 죽이는 것이 계속 나온다.
캐서린도 르네도 우정출연한 루시 류도 기타등등 거의 2차례 이상 나오는 모든 여자들은
남자를 죽인다. ㅋㅋㅋ 대단하다.^^
이 영화를 본 남자들은 여자들이 무서워지지 않을까....

요즘 영화를 꽤 많이 본 거 같다.
데어데블 - 투게더 - 시카고까지.ㅋㅋㅋㅋ공짜라 더 잼나다.
보도자료 있으니까 원하면 말하세요. ^^
그럼 이만 총총

담에 하늘정원 보고 싶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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