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 아워스 - The Hours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남자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할 수 없을 영화.

버지니아 울프.

한없이 회색에 가까운 우울함.

나는 그녀를 이해할 수 없었고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114분의 러닝타임동안 

버지니아 울프의 단 하루를 통해서

그녀를 너무나 이해할 수 있었고 이해하고 싶어졌다.

황급히 숲을 걸어 강가에 다다른 니콜 키드먼이

코트 자락에 돌을 넣고 강으로 들어간다.

배경으로 그녀의 유서이자 남편에게 남기는 편지가 들렸다.

"나는 다시 미쳐가는데 당신에게 고통을 주고 싶지 않고..."

그저 사진과 책으로 버지니아 울프를 보았을 때는

왜 저 여자가 저렇게 자기 혼자 힘들게 살다 자살해야만 했을까

황당했는데, 알 수 있었다.

하루에도 수십번씩 자살 충동을 느꼈을 그녀를...

세상과 맞서 홀로 온전히 고독할 수 밖에 없던 그녀를...

남편도, 형제도, 조카도, 의사도

그녀의 고통 앞에서 무기력할 수 밖에 없었다.

런던 생활 속에 두번이나 자살을 시도해

요양차 내려온 한적한 시골,

버지니아의 남편은 집 안에서 인쇄소를 차려 아내의 병간호를 한다.

하지만 버지니아 울프의 병은 간호로 나을 수 있는 것이 아닌 걸.

그녀는 근본적인 고통에 간신히 맞서 싸우는 중인 걸.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며,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할 때마다

남편도, 언니도, 심지어 하녀도 빈정거리는 그곳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일 것이다.


문득 아무 말도 없이 나가 기차역에 앉아있는 버지니아를 찾아

허겁지겁 달려와, 더이상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소리치는 

남편에게 

"나는 이곳에서 매일 죽어가고 있는데,

내겐 격렬한 도시의 삶이 필요해...런던으로 가고 싶어"

라고 말하며 울음을 담고 있던 그녀...

왜 이렇게 공감이 가는지...나는 서울에 가고 싶다.


시대가 만들어 낸 그런 고통이기에,

그녀는 더욱 힘들지 않았을까.

생을 마감하는 것으로 고통을 끝낸 버지니아 울프.

그녀가 세상을 떠난지 50년 뒤, 100년 뒤 여전히 여자의 고통에

몸부림치며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사람들.

1882년 - 1941년

19세기 그리고 20세기 지금 21세기.

변치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똑똑한 여성이 겪을 수 밖에 없는 고통일까.

취업과 같은 생존이 아니라,

지독하게 힘든 자신과의 싸움이란...

언제나 자살로 끝나야 하는 것을까.

버지니아 울프 역의 니콜 키드먼은 

코에 실리콘을 넣어 못생기게 만들고

머리를 회색으로 염색해 버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재여성을 연기하기에 너무도 아름다웠다.

하긴, 까미유 끌로델의 이자벨 아자니도 있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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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으로 간 사나이 - A Man Who Went to Mars
영화
평점 :
상영종료


희선아, 넌 역시 CF와 드라마의 여왕이야.

미소가 고운 남자 신하균의 정통 멜로 <화성으로 간 사나이>

나라면, 시골 우체부가 신하균이라면 사랑에 빠질 수 있겠다.

한동안 그냥 몹시 결혼하고 싶었던 적이 있었더랬다.

이 세상 어디라도 좋으니 그저 '지금 - 그러니까 당시-' 로부터

무조건 멀리 떨어져 쉬고 싶었다.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 곳으로 가서...

자고 싶을 때 자고

먹고 싶을 때 먹고

생각하고 싶을 때 생각하고........

신하균같은 시골 우체부랑 결혼한다면 

그때 꿈꾸던 생활이 조금은 가능할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만 된다면...그렇게 사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도 같다.

ㅋㅋㅋ

그치만, 부질없는 생각이겠지.

나는 지금 분당에서도 고통스러워하는데...

그렇게 살게 된다면 며칠이나 견딜 수 있을까.


결론 : 참, 재미 없는 영화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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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록강은 흐른다
이미륵 지음, 전혜린 옮김 / 종합출판범우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이미륵.

한때 큰언니가 몹시 즐겨읽던 전혜린의 작품들 속에서

우연히 건진 책이다.

교과서에 금아선생의 글을 있었지만

이미륵이라는 작가는 언급되지 않았으니까,

혼자서 우연히 알지 않고는 발견하기 쉽지 않은 책이었다.


처음 이 책을 읽고 마구마구 울어버렸었다.

서정적인, 너무나 서정적인 문체와 흐름에

그냥 아름답다고 느끼면서도 눈물이 자꾸 났다.


어린 시절 많은 누이들 사이에서 성장한 미륵의 자전적 이야기.

처음 붓글씨를 배우던 것.

함께 자란 사촌 수암과 칠성.

친구들의 이야기.

아버지와의 추억과 죽음.

아련한 기억 속의 누이들과 어머니.

한일합병과 학생운동.

그리고 독일 유학까지.

내가 읽다가 울음을 터트린 장면은 

미륵이 아버지와 술을 마시는 내용이었다. 

아니, 처음 술을 배우는 장면이었을 것이다.

달 밝은 밤, 살구나무 아래서 어머니는 웃고 계셨으며,

미륵은 아버지에게 술 한잔을 받아 마시고 

익숙하지 않은 독한 맛에 눈물이 쏙 배어나오려고 할 때 

아버지가 입에 넣어준 대추를 씹으며 간신히 정신을 차린다.

"아버지, 당신은 아십니까"

라며 작게 부린 주정이 너무 고와서.

그 밤의 풍경이 그냥 절로 그려져서.

홀로 밤에 마시는 술맛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알게된 것도

<압록강은 흐른다>를 읽고 나서였다.

특별히 주도를 배운 적은 없었지만 이후로 나는 술만큼은

꼭 선비처럼 마시려고 아직까지도 노력하고 있다.

풍류
풍류
풍류도.


- 압록강은 흐른다 중 <병석에 누운 아버지> 중 일부 발췌 -

아름다운 달밤에는 샘뜰 살구나무 아래에 아버지가 자리를 펴게 하였다. 그리고 아버지의 시적인 이야기는 끝날 줄을 몰랐고 이따금 소리높여 시를 읖기도 했다. 그럴 때면 아버지가 늘 지녔던 근엄함도 사라지고, 만약 좋은 운이 떠올라 기분이 내키면 나와 농까지 했다.
한번은 아버지가 술병에서 한잔 가득 따라 나에게 마셔보라고 한적도 있었다. 그것은 어머니가 우리 옆에 없던 어느 아름다운 달밤이었다. 어머니가 옆에 없었던 것은 잘된 일이었다. 어머니는 결단코 내가 아버지와 술을 마시도록 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머니는 술에 대해서는 엄한 반대자였고, 아버지는 이 독한 물을 무척 즐겼다. 그 때문에 둘 사이가 종종 불쾌해지기도 하였다.
일반적으로 어머니는 관대하였고 매일 밤 아버지에게 쌀술을 한병 가득 갖다 주곤 했다. 아버지와 내가 자리를 같이할 때면 술병이 놓여있는 자그만 상에는 두 개의 술잔과 쟁반 가득 담긴 과일이 놓여 있었다. 보통때 어머니는 밤이 이슥하게 깊에 술병이 거의 비게 될 때까지 우리 곁에 앉아 있었다. 그러나 그 해 여름밤엔 모든 아낙네들의 독서회가 있었기 때문에 어머니가 옆에 없었던 것이다.
달은 어느덧 빈 서당의 지붕 위에 올라와 있었으며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텅 빈 이 큰집에는 아무것도 움직이는 것이 없었고 아무런 기척도 없었다. 모든 생명, 모든 인식이 나에게는 그처럼 잘 이야기하는 아버지의 웃는 얼굴에서 빛나고 있었다. 밤이 깊어지면 깊어질 수록 아버지는 술잔을 더 기울렸고 그럴수록 이야기는 더욱 생생해지만 했다. 수많은 시들이 인용되었고 읖어졌다.
" 너, 위대한 시인 김삿갓을 아느냐?"
"모릅니다."
나는 새오운 이야기에 대한 행복스런 기대에 차서 대답했다.

중략

아버지는 술잔을 보더니 얼른 다 마셔버렸다, 나는 다시 잔을 채우려 했지만 병이 텅 비어버렸다.
"더 없느냐?"
그때 약간 - 내가 그렇게 말해도 좋을지 모르지만 - 아버지는 슬프게 보였다.
"더 가져오겠습니다."
나는 병을 들고 일어났다.
아버지는 웃으면서 내 손을 쥐었다.
"넌 참 대단하구나. 어머니께 잘 말해 봐라, 아마 너에게 줄지 모르겠다."
"술을 꼭 가져다 드리겠어요."
나는 야무지게 대답했다. 그리고는 곧 병 하나 가득 가져와서는 아버지의 잔에 따랐다.
아버지는 무척 좋아하였다.

중략

"저 같으면 할아버지를 도왔을 텐데요."
나는 아버지의 이야기가 끝난 다음 이렇게 말했다.
"아니다."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너는 아직 그걸 모른다. 임금께 충성을 맹세한 이상 결코 불충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김삿갓은 자기 할아버지께도 복종을 약속하였으니 그것 또한 거부할 수 없지 않아요."
"물론이지."
아버지는 나의 논리에 기뻐하면서 동의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할아버지에게 반대 행동을 하지 않았고 시인이 되어서 이 세상과 결별하게 되었다."
"그렇더라도 전 할아버지를 도와야 된다고 생각해요."
나는 말했다. 나는 임금 때문에 자기 조부를 떠나야 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야, 이 고집쟁이야!"
아버지가 소리쳤다.
"아닙니다. 아버지는 그냥 이야기하는 것이지요. 저는 아버지가 어른이라고 해서 저보다 그걸 더 잘 아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잘 말했어! 자, 이 똑똑한 녀석아. 어디 우리 한잔 같이 마셔보자."
아버지는 사용하지 않던, 확실히 치레만을 위해서 놓아두었던 다른 잔에 술을 따랐다.
나는 깜짝 놓았다. 이때까지 나는 어머니가 언제나 반대하여 이야기하였기에 취하게 하는 음료를 적으로 여기는데 익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손으로 술잔을 잡았다.
"자, 마셔라."
나는 단숨에 잔을 비웠다. 그러나 잠시 후에 눈에서 눈물이 나왔다. 술은 무척 독했다. 아버지가 얼른 대추를 입에 넣어주었기 때문에 훨씬 나아졌다.
"맛이 좋았지?"
"좋았어요."
"그것 봐! 자, 한잔 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내 가슴속은 울렁거렸고, 목은 마치 졸리는 것 같았다. 그런데도 나는 신음하지 않고 조용히 앉아 있으려고 애를 썼다.
아버지는 그동안 김삿갓의 시를 하나씩 읖었다.
우리들이 둘째잔을 비웠을 때는 나는 손에 대추를 두 개 쥐고 있었다. 이번은 그렇게 나쁘지가 않았다. 나는 유쾌하고 사내답게 대추를 씹었다. 그러자 곧 머리가 빙 돌기 시작했다. 참으로 이상스럽고도 기묘한 일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물러나지 않고 마치 편한 것처럼 앉아 있었다.
이윽고 어머니가 돌아와서 내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물론이지, 그럴 수밖에!"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말했다.
"두 잔이나 마셨거든!"
어머니는 놀라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머니의 시선은 그렇게 엄격하지도 꾸짖는 것 같지도 않았고 약간 비웃는 듯했다.
"한잔 더 마셔도 되나요?"
나는 아버지에게 물었다."
"말이 되는 소리냐?"
어머니가 소리치며 술잔을 빼앗았다.
"제발 그렇게 무참하게 하지 마오."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말했다.
"한두잔의 술은 결코 해롭지 않아. 나는 이 외로움 속에서 친구를 가져야 하지 않겠소?"
"오늘 한번만은 마음대로 하세요."
어머니는 조용히 잔을 채웠다.
나는 의기양양하게 세째잔을 비웠다. 왠지 나 자신이 무척 자랐고 큰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아버지의 친구가 되다니! 저렇게 현명하고도 그렇게 아름답게 이야기할 수 있는 아버지의...
"아 아버지, 너는 아니 참 당신은 아십니까 - 나는 이제부터는 존대하여야겠습니다 - 어머니가 시인에게 술이 얼마나 필요한가를 아시기만 한다면!"
"그래!"
아버지가 말했다.
어머니는 옆에서 감긴 듯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어머니가 놀라고 있는지, 웃고 있는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건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다. 정말 상관이 없었다.
달은 아주 밝았고 살구는 향그러웠으며, 나는 술상 앞에 앉아 아버지의 친구가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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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호장룡 - 아웃케이스 없음
이안 감독, 양자경 외 출연 / 소니픽쳐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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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오늘 주말의 명화로 <와호장룡>이 방영된단다.

여름에 대나무 숲을 본다면 정말 시원할 것 같다.

와호장룡은 내가 극장에 가서 혼자 본 영화 중 하나이다.

한번 보고 기대 이상이라 너무 놀라서

자막에 연연 안하고 느긋하게 한번 더 보고 싶어서

살짝 눈치 보고 그대로 눌러 앉아 한번 더 봤다.

평일이기 때문에 가능했는지, 당시 흥행중이 아니어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게는 아주 특별한 영화였다.

국외에서 화제가 되었다던 관련소식을 모조리 제치고

나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왕도로 원작의...>이라고 쓰여진

팜플렛 문구였다. 설마 싶었지만 그제서야 팜플렛을 찬찬히

읽어보았다. 그리고 내가 읽은 무협지가 원작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봐 주어야만 했던 것이다.

무협지에는 옥교룡, 나소호, 유수련, 이무백, 유태보, 철패륵 등으로

등장인물 이름을 그대로 써서 몰랐는데 시놉을 읽어보니

'리무바이'가 '이무백'인 것이었다.

대단히 섬세한 고증의상이나 세트들...

그럼에도 무협다운 판타지가 고스란히 살아있는 액션씬.

물이 흐르듯 자연스러운 배우들의 연기

사막과 무당산의 풍경

스토리라인을 따라가며 그대로 담긴 웅대한 스케일

반하고 반했다.

특히 사막씬에서는 완전 뿅~가고 말았다.

특히 나는 줄거리를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에

캐릭터에 몰입하기 쉬웠는데, 

단언하건데 100년, 200년이 지나서

리메이크 된다고 하여도 지금같은 완벽한 캐스팅은 없을 것이다.

유수련 역의 양자경과 이무백 역의 주윤발에서는 감탄...

사실 장쯔이의 옥교룡에서 많이 실망을 했었다.

김은수가 <토지>에 열광하다가 '서희'역에 기대를 하는 것처럼

왕도려 원작의 <청강만리>에서는 

이 '옥교룡'의 미모가 대단하다고 나온다. 

음악을 연주하다 멈추고, 

사람들이 얼굴 한번 구경하러 따라 다니고,

옥교룡이 첫 등장하는 장면에서 무려 2페이지 걸쳐서

모습을 묘사할 정도로 작가가 애정을 가지고 있는 캐릭터였던 것.

나소호가 옥대인의 집에 숨어들어가 옥교룡을 처음 만나서

부탁한 것도 제발 불을 켜서 얼굴을 보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옥교룡의 특징으로는 키가 크다고 묘사되는데

그런데 쨘~ 하고 등장한 것이 자그마할 뿐더러 

별 감흥을 느끼기 어려운 장쯔이.

하지만 장쯔이의 매력을 후반부에서 빛났다.

설마 그 액션을 전부 소화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눈을 똑바로 뜨고 장첸을 바라보며

"날 보내지 마"

라고 말한 옥교룡은 정말 무협사상 가장 개성강한 캐릭터다.

또 조용히 양자경의 손을 잡고 자신의 뺨에 갖다 댄 주윤발은...

엉엉엉...미중년을 사랑할 수 밖에 없게 만든다...


이 멋진 영화를 혼자 본 이유는 나의 취향 때문인데

난 중국 영화와 무협지를 즐겨보는데 편견없이 중국 영화를 

같이 보러 가줄 사람이 주위에 없었다.

내 주위에는 중국영화라면 유치하다 혹은  그럼 그렇지 라는

표정을 미리 지어버리는 사람들 뿐이라 같이 보러 가기 싫었다.

나는 그래서 중국 영화라면 혼자서 보러 극장에 잘 간다.


오늘 와호장룡을 하면 또 봐야지...

주말의 명화를 하는 시간에 비가 좀 내렸으면 좋겠다.

마지막 장면 즈음해서 리무바이가 죽을 때 비가 내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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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조협려 세트 - 전8권
김용 지음, 이덕옥 옮김 / 김영사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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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세상 사람에게 묻노니, 
정이란 무엇이길래, 
생사를 같이 하게 한단말인가?
(問世間 情是何物 直敎生死相許)'

금나라 사람 원호문(元好問:1190~1257)의 명작 '매피당(邁陂塘)'의 가사. 
'매피당'은 일명 '매피당(買陂塘)' 또는 '모어아(摸魚兒)', 
'모어자(摸魚子)', '쌍거원(雙渠怨)'이라고도 하는데 
당나라 때의 교방곡(敎坊曲)에 속한다. 
원호문의 이 가사는 금나라 황제 장종(章宗) 태화(泰和) 5년인 
1205년에 쓰여진 것이다. 

당시 그는 병주(幷州)로 과거를 보러 가는 중이었는데, 
길에서 우연히 기러기를 잡는 사람을 만났다. 
그 사람이 원호문에게 말하길,

"내가 기러기 한 쌍을 잡았는데 한 마리는 죽었고 
한 마리는 그물을 피해 요행히 도망을 쳐 살았습니다. 
그런데 살아남은 기러기는 도무지 멀리 도망가지 않고 
배회하며 슬피 울다가 땅에 머리를 찧고 자살해 버렸답니다."

라는 이야기를 들려 준다. 

원호문은 이 이야기에 감동되어 
죽은 한 쌍의 기러기를 사서 분수(汾水) 물가에 묻어 준다. 
돌을 쌓아 표시를 하고는 그 곳을 기러기의 무덤이란 뜻으로 
'안구(雁丘)'라 칭했다. 그리고는 바로 이 '매파당' 중의 
'안구사(雁丘詞)'를 지었다. 

김용의 <신조협려> 에서는 이 가사의 전반부만 인용하고 있는데, 
언제 읽어도 가슴을 저미는 슬픈 사랑 이야기가 느껴지는 듯 하다.
무협소설 중에서도 <신조협려>는 아주 슬픈 사랑 이야기가 중요한
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협 마니아 중에서도 
의외로 남자들에게 특히 최고로 꼽히는 작품이다.   

안구사

세상 사람에게 묻노니,
정이란 무엇이길래
생사를 같이 하게 한단 말인가?
하늘과 땅을 가로지르는 저 새야,
지친 날개 위로
추위와 더위를 몇 번이나 겪었던고.

만남의 기쁨과 
이별의 고통 속에
헤매는 어리석은 여인이 있었네.

님께서 말이나 하련만,
아득한 만리에
구름만 첩첩이 보이고......

해가 지고
온 산에 눈 내리면
외로운 그림자 누굴 찾아 날아갈꼬.

분수(汾水)의 물가를 가로 날아도
그때 피리와 북소리 적막하고
초나라엔 거친 연기 의구하네.

초혼가를 불러도 탄식을 금하지 못하겠고
산귀신도
비바람 속에 몰래 흐느끼는구나.

하늘도 질투하는지
더불어 믿지 못할 것을......
꾀꼬리와 제비도 황토에 묻혔네.

천추만고에
어느 시인을 기다려 머물렀다가
취하도록 술 마시고 미친 노래 부르며
기러기 무덤이나 찾아올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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