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리불이 열반한지 일주일 뒤에 사리불의 어머니와 마을 사람들은 그의 유해를 다비하였다. 쿤티 사미는 사리불의 유골을 가지고 베르바나(죽림정사)로 돌아왔다. 그리고 아난에게 가서 사리불이 열반에 든 모든 과정들을 이야기하였다. 쿤티 사미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난은 정신없이 눈물을 흘렸다.


비구들아, 너희는 내 아들의 이 고귀한 주검을 보아라.
이윽고 쿤티 사미가 이야기를 마치자 아난은 눈물 젖은 얼굴로 부처님께 가서 사리불의 열반을 이야기 하였다. 부처님은 아난이 지나치게 슬퍼하는 것을 알고는 물었다.

“아난, 너는 무엇을 그렇게 걱정하고 있느냐? 사리불은 나의 가르침을 따라 생사를 초월한 최상의 경지에 들어 열반한 것이다. 그러니 슬퍼하지 말라.”

그러나 부처님의 말씀이 끝난 후에도 아난의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다시 물어보셨다.
“사리불은 내가 설한 모든 가르침과 진리를 체득하고 아무것도 뒤에 남김이 없이 열반에 들었는가?”
부처님의 물음에 아난은 간신히 흐느낌을 멈추고 대답하였다.

“아니옵니다. 존자 사리불은 계율을 잘 지키고, 그 지혜는 헤아릴 수 없으며, 능히 많은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능히 소욕지족한 분으로 실로 훌륭히 정진하고, 정견하고, 부처님의 말씀을 잘 가르치고, 또 갈 길을 비추고, 환희하고 찬탄하여 중생을 위하여 설법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난은 다시 눈물이 쏟아져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였다. 그러자 부처님은 묵묵히 아난의 말을 기다리셨다. 잠시 후, 아난은 슬픔에 겨운 목소리로 다시 대답하였다.

“그러나 그 사리불은 지금 가고 없습니다. 저는 법을 위하여, 또 법을 받을 사람들을 생각하여 근심하고 있사옵니다.”

부처님은 아난을 위해 모든 것은 무상한 것이며 사리불이 없더라도 사리불이 지키고 가르친 법(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님을 설해 주셨다. 그리고 쿤티 사미가 가지고 온 사리불의 유골을 오른 손에 들고 비구들을 향해 말씀하셨다.

“비구들아, 이 유골은 수일 전까지 중생을 위하여 법을 설하고 가르침을 베푼, 지혜가 가장 뛰어난 사리불의 유골이다. 그는 조금도 모자람이 없이 여래와 같이 법을 설하여 펴고 너희 무리를 이끌었다. 그의 지혜는 광대무변하여 여래 이외에는 겨눌 자가 없었다. 그는 실로 깊이 법을 깨닫고 탐욕을 끊고 취하지도 않으며 오직 법을 위하여 정진하는 것으로 만족할 줄 알았다. 또한 그는 적정을 즐겼으며 이를 위하여 훌륭히 정진하였다.
그는 법을 구함에 용맹하였고 결코 게으르지 않았다. 그는 싸움을 기뻐하지 않았고 능히 악을 피하고 항상 선정을 닦아 해탈을 얻었다. 그가 있는 곳에는 항상 복이 충만하고 능히 외도의 그릇됨을 제거하고 정법을 가르쳤다. 비구들아, 너희는 내 아들의 이 고귀한 주검을 보아라.”

그러자 그 자리에 있던 모든 대중들이 사리불의 유골에 절을 하였다. 사리불의 유골을 전해 받은 부처님께서 성인(聖人)을 장사지내는 법을 알려주셨고 이에 수닷타 장자는 탑을 세워 사리불의 유골을 간직했다. 그로부터 200년 후, 인도를 최초로 통일한 아쇼카 대왕은 기원정사에 들러 사리불의 탑에 공양하고 10만금을 희사하였다.


다음 생의 모델, 사리불과 나와의 인연
10대 제자 이야기를 쓰겠다고 결심을 하게 된 계기는 바로 엄마와의 대화였다. 무남독녀 외동딸로 자란 엄마는 결혼 후, 누구도 강요한 사람이 없는데도 아들 낳기를 소망했다. 그런데 딸을 연달아 셋을 낳았다. 그리고 9년 만에 드디어 막내 겸 장남으로 아들을 낳자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기뻐했다. 하지만 아들을 낳았다고 해서,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기쁘다고 해서 세상살이와 살림살이가 단박에 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아들을 낳았다고 엄마를 칭찬해주는 사람도 없었고, 자식 넷을 키우기에도 분주했을 뿐 아니라 아빠는 장남이었기 때문에 온갖 집안일들로 하루 24시간이 모자랐다. 그래서 엄마는 늘 자기 자신이 없었다. 그것이 너무도 당연한 것처럼 수 십 년을 살았다. 글을 쓰느라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엄마를 가만히 ‘관찰’하던 어느 날, 나는 여전히 집안일을 하느라 바쁜 엄마를 향해 나도 모르게 충동적으로 말했다.

“엄마, 내가 만약 다시 태어나면 엄마의 남편으로 태어날게. 그래서 엄마가 바라는 거, 듣고 싶은 말, 정말 원하는 거 다 해줄게. 그리고 충분히 칭찬도 해주고 늘 표현해줄게. 맛있으면 맛있다, 예쁠 땐 예쁘다, 잘했을 땐 잘했다, 사랑스러울 땐 사랑한다! 이렇게!”

마음과 표현이 늘 어긋나는 아빠를 보면서 느꼈던 감정들이 봇물처럼 터져 나온 것이었다. 엄마는 나의 말을 듣고는 가만히 웃기만 했다. 그리고 또 많은 시간이 흘렀다. 엄마와 함께 불교 공부를 하러 다니면서 나는 예전에 엄마에게 했던 말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엄마의 남편으로 태어나겠다고 약속하긴 했지만 난 남자로 태어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 날 문득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엄마는 다시 태어나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

묻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내가 엄마에게 그런 질문을 한 적이 처음이었다는 것을.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는 사실 엄마가 우리를 키우면서 수십, 수 백 번도 더 했던 질문이었다. 묻고 나서 나 스스로도 놀라고 있을 때, 엄마는 더 놀라운 대답을 했다.

“엄마는 다시 태어나면 큰 스님이 되고 싶어. 좋은 집안에서 꼭 장남으로 태어나서 머리도 좋고, 목소리도 좋고, 잘 생기고, 키도 크고 모든 조건이 훌륭한 그런 남자로, 장남으로 태어나서 공부도 실컷 많이 해보고 젊지만 저만하면 참 훌륭하다 하는 소리를 듣는 그런 남자일 때 출가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부처님 말씀을 전하고 또 실천해서 큰 스님이 되고 싶어.”

엄마의 장래희망 아니 내생의 희망을 듣는 것은 매우 묘한 기분이었다. 동시에 안심했다. 엄마가 남자로 태어나길 희망하니 내가 남자로 태어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그래서 기분 좋게 다시 약속했다.

“여자로 태어날 생각은 없어?”

엄마는 단호한 얼굴로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결혼할 생각도 없고?”

엄마는 당연하다는 듯 머리를 가로로 크게 저었다. 두 번이나 확실하게 확인을 하고 나자 마음이 놓였다. 나는 신이 나서 말했다.

“정말이지? 그럼 내가 다음 생에는 꼭 엄마의 엄마로 태어날게. 그래서 아주 공들여서 태교도 하고, 정성껏 길러줄게. 이번에 엄마의 딸로 태어나서 자라본 경험이 있으니 그건 잘할 자신이 있어. 그러니까 꼭 내 아들로, 장남으로 태어나. 약속하자.”

“그래 약속하자!”

엄마는 웃는 얼굴로 눈물을 글썽이며 소리 높여 대답했다. 나는 그 후로 과연 다음 생에 엄마와 다시 만날 땐 어떤 모자(母子)가 되어야 할지 항상 고민했다. 그러던 중 경전 공부를 하면서 십대제자와 만나게 되었고, 사리불의 이야기를 읽었을 때 무릎을 쳤다. 바로 내가, 나와 엄마가 다음 생에 되고 싶은 모델이 2500여 년 전에 이미 있었던 것이다.

오늘도 엄마와 나는 다음 생에 사리와 사리불과 같은 모자(母子)가 되기 위해서 노력한다. 바라는 것이 있기에 더욱 기쁘고 행복하게, 다시 태어나기 위해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게 된다. 바르고 건강한 욕심이라고 생각한다. 엄마와 나의 작은 욕심이 인연이 되어 경전 속 꽃미남들을 발굴하겠다는 서원을 세웠고, 꽃미남 10대제자를 알게 되면서 언젠가 글로 쓰겠다는 보다 구체적인 서원을 세웠고, 마침내 미디어 조계사에 연재를 하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경전 속 꽃미남, 10대 제자 이야기의 첫 주인공은 사리불이 되었다. 다음 편에는 사리불의 평생지기 친구이며 부처님께 함께 귀의했으며 교단 최초로 외도들의 손에 목숨을 잃은 순교자 목건련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글 : 조민기(작가) gora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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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이별의 말을 마친 사리불은 쿤티 사미 한 명을 데리고 어머니가 살고 있는 고향을 향해 떠났다. 그동안 사리불을 사모하며 존경해온 비구들이 뒤를 따르려 했지만 사리불은 정진에 방해가 되는 그런 미련을 기뻐하지 않았다. 결국 남은 사람들은 죽림정사 입구에서 사리불과 쿤티 사미가 떠나는 모습을 오래도록 지켜보는 것으로 이승에서의 마지막 이별의 아쉬움을 달랬다.


귀향 그리고 어머니와 아들
베르바나(죽림정사)에서 나온 사리불은 쿤티 사미 한 명만을 데리고 고향으로 향했다. 수도 라자가하(왕사성) 근처에 있는 그의 고향에는 100살이 다 되어가는 어머니가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는 어머니를 떠올리며 늙고 지친 다리를 움직였다. 마침내 고향 마을 근처에 도착한 사리불은 잠시 쉬기 위해 나무 아래 앉았다. 쿤티 사미는 묵묵히 사리불의 곁을 지켰다.
그 때 그곳을 지나가던 한 젊은이가 사리불을 보고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사리불의 고향은 그의 아버지가 다스리는 마을이었고, 사리불이 외삼촌을 비롯하여 그의 동생들과 함께 부처님께 귀의한 것은 너무나 유명한 일이었기 때문에 고향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마침 그에게 인사를 건넨 젊은이는 바로 사리불의 친조카인 우파알리푸타였다.
사리불은 조카를 불러 자신의 어머니가 집에 계신지, 건강하신지 물어본 뒤 먼저 가서 자신이 태어난 방을 치워 놓아 달라는 말을 전해줄 것을 부탁했다. 우파알리푸타는 존경하며 우러러보던 백부가 고향에 돌아온 것이 기뻐 얼른 집으로 뛰어갔다. 하지만 그는 사리불이 왜 고향에 돌아왔는지는 알지 못했다. 한편 100살이 다 되어가는 사리불의 어머니는 우파알리푸타의 말을 듣고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손수 아들의 방에 들어가 청소를 하였다. 그러자 집안사람들이 모두 나서서 서로 도와 어느덧 방은 금세 깨끗하게 정리 되었다.
해가 질 무렵 마침내 사리불이 집 안에 들어왔다. 태어나서부터 줄곧 너무나 총명하고 출중하여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장남이 출가를 하겠다고 했을 때, 사리불의 어머니는 눈앞이 캄캄했지만 그 후에도 줄곧 사리불이 태어나고 자란 방을 비워두고 있었다. 어머니의 눈에 사리불은 깨달음을 얻은 아라한이기에 앞서 손수 낳아 기른 아들이었다.

“어머니”

자신을 부르는 아들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사리불의 어머니는 목이 메었다.

“잘 돌아왔다. 아들아”

간신히 아들의 이름을 부른 사리불의 어머니는 그를 곧 방으로 안내했다. 사리불이 태어났던 바로 그 방이었다.

어머니, 저는 조용히 열반에 들기 위하여 돌아왔습니다.
사리불은 발을 씻고 방으로 들어갔다. 방에 들어간 순간, 긴장이 풀리면서 기침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쇄약해진 사리불의 모습을 보며 사람들은 깜짝 놀랐지만 쿤티 사미는 침착하게 사리불을 간호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100살이 다 된 늙은 어머니 역시 놀라움에 앞서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일흔을 바라보는 늙은 아들의 등을 두드리며 어루만져 주었다.

“아들아, 괴롭지 않느냐?”

“이제 괜찮습니다. 이것은 육신의 괴로움일 뿐 저에게는 괴로운 것도 두려운 것도 없습니다. 저의 스승은 부처님이십니다. 그분의 가르침을 받은 저는 생사의 고해에서 해탈하고 있답니다.”

사리불은 한결 편안한 얼굴로 대답했다. 사리불의 어머니는 조용히 아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사리불은 계속하여 말했다.

“부처님의 모든 높은 제자는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기 전에 열반에 들게 되어 있답니다. 지금이 바로 그 때입니다. 어머니, 저는 열반에 들기 위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아무런 걱정도 마십시오. 인간은 누구나 죽습니다. 모든 괴로움에서 해탈하여 열반에 드는 자만큼 행복한 사람은 없답니다.”

바라문 중에서도 뛰어난 논사였던 아버지 밑에서 자랐고, 또 그 아버지를 이길 만큼 뛰어난 학식과 언변을 지닌 남편과 결혼하였으며, 또한 하나같이 뛰어난 여덟 명의 아들을 낳아서 키운 사리불의 어머니는 매우 총명한 여자였다. 또한 나이가 들어서도 그 총명함이 조금도 시들지 않았다. 그녀는 곧 아들의 말을 이해하였다. 그리고는 슬픔을 억누르며 맑은 얼굴과 담담한 목소리로 아들에게 말했다.

“참으로 너의 말과 같다. 미혹함이 없이 열반에 들 수 있는 자는 행복한 사람이니라. 이 어미는 네가 적정 속에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감사합니다. 어머니.”

말을 마친 사리불의 어머니는 방에서 나왔다. 홀로 남은 사리불은 마음으로부터 어머니에게 감사함을 느꼈다. 그러나 사리불의 어머니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자마자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아들의 말처럼 한때 새처럼 푸르고 아름답다 칭송받았던 그녀의 눈은 여전히 아름다움이 남아있긴 하지만 세월의 흐름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모든 것은 무상했다. 그것을 알면서도 주름진 그녀의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그것은 깨달음조차 어찌할 수 없는 어머니의 마음이었다.


고향에서의 마지막 설법과 열반
사리불의 고향은 사리불의 아버지가 다스리는 곳이었고, 사리불이 출가한 이후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부처님께 귀의하였다. 그들은 사리불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에게 설법을 듣고 싶어 하였다. 하지만 사리불의 건강을 염려한 쿤티 사미는 사리불에게 사람들이 설법을 기다린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은 채 사리불이 기척을 내기를 기다렸다.

뒤늦게 사리불이 고향에 돌아와 열반에 들 것이라는 소식을 들은 아사세삿투왕 또한 찾아와 사리불의 마지막 설법을 듣고자 하였다. 밤이 늦도록 기다렸지만 사리불의 방에서는 아무 기척이 없자 사람들은 하나 둘 사리불과의 만남을 단념하였다.
새벽 무렵, 사리불이 쿤티 사미를 불렀다.

“누가 온 것 같구나.”

그러자 쿤티 사미는 아사세삿투왕을 비롯하여 촌장과 마을 사람들이 설법을 해주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말을 전했다. 그러자 사리불은 그들의 청을 수락하며 자신의 방으로 모셔오라고 말했다. 쿤티 사미는 사리불의 뜻이 진정인지 거듭 물어본 뒤 사람들에게 가서 사리불의 뜻을 전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기뻐하며 조용히 사리불이 태어난, 이제 곧 사리불이 열반하게 될 방으로 갔다.
사람들이 오자 사리불은 단정하게 앉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야기 한 뒤 자신이 곧 열반을 할 것이며, 열반은 안정된 적정(寂靜)의 세계임을 알려 주었다. 그리고 열반의 깨우침을 가르쳐주신 것 또한 부처님의 덕임을 말한 뒤 설법을 마쳤다. 열반을 앞두고도 진정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펴는 사리불을 보며 사람들은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숭고하고도 신성한 감격에 쌓은 채 사리불에게 절을 하고 방에서 나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사람들이 모두 돌아간 후, 사리불은 잠시 괴로움을 겪었다. 그러나 잠시 후, 오른쪽으로 누운 채 선정에 들어가자마자 곧 열반에 들었다. 쿤티 사미는 사리불의 열반을 확인한 후 사리불의 어머니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녀는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는 한편 성자의 아름답고도 숭고한 죽음에 감동하였다. 그리고 머지않아 자신에게 다가올 죽음을 기쁘게 맞이할 가르침을 얻었다.  
 
 
 
글 : 조민기(작가) gora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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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흘러 사리불도 어느 덧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그동안 아들처럼 각별하게 사랑했던 라훌라도 세상을 떠났고, 평생을 함께했던 친구 목건련도 세상을 떠났다. 사리불은 이미 세속의 감정을 떠난 아라한이었지만 이 두 사람의 죽음은 그에게 큰 슬픔을 안겨 주었다. 그리고 이제 여든이 된 부처님께서는 스스로를 ‘낡은 수레를 임시방편으로 수리하여 사용하는 것이나 다름없음’이라 말씀하시며 깨달음 이후 45번째의 여름 안거를 마치시자 열반을 준비하셨다. 사리불은 상수 제자로써 스승 부처님의 열반에 앞서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기 위해 홀로 깊은 선정에 들었다.


부처님에 앞서 열반할 것을 청하다
좌선을 한 채 깊은 선정에 들었던 사리불은 참선을 마친 뒤 예로부터 모든 부처님의 상수(上首) 제자들은 스승에 앞서 열반에 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머지않아 열반에 들 스승을 떠올리며 자신이 먼저 열반에 들 것을 결심했다. 결심을 마친 사리불은 부처님께 가서 무릎을 꿇고 말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제 열반에 들겠사오니, 부디 제 청을 거두어 주시기 바랍니다.”

사리불의 마음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부처님은 입을 열어 깨달음 이후 44년이라는 오랜 시간을 함께하며 함께 늙은, 맏아들처럼 아꼈던 사리불에게 물었다. 육신의 덧없음을 잘 알면서도 열반에 들 것을 청하는 듬직한 제자의 청을 받아들이는 것은 너무나 쓸쓸했다.

“어찌하여 그렇게 열반을 서두르는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스승의 물음에 사리불은 진심을 다해 대답했다.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께서 가까운 장래에 열반에 드실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세존께서 열반에 드시는 것을 지켜볼 수 없습니다. 또한 세존께서 누차 말씀하셨듯이 과거의 부처님의 높은 제자는 반드시 부처님 앞에서 열반에 들었습니다. 부처님의 상수(上首) 제자인 저는 이제 열반에 들어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결심을 부디 거두어 주십시오.”

사리불이 말을 마치자 부처님은 그의 주름진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참으로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운 그리고 믿음직스러운 제자였다. 그의 결심이 확고하다는 것을 아신 부처님은 다시 사리불에게 물어보셨다. 아까와는 다른, 사리불의 청을 받아들이겠다는 뜻이 담긴 질문이었다.

“그대는 능히 열반의 때를 알고 있구나. 어느 곳에서 열반에 들겠는가?”

그러자 사리불이 대답했다.

“고향에 아직 어머니가 살아 계십니다. 고향에 돌아가 어머니를 뵈옵고 제가 태어난 그 방에서 열반에 들겠습니다.”

출중한 바라문 출신답게 사리불은 고향의 자랑이었으며, 그의 집에는 그가 태어난 방이 출가하긴 했으나 언젠가 귀향할 그를 위해 비워진 상태로 있었다. 그것은 그의 어머니의 뜻이기도 했다. 사리불은 그런 어머니의 뜻을 알았기에 열반할 곳으로 자신의 집, 자신이 태어난 방을 선택한 것이었다.


베르바나(죽림정사)에서의 마지막 설법
사리불이 열반에 들을 자리가 평온함을 아신 부처님은 더 이상 그를 말리지 않았다. 다만 그에게 마지막 설법을 할 것을 청하셨다.

“기특하구나. 사리불이여, 그대는 나의 제자 가운데 가장 뛰어난 제자였다. 열반에 들기 전 승가의 비구들에게 마지막 설법을 하여라.”

부처님의 마음을 알아차린 아난은 산중의 모든 비구들을 모이게 하였다. 비구들은 사리불의 마지막 설법을 듣기 위해 한 자리에 모였다. 비구들이 모두 모이자 사리불은 단정한 모습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을 향해 경건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오래 전부터 어떻게 하면 부처님을 만날 수 있어 그와 함께 살 수 있는가 생각하여 왔습니다. 이제 저의 염원이 이루어져 이승에서 부처님을 만나게 된 것은 이 위에 더 없는 기쁨이옵니다. 그리고 저와 같이 어리석은 자도 부처님의 여러 가지 가르침을 받고 깨달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감사할 길이 없는 기쁨이옵니다.

지금 저에게는 이승을 떠나야 할 때가 다가왔습니다. 저는 멀지 않아 사바세계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재한 경지에 들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무거운 짐을 버린 사람과 같이 오체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될 것입니다. 하늘과 땅 위에서 가장 높으신 세존이시여, 이것이 세존에게 바치는 저의 마지막 인사이옵니다.”

사리불은 두 손을 모아 합장을 하고 처음 제자가 되기 위해 부처님을 찾아왔을 때 했던 예를 지켜 스승의 발아래 오체를 굽혀 절하였다. 사리불이 설법을 하고 부처님께 예를 표하는 내내 엄숙하고도 감동적인 침묵이 부처님과 사리불 그리고 비구들을 감쌌다. 절을 마친 사리불은 조용히 일어나 부처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뒷걸음으로 물러갔다. 부처님은 말없이 열반을 위해 떠나는 제자를 전송했다.
사리불이 떠난 뒤, 자신의 거처로 돌아와 선정에 들어간 부처님도 수 십 년간 교단을 지키며 자신과 함께 늙어간 제자를 그리워했다. 비록 깨달음을 얻었으나 부처님 또한 인간의 감정이 아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세속에서 얻은 아들이자 자신의 제자로 출가하여 아라한이 된 라훌라도 세상을 떠났고, 더할 나위 없는 신통력을 지녔으나 이를 자랑하지 않고 필요한 순간에만 사용하며 교단을 든든하게 지켜 주었단 목건련도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이제 사리불마저 곁에 없다는 생각에 부처님은 쓸쓸함을 느꼈다.


슬프지만 아름다운 이별
비구들은 사리불을 따라 움직이며 향을 피우거나 꽃을 들어 그를 전송했다. 슬프지만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그 중에는 슬픔을 참지 못해 소리 죽여 흐느끼며 눈물을 흘리는 자들도 있었다. 조용하지만 장엄한 그 행렬은 베르바나(죽림정사) 입구까지 계속되었다. 하지만 사리불은 베르바나(죽림정사)의 입구에 이루자 발을 멈추고 입을 열었다.

“쿤티 사미만 남고 모두 돌아가 주십시오. 돌아가 수행에 정진하여 고뇌의 경지를 벗어나도록 힘쓰시오. 부처님께서 이승에 오시는 일은 참으로 귀한 일입니다. 또한 사람으로 태어나 믿음을 얻고 출가하여 여래의 법을 들을 수 있는 것은 부처님의 출현보다 더 얻기 어려운 일입니다. 이 귀한 기회를 얻은 여러분께서 부디 한층 더 정진할 것을 저는 떠나면서 다시 부탁합니다.”

사리불이 말을 마치자 비구들은 새삼 이것이 사리불과의 마지막 만남이라는 것을 느꼈다. 40년이 넘는 기나긴 시간동안 언제나 함께하며 지혜롭게 온갖 위기를 극복하며 교단을 이끌어주던 사리불을 더 이상 볼 수 없다고 생각하자 참을 수 없는 슬픔이 찾아왔다. 한 비구가 입을 열었다.

“사리불 존자, 당신은 어찌하여 그렇게 빨리, 굳이 서둘러 열반에 들고자 합니까?”

사리불은 자신의 열반에 슬픔과 쓸쓸함을 느끼는 그들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열반을 위해 떠나기 전, 그는 눈물로 자신을 배웅하는 교단의 형제들을 다정하게 위로하며 말했다.

“형제들이여, 마음 아파하지 마십시오. 제행은 무상합니다. 수미산도 언젠가 먼 훗날에는 깎이고 허물어질 것입니다. 수미산에 비하면 한 알의 겨자씨보다 보잘 것 없는 사리불의 육체가 없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또한 열반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영원히 돌아가고 싶은 적정의 세계입니다.” 
 
글 : 조민기(작가) gora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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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대제자 중에 가장 먼저 부처님께 귀의했으며, 또 아라한이 된 사리불은 부처님의 가르침 뿐 아니라 당시의 일반 철학이며 종교에 대해서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꿰뚫고 있었다. 학문적 지식과 깨달음을 통한 경험, 그리고 실천에 있어서 압도적인 실력을 지닌 그는 이를 바탕으로 바라문 출신의 승려나 수행자를 비롯하여 외도들과 대론을 펼쳐 ‘한 이론 혹은 한 철학’하는 많은 사람들을 불교로 귀의시켰다.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데바닷다
부처님의 인가를 받은 후, 많은 비구들과 재가자들은 사리불에게 가르침을 청하곤 했다. 그래서 그의 처소에서는 법문을 청하는 비구와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으며 설법이 끝난 후에는 대개 만족스러운 마음을 가졌다. 또한 그는 자신의 실력이 미천함을 염려하여 감히 부처님께 질문을 하거나 가르침을 청하지 못하는 다른 비구들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았다. 그래서 그는 수행 중에 의문이 나는 일이 있거나 부처님의 말씀이 필요한 순간에 비구들을 대표하여 가르침을 청하곤 했다. 법화경을 비롯하여 수많은 경전에서 부처님이 사리불을 중심으로 설법을 펼치시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이다.

그만큼 그는 인품과 지혜를 겸비한 출중한 인물이었다. 증일아함(增一阿含) 「제자품(弟子品)」에서는 그런 그를 일컬어 '지혜가 무궁하여 모든 의심을 절대적으로 이해하는 비구는 사리불이다'라고 했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듯 부처님에게는 사리불을 포함하여 훌륭한 제자들도 많이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제자도 있었다. 그 중에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데바닷다(Devadatta)이다. 그는 세속에서는 부처님과 사촌지간이며 10대 제자 중 한 명인 아난의 친형이기도 하다. 이처럼 데바닷다는 누구보다 좋은 환경과 조건을 갖추고 있었으나 항상 부처님을 경계하고 또 경쟁상대로 생각하며 질투를 하였다.

그런 데바닷다의 성품을 잘 알고 계시던 부처님은 그가 출가하여 사문이 되기를 청하였을 때 거절하며 재가자가 될 것을 권했다. 하지만 이를 괘씸하게 생각한 데바닷다는 부처님이 자신을 시기한다고 생각했다. 스스로 머리를 깎고 석가모니의 제자라고 자처하고 다니며 신통에 밝은 ‘수라타’라는 비구의 제자가 되어 신통력을 얻었다.


사리불은 나의 장자(長子)이다
신통의 도를 얻은 데바닷다는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였으므로 얼마 지나지 않아 큰 명성을 누리게 되었다. 그러자 아직 성숙한 단계에 이르지 못한 500여명의 비구들이 사문을 떠나 데바닷다에게로 갔다. 이에 부처님은 사리불과 목건련을 보내 데바닷다에게 미혹된 비구들을 데려오라고 말했다. 이는 사리불과 목건련이 그만큼 믿음직스럽기도 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속가의 친족이 출가 후 얻은 제자만도 못한 슬픈 경우이다.

데바닷다를 따라 갔던 500여명의 비구들은 부처님의 상수제자인 사리불과 목건련과 그들이 있는 곳으로 오자 두 사람이 부처님 곁을 떠나 데바닷다에게 귀의할 것이라고 지레 생각하여 데바닷다의 위엄을 의심하지 않았게 되었다. 이에 더욱 의기양양해진 데바닷다는 사리불과 목건련에게 설법을 청하고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사리불은 교단을 배신하고 떠난 비구들에게 어떤 강요나 꾸중도 하지 않고 데바닷다가 어떤 가르침을 주었는지 물었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준 후, 데바닷다의 가르침과 부처님의 가르침의 차이를 일목요연하고 논리적으로 설명했다.

사리불이 펼친 그 단 한 번의 설법은 눈앞에 신통에 미혹된 500여 비구들은 깨우침을 주기에 충분했다. 정법으로 비구들을 깨우친 사리불의 설법이 성공적으로 끝나자마자 목건련은 데바닷다보다 더 큰 신통을 발휘하여 500여 비구들을 단번에 부처님이 계신 곳으로 데려왔다. 이처럼 승가의 화합을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은 사리불을 기특하게 여기신 부처님은 그를 '나의 장자(長子)'라 불렀다.

실로 사리불은 부처님의 믿음직스러운 아들이자 교단의 지혜로운 맏형 노릇을 톡톡히 했다. 많은 비구들이 그에게 상담을 요청하고 가르침을 청할 때마다 그는 늘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려 만족스러운 답을 주곤 했다.


교단 최초의 사미 라훌라의 스승이 되다
사리불은 교단 내에서 모든 비구들의 맏형과 같은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실제로 부처님이 출가 전에 둔 친(親)아들 라훌라의 스승이 되기도 했다. 부처님이 자신의 나라인 카필라국에 간 것은 깨달음을 얻은 후 3년이 지난 후였다. 라훌라가 태어나던 출가를 하여 6~7년간의 고행 끝에 깨달음을 얻고 또 다시 3년이 흐른 후에 고국에 갔으니 거의 10년 만의 환향이었다.

부처님의 속가 아들인 라훌라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버지를 뵐 수 있었다. 그는 부처님이 카필라국에 머무는 것을 기뻐하며 아버지이자 부처님 곁에 항상 있기를 청했고, 부처님은 라훌라의 청을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라훌라는 목건련의 손에 이끌려 머리를 깎고 사리불을 계사(戒師)로 사미십계를 받고 출가하여 승가 최초의 사미가 되었다.

사리불은 어린 라훌라를 아들처럼 보살폈고 비슷한 시기에 라훌라 또래의 소년 한 명을 제자로 받아 어른들 밖에 없는 교단에서 두 사람이 서로 의지하며 좋은 도반이 되도록 배려해 주었다. 또한 사리불은 부처님이 설법을 하실 때 마다 꼭 라훌라를 데리고 갔고 참선을 할 때도 곁에 두었으며 법을 전하기 위해 다른 지방에 갈 때도 항상 라훌라와 함께했다.

한 번은 사리불과 라훌라가 함께 걸식을 하기 위해 거리로 나갔을 때 시비를 거는 부랑자들과 만난 적이 있었다. 그들은 사리불과 라훌라의 발우에 모래를 붓고 몽둥이로 두 사람을 때리며 ‘너희 수행자들은 하는 일도 없이 밥이나 빌어먹고 다니면서 자비니 인욕이니 하는데 이런 상황도 참을 수 있느냐?’고 빈정거렸다. 머리는 터져 피가 흘렀고 얼굴에는 멍이 들어 부어올랐지만 사리불은 표정이나 행동에 변화가 없었다. 반면 일단 참긴 했지만 라훌라는 아무 이유 없이 당한 폭력에 점점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는 결국 사리불에게 물었다.

“스승님, 저는 지금도 도저히 화를 참을 수가 없습니다. 스승님은 어떻게 하여 그렇게 금방 화를 가라앉히셨나요?”

그러자 사리불이 대답했다.

“라훌라야, 나는 화를 금방 가라앉힌 것이 아니라 화가 난 적이 없단다.”

사리불의 말에 라훌라는 화가 난 마음을 고요히 하고 스승의 뒤를 따랐다. 화가 난 적이 없다는 스승의 말을 곰곰이 생각하며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라훌라의 마음에는 분노가 사라지고 환희심이 차올랐다. 넘쳐흐르는 기쁨을 느끼며 라훌라가 말했다.

“스승님, 저는 오늘에야 비로소 인욕(忍辱)을 배웠습니다.”

사리불은 한 단계 성숙해진 라훌라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처럼 사리불은 입에 발린 이론이 아니라 라훌라의 눈높이에 맞춰 함께하는 경험을 통해 수행자가 지녀야 할 덕목을 가르쳐 준 스승이며 모범이었다.

또한 그는 부처님께 이날 있었던 일을 고했다. 이에 부처님은 라훌라를 불러 칭찬을 해주셨다. 이에 라훌라는 더욱 더 수행에 정진하고자 하는 결심을 굳혔다. 사리불과 부처님은 이런 라훌라의 성장을 흐뭇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라훌라와 같이 이제 막 발전하기 시작한 젊은 수행자에게 칭찬이 가져다주는 효과를 잘 알았던 사리불은 진정 좋은 스승이었다.
 

글 : 조민기(작가) gora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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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닷타 장자가 시타바나라고 하는 묘지에 이르렀을 무렵, 부처님께서는 여느 때처럼 일찍 일어나 산책을 하고 계시다가 그를 발견하였다. 수닷타의 마음을 읽은 부처님은 길 가에 자리를 깔고 앉아 그를 기다렸다. 그리고 수닷타가 다가오자 그가 그토록 보고 싶어 하던 부처가 바로 자신이라고 말해 주었다.

솟구치는 환희심을 감추지 못한 수닷타에 예배를 받은 부처님은 그에게 보시(普施)와 지계(持戒)의 공덕에 대해 설법을 해주셨다. 수닷타는 곧바로 부처님의 말씀을 이해하였을 뿐 아니라 크게 감동하여 부처님께 귀의하였고, 또한 교단과 함께 코살라국에 와서 법을 설해주실 것을 청했다.


부처님을 대신하여 코살라국을 가다
부처님은 수닷타 장자의 청을 받아들였다. 그러자 그는 매우 기뻐하며 부처님이 교단과 함께 코살라국에 오셨을 때 머무를 수 있는 정사(절)을 짓기 위해 서둘러 일을 마치고 돌아갔다. 코살라국으로 돌아가기 전, 수닷타는 돌아가서 교단이 머무를 정사를 지어야 하는데 자신은 모르는 것이 많으니 부처님께서 함께 가주실 것을 부탁했다.

부처님을 옹호하며 지지하는 빔비사라왕이 다스리는 마가다국과 달리 코살라국은 강대국이지만 어떤 국가인지, 어떤 외도들이 있는지, 어떤 분위기인지 알 수가 없었다. 독실한 불자(佛子)가 된 수닷타 장자 한 사람의 부탁만으로 교단이 움직이기에는 부담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진리의 가르침을 펼쳐달라는 요청을 받은 이상 가지 않을 수도 없었다.

부처님은 수닷타 장자에게 자신은 지금 교단을 떠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수닷타는 난처해하며 그렇다면 다른 제자라도 좋으니 자신과 함께 코살라국으로 가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이에 부처님은 사리불에게 그 일을 맡기셨다. 수닷타는 크게 만족해하며 사리불과 함께 코살라국으로 갔다. 과연 사리불은 부처님의 가장 믿음직한 제자였음이 분명하다.

코살라국에 도착한 수닷타 장자는 사리불에게 어떤 곳이 정사를 짓기에 가장 적합한지 물어본 끝에 수도 사왓티(사위성)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아름다운 숲을 찾았다. 하지만 그곳은 파세나디(波斯匿)왕의 아들인 기타태자의 땅이었다. 수닷타는 기타태자를 찾아가 부처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정사를 짓기 위해 태자의 숲을 사고자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태자는 자신은 숲을 팔 생각이 없다며 거절했다. 이에 수닷타는 돈을 얼마든지 주겠다며 거래를 제안했다. 기타태자는 자신에게 돈으로 거래를 제안하는 수닷타가 괘씸했다. 돈이라면 자신도 얼마든지 있었다. 확고한 수닷타의 얼굴에 부아가 치민 기타태자는 농담 삼아 수닷타에게 만약 숲을 황금으로 덮을 수 있다면 그 부분만을 팔겠다고 대답했다.

기타태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수닷타는 곧장 집으로 가서는 창고를 열고는 수레마다 황금을 가득 싣고 숲으로 돌아왔다. 생각지도 못한 반응에 당황한 태자는 그때서야 수닷타에게 자초지종을 자세히 묻고 부처님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금 자세히 들었다. 그리고는 황금이 덮이지 않은 땅을 비롯하여 정사를 짓는데 필요한 나무들을 자신이 보시하겠다고 말했다.

그리하여 기타 태자의 나무, 즉 기수(祈樹)와 급고독(給孤獨) 장자, 즉 수닷타 장자가 보시한 정사 기수급고독원(祈樹給孤獨園)의 공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수많은 경전에 등장하는 기수급고독원(祈樹給孤獨園)을 줄여서 기원정사(祇園精舍)라고 부른다. 부처님께 보시(普施)의 공덕에 대하여 배운 수닷타 장자는 그때부터 어려운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베풀며 도와주었기 때문에 아나타핀다카, 즉 가난하고 외로운 이들을 돕는 급고독(給孤獨)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교단이 머물 기원정사의 공사를 감독하다
이후 기원정사의 공사는 사리불의 감독 하에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사리불은 정사를 총 어느 정도 규모로 할 것인지를 비롯하여 계율과 교단의 관습 그리고 법도에 따라 어긋남이 없도록 다양한 사항들에 대하여 꼼꼼하게 지시하고 감독하였다. 또 비구들이 수행하는 장소를 어떻게 꾸며야 할지, 부처님께서 설법을 하실 곳은 어떤 크기로 어떻게 지어야 할지, 또 잠자리를 어떻게 지을 것인지 등 수많은 일들을 직접 결정하였다.

수닷타 장자는 사리불의 지시에 따라 수많은 일꾼들을 동원하여 1000명이 넘는 비구들이 생활할 승방(僧房)과 휴게실, 세면소와 목욕시설을 만들었다. 또한 기타태자가 보시한 나무들을 심어 산책을 하거나 참선을 할 숲을 꾸미고 연못을 파고 연꽃을 심어 아름답고도 편안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힘썼다. 이렇게 정성을 다해 완성된 기원정사에서 부처님은 평생 가장 오랜 시간을 머무셨을 뿐 아니라 가장 많은 법을 설하셨다.


코살라국 외도들의 도전에 응하다
하지만 사리불이 코살라국에 온 이유는 단지 기원정사의 공사를 감독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었다. 부처님께서 다른 누구도 아닌 사리불을 먼저 코살라국에 보낸 이유는 따로 있었다. 부처님은 자신이 코살라국에 방문했을 경우, 일어날 수 있는 갖가지 일들에 대하여 미리 알아보고 대처하기 위해 가장 믿음직스러운 제자 사리불을 보낸 것이었다.

과연 수닷타 장자가 부처님을 위해 기타태자의 숲을 사서 정사를 짓는다는 소문이 나자 코살라국의 바라문들은 충격에 휩싸였고 그 중 과격한 성품을 지닌 몇몇은 논쟁을 하기 위해 기원정사로 찾아왔다. 이에 사리불은 점잖은 태도와 논리 정연한 언변으로 이들을 상대했다. 지혜와 확신으로 충만한 채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외도들의 도발에 응하는 사리불의 모습에 어떤 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승복했고, 어떤 이는 침묵한 채 돌아갔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자신들의 명예가 실추되었음을 참지 못해 사리불을 위협하거나 실제로 해를 가하기도 했다.

사리불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았으며 두려움 없이 이들을 하나하나 상대했다. 그러자 일부 바라문들의 태도가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고, 코살라국 백성들 사이에서도 부처님의 명성이 서서히 높아졌다. 이처럼 지혜로움으로 무장한 채 외도들을 상대한 사리불의 활약은 부처님이 코살라국에 직접 방문하시기 전 ‘예고편’ 역할을 하기에 충분했다. 

 

글 : 조민기(작가) gora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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