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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추정 시각
사쿠 다쓰키 지음, 이수미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0년 9월
평점 :
절판
예전 언젠가... 고등학교 선배였던지 아니면 어떤 관계였었든 최소한 일면식정도는 뛰어넘었던 사이였었을, 제 앞에 앉아 함께 술잔을 기울였던 어느 변호사에게, '이거 정말 예전부터 궁금했던 건데요...'라며 질문을 한 적이 있었더랬습니다. '만일 당신의 의뢰인이 유죄라는 생각이 변론을 준비하는 과정에 자신에게마저 들게 되었다라거나, 더 심하게는 이 사람은 유죄인걸 처음부터 알았고 어찌해서든 형량을 낮춰만 달라는 것이 목적인 상황, 더 극단적으로 가선 당신의 의뢰인이 그야말로 비도덕의 화신격쯤 되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을 때엔... 어떤 심정으로 변호를 하게 되나요? 상황의 변화가 심경의 변화를 불러오고 그로인해 변호를 중단할 수도 있나요?' --- 안타깝게도... 이 질문을 했던 상대가 누구였던지조차 기억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저의 그 질문에 대한 변호사의 대답 또한 저의 기억 속엔 전혀 남아있지 않아요. --;; (혹시... 이 글 읽고 있는 당신이 변호사라면?)
히가시노 게이고의 「편지」는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 가족이 겪어야하는 고통에 대해 처음으로 생각해볼 수 있었던 새로움이었으며, 다카노 가즈아키의 「13계단」에서는 '私刑을 대신하는 제도로서의 死刑', 즉 사적 복수가 지니는 더 큰 위험성에 대해 배울 수 있었었고... 공지영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통해서는 사형제도 자체에 대한 정당성에의 의문을 가져도 보게 되었었지요.
이 책 「사망 추정시각」의 작가 '사쿠 다쓰키'는 작가의 필명으로서 그/그녀는 '일본 법조계에서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저명한 형사변호사'라는 정도로만 알려져 있다 합니다. 네... 이 책은 현직 변호사가 소설의 형식을 빌어 일본 사법체계에 대한 비판을, 그리고 핵심적으로는 역시.나 사형제도의 정당성에 대한 의문을 던져주는 책입니다. 문득, '내가 굳이 이렇게 사형제도에 관해 궁금해하거나, 찬반에 대한 명확한 나의 입장을 가지고 있어야하는 건 아니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해보았더랬습니다만...
자신 있게 사형 제도를 지지한 사람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적극적으로 반대할 마음도 없는 그저 침묵하는 다수 중 한 사람이었던 내가, 이 작품을 통해 사형이라는 제도가 우리 사회를 정화시키는 데 얼마만큼 도움을 줄지 고민하게 되었다. 사형은 국가의 힘을 빌려 피해자의 '복수심'을 충족시켜 주는 역할을 하는 제도에 불과할 뿐, 혹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은 아닐까? 폭력을 응징하기 위해 더 큰 폭력을 사용해야 한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혹시 우리는 묵인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 많은 사람들이 침묵하는 다수의 편에 서 있다. '사형','누명','거짓 자백'과 같은 단어가 보통 사람들에게는 아무 관계없는 말처럼 들릴지 몰라도, 어떠한 사안이든 명확한 입장을 밝히는 것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아름답게 바꾸는 일에 작은 힘이나마 보태는 방법이 되리라고 나는 믿는다.
- <옮긴이의 글> 중
책의 마지막에 있는 <옮긴이의 글>, 그 중에서도 또 거의 마지막 부분에 있는 위 인용한 글을 읽으며, 이 재미있고 진지한 책을 읽어야했던 이유를 저 스스로에게 확인시켜줄 수 있었습니다. 경제학을 오랫동안 배워서일까요? 아님 지금도 어쨌든 '장사'란 걸 하고 있어서일까요? 이떤 한 주제에 대한 여러 권의 책을 읽게되노라면 도대체 왜?의 이유를 종종 (거의 무의식적으로) 떠올려보곤 하게만 됩니다. 진화론? 기독교인으로서의 호기심 때문에, 역사? 현재의 모습이 어떤 이유로, 어떤 과정을 통해 현재와 같이 되어있는가를 알고 싶어서... 완 달리 사형제도? 글쎄... 뭐... 의 단계에 아직은 머물러 있던 저에게 이 책을 옮긴이는 그것이 어쩌면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아름답게 바꾸는 일에 작은 힘이나마 보태는 방법'이 될지도 모른다라 말해줍니다. '그래! 사형제도에 관한 책을 좀 더 읽어보는거야!' 가 되어버린 바로 그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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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부와 정치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와타나베 쓰네조. 그는 자신과 스무 살 차이가 나는(설마 연상일리야... ^^;;) 두번째 부인인 미키코와의 사이에서 난 딸 미카에게는 그 어떠한 것도 아끼지않으며 무한에 가까운 사랑을 보내는 자상한 아버지입니다만, 돈과 관련된 일에서만큼은 그야말로 피도 눈물도 없는 냉철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어느 날 그의 딸 미카가 유괴되었고, 유괴범은 현금 1억엔을 요구합니다. 쓰네조는 단 반나절만에 현금 (그것도 구권만으로!!!) 1억엔을 마련했고, 그 돈을 그저 유괴범을 유인하는 미끼로만 사용하려는 경찰의 의도와는 달리 실제로 그 돈을 범인에게 주고 딸 미카를 돌려받을 생각을 하지요. 경찰의 예상대로 범인은 접선 장소를 몇 번씩 바꿔가다 결정적 지점에서 돈을 받으려 했으나 경찰의 작전은 그 돈을 범인에게 건네어지는 것을 끝내 허용하지 않습니다. 결국 미카는 실종 이틀후, 사체로 발견되었고 미카의 아버지 쓰네조는 경찰의 잘못된 작전이 자신의 딸을 죽인 것이라 생각하게 되지요.
'사망 추정시각'이란 책의 제목은 바로 이 장면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즉, 미카의 사망시각이 돈을 건네려던 장면의 이전이었느냐, 아님 이후였느냐... 만약 그 이전에 미카가 이미 살해되어있었다라면 (범인에게 돈을 건네주지 않으려했던) 경찰의 작전은 미카 부모의 비난을 벗어날 수 있게 되지만, 만에 하나라도 범인이 돈을 건네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진짜 미카를 죽인 것이라면 '실제로 범인에게 1억 엔을 주려했었던' 쓰네조가 그 돈을 건네주지 못하게 했던 경찰을 뭐라 비난하던 그로부터 자유로와질 수 없게 되는거니깐요.
● 경찰 입장에서 볼 때 몸값 수수는 범인 체포를 위한 수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이렇게 말하면, 경찰은 당연히 부정하겠지만. 체포의 가능성이 전혀 없는 그때, 1억 엔을 투하하라는 지령을 내릴 경찰 간부는 아마 없을 것이다. 이건 경찰의 상식이라고 할 수 있다. …… 몸값이 목적인 유괴범의 체포율은 97.3퍼센트나 된다. 몸값 수수를 최대한 미루며 장소는 몇 번이나 지정하게 만드는 것은, 통화를 할 때마다 범인에 대한 정보를 늘림과 동시에 장소를 한 차례 지정할 때마다 경찰이 체포 기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 단 한 차례의 장소 지정으로 몸값을 투하한다는 것은 경찰 입장에서는 있을 수 없는 대응이다. …… 하지만 이 사건에서는 그런 경찰이 상식이 부정당했다.
● 도대체 왜 이런 짓을 한 건가! 나는 1억엔을 범인한테 줄 생각으로 내줬어. 그런데 누구 허락을 받고 도로 가지고 온 건가! 내 돈이고, 내 딸이야. 당신들은 내 딸의 목숨보다 체포가 더 중요한가! 경찰 성적이 더 중요하냔 말이야. 이제 미카를 어쩔 셈이야! - <경찰 본부장 모리타에게 퍼부은 와타나베 쓰네조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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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지않아 경찰은 고바야시 쇼지라는 단순 절도 전과 3범의 별 볼일 없는 백수 청년을 유력한 용의자로 체포합니다. 하지만 소설은 쇼지는 범인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다 보여주었었습니다. '산에 두릅나물을 캐러 갔던 쇼지는 산 속에 떨어져 있는 가방을 발견하게 되고, 그 가방 속에 있던 지갑에서 돈 몇천 엔을 꺼냅니다. 그리고나서 주위를 둘러보다 좀 떨어진 곳에 사람이 누워있는 것을 보았고, 다가가 살았나죽었나 보려고 다리를 만져보았고, 얼굴에 덮혀있던 옷을 들춰보니 그것이 사람의 시체였었고, 그 시체는 다름아닌, 얼마 전 자신이 아르바이트로 일하다 쫒겨난 골프장 사장인 쓰네조의 딸 미카라는 걸 알고는 겁에 질려 황급히 도망친 것'이 전부인... 이 상황이 결국 쇼지가 미카를 살해한 범인으로 재판정에 서게 되고 1심에서 사형판결을 받게되는 과정을 소설은 그리고 있습니다. (물론 이 과정에 '사망 추정시각'이 매우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지요.)
이 책의 저자가 현직 변호사, 그것도 형사전문 변호사라는 점은, 그러니까 작가가 전문적으로 소설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작가가 이 이야기를 소설의 형태로 써내긴 했으나, 아주 많은 부분에서 흡사 '실례로 공부하는 형사법 개론'을 떠오르게 만드는 듯한 내용들을 통해 금새 알 수 있게 됩니다. (이는 경제학 교수가 쓴 소설 「아담스미스 구하기」에서도 똑같이 보여졌던 것이기도 하지요)
● '접견금지'는 재판관의 결정이 필요한 사항이다. 고바야시 쇼지의 경우는 그로부터 3일 후 재판소에서 '구류질문'을 하게 되는데, 그때 재판소가 '구류결정'을 내리면 그 시점부터 접견금지가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이때는 아직 접견이 금지된 상태는 아니었다. …… 하지만 그런 걸 이 여자가 알 턱이 없었다. 면회를 할 수 없다고 하면 더 이상 어쩔 수 없는 것이다. - <쇼지를 찾아와 아들과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쇼지 어머니에게 경찰이 면회를 불허하는 장면>
● 옷에서는 지문이 검출되지 않는다. 지문은 손바닥이나 손가락의 땀샘에서 분비되는 땀과 오물이 섞인 것이 지분의 융기 부분에 의해 부착되어 생긴다. 접촉한 대상물이 평평하고 매끄러운 물건이라면 잘 부착되지만, 표면이 불균형할수록 부착이 어려워 지문의 동일성을 판정할 수 없다. …… 그러나 일반인은 이런 사실을 알 리가 없었다. 지문은 어떤 물건에라도 묻을 수 있고, 또 채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추리작가 중에도 옷에 묻은 지문 때문에 범인이 검거되는 이야기를 쓴 사람도 있을 정도다. - <사체의 옷에서 쇼지의 지문이 발견되었다라고 떠본 형사의 질문에 쇼지의 눈이 흔들리는 장면>
능력은 있었었으나 지극히 현실적이어서 돈과 정의를 바꾸는 일을 밥먹듯 하던 형사가/변호사가/(심지어) 조폭 깡패가!!! 어떤 일을 계기로 갑자기 정의의 화신이 되었고, 그간 완전히 사라져버린 줄 알았던 그의 능력이 다시 무한폭발하여 불가능할 것 같던 정의의 구현을 해내고 만다는 식의... "슈퍼맨 리턴즈"라 불리울 만한 스토리를 우리는 어디에서였든가 한두 번은 접해보았었습니다. 이 소설에서도 자신의 무고함을 그 어떤 방법으로도 표현할 수 없었던 쇼지에게 드디어 그 '슈퍼맨'이 나타납니다. (다시 한번) 어디에서였었든 볼품없고 능력 뿐 아니라 최소한의 의욕마저도 없는 모습으로 그려지곤 하는 그... 이름하여 '국선 변호사'가 바로 쇼지의 '돌아온 슈퍼맨'이었죠. 1심 재판기록을 살펴본 후 가지게 된 몇 가지의 의문때문에 시작된 이 국선 변호사 가와이 도모아키는 사건의 실체를 파헤쳐가는 도중 결국 다음과 같은 말을 하며 그를 마치 자신이 쇼지(의 가족)인 듯 자신의 모든 열정을 다해 쇼지의 무죄를 밝혀어야겠다라 결심하게 됩니다.
"이건 저의.... 뭐랄까, 오기 같은 것입니다. …… 이런 불합리한 일로 한 사람의 생명을 없애고도 태연한 사람들, 그런 세상이랄까, 사법제도랄까. 그런 것에 대한 제 오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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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엔딩으로 끝맺음 되는 소설은 아닙니다. 소설의 마지막에서 작가가 등장인물들간의 대화를 통해 (날카로운독자라면 이미 소설의 중반부에서 눈치챌 수도 있을) 범인을 밝혀주기도 합니다만 그렇다고 이 소설을 추리소설이라고 부르는 것 또한 온당하지 않아 보이기도 하지요. 소설 속 변호사인 가와이의 말 "피고인의 생명이 걸린 사형사건의 변호는 마치 살얼음판을 걷는 것과 같은 직업이다"로 이 책의 무게감을 대신할 수도, "'숨 쉴 틈 없는 박력으로 이 두께를 끝까지 단숨에 읽게 만드는 역작이다.'라고 말해 버리면, 어쩐지 상투적이기도 하고 무슨 광고같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 말이 딱 어울릴만한 책이 바로 이 책"라는 해설자의 말로 이 책이 지니고 있는 읽는 재미를 설명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저 개인적으론 「13계단」과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 이어 (제가 아는 한 '제가 아는' 그 누구도 사형을 선고받은 사람이 없슴에도) 사형제도라는 것에 대해 더 많은 관심, '어떤 것에 마음이 끌려 주의를 기울임'이란 사전적 의미로서의 단순한 관심이 아닌, 정말 좀 심각한 의미로서의 '관심'을 만들어준 책.이라 이 책을 소개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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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뫼비우스의 띠>라는 작가 조세희의 소설이 떠올랐습니다. 꼽추인 한 사람, 그리고 앉은뱅이인 또 한 사람. 이 둘의 집은 철거대상지였고 예정대로 철거가 되었지요. 헌데 철거되기 전, 자신들로부터 그 집에 대한 딱지를 사간 악덕 부동산업자가 그 딱지로 자신들이 받은 돈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벌었다라는 걸 알게 된 꼽추와 앉은뱅이는 서로(의 신체적 결함을)를 도와 그 부동산업자를 결국 죽여버립니다. 사적복수에 대해 여전히 찬성하는 얼마전까지의 (또한 <뫼비우스의 띠>를 읽었던 당시의)저였다라면 위의 이야기에는 별 문제가 없다했었을꺼에요. 누가봐도 그 부동산업자는 나쁜 사람이었고, 신체적으로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약자인 꼽추와 앉은뱅이는 결국 부동산업자에게 입은 손해를 보상받았을 뿐 아니라 복수까지 완료한... 나름 해피엔딩의 스토리잖아요. 그런데... 말이죠!!!
문득 이 이야기가 떠올라 다시 <뫼비우스의 띠>를 읽어봤습니다. 다시... 찬찬히 보니 (다시 한번 더) 문득!!! 꼽추와 앉은뱅이가 부동산업자를 죽인 상황, 바로 그 시점 이후부터는... 이제 꼽추와 앉은뱅이는 그저 피해자의 입장으로만 남게되는 게 아닌게 되더라는겁니다. 그 둘도 엄연히 살해당한 피해자가 존재하게되는 '살인'이란 죄를 저지를 '가해자/범죄자'가 되어버린 거지요. 작가 조세희는 아마도 소설의 초반에 등장하는 '굴뚝 청소한 두 아이'의 예화와 더불어 이 두 이야기를 통해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뫼비우스의 띠'를 말하는 듯 보였습니다. (맞... 나는 자신 없. --;;)
【C라는 상황을 만들어낸 원인인 A와 B】
① 이게 정말 '이건 A, 저건 B' 이런 식의 구별이 가능하긴 한 거냐.
② 아니! A나 B라는 특정 원인을 진짜 꼬집어낼 수나 있겠냐.
③ 더 헷갈리게는 C가 결론이 맞기는 한거냐, 혹 A와 C 또는 B와 C가 원인이고 B/A는 결론인거 아니냐.
이 소설 「사망 추정시각」에서는 이 비슷한 상황을 '꼬아놓은 새끼줄'이라 표현하고 있지요. 어쩌면... 이 소설을 가장 간단하게 표현해낼 수 있는 말이 아닐까도 싶은 이 '인생의 화와 복은 마치 꼬아놓은 새끼줄 같다'... 에 대한 소설속 어느 노 법률가의 소회를 이 감상문의 마지막으로 적어봅니다. 이 책... 어쩌면 당시 일본 사법고시 준비생들엔 필독의 참고서가 아니었을까, 더 나가선 범죄를 계획하고 있던 사람들에겐 더할 나위 없이 유용한 보석같은 지침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더랬네요. 마치...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가 만약 작정하고 진짜로 살인사건을 계획해본다면?'같은 얼토당토않은 상상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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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화와 복, 즉 재앙도 행복도 서로 뒤섞여 꼬인 새끼줄 같다는 의미인데, …… 원죄(억울한 누명을 쓴 죄)라는 건 결코 한두 사람의 악인이 품은 악의나 누군가 한 사람의 실수만으로 일어나는 게 아니기 때문이지. 수십 가닥의 짚이 꼬여서 굵은 밧줄이 되는 것처럼, 수십 명의 인간이 한 일, 즉 악의뿐만 아니라 일종의 선의, 배신이나 과실에다 일종의 의무에 충실한 행동이나 모범적인 행위도 모두 함께 꼬이고, 다양한 인간 활동이 얽히고설켜, 그것이 어떨땐 원죄가 되기도 한다는 거... 그걸 항상 통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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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쓰키 기요시의 말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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