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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 개정신판
공지영 지음 / 오픈하우스 / 201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한 편의 소설을 읽고 나서 그에 대한 감상을 적어내는 것에, 그 소설의 줄거리는 굳이 적지 않아도 되지않을까하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보았더랬습니다. --- '상투적인 것'을 무척 싫어한다 말하는 한 젊은 여교수가 종교위원의 자격으로 남자 사형수를 만나게 되고, 시간이 흘러 어찌어찌하여 그 사형수는 그녀의 도움으로 아주 모범적인 갱생을 하게되고, 그렇게 그가 새 사람이 되자마자 존나 무정한 이 놈의 세상은 마치 이 때를 기다렸다는 듯 그에게 그간 미루어져왔던 사형집행선고를 내리고... - 네!!! 지나칠정도로 상투적이고 진부한, 하도 많이 여기저기서 보고들어 이젠 작가들도 짜증을 낼만도 한 뻔한 스토리의 소설이기에, 그 줄거리를 차라리 말하지 않는 것이 이 소설에 대한 저의 애정을 보여주는 나름의 방법이 아닐까싶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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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앞둔 자"... 뭔가 섬뜩한, 어쩌면 애처로운, 그런 말인가요? 이 글을 쓰고 있는 저도,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사실은 모두 '죽음을 앞둔 자'입니다. 다만 <언제 죽을지를 모른다는 것 뿐, 언젠가는 죽는다라는 사실>은 모두 다 알고 있으니까요. 이 <언제 죽을지를 모른다는 것 뿐, 언젠가는 죽는다라는 사실>은 기실 사형수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다만 그들의 '언젠가'에는 그리 많은 시간이 남아있지 않으며, 그들의 '언젠가'는 어느 날 갑자기 다가온다라는 게 우리와 다르다한다면 다를 뿐인 거겠죠. (전 사실 이게 '다르다'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그렇다면 우리와 사형수의 차이가 무엇이냐?란 스스로의 질문을 막아낼만한 답이 없기에 '다르다'라고 쓸 수 밖에 없네요.) 이 알듯 말듯한 미묘한 차이를 작가는 다음과 같이 적어내고 있습니다.
그해 봄날에 우리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와 나와의 만남은 언제나 마지막 만남이었다. 사형이 언제 집행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 그렇게 마지막이라는 말을 서로 괄호를 쳐놓고 우리는 만났지만 한 번도 그 괄호 속에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있다는 것을 잊은 적이 없었다.
무언가에 관해 그것을 제대로 알고있지 못한 사람에게 그 무언가에 관해 설명을 하는 것에는 다음의 두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습니다. 진화론을 예로 들어보자면, "진화론이란 무엇인가?"에 관해 누군가에게 설명하려할 때, 우선 다윈이 어떤 사람인가에 관해 간단히 알려준 후, 점차 쉬운 수준에서부터 그 진화론이 담고 있는 내용들을 알려주는 방법이 있을 수 있겠고... 또 다른 방법으로는 그 사람이 진화론에 대해 적게나마 알고 있는 잘못된 상식들을 하나하나 깨우쳐주면서 그 진화론에 대해 설명해주는 방법이 있을 수 있겠죠. 다카노 가즈아키의 「13계단」이 그 첫 번째의 방법으로 사형제도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면, 이 책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어쩌면 그 두 번째의 방법으로 우리에게 사형제도에 관해 생각해 볼 것을 권유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또한 「13계단」이 끝까지 나름 논리적인 추론을 유지한 채 사형제도에 관해 이야기 하고 있었다면,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예의 사람의 감정을 흔들어 사형제도에 대해 설명하려는 시도를 보여주고 있다 할 수 있습니다. "사형수가 죄를 참회하였다 해도, 이는 그가 사형 판결을 받았기에 일어나는 결과일 뿐, 즉 응보형 사상이 지지하는 사형 판결에 의해 목적형 사상의 목표인 참회가 유인된 것"이란 무미건조하나 이성적인 「13계단」에서의 서술이, 이 작품에서는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언제고 자기네들 죽는다니 무서운 모양이지. 자기네가 다른 사람 죽일 때는 안 무서웠는데 이제 자기네들 죽인다니까 무서워서 얼른 착해지나보지. …… 그렇다면 사형제는 참 좋은 거네. ……최고의 교화잖아?"와 같이 한 개인의 감정을 통해서 표현되고 있지요. .
상투적인 줄거리이기에, 그 '상투적'인 것을 싫어한다 말하는 주인공을 내세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이 이야기 속에는 '그런 상황이 닥치면 당신도 그런 행동을 했었을지 모르잖아'라는 상투적인 가정법에, '그런 상황에 닥친 사람 모두가 다 그렇게 행동하는 건 아니지않느냐'라는 또한 상투적일 수 밖에 없는 역공을 하고 싶은 마음조차 생기지 않을만큼 소설은 이런 상투적인 가정과 결말의 테두리를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도 합니다. 게다가 '이건 정말 부질없는 논쟁'이라는 도장을 찍어도 될 법한 <성선설 VS 성악설>의 이야기도 얼핏 스며들어 있지요. 거기에 더해 이 사형수는 사실 공범의 죄를 자기가 모두 뒤집어 쓰고 있는, 말하자면 이 사람이 지은 죄는 거의 없는 데도 사형수가 된거고, 두 주인공의 환경 또한 한 쪽은 '스스로가 외롭고 가엾고 고립된 인간이라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할만큼 너무도 많은 것들을 너무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고, 다른 한 쪽은 가지고 있는 것이라곤 '사회에 대한 증오와 그에 대한 복수'만이 있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지요.
우범지대라는 거. 그게 가난한 동네를 말하는 거잖아. 부자 동네엔 경비들이 보초 서잖아. …… 그 경비 서는 사람들도 이런 데서 살 거 아냐? 그래서 그 사람들이 부자들 경비 서주는 동안 이렇게 좁고 어두운 골목길에서 밤늦게 일하고 오는 지네 마누라, 딸들이 당하는 거잖아.
이런 예를 들며 사회의 부조리가 어쩌구하는 거, 처음 접했었을 적엔 적잖이 공감할 수 있었었거늘, 이젠 너무도 익숙해져 처음 만났던 때의 공감조차 말라비틀어져 버린, '그들의 마누라와 딸들이 당하는 것'과 그의 직업이 '부자 동네의 경비'인 것과 연관되어야하는 이유는, 또한 그것이 그렇게 부정적으로 해석되어져야 할 단 하나의 논리적 근거도 없다란 짜증 섞인 반론까지도 불러와주기도 합니다. 이쯤 되면... '진부, 상투적' 이런 단어들이 결코 아깝지 않은 이 소설 왜 읽었나, 했을 듯 하지요. 헌데 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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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다'와 '틀리다'가 다른 말이라 말하는 건 이젠 초딩들도 알법한 말이 되었을 정도로 많이 알려져있건만, 정작 그 비판의 대상이 내가 되어있을때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둘의 차이를 혼동하고야 맙니다. '난 김태희보다 전지현이 더 이쁘던데?' 하는건 제 미적 취향을 말하는 것일 뿐, '김태희가 이쁘지않다'라 말하고 있는건 결코 아니지요. 「황제를 위하여」에 달아주신 이웃분들의 덧글을 보며 솔직히 많이 당황했었더랬습니다. 저 또한 이문열 작가의 정치적 행보가 적절했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만 그것을 이유로 그의 작품까지도 그러한 판단의 범주안에 들어가야한다고는 생각지 않았었기 때문이지요. 작가와 작품을 어떻게 분리시킬 수 있느냐하시겠지만, 저 또한 그것이 가능할 것같지는 않네요라 답할 수밖엔 없지만... 그냥 직설적으로 말해, '다들 왜 이러는거야. 내 정치적 성향은 빨간색의 1번인데!!!'라는 답을 하고 싶은데, 왜 이문열 작가의 그런 행동이 그의 작품에까지 영향을 미쳐야하는 건지 묻고 싶었는데!!! 라는 이유로 말이죠.
그 내용이 하나도 기억나지는 않지만, 예전에 제 책장에 「고등어」란 책이 꽂혀있었던 걸 보면, 적어도 한 번은 작가 공지영을 작품을 통해 만났었었나봅니다. 허나, 작품 이외의 것들로 신문지상에서 보여지는 그녀의 모습들은 딱! 제가 싫어할 만한 '거의 모든 것'을 가지고 있더군요. 「13계단」을 그토록 인상깊게 읽지 않았었더라면, 그래 사형제도에 대한 관심이 생기지 않았었더라면 여전히 그녀 작가 공지영은 저에게 그런 이미지로 남아있었을 겁니다. 어디선가 이 작품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또한 사형제도에 관한 이야기라는 걸 보고는, 작가에 대한 불호를 떠나 우리나라 작가가 쓴 우리나라의 사형제도에 관한 이야기가 그저 궁금해 이 소설을 읽게되었던거지요. '내가 이 소설을 읽긴하겠지만, 그래도 공지영은 여전히 싫어!' 막 이러면서, 나의 미적 취향이 단지 전지현의 외모에 더 끌리듯이, 나의 정치적 성향은 작가 공지영보다는 작가 이문열을 차라리 더 선호하겠다라 말을 하는건... 나의 미적 취향이 결코 김태희가 이쁘지않다라 말하는 것이 아니듯, 작가 공지영이 작가로서 형편없다라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는건 아니니까!란 나름의 변명을 위한 안전장치까지를 모두 갖추어놓고 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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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 카뮈의 <단두대에 대한 성찰> 일 부분을 인용하여 작가는 '사형의 본질은 복수'라 적고 있습니다. 저 또한 그런 관점, 즉 '私刑을 대신하는 제도로서의 死刑'의 의미에서만 「13계단」을 읽었었지요.
죄의 내용과 그에 대한 벌은 사전에 이미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는 상태입니다. 사형당하는 놈들은 자신이 잡히면 사형 판결을 받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굳이 그러한 범죄를 저질렀다고밖에는 할 수 없지요. 그러니까 그런 자들은 누군가를 죽인 단계에서 이미 스스로를 사형대로 몰아넣었다는 겁니다. 잡히고 나서 울고 불고 해봤자 이미 늦었다는 것이지요.
'사형의 본질은 복수'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13계단」에 나오는 위 문장은 단 하나의 단어에조차 반박할 수 없게 됩니다. 私刑에 대한 거의 전적인 공감을 가지고 있었던 저에게 '백번의 양보'를 통해 국가라는 제 3자가 피해자의 복수를 대신 해주는 것으로의 死刑이라는 것조차도 여전히 합리적이다.가 저의 생각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었기도 했습니다. 최소한 이 소설을 다 읽어내기 이전까지는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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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을 만들어낸 게 진짜 사실인데 사람들은 거기에는 관심이 없어요. 사실은 행위 전에 이미 행위의 의미가 생겨난 것인데. 내가 어떤 사람을 죽이려고 칼로 찔렀는데 하필이면 그의 목을 감고 있던 밧줄을 잘라서 그가 살아나온 경우와, 내가 어떤 사람의 목을 감고 있는 밧줄을 자르려고 했는데 그 사람의 목을 찔러버리는 거... 이건 너무나도 다른데, 앞의 사람은 상장을 받고 뒤의 사람은 처형을 당하겠죠. 세상은 행위만을 판단하니까요. 생각은 아무에게도 보여줄 수도 없고 들여다볼 수도 없는 거니까, 죄와 벌이라는 게 과연 그렇게 타당한 것일까. 행위는 사실일 뿐, 진실은 늘 그 행위 이전에 들어 있는 거라는 거. 그래서 우리가 혹여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 진실이라는 거...
● 내가 그 자식은 인간쓰레기니까,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하고, 그 자식 목을 매달아 놓으면, 그건 살인이고, 그렇게 살인한 나를 데려다, 살인자라고 목을 매달면 그건 정의인가? 똑같이 인간이 인간을 죽어 마땅하다고 판단하고 똑같이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데, …… 하나는 살인이 되고, 하나는 집행이 되고, 하나는 살인자가 되어 그 죄 값으로 죽고, 하나는 승진을 하는거... 그게 정의인가?
그다지 대단한 참신함이 들어있는 문장들도 아닐 것 같은데, 어디선가는 한두 번쯤 들어보았음직도 한 내용들일텐데, 위에서 심할 정도로 반복하여 썼었던 '상투적'이라는 단어를 위의 두 인용문들에 다시 한번 더 사용된다해도 큰 무리가 될 것 같지는 않은데... 그런데!!! 이 두 인용문들을 읽게 되면서 「13계단」에서 인용된 바로 위의 인용문과 제 머릿속에서 뭔가가 막 충돌을 하는 겁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죽여야한다라 말하지만, 그들 중 그 누구도 만약 '행위 이전의 진실'에 대해 아무것도 알고 있지 못하다면, 그 '행위 이전의 진실'이란 것이 없을 수도 있고, 설혹 '결과로서의 행위'와 모순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는거지만, 그래서 그는 정말로 '죽어 마땅한' 사람인걸 수도 있겠지만, 그게 정말 한 사람의 생명을 강제로 종료시킬 수 있는 정당한 근거가 될 수 있는 것인가... 에 관해 작가 공지영이 '상투적'인 설정과 문장들을 통해 저에게 던져준 이 질문은 정말이지!!! 정치적 성향의 '다름'을 극복하고서라도 '작가로서의 공지영(만큼)은 괜한 허명이 아니었네'하는 고백을 아니할 수 없게 만들어주었습니다. 이런 걸 두고... 소위 '작가의 문제의식'이라고 하나요? 최소한 사형제도에 대한 작가 공지영의 그 문제의식은 사형제도의 근본을 정확하게 향하고 있었고, 작품을 읽는 이로 하여금 그것에 대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게끔 도와주고 있다 (제가 감히 이렇게 말해도 된다면) 말하고 싶네요.
뭔가... 좀 더 멋있고(?), 뭔가... 좀 더 체계적(?)으로 이 책에 대한 감상문을 쓰고 싶었었는데... 잘 안되네요. 지극히 '상투적'인 말로 마무리를 할 수 밖엔... --;;
생각할 꺼리들을 한 무더기 던져내주는 이 소설...은 심지어 상투적인 설정을 읽어가면서도, 내가 이 상투적인 설정을 읽고 있다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는데도 또 다시!!! 끝내 마음속에서 울컥한 슬픔이 올라오게 만들어줍니다. 사형제도에 관심이 없는 당신에게라면, 이 소설을 '이루어질 수 없는 슬프고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라고 소개하겠습니다. 사랑 이야기에도 관심이 없는 당신이라면, 이 소설은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찾아가는, 자신을 불행하다 생각하고 있는 한 가여운 여인에 관한 이야기'라 다소 막연한 소개라도 하고 싶네요.
이 소설은... 그 어떠.한 이유로 이 책을 읽게 된다하여도 그 모든 것을 다 훌륭하게 보상해줄 수 있는 작품.일 것이기에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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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자 하는 건 모든 생명체의 유전자에 새겨진 어쩔 수 없는 본능과 같은 건데, 죽고 싶다는 말은, 거꾸로 이야기하면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거고,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말은 다시 거꾸로 뒤집으면 잘 살고 싶다는 거고 …… 그러니까 우리는 죽고 싶다는 말 대신 잘 살고 싶다고 말해야 돼. 죽음에 대해 말하지 말아야하는 건, 생명이라는 말의 뜻이 살아있으라는 명령이기 때문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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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니카 수녀님의 말씀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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