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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권일영 옮김 / 예담 / 200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발없는 말이 천리간다'란 말이 있지요. "많은 사람들에게 가장 빨리 메시지를 전달할수 있는 방법은 파발마나 봉화를 통해 건네진 후 방을 붙이거나 알음알음으로 인해 전달되는 구전이었을 것이다. 이 중 방의 경우는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전달될 수 있었지만 당시 상당수 여성, 평민, 노비 계층은 글을 해독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는 점을 감안하자면 국민 전체의 생활양상에서 구전의 영향력은 상당히 컸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네이버 검색을 해보니 이런 설명이 곁들어 있더군요. 이를 두고 '부즈 마케팅'이란 용어도 있나봅니다. 예전 TV프로그램에도 맨 처음 사람이 글자로 본 단어를 행동만으로 다음 사람에게 설명하고... 그렇게 대여섯 명만 건너가고 나면 완전히 다른 단어가 답으로 등장하곤 하는 걸 보여주는 게 있었었지요. '발없는 말'이 천리만 가는게 아니라, 천리 만리를 가고 나면 몸에 날개까지 돋아있게되는, '구전'의 위력(?)을 쉽게 볼 수 있는 아주 간단한, 하지만 매우 전형적인 실례가 될 수 있을겁니다.
구전, 부즈마케팅, 바이럴 마케팅, 혹은 이 책에서처럼 WOM(Word of Mouth) 등 그것이 어떠한 이름으로 불리우든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소문>이란 한 단어로 바꾸어도 별 문제는 생기지 않습니다. 이러한 '소문'이 한 성인남자의 여생을 완전히 망쳐버릴 수도 있었던 실제의 예를 한번 볼까요? (이 기사를 보고 해당 부분만 카피를 해놓았었기에, 아쉽지만 어느 날짜에 어느 신문에 실려있던 기사인지는 확인을 못했습니다.)
오씨는 지난해 11월 학교 계단을 올라가면서 앞서가던 이모(13)양과 친구들을 앞질러 갔다. 이양은 오씨가 이 과정에서 자신의 허벅지와 엉덩이를 만졌다고 주장하며 그를 고소했다. 이양은 또 오씨가 이전에도 브래지어 끈 부분을 쓰다듬는 등 여러 명의 학생을 상습적으로 추행했다고 주장했다. 이양의 친구들 역시 수사과정에서 성추행 장면을 직접 봤다고 진술했고, 오씨는 결국 재판에 넘겨졌다. 그러나 목격자로 지목된 이양의 친구들은 법정에서 "이양에게 추행 사실을 전해 듣고 진술한 것일 뿐 직접 목격하지는 않았다"며 진술을 번복했다. 재판부는 "사건이 점심시간에 사람이 붐비는 식당 부근에서 발생했고, 목격자들이 진술을 번복한 점 등을 고려할 때 오씨가 피해자들을 지나치는 과정에서 의도하지 않은 신체접촉이 있었을 수는 있지만 오씨에게 추행 의도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어 "이런 의도하지 않았던 신체접촉이 여학생들 사이에 대화를 통해 의도적이고 상습적인 추행이 있었던 것처럼 확대 재생산됐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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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그 이야기 들었니?"란 문장으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 바로 이러한 '소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일본 시장에 첫 진출을 앞둔 향수 브랜드 '뮈리엘'은 자신들의 주 타겟인 (좀 노는) 여고생들을 상대로 WOM 마케팅을 하기로 하고는, 제품 설명회에 참석한 서른 세명의 모니터 요원들 (모두 좀 노는 여고생들)에게 '이것도 들은 이야기인데, 얼마 전 뉴욕 공원에 강간범이 출몰한 일이 있대요. 맑은 날에도 시커먼 레인코트를 입고서 십대 아이들만 노린다더군요. 수법도 아주 잔혹해서 도망치지 모하게 여자애의 발목을 잘라버린답니다. 하지만 무슨 까닭인지 뮈리엘 향수를 뿌린 아이들에게는 손을 대지 않죠. 그래서 뉴욕에 사는 여자애들은 모두 뮈리엘 로즈를 쓴다고. …… 이 (우리나라의 바바리맨과 같은)레인맨이 얼마 전 일본으로 왔다네요.'라는 내용을, 오직 서른 세명의 여고생들에게 전했을 뿐입니다만, 이는 곧 마케팅 회사의 예상대로 강력한 날개를 단 소문이 되어 세포분열이 반복되듯 각종 버젼의 각색을 만들어내며 삽시간에 (좀 놀든, 많이 놀든, 아예 안 놀든 그 모든)여고생들 사이에 널리 퍼지게 되지요. (여기서 제가 '좀 노는"이라 쓴 표현을 소설 속 등장인물인 고구레 형사는 '마음보다 몸이 먼저 어른이 되어버려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는 아이들'이라고 아주 멋지게 표현하고 있더군요. 이런 표현력...은 언제쯤 겟!할 수 있을지. --;;)
우리도 그러하듯, 이런 소문에의 첫 반응들은 거의 모두 '거짓말, 그럴 리가'였지만 발없는 말에 점점 날개가 달리기까지 하는 그 과정을 지나다보면 어느 학교 누가 그렇게 당했고, 어느 학교 누구는 뮈리엘 향수덕분에 살아났다라는 둥의 각색을 거쳐 그 소문은 점점 '진실'인양 믿어지게 되지요. 이는 단지 동양권에만 국한된 것도 아니고, 특정 연령대의 사람들에게만, 또는 특정 내용에 관해서만 이러한 위력이 발휘되는 건 아닙니다. (약간은 다른 쪽에 포커스가 맞추어져 있겠지만) 리처드 도킨스 또한 '소문의 위력'에 관해 다음과 같이 써놓고도 있지요.
기적적인 이야기는 보통 목격자에게서 직접 듣지 못한다. 우리에게 말해준 사람은 다른 이에게 들었고, 그는 또 다른 사람에게 들었고, 그는 또 다른 이의 아내의 친구의 사촌에게 들었고. …… 어떤 이야기든 충분히 많은 사람을 거치면 왜곡되기 마련이다. 애초의 이야기는 워낙 오래전에 시작된 소문인데다가 반복적으로 전달되는 과정에서 하도 왜곡되어, 이야기를 만들어낸 실제 사건이 무엇인지 (실제 사건이 있기는 있었는지) 짐작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 소문이 충분히 오래되면, 이제 그것은 소문이 아니라 '전통'으로 불리기 시작하고, 사람들은 더 굳게 믿는다.
- 리처드 도킨스 著, 「현실, 그 가슴뛰는 마법」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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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이 충분히 오래되면, 이제 그것은 소문이 아니라 '전통'으로 불리기 시작하고, 사람들은 더 굳게 믿는다"는 도킨스의 말은 정말일까요? 어느 날, 정말로 두 발목이 잘려진 채로 버려진 여고생의 시체가 발견됩니다. 한 명뿐이 아니에요. 약간의 시차를 두고 세 번째의 희생자까지가 발견됩니다. 예의 모두 두 발목이 잘린채였죠. 소설은 희생자들과 똑같은 나이대의 딸을 둔 형사 고구레와 경시청에서 파견나온 여형사 나지마, 이 둘이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감히 독자가 그의 추리과정에 개입할 생각조차 할 수 없을만큼 정교합니다만, 이 소설은 정말 평범하게 진행이 되지요. 이런 평범한 서술과 스토리를 가지고 독자를 붙잡아 놓고마는 작가 오기와라 히로시의 그 능력이 그저 놀라울 뿐인.
'소문'의 위력은 이처럼 살인 사건의 결과만을 내보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수사를 해나가는 과정에서 혹시 용의자가 누구라는 정보가 한 번 흘러나가면 탐문수사는 엉망이 된다. 만나는 사람들이 예단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게 된다. 불확실한 소문이 어느 틈엔가 확신으로 바뀌고, 검은 까마귀가 흰 까마귀로 변하고 만다'라 표현되었듯, 이웃들로부터 소외되었거나 기분 나쁘게 여기는 주민은 바로 범인으로 취급되어 버리고, 행여라도 그런 사람들을 경찰이 방문하면 소문은 부풀어 곧 체포될 거라는 유언비어가 퍼지기도 하는 등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지요. 「13계단」에서 작가 다카노 가즈아키가 추리 소설의 형태를 빌어 '사형 제도'에 담겨 있는 각종 모순과 의문들을 독자들에게 생각해보도록 해주었듯, 이 작품도 뒷담화 수준에서부터 WOM이란 정식 용어의 형태까지를 띠고 있는 '소문'이란 사회 현상에 대해 최소한 이 소설을 읽는 동안만큼은 한번쯤 진지하게 생각해보기를 바라고 있는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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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자체가 심히 꼬여있는 것도 아니고, 그 사건의 해결과정이 딱히 난해하지도 않습니다. 게다가 추리 소설 좀 읽어본 분이라면 나름 이 사건의 범인이 누구인지 소설에 등장하는 두 형사들보다 더 먼저 얼핏 알아챌 수도 있지요. 헌데... 재미있어요. 그것도 너무너무!!! 사실 스토리 자체에는 별 반전이 없습니다. 예상되었던 범인이 예상대로 잡혔고, 단지 그의 살해 동기가 한국적 정서에선 좀 독특했다랄까정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반전에 이르는 마지막 한 문장의 충격. 상상도 못한 결말에 보기 좋게 배반당하는 묘미>
책의 표지에는 여전히(?) '놀라운 반전'이란 말을 쓰고 있습니다. 옮긴이도 또한 "이 작품은 맨 마지막 한 줄을 향해 달려와 마지막 한 마디 대사로 완성된다"라 말하고 있지요. 일본의 고딩들도 요즘의 우리나라 중고딩들 마냥 말을 줄여서 하는 모습이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데, 그 중 고구레 형사의 딸인 나쓰미가 자신이 만들었는데, 아무도 써주질 않는다라 했던 '기나오싹'이란 은어가 등장합니다. '기분 나쁘고 게다가 오싹하다'는 문장을 줄인 것인데, 아무도 써주질 않는다는 형사 딸의 푸념관 달리 은근 제 입엔 착착 달라붙더군요. 네!!! 이 '기나오싹'이 바로 그 '놀라운 반전'입니다. 추리소설의 반전을 이렇게 미리 말하면 어떡하느냐고요? 두 소녀의 대화만으로 이루어져 있는 책의 마지막 장, 그 대화들을 체크하면서, 그러니까 화자 A와 B를 구분해가며 보지 않으면 결코 이해되지 않을 반전이고 배반입니다. 즉... 이 책을 모두 다 읽지 않는 한 도대체 이게 왜 반전이고 배반의 묘미인지 절대로 알 수 없다는 거죠.
책의 마지막 문장, 그리고 이 책을 읽는 이는 그 문장이 뜻하는 바와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감정을 느끼게 되고야 마는 소설 「소문」. 적지않은 이런저런 생각할 꺼리들(ex.가족이란? 세대간의 소통? 성공의 의미? 등등등)을 담고도 있는 이 소설... 그야말로 기나오싹!!!
아 참! 게다가 소설의 본문은 444 페이지에서 끝이 나는데 이도 웬지 기나오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