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일
위화 지음, 문현선 옮김 / 푸른숲 / 201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오늘이 아주 중요한 날, 그러니까 내가 죽은 첫째 날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주호민의 「신과 함께 : 저승편」과 매우 흡사한 이야기의 시작입니다. 이처럼 '죽음의 시작'으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 주호민의 상상과는 또 다른 어떠한 '죽음의 끝'을 보여주게 될까요? 또한 책의 겉표지에 나와있는 "이승과 저승 사이에서 영원한 인연을 다시 찾은 7일간의 이야기", 글쎄요... '영원한 인연'이라는 것이 있을 수 있을까요?

 

.

.

.

 

주인공 양페이는 그의 친모가 예정일을 20여일 앞두고 달리는 기차의 화장실에서 낳게 된 남자입니다. 그곳은... 웬지 여전히 지금도 중국 어느 곳을 달리고 있을듯한, 그저 아래 구멍이 철로로 곧장 뚫려져 있는 화장실이었었고, 그녀의 배가 아팠던 이유는 다름아닌 양페이가 세상 빛을 보려했었기 때문이었던거죠. 그렇게 그의 친모는 그것이 출산임을 자각하지 못한 채 역에 정차했던 기차가 막 출발하려는 순간 그 화장실에서 힘을 주어 버렸고... 

 

바로 그렇게, 기차 한 대가 지나간 뒤 다른 기차가 지나가기 전에 내게 아버지가 생겼다. 며칠 뒤에는 양페이라는 이름도 생겼다. 아버지의 이름은 진뱌오였다.

그렇게... 주인공 양페이는 피라곤 단 한방울도 섞여있지 않은, 철도 선로원인 양아버지와 친절한 옆집 부부의 도움에 의해 길러지게 됩니다. 소설은 이전에 읽었었던 위화의 작품 「허삼관 매혈기」에서와 같이 독자의 감정을 자극하는 그 어떠한 수사적 기교의 표현 없이도 그렇게 읽는 이로 하여금 때로는 웃음을 짓게도, 또 때로는 가슴 아파 하게도 할 것임을 이처럼 길지 않은 위 세 문장에 담긴 그의 출생 이야기로부터 미리 알려주고 있지요.   

 

아버지가 스물한 살 때 갑자기 아버지 삶으로 뛰어든 나는 아버지의 삶을 송두리째 장악해버렸다. 그래서 아버지가 마땅히 누려야 했던 행복은 아버지 삶에 비집고 들어올 수가 없었다. …… 나의 어린 시절은 웃음소리처럼 마냥 즐거워, 나는 내가 아버지의 인생을 갉아먹고 있는 줄은 전혀 몰랐다. 내가 철로 위로 떨어진 뒤 아버지의 인생길은 순식간에 좁아졌다. 결혼은 커녕 여자 친구도 사귈 수가 없었다.

비록 배운 것이 많지 않고, 가진 것도 별로 없는 양아버지 진뱌오이지만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해가며 철로위에서 얻은 양아들 양페이를 길러냅니다. 옆 집 부부인 리 아주머니와 하오 아저씨의 도움도 그의 성장에 커다란 도움이 되어주지요.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해 양페이를 길러준, 하지만 이젠 림프암에 걸려 자신의 일생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게 된 양아버지 진뱌오는 그렇게 마지막까지 양페이에게 부담이 되지 않기 위해 그의 곁을 홀연히 떠나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

.

.

  

지금 살고 있는 우리의 삶에 대해 '난 더 이상 바랄 것 없이 너무 행복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자신이 내일 아침에도 반드시 눈을 떠 내일 하루도 살아가야/살아내야 하며, 그러한 행위는 그 끝을 상상할 수 없을 때까지 무조건 지속되어야 한다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 또한 몇이나 될까요? 직전에 읽었던 이광수의 「무정」에 나왔던 하숙집 노파를 향한 형식의 독백처럼 우리는 어쨌든, 어떤 이유에서든, 심지어 이유를 알 수 조차 없다해도 살아.는 가야한다라고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그는 무엇하러 세상에 났으며 세상에 나서 무슨 일을 하였고 무슨 낙을 보았는고. 그렇지마는 그 노파는 아직도 살아간다. 병이 나면 약을 먹고 겨울이 되면 솜옷을 입어 가면서 아직도 죽을 생각은 아니 하는 것 같다. 내일이나 내년에 무슨 새로운 낙이 오기를 기다리는지도 모르지마는 그는 밤이 새고 아침이 되면 또 자리에서 일어나서 밥을 짓고 빨래를 한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적지 않은 수의 등장 인물들의 현실, 즉 살아 있었을 때의 삶은 거의 대부분 살아가는 낙도 없는, 심지어 '내일이나 내년에 무슨 새로운 낙이 오기를 기다리는지도 모르지마는' 그렇게 그저 살아가고 있었을 뿐인 고단한 삶이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 중 그 누구도 '어서 죽어버리고 싶다'라거나하는 생각을 가지지는 않지요. (비록 자살로 생을 마감한 한 명의 등장 인물이 나오기는 합니다만, 그의 자살 역시 삶의 고단함으로부터 연유한 것은 아닙니다.) 그들의 이승 때 삶이 얼마나 고달팠느냐는, 죽어서도 자신의 유체를 화장해주거나, 혹은 묻혀질 묘지조차 없는, 그리하여 죽어서조차도 '영원한 안식의 땅'에 들어가지 못한 채 '죽었지만 매장되지 못한 자들의 땅'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도 표현되고 있기도 합니다.

 

작가는 이 소설이 정녕 현재의 중국에서 씌여진 것이 맞을까?하는 의문을 저 스스로 가져보게 될 만큼 중국의 사회상에 비판적인 시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중국 소설의 전반적 특성인지, 아니면 작가 위화만의 독특함인지는 모르겠으나 (이전까지 읽어본 중국 소설은 위화의 것, 단 한 권이었기에) 작가는 읽는 이의 감정을 자극시키는 것에서 뿐 아니라 이처럼 사회상을 비판적으로 기술함에 있어서도 그저 담담하게, 마치 「허삼관 매혈기」에서 사뭇 우습기까지도 한 표현으로 모택동의 문화대혁명 시기를 묘사했었듯, 별 꾸밈없이 평이한 문장으로, 허나 읽는 이의 마음은 결코 평안하지 않게되는 마법같은 문체로 써내려가고 있습니다. 아! 그 와중에도 작가의 유머는 잊지않고 다음과 같이 우리에게 선사되어지기도 하지요. 

 

아버지는 아이처럼 웃더니 아무래도 내가 기형아인 것 같다면, 몸에 꼬리가 나 있는데 심지어 앞쪽에 있다고 걱정했다. - 진뱌오가 철길에서 갓 태어난 양페이를 안고와 옆집 리 아주머니에게 젖을 물리고 난 후 (탯줄을 이해하지 못해)했다는 말.

 

"나중에 내가 아이폰 4S 사줄께", "밥 먹을 돈도 없는데, 네가 사 줄 때면 아이폰 40S가 나왔겠다." - 돈이 없어 밤업소에 나가겠다고 하는 류메이에게 남자친구인 우차오가 반대를 하자, 자신에게 밤업소를 소개해 준 후배는 새 아이폰이 나오면 항상 바꾼다고 류메이가 투덜대는 장면에서의 대화.

 

리 씨는 비가 오건 눈이 오건 '내 불알을 돌려달라'고 적힌 팻말을 든 채 공안국 대문 앞에 서 있었다. …… 어떤 사람이 팻말에 쓴 '불알'이라는 단어가 저속하다고 하자 그는 겸허하게 받아들여 '내 고환을 돌려달라'고 고친 다음 행인들에게 말했다. "점잖은 표현을 썼습니다". - 경찰인 장강의 발길질에 자신의 고환이 터졌다고 주장하는 전직 매춘업자 리 씨의 말.  

.

.

.

 

하지만... 역시 위화 소설의 백미는 「허삼관 매혈기」에처럼, 예의 별다른 특별한 단어의 구사 없이도 읽는 이로 하여금 가슴 찡하게 될 수 밖에 없는 그만의 표현이 담겨진 문장들이 있는게 아닐까 싶지요. 제가 '아빠를 너무너무 사랑해요'라 오늘 아침에도 말했었었던 아들을 가진 아버지이기에 그런지도 모르겠으나, 이 소설에서도 역시 그렇게 담담하게 써내려진 양아버지 진뱌오와 그의 아들 양페이, 부자간의 사랑은 이 소설의 다른 사랑들을 다 덮어버릴만큼의 감동을 전해줍니다.   

 

 

● "시간 나면 편지도 쓰고 전화도 해라. 잘 지내는지 알려주렴. 내 걱정은 말고" …… 온갖 고생을 참고 견디며 (철로위에서 주워) 나를 길러낸 그 아버지를 나는 나도 모르게 플랫폼에 내버린 것이다. - 자신을 찾아온 친부모의 집으로 떠나는 날, 하오 아저씨에게 돈까지 빌려 양페이의 겨울옷을 사서 보내주는 아버지와의 이별장면

  

● 그렇게 새로운 집에서 27일을 보낸 뒤 기차를 타고 옛집으로 돌아왔다. …… 나는 떠났던 그대로 돌아왔다. "아버지, 저 왔어요." …… 가방을 들고 계단을 내려갔다. 내가 가방을 들려 했지만 아버지의 왼팔이 강력하게 저지했다. 마치 내가 아직 아이라서 그렇게 큰 여행 가방은 들 수 없다는 듯이. …… 아버지는 나의 갑작스러운 귀향에도 무척 담담해 보였다. …… 나중에 하오 아저씨가, 그날 저녁 내가 잠든 다음 아버지가 찾아왔었다고, 들어오자마자 눈물을 흘리면서 자신과 아줌마에게 "양페이가 돌아왔어, 내 아들이 돌아왔어."라고 말했다고 알려주었다. 

 

● 침대에 누워 …… 내가 헤헤 웃자 아버지도 헤헤 웃었다. 그런 다음 조용히 말했다. "나는 죽는 게 두렵지 않아. 조금도 두렵지 않단다. 내가 두려운 건 다시는 너를 못 보는 거야." 다음 날 나의 아버지는 작별 인사도 없이 떠나갔다. 아무런 낌새도 없이, 쪽지 한 장도 남기지 않고 얼마 남지 않은 생명을 끌고 나를 떠나버렸다.

 

● 네 아버지가 오셨었단다. …… 기차를 타고 예전에 너를 버렸던 곳에 갔었대. …… 아버지는 아줌마에게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하고 내 고른 호흡 소리와 이따금씩 들리는 코 고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고 말했다. 중간에 잠시 아무 소리도 없으면 걱정하며 손을 뻗어 내 얼굴과 목을 쓰다듬었다고, 내가 놀라서 깨어나 몸을 일으키면 눈을 감고 잠든 척했노라고 말했다. 내가 어둠 속에서 아버지의 몸을 더듬고 조심스럽게 당신의 팔을 이불 속에 넣어주었다고도 했다. …… '왜 거기에 갔어요?' 아줌마가 물었을 때 아버지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 바위에 좀 앉아 쉬고 싶었거든요'

 

● 내가 힘들까 봐 걱정하신 거에요? 그래서 가셨죠? / 그냥 거기에 가보고 싶었어. 나을 수 없다는 걸 알았을 때 거길 가보고 싶었어. / 왜 거길 가야했는데요? / 마음이 아팠거든. 너를 버렸던 걸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서. / 아버지... 아버지는 날 버린 적이 없어요. / 그 바위를 찾아서 그 위에 잠깐 앉아 있고 싶었어. 늘 그곳에 가고 싶었지. 날이 어두워지면 거길 가야겠다고 생각하다가 날이 밝아 너를 보면 또 가게 되질 않더라. 널 떠나는게 싫어서. / 아버지, 왜 말씀하시지 않았어요? 그럼 모시고 갔을 텐데. / 너한테 말해야겠다고 생각했지. 여러 번. / 그런데 왜 말씀하시지 않았어요? / 모르겠구나. / 내가 속상할까 봐요? / 아니... 역시 혼자 가고 싶더라고. / 그래서 작별 인사도 없이 가셨군요. / 아니야, 저녁 기차를 타고 돌아갈 생각이었어. / 하지만 안 오셨잖아요. / 돌아갔어. (아버지는 죽은 다음에 돌아왔다) 가게 맞은편에 며칠을 서 있었는데 안에서 다른 사람이 나오더라. / 아버지를 찾으러 갔으니까요. / …… 여기서 매일 너를 그리워했지만 이렇게 빨리 만날 줄은 정말 몰랐구나. / 아버지, 이제 또 함께에요.

  

나와 아버지는 영원한 이별 뒤에 다시 만났다. 이제 체온도 없고 숨결도 없지만 우리는 다시 함께하게 되었다. …… 아버지가 뼈만 남은 두 손에 낡은 하얀색 장갑을 낀 다음 고개를 들고 나를 보았다. 텅 빈 아버지의 눈에서 두 줄기 눈물이 흘렀다. 당신이 나보다 먼저 왔는데도 나이 든 사람이 젊은 사람을 보낼 때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 아버지는 아줌마에게 …… 내가 보고 싶다고, 정말 너무 보고 싶다고, 멀리서라도 한 번 볼 수 있다면 만족할 거라고 말했다. …… (나를 찾아 빈의관까지 갔던 아버지는) …… 그곳에서 30년, 40년, 50년... 기다리기만 하면, 나를 만날 수 있으리라는 것이었다. …… 나는 아버지가 어디 계신지 알았다. 빈의관 대기실에서 파란 옷에 하얀 장갑을 끼고 있던 사람, 얼굴에서 살이 사라지고 해골만 남은 사람, 목소리가 지치고 슬폈던 사람이 바로 나의 아버지였다. 

 

 

 

 

 

 

 

  

…………………

 

 

마치... 여러 단편 소설들을 모아놓은 듯한 이 작품에게는 어쩌면 딱히 별다르게 특정지을 만한 스토리가 없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만, 다 읽고 나니 문득, '왜 세상은 이처럼 우리에게 둘 중 반드시 하나만을 선택해야한다 강요하는 것일까'란 의문이 경제학을 공부했던 저에게 생기더군요. 그 선택은 '내 인생'이냐 '아이의 인생'이냐일수도, 또는 '사랑'이냐 '현실'이냐일수도, 그리고 심지어는 결국 어떠한 모습의 '삶'이냐 '죽음'이냐까지일수도 있음을 위화는 이 소설을 통해 가장 평등하지 않은 조건들이 모여있는 이승에서의 삶 속에서 살았어야 했던 자들이 결국 죽고 나서야, 비록 '죽었지만 매장되지 못한 자들의 땅'이나마 비로소 '가난도 없고 부유함도 없는, 슬픔도 없고 고통도 없으며, 원수도 없고 원망도 없는' 평등함을 얻게된 저승에서의 또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된다는 이야기를 통해 '저승보다도 못한 (반드시 중국이란 특정 지역에 한정되는 것이 아닌) 현실'을 바로 당신들이 살아가고 있는 것임을 잊지말라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소설을 다 읽고 나니 이 작품에서 말하고자 했던 '영원한 인연'이란게 어떠한 것인지... 가슴 저릿하게 느껴지네요. 그건 단지... 아버지와 아들의 사이만은 아닐.

 

 

★ 위화의 다른 작품 :  허삼관 매혈기

★ More 'Food for Thought'  : 주호민 작, 「신과 함께 : 저승편」 - 저승 세계에 대한 우리나라 전래의 상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