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 - 박범신 장편소설
박범신 지음 / 한겨레출판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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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데뷔하고 만 40년이 되는 해에 펴내는 40번째 장편소설이 <소금>이고, 내 고향 논산에서 최초로 쓴 것이 <소금>이다... 라 말하는 저자 박범신C의 소설들 중 제가 읽어본 첫 번째의 소설이었습니다. 원래 '소설'이란 장르를 딱히 좋아하는 것이 아니기도해서였겠지만, 아마.도 뭔가... '오래된'(?) 작가의 소설은 더더욱이나 나와는 맞지 않을듯 하다.란 선입견이 더 커다랗게 작용해서였을겁니다.

 

요즘 국문과 학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우리나라 소설가가 박민규C라는 이야길 어디선가 들었었습니다. 저 또한 그 분 특유의 문법과 표현을 참 좋아하지요. 허나 제가 가지고 있는 선입견, '오래된' 작가인 박범신C 또한 소설의 시작부터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햇빛의 칼끝에 눈이 찔려 얼른 검은 안경을 다시 썼다'라든가 '우리는 말없이 과수원 사이를 지났다. 너무 고요해서 과실들이 익어가는 소리까지 들릴 것 같았다' 등과 같이 오래되지 않고 신선.한 표현들을 선보여주시더군요. 이러한 표현의 신선함이 소설의 가치를 나타내는 모든 것은 결코 될 수 없겠습니다만, 어쨌!든 대중소설은 항상 무언가 신선한 것을 원하는 (저도 포함되어 있는)대중들에게 그를 기억해 낼 만한 것 몇 개쯤은 남겨주어야할테니 그 요소를 완전히 무시해서는 안되지 않을까싶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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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또한 여타의 문학작품들이나 영화, 혹은 드라마속에서 표현되고 있는 '전형적인 우리나라의 아버지'라 표현해도 될 법한, 그야말로 희생의 아이콘으로 대표되는 사뭇 뻔한 캐릭터를 지닌 아버지들에 관한 이야기이지요.

 

(우리의 곁에) 있으나 없으나 한, 흐릿한 사람이 아버지였다. … "그 호텔에서 밥 먹던 그날 아빠도 거기 있었나?" 그런 식의 대화가 다반사였다.

 

● 박장대소 큰 소리로 웃는걸 보지 못했듯이 격하게 노여워하는 표정도, 특별히 슬픈 얼굴도 보지 못했다. 희로애락은 아버지의 몫이 아니라고,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늘 생각했다. … 그녀에게 아버지는 그저 아버지일 뿐이었다. 아버지는 사람이다,라고 누가 말하면 웃음이 날 것 같았다. … 아버지는 자주 어머니의 어께나 허리를 오래 주물러야 했으며, 영양제나 기타 약들을 끼니때마다 한결같이 어머니에게 챙겨 먹었다. 아버지는 그럼 건강했던가. 그런 질문은 한 번도 해본 일이 없었다. 아버지와 병원은 당연히 어울리지 않았으니까. 왜냐구 누가 물으면 그녀들은 이구동성 대답했을 것이었다. "아빠잖아!"

특히나 이 소설의 주인공격인 선명우C는 본인 스스로를 자신의 아버지가 자신을 위해 그러했었듯, 자신의 무언가를 위해 살지 못하고 아내와 세 딸들의 소비를 충족시키기 위한 존재.만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스스로를 생각하고 있는, 게다가 그 아내와 딸들 또한 그를 위와 같은 존재로만 여기고 있는 오로지 '아버지'이기만 한 사람입니다. 이처럼 이 작품에 등장하는 아버지들에 대한 묘사는 이것이 문학작품이기에 송호근 교수가 <그들은 소리내 울지 않는다>에서 이야기했던 현실 속 아버지들보다 더한 측은함을 불러 일으키는 존재들로 그려지고 있지요. 선명우C 뿐 아니라 소설의 화자인 시인의 아버지 또한 패전을 실감하면서, 퇴로가 없어 앞으로 나갈 수 밖에 없는 전사처럼, 그렇게 부두로 갈 수밖에 없었1던 존재로 그려지고 있으며, "애들이 있으면 죽을 권리도 없는 사람이 아버지야!"라든가, '모든 아버지가 다 그래. 늙으면 무조건 버림받게 돼 있어. 과실을 따올 때 겨우 아버지,아버지 하는 거라고' 또는 '오늘의 아버지들, 예전에 비해 그 권세는 다 날아갔는데 그 의무는 하나도 덜어지지 않았거든' 등 처럼 여러 사람의 입을 통해 표현되는 '전형적' 모습의 아버지들을 말하고 있습니다만, 다시한번 또한! 지금엔 '전형적'이란 단어를 그 앞에 붙여야만 할 예전의 소설들은 아마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가족을 위해 자신을 끝없이 희생하는 아버지의 모든 모습을 그리는 것으로 그 마무리를 했었을꺼라 생각됩니다만, '오래된' 작가 박범신은 여기서 "<소금>은 가족의 이야기를 할 때 흔히 취할 수 있는 소설 문법에서 비켜나 있다. 화해가 아니라 가족을 버리고 끝내 '가출하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써내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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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 아버지가 곁에 있을 때 그녀는 그들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일종의 자본가였고, 아버지는 어머니와 세 자매의 몸종이나 청지기 같은 존재에 불과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살았다.

 

'엄마 아빠'라는 이름이야말로 사람으로서 당신들을 이해하는 길을 철저히 가로막고 있었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엄마! 아빠!'라는 말속엔, 어머니와 아버지의 역할만이 들어 있을 뿐이었다. … 엄마 아빠의 사랑은 언제까지나 절대적일 것, 일방 통행일 것이라고, 그들의 의견과 상관없이 오래전부터 결정되어 있었다. 거역할 권리가 엄마 아빠에겐 없었다. 그들은 거역할 수 없는 천리(天理)로서의 사랑을 지녀야 했꼬, 자식들은 그 사랑을 일방적으로 누릴 천리로서의 권리가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평생 곁에 두고 살지 못한 아버지와 사랑하는 사람을 평생 곁에 두고도 다 갖지 못한 어머니가 측은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들은 어머니 아버지이기 때문에 … 철저히 '사람'으로서의 정보를 제한하면서, 오직 책임이라는 이름으로 당신들의 어둠을 견뎌온 것이다.

물론 이러한 모습으로 묘사되는 아버지들에 대해 그 자식들의 후회(?) 혹은 아쉬움 또한 빠지지 않고 위에서 처럼 나타나고는 있지요. 허나 저의 하루하루가 그러하듯, 이러한 후회는 언제나 그 후회의 대상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때에야 비로소 그 모습을 나타내기에 '이제 아버지를 이해하려 하니 아버지가 곁에 없다는 사실에서 나와 그녀는 다르지 않았다'라는 표현마냥 후회의 당사자들에겐 그 후회의 무게가 더더욱 무겁게만 느껴지게 됩니다.

 

어떤 부류의 젊은 저들은 고아가 되는 게 단지 부모다 획득해 오는 과실이나 사냥감을 잃는 일이라고 착각할는지 모르지만, 만약 고아가 되는 게 무엇이냐고 누가 묻는다면, 그녀는 단호히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자존심을 잃어야 하는 일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이 표현은 (사라짐 이전까지는) 딸들의 소비를 부족함없이 충족시켜주었던 아버지 선명우C의 딸, 시우의 입에서 나온 말이기에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자존심을 잃'는다는 것 또한 근본적으로 그런 경제적인 면으로부터 나온 것이고 그러하기에 딱히 일반화시키기엔 다소 많음 무리가 따른다.라 생각합니다만, 이 소설에서 그려지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주로 '과실을 따올 때나 겨우 아버지, 아버지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존재들임을 감안한다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는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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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극적인 반전.이라 부를 수 없는 과정을 거쳐... (허나 이 부분이 소설의 주요 포인트이기에 제가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듣게되는 선명우C의 이야기들은 아마도 작가가 이 작품을 통해 내던지고 싶었던 메세지들이 아닐까싶습니다.  

 

성장한 자식을 독립시키겠다고 해도, 핏줄이므로 아버지만이 비난받는 이 구조는, 체제의 입장에선 양보할 수 없는 규범이었다. 그 대신 자식들은 늙은 아버지를 돌볼 필요가 없었다. 여력도, 시간도 없다고, 그러니 늙은 아버지는 체제가 돌봐야한다고 사람들은 말했다. …… 특히 '핏줄'이라는 이름으로 된 빨대는 늘 면죄부를 얻었다. …… 사람들은 '사랑'이라고 불렀다. 사랑이 빨대로 둔갑했지만 핏줄이기 때문에 그냥 사랑인 줄만 알았다. …… 핏줄이란 말엔 누대에 걸쳐 만들어온 이데올로기에 의한 어떤 속임수가 깃들여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핏줄이라는 이름의 맹목적이고 소모적인 관계망에 다시 갇히고 싶지 않았다.

제가 제 임의로 짜집기한 문장들입니다만, 결국 작가는 '자본의 폭력적인 구조가 그와 그의 가족 사이에서 근원적인 화해를 가로막고 있기 때문'에 선명우C의 입에서 위와같은 말들이 나올 수 밖에 없었었으며, 더욱 직설적으론 이는 또한 자본에 대한 나의 '발언'을 모아 빚어낸 세번째 소설이란 표현으로 이 소설의 성격을 규정짓고 있기도 하지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모두 똑같은 주장만 하는 일을 결코 생겨나지 않을겁니다. 저자는 '자본의 폭력적인 구조'가 선명우C의 가정을 결국 파탄시킨 것이며, 선명우C의 선택은 그러한 '자본의 폭력적인 구조'에 맞서는 것이 아니라, 그 희생양인 '가정'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으로 일말의 저항을 나타내고 있다(라고 저는 이해했)습니다만, 우리는 이미 오래전인 19세기에 마르크스를 통해 잉여가치를 추구하는 자본주의가 얼마나 무자비해질 수 있는가를 보았었지요. '그로부터 수 세기가 지난 현재'에도 물론 '개인의 수준'에서 그러한 '자본주의의 폭력적인 구조'에 대한 correction을 시도할 수는 없겠지만, 다시한번! '그로부터 수 세기가 지난 현재'에 보여주는 일 해결(?)방안이란게 겨우(!) 가족으로부터의 도피로 그려지는 것에는 사뭇 동의할 수는 없었습니다. "개그는 개그일뿐"이란 말처럼 "소설은 소설일뿐"이고 그러하기에 현실에선 그려질 수 없는 것들을 그려볼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다.라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소설은 소설일뿐"을 사뭇 벗어나 작가가 자신의 생각을 소설 속 대리인을 통해 표현하고 있는 것이라 한다면 차라리 소설의 분량을 더 늘려서라도 더욱 정교하게 '이럴 수 밖에 없었던' 주인공의 상황을 묘사해준다던가, 아니면 작가 자신의 생각을 약간만 더 애매(?)하게 표현해주었더라면 차라리 이 소설을 읽는 이들에게 더 많은 생각의 여지를 남겨줄 수 있지 않았었을까하는 아쉬움이 남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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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위와 같은 저 개인적 불만(?)과 지나치게 반복되어 나타나는 특정 단어에의 두드러진 혐오(?)등만 제외한다라면 무척이나 빠른 전개, 참으로 다양하고 매력적인 등장 인물들(저 개인적으론... 이 소설의 주요 등장인물들 중 유일하게 그의 아버지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남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응?) 마음속에 가져보았을 그런 '누나'인 세희라는 인물이 가장 매력적이었습니다)과 그들의 구구절절한 사연의 과거사 등 소설이 지닌 이야기.만으로서는 상당히 재미있고 흡인력 또한 짱짱.합니다. (저같은 사람이 이런 말을 해도 되는지는 자신없습니다만, 어쩌면 그러.하기에 작가가 자신의 주장을 표현한 것이 과도하다.라 느껴졌을 지도 모릅니다. '이야기'로서의 이 소설은... 참 훌륭하거든요.)

 

 

염전을 하던 아버지가 결국엔 소금기 부족으로 죽게되는, 그런 기억하기 싫은 자신의 과거 탓에 '다시 남편이 되기보다 아버지가 되기 싫어 결혼은 안할꺼야'라 말했던 소설의 (이혼남인) 화자 시인은 허나 결국... "내게도 아버지가 필요해요!"란 고백을 하게 됩니다. 소설을 읽는 내내 어쩔. 수 없이 돌아가신 저의 아버지를 아니떠올려볼 수 없더군요. 제가 과연 '이제 아버지를 이해하려하니 아버지가 곁에 없다'라 말할 수 있는건지까지는 자신 없습니다만, 우스개 소리로 나란히 누워있는 종원군에게 '종원아, 너가 이 아빠를 이해하게 되었을 쯤에 어쩌면... 아빠가 니 곁에 없게될지로 몰라'란 나름 진지했던 저의 말에 '난 아빠 다 이해해. 근데 아빠는 지금 내 옆에 있잖아!'라 웃으며 말하는 녀석을 보며 그 순간!!! 정말이지... 소설 속 문장인 "소금은, 모든 맛을 다 갖고 있다네. 단맛,신맛,쓴맛,짠맛. ... 소금은 인생의 맛일세!"가 제 마음속에서 울컥.하고 일어나더군요. 저 또한... "내게도 아버지가 필요해요!"라 마음으로 외치고 있지만, 잠시 잊고 있었던 허나 잊지 말아야 할꺼, 다시한번 저 또한... 이미 누군가에겐 그 '아버지'이더란 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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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만리 1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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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 샤먼, 남경, 북경, 상해, 광저우, 심천, 홍콩... 제가 가본 중국의 도시들입니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꽤(?) 되는군요. 제가 처음으로 중국엘 갔던 날은 바로 김일성이 사망한 날이었지요. 외삼촌 사업차 가시는 길에 방학이라 따라간다 했거늘, 엄마가 공항까지 데려다주시는 와중에 길에서 차들이 빵빵 거리며 어서 라디오 틀어보라고, 김일성이 죽었다고... 당시만 해도 제 기억에 중국과의 정식 수교가 맺어지지 않았던 걸로 아는데, 그런 날... 그곳으로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보내는 울 엄마의 마음이 어떠셨을지는 사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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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돌만한 휴대폰을 자랑삼이 꺼내들고 큰 목소리로 통화하는 남자들, 속옷이 다 보여도 상관없다는 듯 치마를 입고 꿋꿋이 자전거를 타고 가는 늘씬.한 여자들, 망치 등의 몇몇 간단한 도구들을 앞에 놓고는 길위에 앉아 하염없이 자신(의 노동력)을 써달라 기다리고 있다는 초췌한 모습의 남자들, 송화강의 유람선을 타러 가는 길에 펼쳐져있던 난전엔 북한산 빤쓰가 팔리고 있던 나라, 그리고 문도 없는 나무로 된 간이 화장실에 앉아 볼테면 봐라.라는 식으로 앉아 큰 볼일을 보던 사람들, 아침부터 맥주를 권했던 외삼촌 거래처 사람들... 이런 것들이 중국에 대한 저의 첫 인상들이었으며, 이후에도 북경의 고급 식당 바닥에 아무 거리낌없이 침을 뱉던 이들, 엘리베이터 안에서 버젓이 담배를 피워대는 사람들, 체크인하러 온 손님에게 숙박명부보다 재떨이를 더 먼저 자연스레 내밀었던는 호텔 직원들... 등등 그 인구 수 만큼이나 중국이란 나라는 그 이후 저에게 무궁무진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보여주었었지요.   

 

북경에서 기차를 타고 어디론가 가던 도중 창밖으로 보이던 정말 끝없이 펼쳐졌던 신축 건물 공사현장들을 보며, 광저우 공항에 내릴때 보았던 희한한 모습의 건물이 아시안 게임을 위한 랜드마크 건설이었다라는 이야기를 들었었을 때며, 도대체 층고를 왜 이렇게 높게 했을까라며 이해되지 않았던 상해의 호텔을 보면서 중국인들의 하드웨어에 대한 집착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만, 그런 멋진 호텔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수준 즉 소프트웨어는 정말 형편이 없더군요. 이 책의 등장인물 중 하나인 서하원의 말을 빌자면, 중국이란 나라는 중국땅에 옴으로써 중국이란 나라는 과연 어떤 나라인가라는 생각이 드는 그런 나라로 여전히 제게 남아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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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머릿말에서 1962년 펄 벅이 "그들이 빛의 속도로 산업화하고 근대화할 수 있다는 것을 믿는다"라는 말을 했다며, 40여년을 내다본 그의 투시력에 감탄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 소설을 쓰기 위한 사전 답사를 마치고 나니 자신 또한 왜 소련은 몰락했는데 중국은 건재하는지의 이유를 확인했다고 밝히고도 있지요. 1980년대 이래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10%를 유지하고 있는, 최근 들어서조차도 성장률의 하한선을 7%로 잡고 있는 중국이란 나라는 책 속의 표현을 빌자면 예수가 탄생한 이후, 그러니까 서기 2,000년 동안에 약 2세기 정도만 빼고는 1,800년 동안 GDP가 세계 1위였던 부자나라였었었지만 한편으로는 그네들 특유의 문화로 인해 지저분하며 게으르고 거짓말을 잘하는 비교양이고 반문명적인 국가이고, 그런 무질서와 무자각 상태이기 때문이 민주주의가 이루어질 수 없는 나라란 서양인들의 비판을 들어야했기도 한 나라이지요. 저 또한 비슷하게 가지고 있는 이러한 추상들에 대해 소설 속 등장 인물인 전대광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중국 하면 싼 인건비, 짝퉁, 불량식품 같은 것만 생각하지 초스피드의 경제성장에 발맞추어 모든 분야의 기술이 세계적 수준에 도달하고 있다는 생각은 안해요"라며 중국 제대로 보기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중국에 파견나가 있는 한국과 일본 등의 주재원들의 이야기가 주된 스토리입니다만, 어쩌면 작가는 이 소설이 어떠한 주제나 교훈을 전달하는 스토리로서의 소설이 아닌 그러한 형식을 빌어 중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자세하게 알려주고자 하는 것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는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제 머릿속에 가장 또렷하게 남았던 문장은 바로 '문제 삼지 않으면 아무 문제가 없는데 문제 삼으니까 문제가 된다'는 중국식 편의주의였었었지요.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이 한 문장을 통해 전세계를 통틀어 가히 압도적 최고 수준이라 할 수 있는 8천만에서 1억명을 헤아리는 화류계 종사여성들이 나름 편히 배부르게 잘 살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궤변으로부터, 얼마전 화제(?)가 되었던 가짜달걀 사건도 조사해보니 인체에 피해는 없겠더라, 그러니 중국 정부는 가짜 달걀 제조업자의 생존을 위해 그 직업을 보장해 주었다는 대응 등이 나오는데, 이는 "북풍이 불어야 기러기가 오고, 돌을 던져야 파문이 인다"라는 중국의 속담과 정확히 들어맞는 면면들이 아닐까 합니다. 즉, 자신들을 향한 이러한 외부세계의 시선에 대해 '아직 북풍은 불지 않았고, 돌은 여전히 내 손안에 있다'란 방식의, 나쁘게보면 너무도 뻔뻔한 것같고 좋게보면 대범한 반응이랄까요?

 

 

이처럼 저도 이미 가지고 있었었던, 소설 속 등장인물들 또한 품고있는 중국이란 나라에 대한 이해할 수 없음을 저자는 중국에 오랫동안 살았던 한 등장인물의 입을 빌어 "중국이라는 나라는 새로운 사실들로 가득찬 수천 페이지짜리 백과사전을 한 장, 한 장 넘겨가는 기분이었다. 살아갈수록 끝도 없이 새로운 것이 나타나는 나라, 그래서 살아갈수록 그 실체가 알쏭달쏭 모호해지는 대상. 그래서 중국 생활 6개월이면 중국 전체게 대해서 아는 척하고, 1년이면 자기 분야에 대해서만 아는 척하고, 10년이 넘으면 아무 말도 안 한다는 말이 생겨났는지도 모르겠다. …… 중국에 대해서 알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고, 중국에 대해서 안다고 하는 것은 더욱 어리석은 일이다"라고 표현하고 있기도 합니다. 책은 또한 이전엔 제가 몰랐었었던 중국의 사회상을 알려주고 있기도 한데, 상사원의 아내로서 중국생활을 하고 있는 이지선의 표현을 빌자면 "그녀가 중국에 와서 놀란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특히 놀란 것이 …… 하나는 여자들이 정조 관념이라고는 전혀 없이 마음껏 몸을 내두르며 사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당원이나 관리들과 일반인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극심한 인간 차별이었다. …… 인간 평등을 위해 공산주의 혁명을 했다는 사람들이 어찌 저리도 앞뒤 안맞는 행동을 할 수 있을까 싶었고, 인민은 나라의 주인이라고 하는데 그런 역겨운 꼴을 수도 없이 당하면서도 왜 사람들은 한마디 불평도 없이 무표정하게 묵묵히 서있기만 한 것일까. …… 한국이 얼마나 민주화된 인간다운 사회인지를 중국에 와서 비로소 깊이 느꼈던 것이다. …… 인민들 참 묘해요. 분명이 있으면서 전혀 없는 것 같은 존재, 알 듯 말 듯 영 아리송한 존재, 그게 중국 인민들이에요"  

 

저자의 생각을 대변하는 소설 속 또 다른 등장인물들은 이에 대해 수천 년에 걸친 황제 권력에 대한 절대주의, 신성주의가 중국인들의 영혼에 아로새겨져 그들만의 DNA가 되어 오늘날까지도 권력 순응주의, 권력 굴종주의가 되어버린 것이 아닌가 싶다는 말을 하며, 중국 정부뿐 아니라 일반 국민들까지도 중국의 분열 - 대만을 비롯해 꾸준히 독립을 요구하는 각 자치민족들 - 에 대해 두려워하는 것에 대해서도 그들의 그런 생각은 중국의 긴 역사를 통해 경험적으로 얻어진 것이며, 중국의 역사를 한마디로 하면 여러 나라로 갈라져 있다가, 전쟁을 하며 수없이 죽고, 통일을 하고, 다시 갈라졌다가 또 전쟁을 이르켜 죽을 만큼 죽고, 통일을 하고, 엎치락뒤치락 그 연속이었었기에 나라가 여럿이면 반드시 천하대란이 일어나고, 그러면 자기들은 틀림없이 목숨을 잃게 된다는 식의 '분열을 두려워하는 공포'가 중국인들의 DNA가 된 것이라 말하고 있지요.

 

이 책은 이처럼 중국의 역사에 관해서도 적지 않은 것들을 이야기해주고도 있습니다. 마오쩌둥이 현대의 중국 젊은이들에게서조차 '신'이라는 호칭을 부여받고 있는 계기와 이유, 그리고 '천하 통일 · 문자 통일 · 만리장성' 등의 업적을 남긴 진시황에 대해서도 오히려 그의 가장 큰 업적은 어쩌면 폭정을 하면 백성들의 힘에 왕조는 반드시 망한다는 시범을 보인것이 아니겠냐는, 즉 잘한 일도 많고 잘못한 일도 많은, 역사학자들이 오랫동안 뜯어먹기에 딱 알맞은 인물이라는 흥미로운 표현등과 같이 작가가 이 소설을 위해 참으로 많은 것을 준비하고 공부하셨었다라는 걸 소설 곳곳에서 쉽사리 느낄 수도 있더군요. 또한 저자는 이처럼 중국의 역사에 대한 서술 뿐만 아니라, '결국 모든 문화유산이란 황제나 귀족들의 노고나 업적이 아니라 천대받으며 산 미천한 사람들의 피땀이에요. 그래서 문화유산은 더 소중한지도 모르지요. …… (이렇듯)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문화재는 선대의 피를 먹고 이루어져 후대에게 덕을 보인다'와 같은 구절을 통해 수천 년 전 앞서 간 이름없는 일반 백성들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중국 경제 또한 '중국이 마술을 부리듯 G2가 된 것은 공산당이 정치를 잘해서가 아니었다. 1억여 명의 근로자들이 싼 인건비에 몸을 내맡기며 각종 제조업에서 그들의 솜씨를 발휘했고, 2억 5천여의 농민공이란 사람들이 그보다 더 헐값의 돈에 그들의 솜씨를 판 결과'였다는 통시적 시사점까지를 읽는 이들에게 일깨워주고 있기도 합니다.

 

중국이 비록 외환보유고로 인해 G2의 지위를 얻게 되었고, 몇년 후면 드디어 G1의 자리에 서게될 것이란 전망도 있지만, 이들의 1인당 GDP는 여전히 개발도상국 수준인 5,000불에 머물고 있으며 이러한 사실이 서방 선진국들이 중국에 대해 일정 수준의 책임감을 요구하는 데 비해 중국은 여전히 자신들은 개발도상국임을 주장하는 근거가 되고 있기도 하지요. 이러한 상반된 모습은 중국 내부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는데, 힘들게 살아가는 대부분의 일반 국민들에 비해 권력층의 호사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호화스럽다라고 소설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권력층/관리들이 많은 돈을 축적할 수 있었던 이유는 중국 특유의 '꽌시 문화'로부터 기인하는데, 우리말로 하면 '인맥'쯤이 될 꽌시는 그야말로 안되는 것을 되게하며, 되는 것을 안되게도 할 수 있는 엄청난 것으로 내내 묘사되고 있더군요. 그러한 꽌시는 여지없이 뒷돈의 거래로 유지되고 있으며, 미국의 어떤 기자가 이러한 검은 뒷거래를 일컬어 '상호 존재의 조건'이라고 표현했다는 구절이 나오기도 합니다. 이는 민간업자와 공무원간의 뒷거래뿐만 아니라 실무급 공무원과 그 윗선, 그리고 더 윗선 등의 공무원들간에도 흔히 일어나고 있는데 이를두고 그 기자는 '다 같이 때 묻자'하는 공범의식이며, 어쨌거나 국민은 안중에 없이 공무원들이 그런 식으로 맘대로 해먹는 건 이 지구상에 중국밖엔 없을 것이란 조소어린 비난을 담고 있는 말이기도 하지요. 허나 세계적으로도 정보력이 뛰어난 중국 정부가 (부패한 관리들때문에 중국에 커다란 위기가 닥칠지도 모른다라는) 외국의 비판을 모를 리 없을 뿐만 아니라 관리들이 그러한 부정부패는 거울 속 들여다보듯 환히 알고 있는데 그러면 중국 정부는 왜 그러한 부정부패를 척결하지 못하느냐 묻는 건 지극히 서양식의 논법일 뿐, 거대한 조직이 움직이려면 조직원들의 절대충성이 절대요건이며 그 절대충성은 관리들의 적당한 타락을 또한 적당히 묵인하는 것, 그게 독재정권을 유지하는 수천 년 동안의 요령이고 전통임을 중국 정부는 알고 있고, 그러하기에 중국 정부는 아직은 나라가 망할 정도의 부패는 아니라고 느긋하게 대응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이처럼 '경제력과 정치민주화'의 측면에서 선진국의 조건을 규정하고 있는 서방 세계와는 달리 중국 사람들은 자신들 앞에 펼쳐지고 있는 현재 중국의 발전상들이 그저 황홀할 뿐이며, 이러한 황홀한 성취를 이룩하게 해준 것은 다름아닌 공산당이기에 당은 자신들에겐 고마우면서도 두려운 존재일 수 밖엔 없고, 따라서 자신들의 서양식 민주주의를 이식하려하는 서방의 시도에 대해 '천안문 사태'와 같은 강력한 진압을 중국 정부는 일반 국민들의 커다란 저항감없이 할 수 있었었다는 분석을 내리고도 있습니다. 그러니 관리들의 타락과 횡포가 심해지고, 날로 심해지는 빈부 격차, 그리고 차츰 강화되어 가는 민주의식 등이 결합해 중국에서도 민주화 투쟁이 곧 일어날 것이며 이후 민주주의가 중국 땅에서도 실현될 것이라 예상하는 서방의 시각은 그야말로 자기중심적이고 일방적인 주장이고 판단일 뿐이라는 것이지요.

 

영국으로부터 홍콩의 주권을 돌려받았던 것을 기념하여 내놓은 '백년고독'이란, 제가 참 좋아하는 중국술이 있습니다. 뒤에 씌여져 있는 설명의 글을 읽어보고는 과연 중국인들에게 홍콩을 영국에게 빼앗겼던 지난 100년이 '고독'의 시간이었었던가하는 의문을 가지며 그들의 아픈 역사에 애처로움을 느끼기도 했었었습니다만, 그 애처로움은 이내 곧 그 술조차 일본의 어느 술병 디자인을 그대로! 카피한 것임을 알게되고는 예의... '얘네들 도대체 뭐야?' 하는 생각을 갖게 해주었었죠. 어쨌든 영국은 아편전쟁에서 승리해 중국으부터 100년 동안 홍콩을 조차했을 때, 그 100년이란 세월이 얼마나 긴 세월이며, 당대 사람들이 다 죽어버린 그 세월뒤에는 지난 일은 흐지부지되는 게 인간사이기도 하니 홍콩은 영원히 자기네들 땅일 것이라 생각했었었지만, 중국의 지도자 덩샤오핑은 서로 기분 상할 말 한마디 하지 않고 그저 오래 묵은 서류를 내밀며 손가락으로 그것을 가리키기만 했었었고, 영국은 그 오래된 서류앞에서 어쩔 수 없이 홍콩을 중국에 내주어야 했다고 합니다. 영국이 물러나고 홍콩을 되돌려 받은 중국은 이른바 일국양제(一國兩制), 즉 홍콩을 중국 영토로 하되 경제체제는 그 전 그대로 자본주의를 지속시칸다는 것을 온 세상에 천명했으나, 홍콩의 중국인 부자들은 그 말을 믿지 않고 돈을 싸 짊어지고 외국으로 줄행랑을 치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캐나다 밴쿠버에 갑자기 중국인촌이 생겨나기도 했다라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중국 정부의 말을 믿지 않고 외국으로 도피한 그들의 행동은 사회주의 중국이 건설되면서 부자들이 가차 없이 당했던 역사 체험에서 비롯된 것이었으나 중국 정부는 그 약속을 어김없이 잘 지켰을 뿐 아니라 부자들까지 당원으로 입당시켜 주는 획기적인 조치를 취했는데 그건 그야말로 '중국식 사회주의'가 아니라 '중국식 자본주의'의 탄생을 의미했다는 것이지요.

 

허나 이러한 '중국식 자본주의'의 기원은 사실 훨씬 더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사마천의 「사기」에 이미 '자기보다 10배 부자면 헐뜯고, 자기보다 100배 부자면 두려워하고, 자기보다 1,000배 부자면 고용당하고, 자기보다 10,000부자면 노예가 된다'란 구절이 있듯이 그때 이미 중국은 돈이 인간사회를 어떻게 지배하고 있는지, 돈이 인간사회에서 얼마나 큰 권력으로 작용하고 있었는지를 알고 있었었으며, 비록 정치제도는 봉건주의였으나 경제구조는 그때 이미 자본주의 형태였다라고 저자는 말하고도 있습니다. 이러한 중국인의 DNA는 마오쩌둥이 주도한 공산혁명에 의해 잠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게 되지만, 이후 덩샤오핑이 주도한 개혁개방은 그가 인민들을 향해 외친 3대 구호, '첫째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최고다 하는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 둘째 먼저 부자가 되어라 하는 선부론(先富論), 셋째 부자가 되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한 성부강영론(成富光榮論)'에 의해 인민들의 환호와 함께 다시 터져나와 이후 '돈만 쳐다 보고 가자!'나 뒤이어 등장한 '차라리 목숨을 버릴지언정 돈을 놓치지 마라','구걸은 부끄러워도 몸을 파는 것은 부끄럽지 않다'등의 사회적 분위기로 이어졌으며, 이러한 돈을 향한 중국 인민들의 뜨거운 열망들이 뭉쳐져 온갖 제조업에 뛰어들어 험한 일을 해낸 지난 30년의 결과가 비로소 오늘날 중국을 G2로 만들어 낸 것이라 저자는 말하고도 있습니다.

 

이러한 분석을 통해 저자는 비로소 소설의 첫머리에 자신이 '왜 소련은 몰락했는데 중국은 건재한지를 확인했다'는 것의 이유를 밝히고 있지요. 1978년 안후이성에서 있었던 '인간은 본성적으로 사회주의적 존재가 될 수 없고 자본주의적 존재라는 사실'에의 확인을 보여준 사건이 있은 후, 덩샤오핑은 이를 즉각 받아들여 농토는 국가가 소유하고 경작권은 농민들에게 부여하는 이른바 '개혁 개방형 신농법'을 시행하게 되는데, 이로부터 시작된 중국의 농업 생산성 향상은 여전히 집단농장 체제 속에서 물자부족으로 고생했던 소련과 비교되며 이후 '백성을 굶주리게 해서는 권력은 존재하지 못한다는 케케묵은 봉건시대의 정의'가 얼마나 살아있는 진리인가를 20세기에 사회주의 국가들이 생생하게 입증해 보였는데, 이를 두고 저자는 자본주의 형식이 중국 사회주의를 살려낸 역설이라 말하고도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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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에는 급격한 경제 발전으로 인해 졸부가 된 사람들의 이야기도 나옵니다. 그들은 새끼손가락의 손톱을 길게 기르며 그렇게 기르는 것은 '나는  거친 일 아무것도 안 하고 사는 부자다' 하는 신분 과시의 한 방법이며 이를 이쑤시개와 귀후비개로 활용하는 것이 현실 속 그들의 모습이라 말하고도 있지요. 또한 퇴폐 발마사지 단속에 대해 강력한 단속을 하겠다는 정부의 발표에 대해 '나라에 정책이 있으면 우리에겐 대책이 있다.(上有政策 下有對策)'는 말을 하는 종업원의 말을 통해 정말로 14억명의 인구가 살며, 그 안엔 14억 가지의 일들이 벌어진다라는 것을 무척이나 생생하게 알려주고 있기도 합니다. 이것이 소설가에 의해 쓰여진 글이니 당연히 소설이라 불러워져야겠습니다만, 다 읽고 나니 다시한번 이 책이 소설이라기보다는 소설의 형식을 빌린 중국 소개서가 맞다는 생각이 더욱 굳어지게 되더군요. 다만,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으나 수많은 등장인물들에 관한 초중반의 묘사에 비해 그들의 이야기는 너무도 빨리 마무리지어진다는 아쉬움을 떨쳐 버릴 수는 없었습니다. (왕링링의 고의부도나 송재형과 리옌링의 결혼이 대표적 예이지요) 또한 중국에서의 '꽌시문화'란 것에 대해 저도 많이 들었었습니다만, 과연 그것이 소설속에서 내내 묘사되고 있는 것처럼 정말 절대적으로 작용하느냐에 대해선 사뭇 작가의 과도한 도식화가 아니었을까하는 의문을 가져보게도 됩니다만 저 스스로 느꼈었듯 이 책이 단순히 스토리만을 전달하기위한 소설이 아니다란 생각을 해본다라면 그런 점들은 묻어두어도 될만큼 멋진 책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 또한 아니말할 수 없겠네요.

 

 

'세계의 공장'에서 '세계의 시장'으로 전환하고 있는 중국이란 나라. '중국이 각성하면 세계가 흔들릴 것이다'라는 나폴레옹의 말이 과연 근자에 실현될지를 그 바로 옆에 위치한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지켜보아가는 과정 내내 아마도!!! 이 소설로부터 얻은 지식들은 저를 꽤나 흥미로운 관전자로 만들어줄 듯 싶네요. 처음으로 읽어본 이 분의 소설 「정글만리」. '관록'이란 무엇인가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상당히 인상깊은 책이었습니다.  

 

 

 

 

 

 

 

★ More 'Food for Thought' 

- 남경태 著  「종횡무진 동양사」  : 중국과 일본, 그리고 인도의 역사를 간략하고 재미있게 서술해 놓은 책. 그 중 중국사 부분만 따로 읽는다면 이 소설에 등장하는 중국 역사에 관한 이야기들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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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 위화, 열 개의 단어로 중국을 말하다
위화 지음, 김태성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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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비평가들은 나의 언어 서술이 매우 간결하다고 칭찬하곤 했다. 그럴 때면 나는 농담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건 내가 아는 한자가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위화의 이 말이 진짜가 아닐까싶을 정도로 이제 겨우 (이 책을 포함해) 세 권을 읽었을 뿐인 그의 작품들은 '꾸밈'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그야말로 그저 '평범'한 단어들의 나열만으로도 아무나 만들어낼 수 없는 감동을 읽는 저에게 느끼게 해주었지요. '간결하면서도 심금을 울린다'라는 아주 올드한 표현이 아직도 살아 남아있는 이유가 어쩌면 작가 위화를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말이죠. 하지만... 

 

나중에 나의 작품이 영어로 번역, 출판되자 미국의 한 문학 교수는 영어로 번역된 나의 언어가 마치 헤밍웨이의 언어 같다고 말했다.

나는 내 농담을 미국으로 수출하여 이 교수에게 이렇게 말했다.

 

"헤밍웨이도 아는 영어 단어가 그리 많지 않았나보군요"

그의 글은 또한 이처럼 '간결한' 표현 몇 자만으로도 읽는 이로 하여금 잔잔한 웃음을 지어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을 또한 만들어주는 매력이 있기도 합니다. 이 마법같은 필력의 소유자가 자신의 나라, 중국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아주 작정하고 풀어내놓은 것이 바로 '위화, 열 개의 단어로 중국을 말하다'란 부제가 달려있는 이 책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간다」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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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 영수領袖, 독서, 글쓰기, 루쉰, 차이, 혁명, 풀뿌리, 산채, 홀유"... 얼핏 보아서는 뭐가 특별한건지 감이 잘 오지않는, 익숙한 단어도 있지만 지극히 중국스런 단어도, 게다가 산채? 비빔밥???  어쨌든 그는 우선 아쉬운대로 이 열개의 단어로라도 과거로부터 현재까지의 중국을 이야기하겠다고 합니다.

 

1989년 6월 4일의 톈안문 사건은 여러모로 현재에까지도 중국에는 참 여러가지의 의미를 가지고 있나봅니다. 중국 정부는 인터넷 상에서 이 '6월 4일'이 검색에서 완전히 제외되도록 조치를 취했고, 그 대응으로 중국의 네티즌들은 '5월 35일'이라는 자신들만의 우회적인 언어를 만들어냈다더군요. 위화는 자신이 이제까지는 줄곧 '5월 35일'의 방식으로 나름 자유롭게 글을 써왔었으나, 이 책만큼은 '6월 4일'식 글쓰기임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습니다. 

 

아주 오래전 이탈리아의 시인 단테는 "목표를 맞히자 화살이 시위를 떠났네"라는 아주 소박한 시구를 하나 남긴 바 있다. 단테는 인과관계를 가볍게 뒤집음으로써 우리에게 속도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지난 30여년 동안 중국 사회가 경험한 대단히 빠른 변화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 역시 인과관계가 전도된 발정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매일 벌때처럼 모여드는 결과 속에서 살아가지만 이러한 결과를 만들어 낸 원인을 찾는 일에는 무척 소극적이다. 그래서 지난 30여 년 동안 잡초처럼 무성하게 자란 각종 사회갈등과 사회문제가 초고속 경제발전이 가져다준 낙관적인 정서에 가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이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작업은 지금까지의 길을 되돌아가는 것이다. 휘황찬란해 보이는 오늘의 결과에서 출발하여 어쩌면 오늘의 불안이 되고 있는지도 모를 원인을 찾고자 하는 것이다. …… 나는 이 책에서 끊이지 않고 도도하게 흘러가는 당대 중국의 삶의 모습을 열 개의 단어 속에 축약하고자 한다. …… 주제가 둘 다 오늘 날의 중국이긴 하지만 「형제」 는 허구 작품이라 서술에서 우회적 표현이 가능하기 때문에 쉽게 출판할 수 있었지만, 이 책은 비허구 작품이라 서술에서 단도직입적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출판이 불가능하다. 비유하여 말하자면 「형제」는 5월 35일이고, 이 책은 6월 4일인 셈이다.

…………………… 

 

조정래 작가의 「정글만리」를 '매우 실용적인 면의 중국 소개서'쯤으로 요약될 수 있겠다란 생각을 가지고 있기에, 어쩔 수 없이 위화의 이 책을 읽는 내내 제 머릿속에선 「정글만리」속 내용과의 비교가 떠나질 않았습니다. 그 소설 속에서 전대광의 아내 이지선은 중국의 '인민'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을 하고 있지요.

 

인간 평등을 위해 공산주의 혁명을 했다는 사람들이 어찌 저리도 앞뒤 안맞는 행동을 할 수 있을까 싶었고, 인민은 나라의 주인이라고 하는데 그런 역겨운 꼴을 수도 없이 당하면서도 왜 사람들은 한마디 불평도 없이 무표정하게 묵묵히 서있기만 한 것일까. …… 한국이 얼마나 민주화된 인간다운 사회인지를 중국에 와서 비로소 깊이 느꼈던 것이다. …… 인민들 참 묘해요. 분명이 있으면서 전혀 없는 것 같은 존재, 알 듯 말 듯 영 아리송한 존재, 그게 중국 인민들이에요.

 이에 대해 중국인인 위화 역시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늘날 중국어에 '인민'처럼 처지가 이상한 단어가 또 있는지 모르겠다. 인민은 없는 곳이 없으면서도 동시에 사람들에게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인식된다. 오늘날의 중국에서는 관료들만 '인민' 운운하지, 정작 인민들은 이 단어를 입에 올리는 경우가 거의 없다. 어쩌면 모두 이 단어를 잊어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행히 관료들이 침을 튀겨가며 떠벌리는 덕분에 이 단어는 우리에게 자신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항변하고 있는 것이다.

서술의 화자가 외국인이냐 중국인이냐의 차이는 이처럼 한 단어를 사용하는 관점에서도 극명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지요. 이지선의 서술은 '인민은 아리송한 존재이다'라는, 즉 '별 관심없다'라는 의미로 마무리 지어지지만, 위화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인민'은 단어로서뿐 아니라 실제의 존재물로서도로 '존재'하며 1989년의 톈안문 사건이야말로 그들의 존재를 극명히 보여주었던 하나의 역사적 전환점이었다라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당시 북경의 어느 광장에 모여있던 수많은 사람들의 함성을 들었을 때 그가 받았던 감정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지요.

 

그 전까지 나는 빛이 사람들의 목소리보다 더 멀리 전달된다고, 또 사람의 목소리는 사람의 몸보다 에너지를 더 멀리 전달하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스물아홉 살이던 그 밤에 나는 내가 잘못 알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민이 단결할 때 그들의 목소리는 빛보다 더 멀리 전달되고 그들 몸의 에너지가 그들의 목소리보다 더 멀리 전달되는 것이다. 마침내 나는 ' 인민'이라는 단어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이해'는 중국인이 아닌 제 3자에게는 결코 쉬이 느껴지지 않을 그러한 영역이 아닐까싶습니다. 중국인이 아닌 우리에게는 (서양인들에게는 어쩌면 더더욱) 여전히... 빛이 사람들의 목소리보다 더 멀리가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으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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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중국 사회에 대한 그야말로 날 선 비판이 주를 이루는 책은 결코 아닙니다. '날 선'이란 표현은 위화의 글엔 어울리는 형용사가 아니니까요. 이 책을 읽으면서 한 가지 신기(?)했던 경험은 위화의 성장 배경 중 커다란 부분이었던 '문화대혁명'에 관한 여러가지 실제 사건들과, 그 주역이었던 마오쩌둥에 관한 서술들을 읽다보니 어느새 이것이 혹 우리나라의 '유신시대'와 '박정희 대통령'에 관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라는 거에요. 이처럼 두 나라의 비슷한 정치·사회·경제적 성장 배경이 낳은 현재의 결과들 또한 여전히 우리나라에서도 현재진행형인 이야기들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가져보게 되고 말이죠. '우리도 엉망인데...'라 말할 수 있는 지금의 시점에서 굳이 중국인이 말하는 중국에 대한 이야기에 왜 귀를 기울여야하는가란 물음은 최소한 이 책에 관해서만큼은 성립되지 않는다 말하는게 맞을 듯 하네요.

 

어찌보면... 위화 자신의 성장기라고도 할 수 있을겁니다. 작가 스스로가 어떠어떠한 성장사를 가지고 있으며, 그로 인해 그가 이제껏 써낸 작품들 속에서 자신의 모습이 언뜻 비추이기도 한다는 걸 글 곳곳에서 어렴풋이 말해주고 있기도 하거든요. "독서"와 "글쓰기" 편은 상당히 유익했었고, "차이"편은 유난히도 제 감정의 동화를 많이 일으켜 주었었으며, "산채"와 "홀유"를 읽고 나니 얼마 전 조선일보에 실렸던 ('내 책이 중국에서 불법판으로 유통되는 것에 나는 반대하지 않는다'의 내용이 있었던) 그의 인터뷰가 새삼스러이 이해되기도 했었었지요.  

 

………………

 

「정글만리」가 지금 우리의 눈으로 보아지는 지극히 '현실적/실용적'인 면에서의 중국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라면, 이 책은 현재의 중국이 "왜" 이러한 모습을 가지게 되었는가, 그 역사적 인과관계에 관한 아주 간략하나 그 핵심만을 집어놓은 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또한... 이제껏 읽어보았던, 각각 옛날과 현재의 중국을 말하고 있는 위화의 두 작품 「허삼관 매혈기」와 「제7일」의 내용을 새로운 각도에서 이해하게 되었다라는 부수적인 소득도 있었었지요. 작가는 중국의 옛 이야기를 통해서는 '문화대혁명' 당시 (현재의 기준으로 보아 어처구니없다 할 수 있겠는) 중국의 생활상을, 현대의 이야기를 통해서는 (어쩌면)현재 중국의 빈부 격차를 (가장 힘주어)이야기하고싶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제가 그 두 책을 막 읽고났었을 때와는 사뭇 다른 생각들을 갖게도 해주었지요. 

 

위화는 열 개의 단어로는 사뭇 중국의 모든 모습을 다 이야기할 수 없다 말하고 있지만, 제 능력은 위화가 말한 그 열 가지의 단어조차 한 개의 글로 정리해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저... 작가가 현재 자신의 모국인 중국에 대해 어떠한 '가슴아픔'을 가지고 있는가에 관해 이야기했던 몇몇 부분을 제 임의로 편집·인용하는 것으로 이 감상문을 마칠까 합니다.

 

아래의 글은 온전히 위화의 글이며, 또한 온전히 중국에 대한 내용들을 말하고 있습니다만, 이를 다시 옮기면서 읽어보니 (다시한번) 글쎄요... 이게 과연 '중국만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까하는 커다란 의문이 생겨나네요. '문화대혁명, 마오쩌둥, 덩샤오핑' 이 세 단어에 해당하는 (저와 비슷한 세대의 분이라면 그 누구나 똑같은 연상의 결과를 가지게 될꺼라 믿어 의심치않는) 동치의 고유명사를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의 역사, 그리고 지금의 현실. 여러분은 과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위화를 좋아하는 당신이라면 그의 소설들을 읽기 전에 이 책을 꼭 먼저 읽어보시길, 위화를 모르는 당신이라면 이 책을 통해 분명 그를 좋아하게 될꺼란 예감... 을 마지막으로 꼭 덧붙이고 싶네요.)   

 

사회형태의 각도에서 볼 때, 문화대혁명 시기가 아주 단순한 시대였던 데 비해 오늘날은 대단히 혼란스럽고 복잡한 시대이다. 마오쩌둥이 말한 "우리는 적이 반대하는 것을 옹호해야 하고 적이 옹호하는 것을 반대해야 한다"라는 한마디로 문화대혁명 시대의 기본적인 특징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문화대혁명 시대기는 이처럼 흑백이 분명한 시대였다. …… 마오쩌둥 시대는 비록 생활이 궁핍하고 인간 본성에 대한 압박이 심했지만 보편적인 잔혹함이나 생존경쟁은 없었다. 단지 공허한 계급투쟁이 있었을 뿐이었다. 사실 당시의 중국에는 계급이 존재하지 않았다. 때문에 이런 투쟁은 그저 구호로 그칠 수밖에 없었다. 그 시대 사람들은 의식주를 절약하면서 함께 어울리며 무난하게 지냈다. 모두 조심스러워히긴 했지만 대체로 평안하게 일생을 보낼 수 있었다. …… 하지만 오늘날의 중국은 완전히 다르다. 극심한 경쟁과 거대한 압력이 수많은 중국인의 생활과 생존을 전쟁으로 만들고 있다. 이러한 사회환경에서는 자연스레 약육강식의 논리와 함께 호화스러운 사치 추구와 온갖 부당한 속임수가 유행한다. 따라서 자신의 본분에 만족하면서 소박하게 사는 사람들은 항상 도태되고 담이 큰 사람들만 성공한다. 가치관의 변화와 재화의 재분배가 사회분열을 조성하고 사회분열은 사회충돌을 가져온다. 오늘날의 중국이야말로 계급과 계급투쟁이 만연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 마오쩌둥 이후에는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를 잡는 고양이가 훌륭한 고양이다"라고 한 덩샤오핑의 말이 오늘날 변화한 시대의 기본적 특징을 잘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덩샤오핑의 이 한마디는 마오쩌둥의 사회 가치관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 이 한마디는 중국의 경제발전에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사이의 논쟁을 종식시켜주기도 했다. …… (그 덕에) 중국은 지난 30여 년 동안 세계가 주목할 만한 기적적인 경제성장을 이루어냈다. …… 하지만 이런 영광스러운 통계수치의 이면에는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수치가 또 하나 있다. 국민들의 연평균수입이 여전히 세계 백 위라는 사실이다. …… 이런 통계수치는 오늘날 우리 중국인들이 균형을 잃은 사회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민간의 용어를 빌려 말하자면 우리는 국가는 부유하고 백성은 가난한 나라에서 살고 있다. …… (이러한) 사회생활의 불균형은 필연적으로 꿈의 불균형을 가져온다. 거의 10년 전 …… 어린이날에 CCTV는 중국 각지의 어린이들을 인터뷰하면서 어린이날에 가장 받고 싶은 선물이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이때 베이징에 사는 한 남자아이는 진짜 보잉 여객기를 갖고 싶다고 말했고 서북 지방에 사는 한 여자아이는 몹시 수줍어하는 표정으로 흰색 운동화를 받고 싶다고 말했다. 같은 나이대의 두 아이가 꾸는 꿈이 이렇게도 큰 차이가 났다. 서북 지방에 사는 아이에게는 그 흔한 흰색 운동화를 받는 것이 베이징에 사는 남자아이가 진짜 보잉 여객기를 받는 것만큼이나 머나먼 꿈이었다.

 

…………………

 

오늘날의 중국은 격차가 몹시 심한 나라가 되었다. 우리는 이런 현실속에서 살고 있다. 한쪽은 휘황찬란하고 평탄한 길이며 다른 한쪽은 각박하고 가파른 절벽 길이다. 어쩌면 우리는 아주 이상한 극장에 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곳은 같은 무대에서 절반은 희극을 공연하고 절반은 비극을 공연하는 극장이다.

 

 

★ More 'Food for Thought'

- 조정래 著, 정글만리 1·2·3」 : 이방인의 눈으로 본 현재의 중국.

 

★ (읽어본) 위화의 다른 작품들 :  허삼관 매혈기」 · 「제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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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만 보는 바보 진경문고 6
안소영 지음 / 보림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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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유시민은 '삶은 나의 의지로 주어진 것이 아니지만'이란 말을 했습니다. 경제학의 동학모형에서도 연구자의 의도대로 설정되어지는 initial point가 어디냐에 따라 그 모델이 되는 경제가 나아가는 길이 많이 달라지게 되는 것을 보여줍니다만, 그것이 한 사람의 일생, 더 나아가 '그'로 인해 세상에 태어나게 될 그 후대의 사람들에게까지를 고려하여야 하는 것이라면, 한 개인에게 주어지는 세상의 첫 initial point는 그 어떤 것보다 더욱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서울에서 태어났고, 교육의 중요성을 충분히 아시는 부모님 슬하에서 자라났으며, 다행히도 저의 부모님은 경제적으로도 저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거의 모든 것을 뒷받침해주실 수 있으셨었다'란 저의 그 initial point야말로 어쩌면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가장 (어쩌면 '모든'일 수도 있겠는) 중요한 요인이었음을 저는 결코 부인할 수 없습니다. 간혹가다 "개천에서 난 용"의 이야기를 듣고 보게도 됩니다만, 모든 개천에서 다 용이 나오는 것이 아니듯, 또한 저 스스로 제가 만약 그 개천에서 태어났었더라면 '그래도 난 용이 될 수 있었을거야'란 호기는 도저히 제 것이 될 수 없다라 자인할 수 밖엔 없기 때문이지요.

 

요즈음도 그러할진데, 신분 사회가 개개인을 옭아매고 있었던 조선 시대에는 오죽했었겠습니까. 이 책의 주인공 이덕무 또한 서자 집안의 아들로 태어난, 자신이 품고 있는 뜻과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으로도 더 이상은 어찌할 수 없는 신분 제도의 벽에 가로막혀 살아야하는 '자신의 의지로 주어진 것이 아닌 삶이 지닌 근원적인 한'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지요. 그는 자라나면서 옛 성현들의 가르침인 삼강오륜조차도 서자 출신인 자신에게는 지켜낼 수 없는 이상에 불과함을 깨닫게 됩니다. 

 

군신유의 - 의리로써 임금을 대할 기회가 (서자인) 나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다. 벼슬길에 나아갈 수 없는 나에게 군주는 그저 아득히 먼 존재일 뿐이었다.

부자유친 - 아비로서의 지극한 정으로도, 나와 같은 처지를 아들에게 물려주어야 하는 현실을 바꿀 수는 없었다. …… 아버님과 나에게는, 그리고 나와 나의 아들에게는, 부자로서의 친근함 이전에 흐르는 감정이 있다. 서자의 처지라는 공통의 운명을 짊어지고 살아야 하는, 서로에 대한 안쓰러움이다.

장유유서 - 우리 같은 서자 출신은 머리가 허옇게 센 노인이라도, 본가의 어린아이에게까지 존댓말을 써야 한다. 

하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듯이 그는 삼강오륜의 "붕우유신"을 통해 다음과 같은 위로를 받지요.

 

벗과 벗 사이에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오륜이 나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에게도 공평하게 한자리를 내어 주는 것은 오직 이 항목뿐이다. 임금과 신하, 아버지와 아들, 남편과 아내, 어른과 아이, 사람들 사이의 어떠한 곳에서도 우리가 마음 편히 있을 자리는 없었다. 우리가 사람다운 대접을 받고,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것은, 오직 마음에 맞는 벗들과 함께 있는 그 순간뿐이었다.

네... 이 책은 정조 시대를 살았던 이덕무란 사람의 자서전인 「간서치전」을 중심으로 이덕무와 그의 벗, 스승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 편의 소설처럼 다져낸 책입니다. 예닐곱 살때부터 책을 가까이 했던 그는 나이가 들어서도 책읽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으며, 등불을 마음대로 켤 수조차 없었던 빈궁한 삶이었기에 해가 드는 동안이면 방에 뚫린 동,남,서편의 창에서 들어오는 해를 따라 책상을 옮겨가며 책을 읽었다하여, 사람들로부터 '간서치(看書痴)' 즉, '책만 보는 바보'란 별명을 얻게 되었지요.

 

이 책 「책만 보는 바보」의 저자는 어느 날 만났던 이 「간서치전」속의 이덕무에게 뭔가 모를 동질감을 느꼈고, 그래서 이 책을 쓰게 되었다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저자는 "사실로 문살을 반듯하게 짠 다음 상상으로 만든 은은한 창호지를 그 위에 덧붙여 문을 내"듯 이 책을 썼다라 말하고 있는데, 책을 읽으면서도 또한 다 읽고나서도!!! 저자의 '창호지'가 너무도 은은하고 그윽했었다는 감탄을 금할 수가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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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내용은 사실 별 것 없습니다. '백탑(원각사지 십층석탑)'을 중심으로 근처에 살고 있던 이덕무와 그의 벗들인 박제가, 유득공, 이서구, 백동수, 그리고 이들이 스승으로 모셨던 박지원과 홍대용, 이들간의 우정과 이들이 품었던 이상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보여주는, 조선 시대판 '성공스토리'라고나 할까요? 이덕문의 벗들은 이서구를 제외하고는 모두들 서자 집안의 출생들이었지요.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출생 신분에 주저앉지 않고 요새말로 하자면 '끝없이 학문의 길에 정진하여' 드디어 관직을 받게 되고, 더 나아가 임금이었던 정조의 사랑까지 받는 그야말로 해피엔딩의 전형을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 안소영C가 입힌 '은은한 창호지'는 이 뻔한 스토리를 너무도 잔잔한 감동으로 받아들이게 해준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이야기하고 싶네요.

 

벗들과의 '우정'이 주된 스토리이기에 책의 곳곳에는 그야말로 '남자들의 우정'에 가슴 찌릿한 부러움을 자아내는 구절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중, 생계문제로 인해 이들을 떠나 혼자 북쪽 지방의 기린협이라는 산골로 떠나게 된 백동수를 보내며 박제가가 쓴 편지의 한 구절은, '살기는 이루말할 수 없이 더 좋아졌고,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는 통로도 훨씬 더 많아진' 요즈음의 세상에 과연 이런 우정이 있을까싶은 생각을 하게 해주더군요. 

 

"하늘 아래 가장 고귀한 우정은 가난할 때의 사귐이라 합니다. 벗과의 사귐은 술잔을 앞에 두고 무릎을 맞대고 앉거나 손을 잡는 데에만 있지 않습니다. 차마 말하고 싶지 않은 것도 저절로 말하게 되는 것, 여기에 벗과의 진정한 사귐이 있습니다. …… 우리도 그대에게, 말하고 싶지 않아도 저절로 말하게 되는 벗이었습니까? …… 벗이여, 떠나십시요! 저는 지난날 가난 속에서 벗의 도리를 깨달았습니다. 그렇지만 그대와 저의 사이가 어찌 가난한 날의 벗에 불과하겠습니까?"

 

 ……………………

 

 

이 책의 어디까지가 '문살'이고 어디부터가 '창호지'인지 저는 알 수 없습니다만, 저자가 다듬어낸, 일생을 마감하는 즈음 이덕무의 다음 고백은 이러한 선조들이 내가 태어난 땅, 몇백 년전에 살다갔었음을 자랑삼아 여길 수 있게, 그리고 또한 '살기는 이루말할 수 없이 더 좋아졌고,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는 통로도 훨씬 더 많아진' 현재를 살고 있는 '나'는 그럼에도... 이런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살아왔음을 부끄러운 마음으로 되돌아보게 해주네요. 이 책... 참 좋습니다. 종원군이 중학생이 되면 아마도 이 책을 가장 먼저 그에게 건네주게될 듯 싶을 정도로 말이죠. 그리고 한번만 더 '다시 한번!!!' 이 책에 붙여놓으신 그 '은은한 창호지'의 매력에 푸욱~ 빠지게 해준 저자 안소영C에게도 감사의 말씀을 빼놓을 수는 없겠고 말이죠. 

 

"근심 걱정으로 마음이 괴로울 때 책을 읽으면, 눈과 마음이 책에 집중하면서 천만 가지 근심이 모두 사라진다"하셨던 이덕무 선생의 독백이 책을 읽는다라는 것이 나의 근심을 해결해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어쩌면... 요즈음의 '저'를 옛 사람인 그가 바로 곁에서 지켜보고 있다 건네어준 한 마디같아 나름 많은 위로를 받기도 했습니다. '책만 보는 바보'까지는 될 수 없겠지만, 다시 한번... 왜 이제껏 이런 즐거움을 알지 못하고 지내왔던건지 또 아쉬움의 후회를 가져보게 되네요. 

 

 

옛 사람들로부터 나는, 그들의 시간을 나누어 받기도 한다. 옛 사람들이 살아온시간이 오롯이 담겨 있는 책들, 그들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묻어 있는 산과 들을, 내 안에 스며 있는 그 시간들을 느낄 때면 나는 그들과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어떻게 그런 일을 겪을 수 있었을까, 나라면 그 순간 이런 마음이었을 텐데하며, 겪어 보지 못한 아득한 옛일이지만 나도 모르게 눈물이 샘솟듯 흘러나오는건, 내 안이 이미 그 시간이 스며든 까닭일 것이다. …… 나도 옛 사람들에게, 나의 시간을 나누어 주기도 한다. 그들의 소망이 나의 삶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 있다면, 옛사람들은 그만큼의 시간을 더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 아버님의 시대보다 나의 시대가 더 나아졌듯, 나의 아들들의 시대는 좀 더 나아지리라. 머지않아 세상에 태어날 나의 손자의 시대는 더욱 그러하리라. 우리의 후손은 못난 조상처럼, 소중한 삶을 탄식과 분노로 오랫동안 소모하지는 않을 것이다.

 

 

 

★ More "Food for Thought"

 - 유시민 著, 「청춘의 독서: 유시민, 그에게 '삶의 이정표'가 되어주었던 책들이 선사해준 교훈의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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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쇼몽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61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지음, 김영식 옮김 / 문예출판사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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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가 막히도록 멋진 열 일곱편의 단편 소설 모음집입니다. 일일이 그 내용을 소개하기보다는, 인상 깊었던 몇몇 구절들과 그 소설로부터 생겨난 저의 생각들을 간단하게 적어보는 것으로 이 책에 대한 감상문을 대신하겠습니다. 그야말로... 천천히. 여러 번. 자근자근. 그리고 깊게 더 깊게 읽고 생각해보아야 할, (다시한번만 더) 그야말로... 사람의 속마음에 대해 써놓은 것으론 "이건 정말 예술이잖아!!!"라 소리치고 싶은 소설들이네요.

 

…………………

 

 

【 라쇼몽 】  

 

『하인은 무엇보다 당장 내일 먹고살 궁리를 어떻게든 해보려고, 즉 어찌할 바가 없는 것을 어떻게든 해보려고, 종잡을 수 없는 생각을 더듬어가며 아까부터 주작대로에 내리는 빗소리를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듣고 있었다. …… 어찌할 바가 없는 것을 어떻게든 해보려면 수단을 가릴 겨를이 없다. 그러다간 토담 밑이나 길바닥에서 굶어 죽을 뿐이다. ……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면 …… 그러나 이 '......않는다면'은 시간이 흘러가도 끝내  '......않는다면'에 머물렀다. 하인은 수단을 가리지 않겠다고 마음은 먹었지만, 이 '......않는다면'을 완결하려면 당연히 그 뒤에 붙어야 할 '도둑이 될 수밖에 없다'라는 것을 적극적으로 긍정할 만한 용기가 나지 않았다.』

 

선과 악의 갈림길. '자신의 생존을 위함'이란 이유는 그 갈림길에서 악의 길로 접어드는 순간을 정당화 시켜줄 수 있는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있을까? 자신 스스로는 그렇다 할 수 있을지언정, 한 인간이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해 혹은 저지르고자 마음 먹은 죄에 대해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정당성을 과연 타인의 시선에서도 정당하다 말할 수 있는걸까?  

◀ '어찌할 바가 없는 것을 어떻게든 해보려고'... 이 문장에서 문득 김동인의 「발가락이 닮았다」가 떠오르다.

 

 

【 코 】  

 

『인간의 마음에는 서로 모순된 두 가지 감정이 있다. 물론, 누구라도 타인의 불행을 동정한다. 그러나 그 사람이 불행을 어떻게라도 극복하게 되며, 이번에는 그것을 바라보던 쪽에서 웬지 섭섭한 마음이 된다. 조금 과장하여 말하자면, 다시 한 번 그 사람을 같은 불행에 빠뜨리고 싶다는 마음조차 생긴다. 그리고 어느 사이에, 소극적이기는 하나, 어떤 적의를 그 사람에게 품게 된다.』

 

◀ '지금'의 나는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에 만족하고 있는가? '과거'의 내가 '과거'에 가지고 있던 모든 것들에 비해 '지금'의 나는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로 인해 더 행복해져 있나, 아니면 오히려/안타깝게도 더 불행해져 있는걸까. 

 

 

【 의혹 】  

 

『아내는 산 채로 불에 타 죽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 나는 거듭하여 무언가 외쳤습니다. "죽어!"라고 말했던 것 같습니다. "나도 죽을게"라는 말도 했던 것 같습니다. …… 나는 손에 닿는 대로 주위에 떨어진 기와를 들어 아내의 머리를 계속 내리쳤습니다. …… (하지만) 저는 혼자 살아남았습니다. …… 불과 연기에 쫒기면서 언덕처럼 길을 막아버린 집들의 지붕 사이를 빠져나가 간신히 위태로운 목숨을 건졌습니다. …… 대지진 때 내가 아내를 죽인 것은 과연 어쩔 수 없던 것이었을까? 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내가 아내를 죽인 것은 애초부터 죽이고 싶은 마음이 있어 죽인 것은 아니었을까? 대지진은 단지 나를 위해 기회를 준 것은 아니었을까?  …… 그때 내 기억에 선명하게 떠오른 것은, 당시 내가 아내 사요를 내심 미워하였다는 저주스런 사실이었습니다. …… 대지진과 같은 흉변이 일어나 일체의 사회적인 속박이 지상에서 모습을 감춘 때, 어찌 그것과 함께 내 도덕심도 균열을 일으키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어찌 내 이기심이 불길을 올리지 않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나는 여기에 이르러 역시 아내를 죽인 것은, 죽이고자 죽인 것이 아니었던가? 하는 의혹을 인정해야 했습니다.』

 

◀ 이광수의 「무정」, 그 비극적 결말의 버젼.  

 

 

【 귤 】  

 

『터널 속의 기차와 시골뜨기 소녀와, 그리고 또 진부한 기사로 가득 찬 석간..., 이것이 상징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해할 수 없고 저급하며 지루한 인생의 상징이 아닌 무엇이겠는가. …… 나는 이때 비로소 알 수 없던 피로와 권태를, 그리고 또 이해할 수 없고 저급하며 지루한 인생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 하루의 피로는 박카스 한 병을 마시면 해결된다는 걸, 하지만 일상의 피로는 무엇으로 풀 수 있을지 알 수 없으나 때로는 약국에나 가야 살 수 있는 박카스보다 더 쉬이 나의 주변 어디에서나 찾아지기도 한다는 걸... 다시한번 더, '하지만' 그 방점은 예의 "잠시나마"에 있을지도.

 

 

【 지옥변 】  

 

말하자면 그 그림의 지옥은, 일본 제일의 화공 요시히데 자신이 언젠가 떨어질 지옥이었습니다. …… 불은 순식간에 수레 지붕을 휘감았습니다. …… 무의식중에 수레 쪽으로 달려가려던 그 남자, 요시히데 …… 의 얼굴에는 마음속에 휘몰아치는 두려움과 슬픔과 놀라움이 역력히 드러났습니다. 목이 잘리기 전의 도적이라도, …… 그렇게까지 괴로운 얼굴은 아니었을 겁니다.  …… 병풍이 완성된 다음 날 밤에, (요시히데는) 자기 방의 들보에 밧줄을 매달고 목메어 죽었던 것입니다.

 

◀ 이 세상 <그 어떤 것, 그 무엇>이라도 희생할 수, 그렇게 해서라도 꼭 얻고 싶은 그 '무엇'. <그 어떤 것, 그 무엇>을 얻을 수 있는 조건이 인간이 견뎌낼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는 상황이 된다면? "만약" 그 상황이 "어쩌면.하며" 자신이 두려워했던 것"이라면"?    

◀ 이 세상 <그 어떤 것, 그 무엇>이라도 버릴 수 있는, 그렇게 해서라도 꼭 얻고 싶은 그 '무엇'. <그 어떤 것, 그 무엇>을 얻을 수 있는 조건이 인간이 견뎌낼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는 상황이 된다면? "설혹" 그 상황이 "차라리.하며" 자신이 원했던 것"일지라도"?   

 

 

【 미생의 믿음 】  

 

나는 현대에 태어났지만, 뭐 하나 의미 있는 일을 이루지 못했다. 밤낮으로 멍하니 꿈만 꾸는 세월을 보내면서, 그저 무엇인가 다가올 불가사의한 것만 기다리고 있다. 마치 미생이 어두컴컴한 저녁에 다리 밑에서 영원히 오지 않을 연인을 언제까지나 기다렸던 것처럼...

 

◀ 올 것은 기어이 오고, 오지 않을 것은 여하하여도 오지 않는다. 인정할 건 인정하자. (이 놈의 로또... --;;)

 

 

【 가을 】  

 

입 안의 비린내는 여전히 가시지 않았다. …… 노부코에게는 기다린다고는 확실히 말할 수 없지만 어렴풋이 무언가를 기다리는 마음이 있었다. …… "자고 있네. 달걀을 사람에게 빼앗긴 닭이..." …… 노부코는 잔혹한 기쁨을 느끼면서 ……, 테루코의 눈 안에는 억누를 수 없는 질투의 감정이 ……

 

◀ 남자는 잘 모른다. 그런데도 이런 말을 하곤 한다. "자고 있네. 달걀을 사람에게 빼앗긴 닭이..."  

◀ 남자는 모르는 척을 잘한다. 그러니까 이런 말을 하곤 한다. "자고 있네. 달걀을 사람에게 빼앗긴 닭이..." 

 

 

【 덤불 속 】  

 

◀ 약간, 아!!!주 약간만의 위치 변화로도 내가 찍은 사진은 다른 색감을 나타내  보여준다. 하물며... 세 사람의 입에서 나온, 그들만이 아는 '그 때 그 시절'의 이야기야...

 

 

【 남경의 그리스도 】  

 

금화는 털투성이의 손님 입에 그녀의 입을 맡기면서, 단지 타오르는 듯한 연애의 환희가, 비로소 알게 된 연애의 환희가 강렬하게 그녀의 가슴속에 차오르는 것을 느낄 뿐이었다. ……  "예수 그리스도는 아직 한 번도 중국요리를 먹은 적이 없단다." 남경의 그리스도는 이렇게 말하자마자, 천천히 자단목 의자에서 일어나 멍하게 앉아 있는 금화의 볼에 어깨 너머로 부드러운 입맞춤을 하였다.

 

◀ "Sometimes,

     Something wonderful

     Happenes to

     Somebody who really deserves it ... like YOU!"

 

고딩 시절, 연애편지에 많지는 않지만 한두 번은 아니게, 적어도 너댓 번쯤은 족히 썼었을 작업 문구였었다.   '한두 번'이 아니었다라는 건... 아마도, (후~) 여전히!!! "나만" 아는... 거라는 거. 허나 정말 중요한 건...   (다시 한번 더) 여전히 그녀.들은 그녀 자신이 위 문구가 적힌, '나'를 발신인으로 한 편지... 의 유일한 수신인이라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라는)거라는 거.

      

 

 

【 오도미의 정조 】  

 

글쎄, 몸은 맡긴다는 것은 말이야, 여자 일생에 아주 큰 일이지. 그런데 아가씨는 고양이 목숨과 바꾸려고..., 그건 아무래도 터무니없는 행동 아닌가? …… (그거야) 나비도 사랑스럽고, 마님도 생각한 건 틀림없지. 그래도 단지 나는 말이야... 뭐리고 하면 좋을까? 단지 그때는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들어서 말이야. …… 20년 전의 비 오던 날의 기억은, 이 순간 오도미의 마음에 애절할 정도로 확연히 떠올랐다. 그녀는 그날 무분멸하게도 고양이 한 마리를 구하기 위해 신공에게 몸을 맡기려고 하였다. 그 동기는 무엇이었던가...? 그녀는 알지 못했다.

 

◀ 남자도 모르는데... 여자도 모른다 한다. (아무도 없는 동네, 어두컴컴한 집 안에 젊은 남녀 둘이 마주쳤다. 더구나 밖에는 비가 내린다... : <작품 해설 중>)

    하지만...  남자는 여자가, 여자는 남자도 다 알고 있을꺼라 미루어 짐작한다. 최소한!!! 남자가 모르는 건 사실일거다왜? ... 나는 남자.밖엔 되어보지 않았으니까. 

 

 

【 인사 】  

 

어느 여자의 기억..., 오륙 년 전에 마주친 어느 여자의 기억은 그 냄새를 맡기만 하면 굴뚝에서 내뿜는 불꽃처럼 곧바로 되살아났다. …… 그의 마음은 그녀와 마주칠 때의 기대로 가득했다. 마주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마주치지 않기를 원하는 것이 아님은 확실했다. 말하자면 그의 마음은 강적과의 시합을 눈앞에 둔 권투 선수의 마음가짐과 같았다. ……………… 그렇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한순간의 일이었다.

 

◀ '강적과의 시합을 눈앞에 둔 권투 선수'... 경기 전 작전은 15라운드까지 짜놓지만, 실제 경기는 대개!!! 2-3라운드에서 끝이 나고만다. 원래... 그런거.라고들 한다.

    '돌아갈 없는 지난 추억의 다리...', 이를 이 책을 옮긴이는 이렇게 적어놓으셨다.

 

 

【 흙 한 덩어리 】  

 

오스미는 아들의 죽음이 꼭 슬픈 것만은 아니었다. …… 어쨌든 첩첩산중에 길이 하나 뻥 뚫린 기분이었다. …… (며느리인) 오다미의 죽음은 확실히 그녀에게 큰 행복을 가져다주었다. …… 오스미는 아직 일생에서 이 정도로 마음 편한 기억이 없었다. 이 정도로 마음 편한...? 그러나 기억은 확실히 9년 전의 어느 밤을 떠올렸다. 그날 밤에도 이제 한숨 놓았다고 한 것을 생각하면, 거의 오늘 밤과 다르지 않았다. 그것은 피를 나눈 아들의 장례식이 끝난 밤이었다. 오늘 밤은...? 오늘 밤도 손자 하나를 낳아준 며느리의 장례식이 막 끝났다.

 

그렇게... '지금의 불행'도 지나고 나서 되돌아보면 '그나마 행복했던 어느 한 때'로 기억되는 거고, 그렇게... 그런 생각은 모든 것이 다 지나고 난 후에야 드는 것이고.  

 

 

【 세 개의 창 】  

 

말하지 않아 슬픔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슬픔이 없는 것이 아니라, 말할 수 없이 깊은 슬픔이라 말하지 못하는 것이니, 그 슬픔은 그저 두 눈빛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든 혹 저렇게든... 사람이든 혹 사물이든... 모든 것에는 그 '끝'이 있나니, 그 모든 '끝'은 오로지 모두 아쉬웁기만 할 뿐.   

 

…………………

 

작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그의 나이 35세 때, 부인의 동창생과 동반자살을 약속하였으나 여자의 변심으로 실패하고는 그 3개월 후, 자택에서 치사량의 수면제를 먹고 자살하였다고 합니다. 그는 유서에서 자살의 이유를 '그저 막연한 불안'이라 썼다 하네요. 우리 대부분이 마음 한 구석에 가지고 있을 그 '그저 막연한 불안'이 우리에겐 자살의 충분한 이유가 결코 될 수 없겠지만 어쩌면, 이런 작품들을 써낼 수 있었던 그,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라면 어쩌면...

 

  

(사진출처 : 네이버 이미지 검색)

 

 

 

     
 

아쿠타가와 일생을 지배한 심정을 한 글자로 표현한다면 '수(愁)'가 아니었을까.

 

 
 

- <세 개의 창> 작품 해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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