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 위화, 열 개의 단어로 중국을 말하다
위화 지음, 김태성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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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비평가들은 나의 언어 서술이 매우 간결하다고 칭찬하곤 했다. 그럴 때면 나는 농담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건 내가 아는 한자가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위화의 이 말이 진짜가 아닐까싶을 정도로 이제 겨우 (이 책을 포함해) 세 권을 읽었을 뿐인 그의 작품들은 '꾸밈'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그야말로 그저 '평범'한 단어들의 나열만으로도 아무나 만들어낼 수 없는 감동을 읽는 저에게 느끼게 해주었지요. '간결하면서도 심금을 울린다'라는 아주 올드한 표현이 아직도 살아 남아있는 이유가 어쩌면 작가 위화를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말이죠. 하지만... 

 

나중에 나의 작품이 영어로 번역, 출판되자 미국의 한 문학 교수는 영어로 번역된 나의 언어가 마치 헤밍웨이의 언어 같다고 말했다.

나는 내 농담을 미국으로 수출하여 이 교수에게 이렇게 말했다.

 

"헤밍웨이도 아는 영어 단어가 그리 많지 않았나보군요"

그의 글은 또한 이처럼 '간결한' 표현 몇 자만으로도 읽는 이로 하여금 잔잔한 웃음을 지어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을 또한 만들어주는 매력이 있기도 합니다. 이 마법같은 필력의 소유자가 자신의 나라, 중국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아주 작정하고 풀어내놓은 것이 바로 '위화, 열 개의 단어로 중국을 말하다'란 부제가 달려있는 이 책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간다」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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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 영수領袖, 독서, 글쓰기, 루쉰, 차이, 혁명, 풀뿌리, 산채, 홀유"... 얼핏 보아서는 뭐가 특별한건지 감이 잘 오지않는, 익숙한 단어도 있지만 지극히 중국스런 단어도, 게다가 산채? 비빔밥???  어쨌든 그는 우선 아쉬운대로 이 열개의 단어로라도 과거로부터 현재까지의 중국을 이야기하겠다고 합니다.

 

1989년 6월 4일의 톈안문 사건은 여러모로 현재에까지도 중국에는 참 여러가지의 의미를 가지고 있나봅니다. 중국 정부는 인터넷 상에서 이 '6월 4일'이 검색에서 완전히 제외되도록 조치를 취했고, 그 대응으로 중국의 네티즌들은 '5월 35일'이라는 자신들만의 우회적인 언어를 만들어냈다더군요. 위화는 자신이 이제까지는 줄곧 '5월 35일'의 방식으로 나름 자유롭게 글을 써왔었으나, 이 책만큼은 '6월 4일'식 글쓰기임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습니다. 

 

아주 오래전 이탈리아의 시인 단테는 "목표를 맞히자 화살이 시위를 떠났네"라는 아주 소박한 시구를 하나 남긴 바 있다. 단테는 인과관계를 가볍게 뒤집음으로써 우리에게 속도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지난 30여년 동안 중국 사회가 경험한 대단히 빠른 변화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 역시 인과관계가 전도된 발정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매일 벌때처럼 모여드는 결과 속에서 살아가지만 이러한 결과를 만들어 낸 원인을 찾는 일에는 무척 소극적이다. 그래서 지난 30여 년 동안 잡초처럼 무성하게 자란 각종 사회갈등과 사회문제가 초고속 경제발전이 가져다준 낙관적인 정서에 가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이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작업은 지금까지의 길을 되돌아가는 것이다. 휘황찬란해 보이는 오늘의 결과에서 출발하여 어쩌면 오늘의 불안이 되고 있는지도 모를 원인을 찾고자 하는 것이다. …… 나는 이 책에서 끊이지 않고 도도하게 흘러가는 당대 중국의 삶의 모습을 열 개의 단어 속에 축약하고자 한다. …… 주제가 둘 다 오늘 날의 중국이긴 하지만 「형제」 는 허구 작품이라 서술에서 우회적 표현이 가능하기 때문에 쉽게 출판할 수 있었지만, 이 책은 비허구 작품이라 서술에서 단도직입적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출판이 불가능하다. 비유하여 말하자면 「형제」는 5월 35일이고, 이 책은 6월 4일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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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 작가의 「정글만리」를 '매우 실용적인 면의 중국 소개서'쯤으로 요약될 수 있겠다란 생각을 가지고 있기에, 어쩔 수 없이 위화의 이 책을 읽는 내내 제 머릿속에선 「정글만리」속 내용과의 비교가 떠나질 않았습니다. 그 소설 속에서 전대광의 아내 이지선은 중국의 '인민'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을 하고 있지요.

 

인간 평등을 위해 공산주의 혁명을 했다는 사람들이 어찌 저리도 앞뒤 안맞는 행동을 할 수 있을까 싶었고, 인민은 나라의 주인이라고 하는데 그런 역겨운 꼴을 수도 없이 당하면서도 왜 사람들은 한마디 불평도 없이 무표정하게 묵묵히 서있기만 한 것일까. …… 한국이 얼마나 민주화된 인간다운 사회인지를 중국에 와서 비로소 깊이 느꼈던 것이다. …… 인민들 참 묘해요. 분명이 있으면서 전혀 없는 것 같은 존재, 알 듯 말 듯 영 아리송한 존재, 그게 중국 인민들이에요.

 이에 대해 중국인인 위화 역시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늘날 중국어에 '인민'처럼 처지가 이상한 단어가 또 있는지 모르겠다. 인민은 없는 곳이 없으면서도 동시에 사람들에게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인식된다. 오늘날의 중국에서는 관료들만 '인민' 운운하지, 정작 인민들은 이 단어를 입에 올리는 경우가 거의 없다. 어쩌면 모두 이 단어를 잊어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행히 관료들이 침을 튀겨가며 떠벌리는 덕분에 이 단어는 우리에게 자신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항변하고 있는 것이다.

서술의 화자가 외국인이냐 중국인이냐의 차이는 이처럼 한 단어를 사용하는 관점에서도 극명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지요. 이지선의 서술은 '인민은 아리송한 존재이다'라는, 즉 '별 관심없다'라는 의미로 마무리 지어지지만, 위화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인민'은 단어로서뿐 아니라 실제의 존재물로서도로 '존재'하며 1989년의 톈안문 사건이야말로 그들의 존재를 극명히 보여주었던 하나의 역사적 전환점이었다라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당시 북경의 어느 광장에 모여있던 수많은 사람들의 함성을 들었을 때 그가 받았던 감정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지요.

 

그 전까지 나는 빛이 사람들의 목소리보다 더 멀리 전달된다고, 또 사람의 목소리는 사람의 몸보다 에너지를 더 멀리 전달하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스물아홉 살이던 그 밤에 나는 내가 잘못 알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민이 단결할 때 그들의 목소리는 빛보다 더 멀리 전달되고 그들 몸의 에너지가 그들의 목소리보다 더 멀리 전달되는 것이다. 마침내 나는 ' 인민'이라는 단어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이해'는 중국인이 아닌 제 3자에게는 결코 쉬이 느껴지지 않을 그러한 영역이 아닐까싶습니다. 중국인이 아닌 우리에게는 (서양인들에게는 어쩌면 더더욱) 여전히... 빛이 사람들의 목소리보다 더 멀리가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으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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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중국 사회에 대한 그야말로 날 선 비판이 주를 이루는 책은 결코 아닙니다. '날 선'이란 표현은 위화의 글엔 어울리는 형용사가 아니니까요. 이 책을 읽으면서 한 가지 신기(?)했던 경험은 위화의 성장 배경 중 커다란 부분이었던 '문화대혁명'에 관한 여러가지 실제 사건들과, 그 주역이었던 마오쩌둥에 관한 서술들을 읽다보니 어느새 이것이 혹 우리나라의 '유신시대'와 '박정희 대통령'에 관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라는 거에요. 이처럼 두 나라의 비슷한 정치·사회·경제적 성장 배경이 낳은 현재의 결과들 또한 여전히 우리나라에서도 현재진행형인 이야기들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가져보게 되고 말이죠. '우리도 엉망인데...'라 말할 수 있는 지금의 시점에서 굳이 중국인이 말하는 중국에 대한 이야기에 왜 귀를 기울여야하는가란 물음은 최소한 이 책에 관해서만큼은 성립되지 않는다 말하는게 맞을 듯 하네요.

 

어찌보면... 위화 자신의 성장기라고도 할 수 있을겁니다. 작가 스스로가 어떠어떠한 성장사를 가지고 있으며, 그로 인해 그가 이제껏 써낸 작품들 속에서 자신의 모습이 언뜻 비추이기도 한다는 걸 글 곳곳에서 어렴풋이 말해주고 있기도 하거든요. "독서"와 "글쓰기" 편은 상당히 유익했었고, "차이"편은 유난히도 제 감정의 동화를 많이 일으켜 주었었으며, "산채"와 "홀유"를 읽고 나니 얼마 전 조선일보에 실렸던 ('내 책이 중국에서 불법판으로 유통되는 것에 나는 반대하지 않는다'의 내용이 있었던) 그의 인터뷰가 새삼스러이 이해되기도 했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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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만리」가 지금 우리의 눈으로 보아지는 지극히 '현실적/실용적'인 면에서의 중국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라면, 이 책은 현재의 중국이 "왜" 이러한 모습을 가지게 되었는가, 그 역사적 인과관계에 관한 아주 간략하나 그 핵심만을 집어놓은 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또한... 이제껏 읽어보았던, 각각 옛날과 현재의 중국을 말하고 있는 위화의 두 작품 「허삼관 매혈기」와 「제7일」의 내용을 새로운 각도에서 이해하게 되었다라는 부수적인 소득도 있었었지요. 작가는 중국의 옛 이야기를 통해서는 '문화대혁명' 당시 (현재의 기준으로 보아 어처구니없다 할 수 있겠는) 중국의 생활상을, 현대의 이야기를 통해서는 (어쩌면)현재 중국의 빈부 격차를 (가장 힘주어)이야기하고싶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제가 그 두 책을 막 읽고났었을 때와는 사뭇 다른 생각들을 갖게도 해주었지요. 

 

위화는 열 개의 단어로는 사뭇 중국의 모든 모습을 다 이야기할 수 없다 말하고 있지만, 제 능력은 위화가 말한 그 열 가지의 단어조차 한 개의 글로 정리해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저... 작가가 현재 자신의 모국인 중국에 대해 어떠한 '가슴아픔'을 가지고 있는가에 관해 이야기했던 몇몇 부분을 제 임의로 편집·인용하는 것으로 이 감상문을 마칠까 합니다.

 

아래의 글은 온전히 위화의 글이며, 또한 온전히 중국에 대한 내용들을 말하고 있습니다만, 이를 다시 옮기면서 읽어보니 (다시한번) 글쎄요... 이게 과연 '중국만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까하는 커다란 의문이 생겨나네요. '문화대혁명, 마오쩌둥, 덩샤오핑' 이 세 단어에 해당하는 (저와 비슷한 세대의 분이라면 그 누구나 똑같은 연상의 결과를 가지게 될꺼라 믿어 의심치않는) 동치의 고유명사를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의 역사, 그리고 지금의 현실. 여러분은 과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위화를 좋아하는 당신이라면 그의 소설들을 읽기 전에 이 책을 꼭 먼저 읽어보시길, 위화를 모르는 당신이라면 이 책을 통해 분명 그를 좋아하게 될꺼란 예감... 을 마지막으로 꼭 덧붙이고 싶네요.)   

 

사회형태의 각도에서 볼 때, 문화대혁명 시기가 아주 단순한 시대였던 데 비해 오늘날은 대단히 혼란스럽고 복잡한 시대이다. 마오쩌둥이 말한 "우리는 적이 반대하는 것을 옹호해야 하고 적이 옹호하는 것을 반대해야 한다"라는 한마디로 문화대혁명 시대의 기본적인 특징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문화대혁명 시대기는 이처럼 흑백이 분명한 시대였다. …… 마오쩌둥 시대는 비록 생활이 궁핍하고 인간 본성에 대한 압박이 심했지만 보편적인 잔혹함이나 생존경쟁은 없었다. 단지 공허한 계급투쟁이 있었을 뿐이었다. 사실 당시의 중국에는 계급이 존재하지 않았다. 때문에 이런 투쟁은 그저 구호로 그칠 수밖에 없었다. 그 시대 사람들은 의식주를 절약하면서 함께 어울리며 무난하게 지냈다. 모두 조심스러워히긴 했지만 대체로 평안하게 일생을 보낼 수 있었다. …… 하지만 오늘날의 중국은 완전히 다르다. 극심한 경쟁과 거대한 압력이 수많은 중국인의 생활과 생존을 전쟁으로 만들고 있다. 이러한 사회환경에서는 자연스레 약육강식의 논리와 함께 호화스러운 사치 추구와 온갖 부당한 속임수가 유행한다. 따라서 자신의 본분에 만족하면서 소박하게 사는 사람들은 항상 도태되고 담이 큰 사람들만 성공한다. 가치관의 변화와 재화의 재분배가 사회분열을 조성하고 사회분열은 사회충돌을 가져온다. 오늘날의 중국이야말로 계급과 계급투쟁이 만연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 마오쩌둥 이후에는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를 잡는 고양이가 훌륭한 고양이다"라고 한 덩샤오핑의 말이 오늘날 변화한 시대의 기본적 특징을 잘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덩샤오핑의 이 한마디는 마오쩌둥의 사회 가치관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 이 한마디는 중국의 경제발전에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사이의 논쟁을 종식시켜주기도 했다. …… (그 덕에) 중국은 지난 30여 년 동안 세계가 주목할 만한 기적적인 경제성장을 이루어냈다. …… 하지만 이런 영광스러운 통계수치의 이면에는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수치가 또 하나 있다. 국민들의 연평균수입이 여전히 세계 백 위라는 사실이다. …… 이런 통계수치는 오늘날 우리 중국인들이 균형을 잃은 사회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민간의 용어를 빌려 말하자면 우리는 국가는 부유하고 백성은 가난한 나라에서 살고 있다. …… (이러한) 사회생활의 불균형은 필연적으로 꿈의 불균형을 가져온다. 거의 10년 전 …… 어린이날에 CCTV는 중국 각지의 어린이들을 인터뷰하면서 어린이날에 가장 받고 싶은 선물이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이때 베이징에 사는 한 남자아이는 진짜 보잉 여객기를 갖고 싶다고 말했고 서북 지방에 사는 한 여자아이는 몹시 수줍어하는 표정으로 흰색 운동화를 받고 싶다고 말했다. 같은 나이대의 두 아이가 꾸는 꿈이 이렇게도 큰 차이가 났다. 서북 지방에 사는 아이에게는 그 흔한 흰색 운동화를 받는 것이 베이징에 사는 남자아이가 진짜 보잉 여객기를 받는 것만큼이나 머나먼 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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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중국은 격차가 몹시 심한 나라가 되었다. 우리는 이런 현실속에서 살고 있다. 한쪽은 휘황찬란하고 평탄한 길이며 다른 한쪽은 각박하고 가파른 절벽 길이다. 어쩌면 우리는 아주 이상한 극장에 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곳은 같은 무대에서 절반은 희극을 공연하고 절반은 비극을 공연하는 극장이다.

 

 

★ More 'Food for Thought'

- 조정래 著, 정글만리 1·2·3」 : 이방인의 눈으로 본 현재의 중국.

 

★ (읽어본) 위화의 다른 작품들 :  허삼관 매혈기」 · 「제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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