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와, 마케팅은 처음이지? - 한국외대 입학처장의 명쾌한 경영학 수업 사고뭉치 16
박지혜 지음 / 탐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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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펴낸 출판사의 정체성에1 맞게, 저자는 책의 시작에 이 책의 독자층에 청소년이 포함되어 있음을 미리 밝히고 있습니다.2 


회사에서 맡게 된 일 때문에, 유통망 / 가격 전략 등에 대해 어슬렁거리다 보니, 결국 마케팅이란 게 대체 무엇인지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더군요. 게다가, 종원군이 공부하고자 하는 분야가 '스포츠 마케팅'이란 사실도, 이 친근한 제목의 마케팅 책을 펼쳐들게 한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 전 '마케팅'이란 학문에 대해, 오로지 한 권의 책만을 읽어 본, 마케팅이 '낯선' 독자이기도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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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의 역사는 얼마나 됐을까? 마케팅은 경제학만큼 오래된 학문이 아니다. … 미국 영어사전에 '마케팅(marketing)'이라는 단어가 등재되기 시작한 건 1910년에 이르러서였다. 이는 결국 마케팅이라는 주제는 고작 100년이 조금 넘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물론 '마케팅'이 아닌 '마켓'의 개념은 매우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마켓은 중세에도 있었고 고대 아테네 시절에도 존재했다. '세일즈'라는 용어의 역사는 이 중 가장 오래됐다. 사실 세일즈의 기원을 따진다면 아담과 이브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최초의 소비자는 아담이었고 최초의 판매사원은 뱀이었다. 뱀이 이브를 설득해 이브로 하여금 아담이 사과를 먹도록 했다."


- 필립 코틀러, "매스 마케팅은 죽었다. 고객을 회사의 주인으로 만들어라" 중, DBR, 119호 (2012년 12월 Issue2)


마케팅의 대가라 불리우는 코틀러 교수의 말처럼, 세일즈(영업)와 마케팅을 별개의 개념임을, 이 책의 저자 역시 책의 시작에 적고 있습니다. 저자가 정의(define)하고 있는 마케팅은 다음과 같습니다. 


마케팅은 기업의 상품 기획 및 관리, 가격 설정, 유통망, 소비자들과의 소통을 기획하고 관리하는 영역입니다.(p15) …… 마케팅은 이미 만들어진 제품을 광고하거나 그럴싸하게 포장해서 판매하는 활동이 아닙니다. 마케팅의 핵심은 상품 기획입니다.(p20)


'기획'이라는 단어와 '영업'이라는 단어가 풍기는 이미지에만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닌, 그 둘이 아예 별개의 활동이라는 것이지요. '영업 활동'이 현장에서 소비자에게 우리 회사의 제품/서비스를 판매하는 야전의 행위라면, 이에 앞서 그러한 제품을 기획하고 만들어내고 어떻게 유통하여 판매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가를 고민하는 게 '마케팅'이라고 이해가 됩니다. 이같은 마케팅의 영역을 저자는 '3C 분석'을 시작으로 "타깃팅과 포지셔닝, 제품 전략, 브랜드 전략, 가격 전략, 리테일링 전략, 커뮤니케이션 전략"(p262)으로 전개하여 (예의 타깃으로 삼고 있는 독자층을 잊지 않은 듯, 매우 쉽고 재미있는 방식으로)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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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쓰여졌다고 해서, 내용의 무게감까지 가벼운 책은 아닙니다. 특히 제가 맡고 있는 분야와 관련하여, 저자가 설명해주고 있는 '포지셔닝(positioning)'은 회사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저에게 명확하게 인식시켜 주기도 했지요. 


왜 이렇게 많은 제품들이 소비자들에게 외면당할까요? … 그 이유는 소비자들이 원하는 제품을 잘 만들어 놓고도 소비자들 입장에서 왜 그 제품을 선택해야 하는지, 또는 구매해야 하는지를 잘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소비자들이 우리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해야 하는 이유'를 설정하는 과정을 마케팅에서는 '포지셔닝'이라고 합니다.(pp108~109) … 그러기 위해서는 포지셔닝 전략 안에 소비자가 가진 심각한 결핍을 경쟁자들보다 더 우월하게 해결해 줄 수 있다는 문제 해결 방법을 담아내야 합니다.(pp113~114)   


물론! 이 한 권의 초보 입문서를 읽었다 하여 마케팅에 대한 저의 지식 레벨이 쑥~ 하고 상승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앞으로 더 배우고 싶다는 동기를 부여받았다라는 점 --- 앞서 읽었었던 일본 학자들의 통계학/경영학 책들에서 느꼈었던, 왜 우리나라에는 이런 책을 써내는 학자가 없을까하는 아쉬움의 상당 부분을, 이 책이 있다라는 사실로 인하여 덜어낼 수 있을만큼, 마케팅에 대한 일반인/청소년들의 관심을 북돋우워주는 책이라 확신합니다. (뭐, 역시 제대로 된 지식의 습득은 대학 교재 한 권 정도 공부한 다음에야 시작했다,라 언급할 수 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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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인  경제학 이론에서는 수요와 공급이 가격을 결정짓고 소비자는 자신의 효용을, 생산자는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maximize)하는 방향으로 의사결정을 내린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최근 들어 소비자와 생산자의 행동을 이끄는 동인이 이익 극대화라는 주장에 대한 비판이 대두됐다. 1970년대 카네기 멜린대의 연구 결과, 인간은 효용 극대화를 추구하는 존재(maximizer)라기 보다는 주어진 현재 상황에서 만족을 추구하는 존재(satisfier)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인간은 이른바 '제한된 합리성(bounded rationality)'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최대 효용을 추구할 만큼 충분한 돈이나 시간을 갖고 있지 않다. 그래서 사람들은 단지 주어진 현재 상황에서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선택을 한다. 이것이 바로 현대 경제 이론을 공격하고 있는 행동경제학(behavioral economics) 이론의 골자다. 행동경제학은 또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다. 그게 바로 마케팅이다." 


- 필립 코틀러, 위 article 중.


마케팅과 행동경제학이 동일한 내용을 분석하는 학문이다, 아니다를 논할 지식은 없습니다만 적어도 --- 마케팅이 일종의 '사기'라는 선입견 만큼은 확실하게 거둬낼 수 있는 독서였었습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굴뚝 업계에도 예의 '마케팅'이 필요한 근본적인 이유를 배우게 되었다라는 점 또한,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한 이 와중에도) 유쾌(!)하게 읽어낼 수 있었던 이 한 권의 책이 제게 선사해 준 커다란 선물이겠고 말이죠. 


소비자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스스로 알고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할 수 있습니다.3(p52) …… 소비자 자신이 알아서 판단하도록 두면, 불행히도 소비는 절대 알아서 판단하지 않습니다. 마케팅 관리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다면 능동적으로 전달해야 합니다.(p210)



※ 읽어 본, 또 다른 (일종의) 마케팅 관련 책들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도쿄의 디테일 




  1. "탐은 토토북의 청소년 출판 전문 브랜드입니다."
  2. "청소년이나 마케팅 비전문가들이 소화할 수 있는 범위에서 마케팅의 한쪽 보따리를 조금 풀어보았습니다."(p7)
  3. "르네 지라르의 말을 빌리면, '인간은 강렬하게 욕망하면서도, 무엇을 욕망하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존재입니다." - 김두식,「욕망해도 괜찮아」중 p24, 창비,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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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VS 80의 사회 - 상위 20퍼센트는 어떻게 불평등을 유지하는가
리처드 리브스 지음, 김승진 옮김 / 민음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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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평등의 실현?


민주주의의 가치 중 하나가 '평등'일진데, 그 '평등의 실현'이 참으로 애잔한 모습으로 구현되는 것을 경험해본 적이 있습니다. 바로 군 훈련소에서였지요. --- 모두가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취급/대우를 받았었으며 똑같은 일들을 해야만 했었던, 그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졌던 시간 4주였었습니다. 허나, 그곳 또한 나름의 한 '사회'인지라 그 '사회'내의 고유한 판단기준에 의한 개개인에의 평가 역시 바깥의 사회와 다름없이 내려졌지요. 물론, '훈련소'라는 사회 내의 평가 기준은 바깥 사회의 그것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서울대 대학원 출신의 동기가 동작이 빠릿하지 못하다며 연신 구박을 받았던 반면, 지하술집 주방보조로 있다왔다는 동기는 허접한 과도 하나로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과일접시를 만들어 내, 소대장들의 찬탄(!)을 받았던, 대한민국에서 평생을 따라다닌다는 '학벌'로부터의(free from) 평등을 훈련소에서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 과연 그 현상을 가리켜 '학벌로부터의 불평등'이 사라졌다라 말할 수 있는 것일까요? 

잠시나마 사라져버린 듯 했던 '학벌로부터의 불평등'은 (우리 소대 내의) 구성원들 모두의 마음 속에서 진심으로 우러나와 해소되고 끝내 평등을 이루어낸 것이 아닌, 군대라는 특수한 조직 안에서 한 개인의 '쓰임새'의 유용성에 따른 재평가, 즉 엄연히 말해 그 또한 다른 버젼의 '불평등'이었을 뿐인 것이죠. 그렇다면, 


대학원 진학을 선택했었던 동기와, 지하 술집의 주방 보조라는 사회 생활은 선택했던 동기, 그 둘의 선택은 --- 어떠한 사회에 속해 있는가에 따른 순간적 '불평등'만을 초래할 뿐, 전체적으로는 '평등함'의 조건 하에서 도출된 결과였었다라 말해질 수 있는 것일까요? 


2. 선택의 결과?


신고전학파 경제학은 개인의 선택에 대해, 그 선택이 해당 경제 주체의 자유의지에 의해 결정된 것이라면 그 선택이 그에게 가장 선호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해줍니다. 하지만, 


"자유로운 행동은 주어진 목적을 위한 최선의 수단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목적 그 자체를 선택하는 것이다. … 우리가 자율적으로, 즉 스스로 부여한 법칙대로 행동한다는 것은 그 행동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외부에서 주어진 목적의 도구가 아니다."

- 마이클 센델,「정의란 무엇인가」중 pp170~171, 와이즈베리, 2014.


가정의 생계 유지를 위하여 나의 노동력을 이렇게라도 시장에 공급하지 않으면 아니되는 상황 하에서 결정된 선택은 결코, '목적 그 자체를 선택'한 것이라 할 수 없겠죠. 이런 점에서, 장하준 교수는 신고전학파 경제학의 선택이론을 다음과 같이 비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과연 그 선택을 하게 된 상황이 바뀌어야 하는지, 그리고 바뀔 수 있는지이다.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조건이 '좋지 않은' 일이라고 차선책이 굶는 것이라면 기꺼이 그 일을 선택할 것이다. … 이런 상황에서 한 선택을 '자유 의지'로 했다고 할 수 있을까? (먹어야 한다는 생리적 조건 때문에) 그 일자리를 선택하도록 강요당한 게 아닌가? … 가난한 사람들이 조건이 '좋지 않은' 일을 자발적으로 선택할 만큼 절박하게 만든 환경을 용인할 것인가를 물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 장하준,「장하준의 경제학 강의」중, 부키, 2014.


이 책,「20 VS 80의 사회」를 통해 저자는 바로 이 부분, '현재와 같은 불평등의 상황을 용인할 것인가'를 독자들에게 묻고 있다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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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저자가 규정하고 있는 '중상류층'이라는 범주는 "넓게 보아 상위 20퍼센트"(p15), 혹은 "연간 소득 11만 2천달러 이상"(p16)으로 규정되고 있습니다. 불평등을 다룬 기존의 연구가 주로 '상위 1퍼센트'에 집중하였었다라면1, 이 책은 상위 20퍼센트와 나머지 80퍼센트 간의 불평등을 다루고 있지요.2 


책의 제목이 자아내는 무거울 것 같은 선입관과는 달리, 이 책은 기본적으로 유쾌한 서술체로 쓰여져 있을 뿐 아니라, 저자의 주장 또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쓰여져 있습니다. 책의 전반부에서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이 펼칠 주장의 내용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책 전체를 다 읽지는 못할 독자들을 위해"(p20)) 깔끔하게 알려주고 있지요.


이 책에서 펴고자 하는 주장은 다음과 같다. 미국 중상류층은 나머지 대중으로부터 확연하게 분리되고 있다.(2장) 불평등은 어린 시절에 시작되며(3장) 세대를 거쳐 전승된다(4장). 이러한 계급 분리는 노동 시장에서 가치가 인정되는 '능력'을 발달시킬 기회가 중상류층에 압도적으로 많이 때문에 발생한다(5장). 하지만 중상류층이 불공정하게 기회를 '사재기'하기 때문이기도 하다(6장). 불평등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며 이를 실행하는 데 필요한 비용의 상당 부분은 중상류층이 부담해야 한다(7장). 이런 변화가 가능하려면 자신이 특권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중상류층의 각성이 그 무엇보다 절실히 필요하다(8장)."(pp19~20) 


'(7장3은 제외하더라도) 책 전체를 꼭 한 번은 읽어보는 것이 좋겠다'라 생각하기에, 위의 내용들을 구구절절이 요약하여 옮기지는 않겠으나, 이 책이 제시하고 있는 '불평등(의 해소)에 대한 새로운 관점/제안'만큼은 제가 이해한 한도 내에서 정리해 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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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은 돈으로 구분되지만 돈으로만 구분되는 것은 아니다. 계급 격차는 학력, 안전 및 안정성, 가족 구성, 건강 상태 등 삶의 모든 면에서 드러난다.4 물론 각각에 나름의 불평등이 존재하지만, 돈, 교육, 부, 직업 등 다양한 영역에서의 불평등 요인들이 서로 단단히 결합해 하나만으로도 누가 어느 계급에 속하는지를 판단할 수 있을 때 불평등은 계급 격차가 된다. 그리고 계급적 특권과 지위가 세대를 이어 지속될 때 계급 격차는 고착된 계급 체제가 된다. (pp38~39)


이 책에서 저자가 지적하고 있는 문제점은 단지 '계급의 분화'가 아니라, 그러한 계급 분화가 세대를 이어 영속화 되어간다라는 점입니다.5 이와 같은 영속화를 가능케 하는 요인들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저자가 꼽고 있는 가장 큰 요인은 역시나 '교육 문제'이지요.



【 능력 본위주의 】 


현재 미국의 중상류층 사이에는 '나는 이만큼 누릴 자격이 있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중상류층이 1퍼센트를 비난하며 '우리가 99퍼센트'라고 외칠 때처럼, 사람들은 대개 자기보다 더 잘사는 사람과 비교하기 마련이라는 점이 한 가지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나의 지위는 나의 능력(학력, 두뇌, 노력) 덕분이므로 마땅히 나의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p18) 


장하준 교수가 신고전학파 경제학을 비판하였던 지점 중 하나가 바로, '기회의 평등으로 인한 결과에 대한 정당성의 부여'였었죠. 물론 그와 같은 '정당성의 부여'를 주장하는 측은 모두가 동일한 규칙을 적용받는 경쟁을 치뤄내었으니, 그 결과 또한 정당성을 부여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정당성을 부인하는 것을 '경쟁의 회피'라는 반론을 제기하기도 합니다.6 물론, 이러한 논리, 특히 근자의 '블라인드 채용'에 대한 비판에는 상당한 일리가 있다고도 생각됩니다. 주어진 정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 하여, 정보 자체를 없애는 것이 과연 효율적이며 공정성을 담보하는 것인가라는 문제 제기는 정당한 것이니까요. 하지만!


'능력 본위'가 자동적으로 '공정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p120) …… 롤스는 단지 열린 경쟁만이 아니라 그 경쟁을 준비하기 위한 기회도 평등한 상태를 기회의 공정한 평등이라고 보았다. 이런 의미에서 롤스의 정의론은 모든 이에게 교육의 기회가 평등하게 주어질 것을 요구한다. … 시장에서의 성과는 우리 각자가 타고난 재능을 발달시킬 평등한 기회를 가졌을 때에만 공정하다고 간주될 수 있다.(p125)


(조금 과장되게 표현하여) A와 B가 동일한 규칙을 적용받는 동일한 게임을 하고 있다지만, A는 타자석에서부터 출발하여 홈까지 와야하고, B는 3루에서부터 출발하여 홈까지 와야하는 시작점이 다르다면7 그 경쟁을 가리켜 결코 공정한 경쟁이라 말할 수는 없다라는 비판에 대해서까지 적절한 답변을 내놓을 수 있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이같은, '경쟁의 준비를 위한 기회의 불평등'이 존재하는 상황 하에서의 '평등하다라 일컫어지는 경쟁'이 초래하는 가장 큰 문제점은, 그와 같은 실질적으로 공정하지 않은 경쟁으로부터의 결과가 그 경쟁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이후의 삶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라는 것입니다. 


철학자 클레어 챔버스가 말했듯이 '각각에서의 결과는 그 다음에서의 기회'다. … 좋은 고등학교에 가면 좋은 대학에 갈 가능성이 높아지고 좋은 대학에 가면 좋은 일자리를 잡기 위한 경쟁에 더 잘 준비할 수 있다.(p124)


물론, 그 이전 단계의 결과를 지속적으로 이어가기 위한 개인의 노력 - 좋은 고등학교에서 열심히 노력하여 좋은 대학에 간 것 - 까지를 부인해서는 안되겠습니다만, 그러한 개인의 노력에 대한 인정이 곧, 사회 시스템 전반에 대한 정당성의 부여로 이어지는 것은 분명 경계해야 할 사안이 됩니다. 더 나아가, 애초에 우리가 상정했던 '능력 본위주의'라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또한 후대에 물려주게 될 사회의 역동성에 어떠한 폐해를 끼치고 있는가에 대한 성찰 역시 함께 요구되고 있음을 저자는 지적하고 있지요. 


시장에서의 경쟁은 경제 성장과 번영에도 필수적이지만, 능력 본위 원칙에 따른 계층 이동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것은 시장이 보상하는 종류의 능력을 키울 기회가 모두에게 공정했다는 전제에서만 가능하다. 안타깝게도 현재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것은 '계층 이동성 없는 능력 본위주의'다.(p27) 


이제, 우리8가 의도적이든 혹은 흐르는 물결에 몸을 맡기듯 소위 말하는 '대세'라는 것에 편승을 하여왔건 --- 이와 같은 잘못된 '능력 본위주의'가 어떻게 계급의 고착화와 대물림으로 이어지는가에 대해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 교육에 대한 인식 


앞서 읽었던 몇 권의 책들에서, 현 금융자본주의 사회 하에서 정의(define)되는 '능력'이란 것이, 아예 '판을 짜거나 바꾸어버릴 수 있는 힘'으로 변질된 것에 대한 비판을 볼 수 있었습니다. 


노동 시장에서 인적 자본의 중요성은 점점 높아져 왔다. … 그에 따라 교육은 중상류층 지위를 대물림해 재생산하는 주요 메커니즘이 되었다.(p26)


최순실의 딸인 정유라의 '부모 잘 만난 것도 능력'이라는 발언은, 결국 '교육'이라는 인적 자본을 향상시키는 사회적 시스템이 부모나 자식 세대에게만 달콤한 결과물을 안겨주는 것이 아닌, 세대 간의 대물림을 재생산해내어 '판을 짜거나 바꾸어버릴 수 있는 힘'을 내내 유지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라는 점에서, 현 시점의 횡단면의 측면에서만 바라본 '능력 본위주의'라는 것이 시계열적으로까지도 영향을 미치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죠.9


현 세대에서의 소득 격차가 다음 세대에서의 기회의 격차가 된다면, 경제적 불평등은 영속적인 계급 격차로 고착된다.(p27)


앞서, '능력 본위주의'라는 것이 일 개인 혹은 한 세대 내에서의 실질적으로 불공정한 경쟁의 결과를 정당화시키는 것에 대한 비판이 있었다면, 저자는 이제 이에 더해, 교육이라는 일종의 유산(inheritance)을 통해 그러한 결과가 대물림되며10  심지어 그러한 대물림이 정당화(justification)까지 되는 것에 대해 지적하고 있습니다. 


계급이 인위적인 형태의 상속을 통해서가 아니라 시장에서 인정받는 능력을 통해 재생산될 때, 승리자들은 그 결과로 발생하는 모든 불평등이 도덕적으로 정당하다고 확신하기 쉽니다. 패배자들에게 자원을 재분배하는 것이 오히려 불공정하게 느껴진다. 자신이 공명정대하게 승리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p123)


저자는 이와 같은 계급의 대물림에 현 시대의 교육이 가장 큰 역할을 차지하고 있음을 적시11하고 있는데, 이러한 교육을 통한 계급의 대물림은 (적어도 미국의 현실에서는) 명백하게 의도적으로 행해지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저자는 그러한 의도적 행위의 일례로 '기회 사재기'를 들고 있지요.12  


계급의 영속성에 일조하는 또 다른 요인을 간과해선 안 된다. 바로 '기회 사재기'다. 이는 중상류층이 실력을 갖춰서가 아니라 경쟁의 판을 조작해서 승자가 될 때 발생한다.(p146)


이 문장은 어쩔 수 없이, 현 법무장관을 떠올려 줍니다. 그(혹은 그의 배우자)가 자녀에게 제공하였던 여러 기회들이, 그 불법성의 여부를 떠나 결국엔 현재의 계급을 자녀의 대에까지 이어주고자 한 의도로부터 나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면, 앞으로 그는 더 이상 '사회의 불평등'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할 수 없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소득 분포 사다리의 아래 칸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커서 위쪽 칸으로 올라가는 경우가 더 많아진다면 위쪽 칸 아이들이 커서 아래 칸으로 내려오는 경우도 더 많아져야 한다.(p93)


그가 했었다는,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는 확률은 극히 줄었다. 모두가 용이 될 수 없으면, 또한 그럴 필요도 없다. 더 중요한 것은 용이 되어 구름 위로 날아오르지 않아도, 개천에서 붕어, 개구리, 가재로 살아도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하늘의 구름 쳐다보며 출혈경쟁하지 말고 예쁘고 따뜻한 개천 만드는데 힘을 쏟자"13란 발언이, 좋게 보면 좋게 보여지겠으나,


전체 인구 중 소득 분포의 상위 20퍼센트에는 언제나 전체 인구 중 20퍼센트만 속할 수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수학적 사실이다. '상대적' 계층 이동성은 필연적으로 제로섬 게임이다.14 한 명이 소득 분포 사다리에서 위로 올라가면 누군가는 아래로 내려와야 한다. 아래로 내려오는 사람이 내 아이일 수도 있다.(p25)


개천에서 태어난 누군가가 용이 되어 하늘로 날아오를 때, 필연적으로 하늘에서 탈락되는 누군가가 자신의 자녀는 아니기를 바라는 은연 중의 바람()15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면, 그는 자신의 고백16과는 달리 결코 '사회주의자'일 수 없는 것이겠지요.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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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를 위한 정치적 연대를 이루려면 중상류층처럼 강력한 유권자 집단을 공격 대상으로 삼는 것은 현명한 일이 아니다. 더 작거나 더 먼 집단을 공격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 그래서 보수주의자들은, 문제는 가난한 사람이나 이민자라며 우리를 안심시킨다. 진보주의자들은, 슈퍼 리치가 미국을 좌지우지하는 게 문제라고 말한다. 이런 논의 구도에서는 우리의 정치 성향이 어느 쪽이든 우리(중상류층)는 스스로를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p229) 


상위 1퍼센트가 문제,라며 그들을 비난했었던 것이 (저자가 표현하고 있는) '우리(중상류층)'의 잘못된 판단 때문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언론과 정치가 만들어 낸, 고의적인 렌즈를 통해서 이 세상을 보아왔기 때문일 수도 있지요.18 하지만,  


이 책,「20 VS 80의 사회」를 읽고 났다면, 저자가 주장하는 '희생'19에 대해 한 번쯤은 고민해보는 것이 어떨까, 우리 사회의 불평등을 완화시킴에 있어 나(와 내 자녀)의 희생이 필요하다면 기꺼이 그 희생에 동참할 수 있는가를 스스로에게 묻고, 또한 우리 사회의 (제가 참 싫어하는 단어들 중 하나인)지도층이라는 사람들 역시 그러한 잣대를 수용할 수 있는가, 그러한 방식으로 삶을 살아왔는가를 살펴보는 것으로 그들의 적격성에 대한 판단을 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라 생각하게 됩니다. 


나는 우리 중상류층이 조금 더 고밀도의 주택단지를 짓도록 택지 규제를 완화하기 위해 우리의 집 값에 약간의 피해가 오는 것을 기꺼이 감수하기를 바라며 그러리라고 믿는다. 나는 우리 중상류층이 자녀가 다니는 학교가 동질적인 학생들로만 배타적으로 구성되는 것을 기꺼이 포기하기를 바라며 그러리라고 믿는다. 나는 우리 중상류층이 자녀가 명문 대학에 갈 기회가 줄어들더라도 동문 자녀 우대를 없애는 데 기꺼이 동의하기를 바라며 그러리라고 믿는다. … 나는 우리 중상류층이 자신의 자녀보다 운이 좋지 못한 아이들이 더 많은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세금을 더 내는 것이 기꺼이 동의하기를 바라며 그러리라고 믿는다. 나는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며 그러리라고 믿는다.(pp222~223)


저자가 '바라며 그러리라고 믿는다'라 표현한 구절에 대해, 이제까지의 그리고 지금의 우리나라 공직자들이 자신있게 '그렇다'란 대답을 할 수 있을지, 그들의 과거 행적을 볼 때 매우 회의적이기만 합니다.20 (마침, 이낙연 국무총리가 이 책에 대해 본인의 트위터에 짧은 글21을 남기셨더군요. 미국인이 쓴, 미국 사회의 불평등에 대한 이 책이 정녕, '미국 사회만'을 진단하고 처방한 책이라 생각하셨는지 사뭇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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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는 아이가 잘 살아가도록 도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할 권리를 갖지만 아이에게 '경쟁 우위'를 부여하기 위해 무언가를 할 권리는 없다. 내 아이가 잘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아이가 '다른 아이들보다' 잘사는 것을 도우면 안 된다는 것이다. 자원이 유한한 사회에서는 한 아이의 상황이 향상되면 불가피하게 다른 아이의 상황이 (적어도 상대적으로라도) 악화되기 때문이다.(p150)


이런 류의 책을 읽고 난 후의 감상문을 쓸 때면, 항상 자신이 없어집니다. 책의 내용에 공감되는 내용들이 있다 한들, 과연 나의 삶이 그러한 주장들과 합치되느냐라는 부분에 대한 고민을 이겨낼 수 없기 때문이죠. --- 저 스스로에게 커다란 한 방의 망치를 맞은 듯한 느낌을 주었던 위 인용문에 대해 조 장관은, 또한 드러나지 않은 수많은 대한민국의 부모들은 과연 어떻게 생각하실지, 참 궁금합니다.



※ 함께 읽기를 권하여 드리는 책들 :평등은 없다」,「팩트풀니스」,「조지 오웰, 시대의 작가로 산다는 것 







  1. ​"너무나 자주 불평등 담론은 상위 1퍼센트의 문제에만 초점을 맞춘다. 나머지 99퍼센트는 모두 비슷하게 불행한 처지라는 듯이 말이다. 1퍼센트의 최상류층에만 관심을 집중하면 중상류층인 우리가 다수 대중과 같은 배를 탔다고 믿기 쉬워진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pp16~17) …… "경제사 분야의 신예 스타 학자 토마 피케티의 논의에서 불평등은 상위 1퍼센트의 문제다."(p39)
  2. "대부분은 상류층을 맨 위쪽의 얇은 층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지각판은 그보다 아래쪽에서 분리되고 있다. 멀어지고 있는 것은 1퍼센트만이 아니라 20퍼센트다. … 상위 20퍼센트와 나머지 80퍼센트 사이의 격차는 미국의 경제와 사회 모두에서 드러나는 '대격차(Great Divide)'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pp40~44)
  3. 이 부분은 정책입안자나 집행자가 아닌 이상, 딱히 흥미를 끌 수 있는 내용은 아니라고 봅니다.
  4. "계급은 돈으로만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학력, 태도, 거주지 등으로도 규정된다. 경제 수준뿐 아니라 삶의 방식에서도 차이가 난다."(p23)
  5. "우리가 직면한 문제는 단기 계급의 분화가 아니라 계급 분화의 영속성이다."(p88)
  6. "학생 사이에 차이가 있고, 학교 간에 학력 차이가 있는데 이것을 숨기고 반영하지 않는다고 해서 차이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선발 자체가 차별화 과정인데 차별하지 말고 뽑으라는 것도 모순이다. 똑같은 학생들을 다르게 취급하는 것이 불평등한 일이라면, 분명히 차이가 있는 학생들을 똑같이 취급하는 것도 불평등한 일이다. 그것은 평등주의가 아니라 경쟁의 회피일 뿐이다." - 김종석, '고교 등급제과 정보 불균형' 중, 한국일보 2004.10.17.
  7. "너무 많은 미국의 중상류층이 자신과 자녀의 성공을 전적으로 본인의 재능과 머리와 노력 덕분이라고 굳게 믿는다. 미식축구 코치 배리 스위처의 생생한 표현을 빌리면, 그들은 '삼루에서 태어났으면서도 자기가 삼루타를 친 줄 안다'."(p29)
  8. 저자는 이 책에서 본인 스스로도 '중상류층'에 속해 있으며, 이 책을 읽는 많은 이들 또한 '중상류층'에 속해 있을 것이라며 '우리'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9. "미국에서 고학력자는 단시 '결혼할 가능성'만 높은 것이 아니라, '그들끼리 결혼할 가능성'이 높다. … 한 마디로 대졸자는 대졸자와 결혼한다는 것이다. 학력이 어느 정도 두뇌를 반영하고 어느 정도 아이에게 유전된다면, 동류 짝짓기는 중상류층의 이점을 한층 더 강화하게 될 것이다. … 대졸자가 두 명 있는 가구는 고소득을 올릴 수 있는 능력도 두 배다. 따라서 가구 간 소득 격차가 더 커진다."(pp51~52)
  10. 조지 오웰도 "돈의 역할과 사회적 계급에 따라 달라지는 개인의 운명"(스테판 말테르,「조지 오웰, 시대의 작가로 산다는 것」중 p31, 제3의 공간, 2017.)을 이란 표현을 했었었지요.
  11. "노동 시장에서 교육의 가치가 높아질수록 교육은 계급 재생산의 도구로도 더 유용해진다."(p101)
  12. 이외에 '동문 자녀 우대 정책'도 비판하고 있습니다.
  13. KNS 뉴스통신, 2012.03.02.
  14. 앞서 읽었던 책「평등은 없다」의 저자가 주장했던 '충분성의 원칙' 을 따르자면, '상대적 계층 이동성'은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겠죠.
  15. "중상류층 정책 입안자들이 대학 교육이 '모두를 위한 것은 아니'라고 말할 때, 분명 이들은 자신의 자녀를 염두에 두지는 않았을 것이다."(p87)
  16. "(나는) 자유주의자인 동시에 사회주의자다." - 한겨레, 2019.09.06.
  17. "사회주의자들은 개인적 소유(personal property)가 없는 세상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개인적 소유란 개인이 소비하는 소비재의 소유를 의미한다. 그런데 사회주의자들은 사적 소유(private property), 즉 그것을 소유한 사람들이 소유하지 못한 사람들을 지배할 수 없는 세상을 추구한다. - 바스카 순카라 외,「사회주의 ABC」중 p40, 나름북스, 2017.
  18. 이와 관련해서는 한스 로슬링의「팩트풀니스」참조.
  19. "나는 우리가 이기심을 약간 희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p228)
  20. 진보가 내세우는 최우선 가치인 '연대'의 실천을 위해서라면 '절세'도 해서는 안 된다라 생각하기에, 조 장관을 진보주의자라 칭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저는 회의적입니다. 강수돌 등이 쓴「리얼 진보」속 반성의 실례(實例)가 바로 조 장관이 아닐까 싶네요. : "진보 진영은 구체적으로 대중과 소통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관념적이었다. … 대중이 무엇을 생각하고 고민하는지를 읽기보다 대중에서 강의식으로 가르치려고만 한 것 같다." - 강수돌 외,「리얼 진보」중 p331, 레디앙, 2010.
  21. "상위 20%가 기회를 '사재기'하며, 하위 80%와의 격차를 넓히고, 그것을 세습하는 … 그런 미국사회를 진단하며, 처방을 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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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은 없다 - 문제는 불평등이 아니라 빈곤이다
해리 G. 프랭크퍼트 지음, 안규남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19년 4월
평점 :
품절




7쪽에서 시작되어 93쪽에서 마무리되는 얇은, 게다가 사이즈마저 작은 책입니다. 이 책을 펼쳤던 지난 8월 26일 이후 저의 일상이, '이제까지 겪어보지 못했던'이란 수식어를 사용해도 충분할만큼 바빴었으며, 또한 '이제까기 겪어보지 못했던' 스트레스의 연속이었었다는 사실이 분명, 이 책을 이제서야 다 읽어낼 수 있게 했다라 말할 수 있습니다만, --- 이 책 속에 담겨 있는 내용은 또한, 다 읽고 나서 과연 어떻게 나의 감상을 정리하여 적어낼 수 있을까, 9월 7일에 쓰기 시작한 이 글은 언제가 되어야 마무리될까라는 더 큰 염려를 가지게 되는, 그만큼 작정하고 읽어야 하며, 또한 여러 번 읽어야만 그 진짜 의미를 이해하게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질 정도로 녹록치 않습니다. 그러하기에,


이 감상문은, 이 책에 대한 저의 이해를 바탕으로 쓰여졌으며, 또한 그러한 이해에 근거하여 각종 인용문들을 등장시켰습니다. 이 모든 과정에는 저의 오독(誤讀)으로부터 기인한 논리의 오류가 담겨져 있을 수 있음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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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평등은 나쁜 것인가  


평등주의에 대한 옹호는 대부분 논증이 아니라 경제적 불평등은 나쁜 것 같다는 막연한 도덕적 직관을 바탕으로 한다. 많은 사람들이 소수가 많은 돈을 소유한다는 사실 자체를 도덕적으로 나쁘다고 본다.(p48) …… 평등주의는 종류를 막론하고 기본적으로 중요한 도덕적 이상으로 간주되지만, 나는 이러한 생각을 단연코 거부한다.(p70) ……… 나는 평등 자체에는 내재적 혹은 근본적인 도덕적 가치가 없다고 확신한다.(p71)


한 사실에 대해 A와 B라는 상반된 판단이 존재할 때, '명백하게 A는 틀렸다'라는 주장이 곧 'B가 옳다'라는 것의 근거는 될 수 없습니다. 이 책의 저자가 주장하는 바 역시, 경제적 불평등이 나쁘다라는 것이 곧 '평등이 바람직하다'라는 (일반적인) 인식과 동치되는 것에 대한 일종의 경고라 보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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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은 그 자체로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핵심적인 문제는 그 불평등이 정당화될 수 있는가, 그 불평등에 합당한 이유가 있는가이다."


- 토마 피케티,「21세기 자본」중 p30, 글항아리, 2014.


불평등의 현상 자체를 문제 삼는 것보다는, 그러한 불평등이 어떠한 과정을 통해 결과된 것인가를 보여주었던 피케티1와는 달리, 이 책의 저자 프랭크퍼트가 바라보는 불평등에 대한 시선은 그러한 '불평등이 초래하는 문제점'을 향하고 있습니다.  


경제적 불평등 자체는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만한 것이 아니다. 경제적 불평등이 바람직 하지 않은 이유는 용납하기 힘든 다른 불평등을 유발하는 불가피한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불평등은 경우에 따라서는 민주주의에 대한 우리의 충실한 의지를 거의 뿌리까지 침식할 수도 있으며, 그러므로 적절한 입법적·사법적·행정적 감시를 통해 통제하거나 예방해야 한다.(p8) 


신고전학파 경제학에서의 소득 분배는 그야말로 기술적(technical) 차원에서만 논의 됩니다. 각 생산요소의 생산성에 의해 해당 생산요소의 가격(노동의 경우, 임금)이 결정된다는 '능력주의'에 기반하고 있는 신고전학파 경제학은 따라서, 능력의 차이로 인하여 결과된 경제적 불평등에 대해 (암묵적으로) 일종의 정당성까지를 부여하기도 하지요. 그러나!


"능력주의가 민주주의의 필요조건인 까닭은 능력주의 원칙이 심각하게 무너질 때 힘있는 이가 힘없는 이의 의사를 무시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회를 움직여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 류동민·주상영,「우울한 경제학의 귀환」중 p73, 한길사, 2015.


자본주의라는 경제 체제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라는 사회·정치 체제의 유지에까지 채택된 능력주의가 본래의 의미와 의도와는 달리 적용되어버리게 됩니다. 각 생산요소의 생산성에 근거를 둔 분배로 요약되는 애초의 '능력주의' 속 '능력'의 의미가 각 자본주의의 단계를 거쳐 현재의 금융자본주의에서는 결국 --- "이러이러한 것을 능력이라 부르자며 판을 짤 수 있는 힘"2으로 변질되어 버린 것이지요. 이제, 위와는 다른 의미에서의 '능력주의의 붕괴에 대한 염려'가 제기되기 시작합니다. 


"능력주의의 약화는 매우 심각한 문제다. 그 이유는 능력주의가 부의 불평등한 분배를 정당화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능력주의 쇠퇴는 궁극적으로는 불평등한 분배를 더 이상 정당화할 수 없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

- 이왕휘, "피케티는 마르크스의 부활 아닌 불평등한 자본이 고민을 요구한 것이다" 중, DBR 167호, 2014.12.


신고전학파 경제학에서 정의(define)한 '능력'이 아닌, '판을 짜는 힘'으로서의 '능력'으로 변질된 사회는 그같은 '능력'의 차이로 귀결되는 '(경제적) 불평등'에 대해 더 이상은 쉴드를 쳐줄 수 없게 된 겁니다. (정유라의 '부모 잘 만난 것도 능력이다'라는 류의 발언이 바로 '판을 짜는 힘'으로서의 '능력'을 뜻하는 것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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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교수인 해리 프랭크퍼트가 쓴 이 책,「평등은 없다」는 위에서 인용해놓은 경제학자들의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논의를 조금은 다른 방향에서3, 제 의견을 글로 밝히자면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헌데 어찌보면 지나치게 '근본적이어 사뭇 과격하다'라 느껴질 수도 있는 방식을 풀어내고 있습니다.  


내가 아는 한, 경제적 평등주의는 모든 사람이 동일한 양의 소득과 부(한마디로 '돈')을 소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원칙이다. (p17) 


저자가 의미하는 '평등'의 의미를 먼저 확실하게 각인하고 이 책,「평등은 없다」를 읽어야합니다. 저자는 오로지! '경제적 평등'의 의미에 국한하여서만 '평등이 도덕적으로 선()인 것은 아니다'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지요. (재독과 삼독을 거쳐 더 확인하여야 할 부분이겠습니다만) 따라서 --- 장하준이 말했던 '기회의 평등'4과 같은 의미는 (적어도 제 이해의 한도에서는) 이 책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저자가 상정하고 있는 '평등'의 의미는 위와 같은 범주에서만 논의되고 있다라는 점을 잊지 않고, 이 책의 내용을 보아야 한다라는 것이죠. 


이같은 범주 하에서, 이 책에서 저자가 강조하고 있는 것은 --- 상대적 개념의 '불평등'이 아닌, 절대적 개념에서의 '빈곤'입니다.  


불평등은 그 자체로는 비난받을 만한 것이 아니다. … 우리는 기본적으로 빈곤과 과도한 풍요를 모두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하고, 그 결과는 분명 불평등의 축소일 것이다. 하지만 불평등의 축소는 가장 중요한 목적이 될 수 없다. 경제적 평등은 반드시 실현해야 할 도덕적 이상이 아니다. 우리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사회의 구성원 일부는 충분한 수준 이상의 부를 소유함으로써 안락을 누리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반면 다수의 구성원은 가진 것이 너무 적은 사회를 개선하는 것이다. (p16) 


'충분한 수준 이상'과 '너무 적은'이라는 이같은 일종의 주관적인 판단의 기준 하에서 현 상황을 개선하는 이상(ideal)으로 저자가 제시하는 개념은 '충분성의 원칙'입니다. 


경제적 불평등은 도덕적으로 특별히 중요하지 않고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만한 것도 아니다. 도덕의 관점에서 볼 때, 모두가 동일한 몫을 갖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도덕의 관점에서는 각자가 충분한 몫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 나는 평등주의에 대한 이 대안적 원칙을 '충분성의 원칙' - 돈과 관련해서는 모든 사람이 충분히 가지는 것이 도덕적으로 중요하다는 원칙-이라고 부르고자 한다.(pp18~19) 


이 책의 핵심은 이같은 '충분성의 원칙'이 되어야 할 것이며, '화폐에 대한 충분한 소유'라는 것이 과연 논리적으로 가능한가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바로, 이 책의 내용에 공감 혹은 반감을 갖게 되는 가장 결정적인 키가 된다라 생각합니다. 



【 충분함은 가능한가 】 


홍기빈은「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에서, "수단의 양은 목적에 의해 제한되지만 목적의 추구는 무한하다"라는 명제를 통해, 화폐에 대한 무한한 욕망을 설명해주었습니다. '목적의 추구는 무한'5이라는 표현이 화폐에 대한 인간의 무한한 욕망을 표현하는 것이라면, '수단의 양은 목적에 의해 제한된다'라는 표현은, 이 책의 저자 프랭크퍼트가 주장하는 '충분성의 원칙'을 나타내는 것일 수 있다라 이해됩니다. 


충분성의 원리에서 '충분'이라는 개념은 한계에 이르렀다는 의미보다는 기준을 충족시킨다는 의미에 더 가깝다. 어떤 사람이 충분한 돈을 갖고 있다는 말은 그가 많든 적든 지금 가진 돈에 만족한다는 의미 혹은 지금 가진 돈에 만족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의미이다. 즉 그가 무엇이든 자신의 삶에서 고통이나 불만을 느낄 경우 그것이 자신이 돈을 너무 적게 가진데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이다.(p55) 


이같은 '목적의 추구는 무한'이라는 표현과 '수단의 양은 목적에 의해 제한된다'라는 두 가지 개념을 한데 섞는 것에서 우리의 일반적인 오류가 나타나게 됩니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돈이 충분히 있다는 것이 근근이 살아가거나 가까스로 버틸 수 있는 삶을 살아가기에 충분한 돈이 있다는 의미가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 충분성의 원칙의 핵심은 돈의 분배와 관련된 유일한 도덕적 고려 사항이 사람들이 경제적 궁핍을 면할 만큼의 돈을 갖고 있는 하는 점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정도의 돈을 가진 사람은 충분성의 원칙에 따르면 결코 충분히 가졌다고 할 수 없다.(p56)


즉, 저자가 제시하는 '충분성의 원칙'에 따르면, 이건희 회장의 자산이 빌 게이츠의 그것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하여 두 사람간에 경제적 불평등이 존재한다라 말할 수 없다는 점, 더 중요하게는!!! --- 우리 일반 민중의 삶을 위로함에 있어, 이건희 회장이나 빌 게이츠처럼 돈이 많다하여 그 사람들이 행복하기만 할 것 같으냐류의 '얼치기 설교'는 결코 성립될 수 없다라는 겁니다. 이건희 회장이나 빌 게이츠에게 '수단의 양은 목적에 의해 제한된다'라는 명제는 그들이 그들의 자산(돈)으로 구매할 수 있는 경제적 재화의 부족함으로 인해 행복하지 않다라는 것이 아닌, 비경제적 재화의 존재로 말미암아 행복하지 않을 수도 있다라는 것에 사용되어야 하지, 경제적 재화의 부족으로 힘들어 하고 있는 민중에게 '그러니 너희들도 너희의 삶에 만족하여라'라는 결론은 민중들에게 '목적의 추구는 무한'이라는 인간의 본능을 포기하라는 것과 다름 없는 것이죠.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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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충분한 양 이하를 갖거나 충분한 양 이상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타당해 보이는 것은 이 주장이 전제하는 가정 때문이다. 그 가정은 충분한 양 이하를 가진 사람들은 자원을 더 받게 되면 반드시 처지가 나아진다는 것인데, 이는 일견 타당해 보이지만 사실은 거짓이다. 물론 일반적으로 볼 때 형편이 어렵지 않은 사람들의 조건 개선보다는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의 조건 개선에 우선순위를 두는 편이 합리적이다. 그러나 충분한 양 이하를 갖고 있어서 형편이 무척 어려운 사람들에게 추가적 자원을 제공해봤자 그들의 조건은 사실상 조금도 개선되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사실은 특정한 효용 문턱 이하에 있는 사람들이 추가적 자원을 제공받음으로써 효용 문턱이 더 가까이 가는 것이 그들에게 반드시 이익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문턱을 넘는 것이다. 문턱 가까이 다가가는 것은 그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오히려 불리할 수도 있다.(pp46~47)


아무리 여러 번을 읽어보아도, 허무함 같은 것이 채워지지 않는 구절이었습니다. 굳이, 위 주장이 타당성을 보이는 예를 찾자면 '이산가족 상봉'쯤이 되지 않을까 싶지요. 헤어져 살아 온 가족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남은 삶을 함께 (혹은 자유롭게 만나며) 사는 것일진데, 그 '문턱'을 넘지 못한다면 2~3일의 짧은 만남이 오히려 독이 되지 않겠냐란 저의 생각이 위 구절이 표현해줄 수 있다고나 할까요?


평등 혹은 불평등과 관련된 몇 권의 책을 더 읽어보려 합니다. 마침(?) 법무장관 후보자의 과거가 우리 사회에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방식으로7) 일종의 '평등'에 대한 재고라는 이슈를 가져왔기에, 그저 신문 기사에 나오는 표피적인 사항들로만 '불평등함'에 열받아하는 것이 아닌, 뭔가 더 근본적인 부분에의 앎이 필요하다 생각되기도 했구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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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도덕적 관심사는 형식적인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것이다. 진정한 도덕적 관심사는 사람들이 좋은 삶을 살고 있는가지이, 어떤 사람들의 삶이 다른 사람들의 삶과 비교해 어떠한가가 아니다.(p76) …… 어떤 사람들의 삶이 나쁘다는 사실이 악이 되는 이유는 다른 사람들이 더 좋은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나쁜 삶은 나쁘다는 명백한 사실 때문에 악인 것이다.(pp77~78)


어떤 발언이, 어떤 행위가 그 자체로 비난 받는 것이 아닌, 그 발언과 그 행위를 누가 했느냐에 의해 지지와 비난이 결정되는, 정말 이상한 세상에 살고 있다 생각됩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같은 '이상함'은 결국 '(상대적) 비교'를 기본으로 하는 사고방식에서 기인된 것이 아닐까 하는 (저만의) 결론에 다다르게 됩니다. 그리고,


경제적 평등이 그 자체로 중요하다는 잘못된 믿음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에게 적절한 화폐량을 판단하는 문제와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파악하는 문제를 분리하게 된다. 그 결과 핵심과는 거리가 있는 다소 부차적인 문제, 즉 다른 사람들의 경제적 위치와 비교할 때 자신의 경제적 위치가 어떠한가 하는 문제를 중요한 도덕적 관심사라도 되는 양 지나치게 심각한 문제로 여기게 된다. 이렇듯 평등의 원칙은 우리 시대의 도덕적 혼란과 피상성에 기여하고 있다.(pp23~24) 


이 책의 저자도 또한(?) '평등은 바람직하다'라는 일반적/잘못된 인식이 그와 같은 '비교'로부터 기인된 것이라 주장하고 있는 것이라 이해되기도 하지요.8


단 한 번의 독서로 이 얇은 책의 내용은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던, 저 스스로의 이해력과 집중력에 큰 아쉬움을 느꼈던 독서였었습니다. 불평등에 관한 몇 권의 책을 더 읽어본 후, 거의 100%의 확률로 다시 이 책의 내용을 음미해보게 되지 않을까 싶네요. 단지 초독(初讀)의 결과물로서 이 어설픈 감상문을 세상에 내어 놓습니다. 





  1. 피케티의 책은 '자본주의의 중심 모순'이라 그가 칭한 "일해서 돈을 버는 속도로는 결코 돈이 돈을 버는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다"라는 사뭇 암울한 내용, 즉 현재의 경제적 불평등에 합당한 이유가 있지 않다로 결론지어지지요.
  2. 류동민·주상영, 위의 책 p57.
  3. "나는 사회적·정치적 이데올로기는 배제한 채, 오로지 개념적 혹은 분석적 관심에 따라서만 논의를 전개할 것이다."(p70)
  4. "어떤 아이가 배가 고파서 수업시간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한다면 선천적으로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성적이 나쁘다고 말할 수 없다. 공정한 경쟁이 되려면 그 아이도 다른 아이들처럼 배불리 먹을 수 있어야한다. 집에서는 생계비 지원을 받아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하고, 학교에서는 무료 급식을 통해 밥을 굷지않도록 보살펴야 한다. 기회의 균등이 진정한 의미를 가지려면 일정 수준 이상의 결과의 균등이 보장되어야 한다. 말하자면 부모가 아이를 굶기지 않을 정도로는 돈을 벌 수 있어야 (결과의 균등) 그 아이도 같은 조건에서 다른 아이들과 경쟁을 할 수 있는 것이다." - 장하준,「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중 p277, 부키, 2010.
  5. "설혹 화폐로 구매할 수 있는 모든 것의 효용이 한계적으로 감소할 수밖에 없다 하더라도, 화폐의 효용 자체는 다른 양상을 보일 수 있다. 화폐는 기능이 무한히 다양하기 때문에 한계적 체감의 제약을 받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p32)
  6. "논리적으로 볼 때, 평등주의의 운리와 충분성의 원리는 서로 독립적이다. 다시 말해 전자를 지지하는 논거가 반드시 후자를 지지하는 논거가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평등주의를 주창하는 사람들은 종종 자신들이 실제로 제시하는 논거가 충분성의 원리만 뒷받침할 뿐인데도 평등주의까지 뒷받침하는 증거라고 주장한다. 자신들이 내세우는 원리가 받아들여지도록 하기 위해, 평등주의자들은 흔히 부자들의 좋은 조건과 빈자들의 열악한 조건의 차이를 부각시킨다. 이러한 차이에 대한 숙고는 대개 빈자들의 상황을 개선하는 쪽으로 가용 자원을 재분배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바람직하다는 확신으로 이어지고, 이 확신은 자연스럽게 경제적 평등의 확대로 귀결된다." (pp50~51) --- 경제적 평등의 확대를 과격한 속도와 수준으로 주장하는 것이 공산주의적 발상이었다면, 제가 언급한 '얼치기 설교'는 아예 '경제적'인 면에서의 평등을 바라는 욕망 자체는 버리라고, 대신 '정신적'인 면에서의 보상을 받으라하는 것이죠.
  7. 노명우의 다음 구절은, 해당 책의 개정판에서는 수정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 "우익은 거짓을 말하고 있지만 인간에게 말하고 있고, 좌파는 진실을 말하고 있지만 사물에게 말하고 있다." - 노명우,「세상물정의 사회학」중 p31, 사계절, 2013.
  8. "경제적 평등주의의 근본적 오류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얼마나 많이 가졌는지 그리고 각자가 자신이 가진 것으로부터 얼마나 큰 효용을 얻는지는 고려하지 않은 채 단지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더 적게 가졌는지 아닌지의 여부만이 도덕적으로 중요하다고 가정하는 데 있다."(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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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 전쟁 - 세계 경제 패권을 향한
왕양 지음, 김태일 옮김 / 평단(평단문화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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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2019년 8월 24일자 원/달러 환율을 보니 1달러에 1,211원이네요. 이 환율이 전날보다 1원 오른 것이라는 사실이, 저의 그리고 당신의 일상에 미치는 영향은 ('전혀'와 비슷한 수준으로) '거의' 없다해도 무방하겠죠. 그러나, --- 소주값의 출고가가 100원 인상된다는 것이, 제가 식당에서 이전보다 1,000원이다 더! 소주값으로 지불해야 하는 일을 만들어 내듯, 오늘 당장의 삶에 환율 1원 인상이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하여도 그 뒤에 자리하고 있는 수많은 경제주체들의 삶, 그리하여 결국엔 저와 당신의 삶에도 어떻게든 영향을 미치게 된다라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합니다. 그러하기에,     


우리가 느끼지 못할 뿐, 환율은 우리 생활 곳곳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것은 환율의 영향력이 직접 표면화될 때도 있지만 대개는 깊게 숨어 있기 때문이다. (p350)


제 아무리 ('IMF 시기'라는 표현으로 대변되는) 1998년의 악몽같은 시기를 (어쨌든) 이겨내었다고는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 '도대체 왜 당시의 대한민국은 그와 같은 시련의 시기를 겪을 수 밖에 없었던건가, 앞으로 또 다시 그와 같은 위기가 올 가능성은 정말 없는 것인가'와 같은 의문에 대해, 우리 스스로 해답을 만들어낼 능력까지는 필요치 않다 하더라도, (일종의 아웃소싱 방식으로 그러한 해답을 만들어내는 자들이 납품해 오는 제품으로서의) 여기저기서 제시하는 해답들을 적어도 이해할 수 있는 정도로의 능력은 필요치 않겠나라는 자각을 가지는 것이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란 성경 구절에도 부합되게) 필요하다라 생각합니다.   


"항상 깨어있는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것. 두번 지기는 싫으니까요."


- 영화 <국가부도의 날> 중, 한시현(김혜수 분)의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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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환의 매개체, 가치 척도, 가치 보전, 부의 축적과 유통의 수단으로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면 어떤 것이든지 화폐가 될 수 있다.(p21) 


'어떤 것이든지'의 일례로 저자가 미크로네시아의 야프(Yap) 군도 사람들이 사용했던 '거대한 돌(거석)'을 들고 있듯, 화폐의 물질적 형태가 그 가치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미미합니다. 그 어떤 것이든 그것이 화폐로 기능하는/할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일종의) 사회적 약속으로부터 비롯되기 때문이지요. 


"화폐란 믿음의 문제, 나아가 신념의 문제라는 점 … 화폐는 금속이 아니다. 화폐는 신뢰를 새겨놓은 대상이다. 어디다 새겨 놓았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 이제 전자 시대에 들어서자 무형물도 화폐로 기능하게 되었다."

- 니얼 퍼거슨,「금융의 지배」중 p34, 민음사, 2010.


그런 점에서, 이 책이 다루고 있는 환율1 또한 (물론 화폐 또한 일종의 재화이기에 수요와 공급이라는 경제학의 기본 분석 구조에 따르긴 하나)2 기본적으로 '신뢰/믿음'의 문제임을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3 이건, 금본위 제도 하에서4 뿐만이 아니라,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한 명제이죠. 


모든 화폐의 가치는 두 가지 요소에 의해 결정된다. 바로 교환대상의 가치와 대중의 화폐에 대한 신뢰 정도이다. 한 국가가 많은 상품을 보유하고 있고 신뢰할 만하다면, 그 국가의 화폐 가치는 높아진다. 반대로 보유하고 있는 상품이 매우 적거나 신뢰할 수 없다면 그 국가의 화폐 가치는 낮아진다. 이렇게 보면, 환율은 개별 화폐로 교환할 수 있는 상품 및 신뢰도의 크기를 상호 비교한 것이다.(p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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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로 사과를 사기는 쉽습니다만, 사과를 들고 시장에 가서 화폐를 구매하는 것은 (사과 가게 주인이 아닌 한) 쉽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 원화로 미국 달러화를 구매하는 것은, 또한 미국 달러화로 원화를 구매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이 원하기 때문에 가치가 발생하는 것은 화폐의 핵심적인 속성"


- 김찬호,「돈의 인문학」중 p229, 문학과지성사, 2011.


결국, 우리가 화폐금융론에서 배웠던 화폐의 기본적인 기능들이 순수하게 '기능적'으로 작동하는 것보다, 화폐가 보유하고 있는 '궁극적인 권력'에 대한 수요가 화폐의 가치를 결정짓는다라는 것으로 인해, 우리 모두는 화폐의 소유를 원하게 된 것입니다.5


"돈이 교환의 수단이 아니라 궁극적인 가치요 최종적인 획득 대상이 된다. 거기에서 사람들은 '돈만 있는' 삶을 맹렬하게 추구한다."

- 김찬호, 위의 책 중 p221.


일 개인의 수준, 혹은 그러한 개인들의 집합체로서의 사회가 '궁극적인 가치요 최종적인 획득 대상'으로서의 화폐를 추구한다라면, (「메이커스 앤드 테이커스」의 저자 라나 포루하의 표기를 따르자면, '거저먹는 자takers'6들인) 금융세력/금융업 종사자들이 화폐를 매매하는 이유는 보다 구체적입니다. "이익실현과 리스크회피"(p48)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돈을 버는 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제품과 서비스를 생산해 부를 창조(wealth creation)하는 것이다. 또 다른 방법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면서 돈을 버는 부의 이전(wealth transfer)이다. 


- '몇초만 보유한 주주에게도 같은 의결권 부여해야 하나?', 콜린 메이어 교수의 강연 중, DBR 131호, 2013.


우리가 목격하게 되는 환율의 변동은 기실, 화폐의 실질적인 수요과 공급에 따른 변동이라기 보다는7, '거저먹는 자들'의 이익 실현을 위한 투쟁의 결과물인 겁니다.8 그러니! --- 일반인들이 환율의 변동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 어려울 수 밖엔 없는 겁니다. 사과 농사가 흉년이어 사과의 값이 오른 것이 아닌, 흉/풍년 여부와 관계 없이 사과의 물량을 조절하는 세력으로 인해 사과 가격이 결정된다는, 뭐 그런 상황인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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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모론의 최대 특징은 그것이 틀렸다고 증명할 수 없다는데 있다.(p298) 


영화 <국가부도의 날>이 불편했던 이유는 그 영화가 미국의 음모에 의해 대한민국이 IMF의 시기를 겪었어야 한다는 뉘앙스를 너무도 대놓고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대한민국의 금융 관행을 그대로 놔둔 채, 영화 속 '정의(justice)'의 사도로 비춰지는 한시현(김혜수 분)의 주장처럼 (미국의 '음모'가 깃든 IMF의 구제금융을 받는 대신) 모라토리움을 선언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경제에 도움이 되었었을 것이라는 식으로 관객들을 호도하려는 감독의 의도는 정말 어처구니 없었었지요. 이런 식의 호도가 일반화되는 순간, 우리는 우리의 잘못을 냉정하게 분석하기보다는 외부의 누군가를 콕 집어 신나게 패주는 것으로 그 현상을 마무리짓게 되는 우()를 또 범하게 되는 것이니까요.


누군가 '내일 태양이 동쪽에서 떠오른다'고 예측했다고 해서 그 사람이 그 현상을 일으킨 것은 아니다. 소로스는 흐린 날씨를 보고 한발 앞서 우산을 준비했을 뿐이지 그가 하늘에서 비를 내리게 한 것은 아니다. 환율위기의 근본 원인은 바로 불가항력적인 경제의 자연규칙에 있다. 붕괴될 것은 어떻게 해도 붕괴되고, 서구의 금융세력은 단지 불이 난 틈을 노려 재물을 훔쳤을 따름이다.(p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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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에 대한 저의 부족한 지식을 채우기 위해 펼쳐든 책이었었습니다. 누군가 환율에 대한 기본 지식을 쌓을 수 있는 책을 묻는다면, 선뜻 추천할 수 있을만큼, 환율의 기본이론에 대한 설명 또한 친절하게 되어 있습니다. 허나, 


아시아 각국은 당시9 금융위기로 적지 않은 교훈을 얻었다. 투자자들은 근본적으로 개발도상국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에 약간의 화폐 절하에도 혼란에 빠리고 약간의 위기 신호만 나타나도 철수할 궁리를 한다는 것이다.(pp271~272)


결국 경제는 '심리의 문제'라는 점을, 더 나아가 --- 문재인 대통령의 광복절 기념사 속 구절처럼,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우리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야 말로, 환율에 깃들어 있는 경제학 이론보다 더 중요하다는 점을 배우게 된 것이, 이 책의 독서가 제가 준 훨씬 더 큰 소득이 아니었나 싶네요. 



※ 함께 읽어보길 권해보는 책들 :금의 홍수」·「메이커스 앤드 테이커스·금융의 모험·불편한 경제학·돈의 인문학·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 





  1. "환율이란 한 통화를 다른 통화의 가격으로 표시한 것을 일컫는다."(p16)
  2. "현실에서는 대체로 물건의 가치가 필요성이 아닌 희소성에 의해 결정된다. … 같은 물건도 희소성을 잃게 되면 그 가치는 폭락하고 만다. …… ​화폐 가치는 화폐 공급량에 의해 좌우된다. 쉽게 말해, 시중에 돈이 얼마나 유통되는지에 따라 화폐 가치가 결정되는 것이다."(pp27~28)
  3. 화폐의 가치가 신뢰의 문제라는 것을 기가 막히게 설명한 책이 바로「금의 홍수」이지요.
  4. "우리는 달러와 황금을 가지고 대량의 좋은 물건들을 교환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그것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다. 이런 점을 통해 한 화폐의 배후에서 그것을 지탱하는 것은 실제로는 '신뢰'뿐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결론적으로 믿으면 존재하고 믿지 않으면 사라지는 것이 화폐의 가치다. 달러든, 황금이든 또는 거석이든 상관없이 사람들이 화폐와 상품이 교환될 수 있다고 신뢰할 때만 그 화폐는 가치를 가진다."(p31)
  5. "화폐에 대한 욕망은 아주 독특한 욕망이다. 이는 그 돈을 가짐으로 해서 자기 존재의 '미래의 가능성'을 확장하고자 하는 욕망이다. 그가 일정한 사회적 관계 안에서 살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결국 그러한 욕망은 권력에 대한 욕망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희소한 것은 권력이지 재화 그 자체가 아니다. ………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돈을 벌어야만 미래의 가능성이라는 의미의 사회적 권력을 얻을 수 있도록 짜여져 있다. 따라서 권력을 향한 사람들의 무한한 욕망은 곧 화폐나 재화에 대한 무한한 욕망으로 나타나게 되고 경제는 희소성의 원리로 조직된다. 따라서 경제는 희소성의 선택이라는 정의가 현실성을 갖게 된다." - 홍기빈,「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중, 책세상, 2001.
  6. "'거저먹는 자takers'는 고장난 시장 시스템을 이용하여 사회 전체보다는 자기 배만 불리는 이들을 말한다. 거저먹는 자들의 범주에는 다수의 금융업자와 금융기관은 물론이고, 그릇된 사고에 젖어 있는 민간 및 공공 부문의 리더들, 그러니까 금융화가 경제 성장과 사회 안정, 심지어 민주주의도 좀먹고 있음을 알지 못하는 CEO, 정치인, 규제 담당자까지 들어간다." - 라나 포루하,「메이커스 앤드 테이커스」중 p30, 부키, 2018.
  7. "현대에는 국가의 중요성이 퇴색됨에 따라 환율의 전통적 역할이 나날이 부차적인 지위로 밀려나고 있다. 얼마 전까지 외환거래의 주원인은 국가 간의 무역, 투자, 소비에 있었다. 오늘날에도 이러한 이유들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금융시스템에 발달함에 따라 더 이상 결정적인 요소는 아니다. 비록 다국적기업들이 헤지를 이용해 환율 변동에 따른 리스크를 낮추지만, 헤지는 더 많은 경우 리스크 회피가 아니라 이익을 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된다. … 오늘날 대부분의 외환거래가 실질적이 목적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대량의 자금들이 환율 변동에 따른 차익을 노리고 달려든다는 점을 말해준다. 이런 외환시장에서 현대 금융세력들은 당연히 주인공 역할을 담당한다."(p332)
  8. "우리가 외환시장에서 목격하는 환율등락은 대다수가 실은 실물경제와 전혀 관계가 없으며, 단지 금융세력들의 게임에 따른 결과물일 뿐이다."(p334)
  9. IMF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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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의 디테일 - 고객의 감각을 깨우는 아주 작은 차이에 대하여
생각노트 지음 / 북바이퍼블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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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좋아하는 이유는 사소한 디테일 때문입니다. 그 디테일이 누군가에겐 보잘것없는 부분일 수 있지만 저에겐 도쿄행 티켓을 끊는 동력이 되었습니다. (p24) …… 제가 이 책에서 다룬 디테일은 고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디테일이었습니다. …「도쿄의 디테일」에서는 완벽한 상태 또는 세부 사항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 고객 입장에서 체감하는 감동의 순간을 '디테일'로 정의했습니다. (p325)


2019년 8월 현재와 같은 분위기에서라면, 아마도 이 책을 출간하려는 엄두조차 낼 수 없었을겁니다. 유니클로 매장이 텅텅 비어있고, 일본 맥주는 '4개 만원' 행사에 끼워주지조차 않는 지금과 같은 시국에서 '일본을 좋아하는'이라뇨. 그렇다면 저는 왜, 하필 이 시국에 이 책을 펼쳐들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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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라는 건 재산내역서의 숫자처럼 단순한 하나의 사실이 아니다. 현실을 바라보는 관점이자 여러 태도의 집합, 즉 특정한 삶의 방식이다."


- 박주영,「고요한 밤의 눈」중 p130, 다산책방, 2016.


뭐, 정부에서 전폭적으로 도와주면, 그리고 국민들의 애국심이 국산품 애용으로 표출되기만 하면, (게다가 남북평화까지 달성되면!) 일본을 따라잡는 것 쯤이야 별 어려움없이 이루어낼 수 있는 과제라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만, (다시 한 번 더, 세상 쌍욕을 모두 다 받게 된다해도) 저는 그렇게 쉬울 꺼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어디 한두 개의 요소 때문이겠습니까만, 어쨌든 '디테일'을 다룬 책을 소개하는 글이니 그 '디테일'이라는 점에만 국한하여 보기로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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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비아의 로렌스>라는 영화를 보면 유럽에 여행 온 아프리카인들이 호텔의 수도꼭지에서 물이 철철 나오는 것을 보고 이거다 싶어 수도꼭지를 떼어 고향으로 가져왔다. 물론 물은 나오지 않았다."


- 조영호, <조직의 크기는 곧 리더의 크기>, DBR 51호. 2010.02.


이 책에서 소개되고 있는, 저자가 생각하는 일본의 '디테일'이라는 사례들은 가만 보면 뭐 그렇게 '따라하기 / 배우기' 어려운 것들은 아닙니다. 껌 통에 종이 몇 장 같이 넣어주면 되는 거고, 편의점 알바가 도시락을 사는 손님에게 물티슈와 이쑤시개 한 개씩만 더 담아주면1 되잖아요. 그러나! --- 수도꼭지만을 떼어온다 하여 물까지 나오게할 수 없는 것이듯, 그들 일본인들이 어찌하여 그러한 디테일함을 제공하는지에 대한 우리의 고민이 없다면, 정말 영영 수도꼭지만을 떼어오는, 그러다 감정 상하면 '에이 씨발, 그깟 수도꼭지, 우리가 만들지 뭐!'라는 헛소리만 지껄이게 되겠죠. 우리의 목표가, 우리의 승리가 물은 나올 수 없는 수도꼭지를 만드는 것으로 결정되는 건 아니잖습니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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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테일한 부분에 주의를 기울이는 습관 역시 부단한 노력을 통해 길러지는 것으로, 하루아침에 어디서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 동안 조금씩 배양되는 것이다. 사람의 행동 가운에 95%는 습관의 영향을 받고 그 습관 속에서 자질이 조금씩 길러진다. … 습관은 인생의 근본이 되는 기초로서, 그 수준이 삶 전체를 좌우한다 … 성공은 바로 매일매일의 노력이 쌓여 계속 발전해나가는 과정이며 그 어떤 요행도 통하지 않는다."


- 왕중추,「디테일의 힘」중 pp72~73, 올림, 2005.


유니클로가 일본 자본으로 만들어진 기업이라서, 유니클로의 임원이 헛소리를 지껄였다 해서 그 반응으로, '유니클로 사지 말자!'라는 (일종의) 캠페인을 할 수도 있다 생각합니다. 그러나! --- 그저 불매 운동으로만 그친다면, 이제 날이 추워져 유니클로 히트텍이 본격적으로 필요하게 될 때면, 그 가성비 좋다는 히트텍을 입지 않는  불편함을 '소비자로서의 우리'가 오로지 애국심이라는 감정에만 기대어 감내해야 하는 걸까요? 


왜 우리나라 기업들 중에는 유니클로처럼 가성비 좋은 의류를 생산하는 기업이 없는 것일까? 라는 의문, 더 나아가 반성을 하며 우리도 날 추워질 때 유니클로 히트텍이 아닌, 우리나라 자본이 생산한 따스한 점퍼를 입게될 수 있어야만이 진정 --- (이걸 굳이 '일본과의 경제전쟁'이라 명명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으나 암튼) 이 '전쟁'에서 결국 승리자가 되는 것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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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일상처럼 자리 잡은 편의점의 ‘맥주 4캔 1만 원’ 행사. 5캔이나 6캔을 1만 원에 파는 경우도 심심찮게 보인다. 계산을 위해 신용카드를 꺼내려던 찰나, 편의점 직원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나온다. “손님, 일본 맥주는 4캔 1만 원 행사 대상이 아닌데 괜찮으십니까?” 문제가 된 것은 분명 체코산인 줄 알고 마시던 맥주 2종류. 커피를 연상케 하는 향의 ‘코젤’과 쌉싸래한 맛이 일품인 ‘필스너 우르켈’이다. 캔을 들고 꼼꼼히 살펴도 맥주잔을 든 염소며 멋들어진 알파벳 필기체까지 일본 제품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하지만 2종류의 맥주 모두 일본 소유주 제품이 맞았다."


- <24시간 일상 속 일본 제품 관찰기> 중, 동아일보 2019.08.10.자 Internet Copy.3


요즘같은 세상에, 자본의 소유 구조로 해당 기업이 어느 나라 기업인가를 판단하는 것이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건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궁금한 게 --- 우리나라 전자 업체들이 사용하는 핵심 소재(?) 세 가지에 대해 일본이 수출 과정을 현재보다 더 어렵게 하겠다 (경우에 따라서는 수출을 금지할 수도 있다)란 발표가, 이 '경제 전쟁'에 본격적인 불을 지폈던 것으로, 니네가 안 팔겠다니, 그럼 우리도 안 사겠다! 가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의 초반 분위기였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허나,  


결국, 일본 자기네들도 불편해 질 것이고, 그걸 그네들이 모를 리 없습니다. 일본의 헛발질에, 우리 또한 헛발질로 대응하는 게 과연 맞는 것일까요? (아직도 정리가 되지 않은, 그리하여 제 생각/답변을 아직은 글로 정확하게 적어낼 수 없음을 양해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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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앞으로의 경쟁은 디테일의 경쟁이 될 것이라고 과감하게 단언한다. 디테일을 중시하고 디테일에서 우위를 점하는 기업만이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


- 왕중추, 위의 책 p157.


일개 컨설턴트의 주장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으나 --- "제가 생각하는 '디앤디스러움'은 '없던 것을 새롭게 만드는 기획'이 아니라 '기존에 있던 것을 더 매력적으로 발견할 수 있도록 만드는 기획'을 의미합니다. 디앤디파트먼트의 활동을 가만히 지켜보면 완전히 새로운 것은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이 기획력을 토대로 이미 있던 것을 더 의미있게 하는 활동이 많습니다"(p190)라는 저자의 지적처럼, 


예를 들어 --- 하늘을 나는 운송수단을 만들어내겠다라는 포부로 사업을 시작하기 보다는, 지금의 대중 운송 수단이 사용자의 측면에서 어떤 어떤 불편함을 강요하고 있는지, 그러한 불편함의 강요를 편안함의 제공으로 바꾸어낼 수는 없을지,를 고민해보는 것이, 다시 말해,


새로운 것을 만들자는 뭔가 거창해보이는 일부터 해나가는 것이 아닌, 우리의 일상 속 현실의 개선이야말로, 지금 우리가 힘써야 할 지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 일 상 속 디테일은 일본이 우리보다 강점을 지니고 있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 생각합니다. 인정할 건 인정하고, 배울 건 또 배우고자 하는 태도가, 우리가 그네들에게 고개 숙이는 것을 의미하는 건 절대 아니잖습니까. 이기더라도, 멋지게, 그리고 완벽하게 이겨야 의미가 있겠죠. 


● "자질은 일상생활의 미세한 부분이 쌓여 형성되는 것이며, 그것을 쌓아가는 과정이 바로 노력이다."


- 왕중추, 위의 책 p66.


● "디테일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태도에 문제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진짜로 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하려고 하지 않아서 디테일에 실패합니다. 에티켓 문제만 봐도 그렇습니다. 할 줄 몰라서가 아니라 제대로 하고자 하는 태도가 없기 때문에 문제가 생깁니다. 겉에 드러나는 문제점의 원인은 내면의 태도에 있습니다. 한마디로 태도가 디테일을 결정합니다."


- 왕중추,「디테일의 힘2」중 p230, 올림, 2011.


※ 디테일의 힘! :디테일의 힘」·「디테일의 힘 2





  1. "비닐봉지 속에는 도시락 말고 일회용 물티슈와 이쑤시개도 들어 있었어요. 저는 문화 충격을 받았습니다. 일본 편의점은 식사 중인 소비자만 생각하지 않고, 식사 전후의 소비자까지 생각했으니까요. 식사하기 전에는 손님들이 손을 닦을 수 있도록 물티슈를 동봉했고, 식사를 하고 나서는 입안에 찝찝함을 남기지 않도록 이쑤시개를 넣어줬던 겁니다. 여기서 저는 처음으로 일본의 디테일에 반하게 되었습니다."(p25)
  2. 일본 아사히에서 만든 '16차'라는 음료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17차'가 그 제품을 본따 온 것일 것이라는 제 추측에 큰 무리가 있나요?
  3. http://www.donga.com/news/NewsStand/article/all/20190810/969098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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