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 24일자 원/달러 환율을 보니 1달러에 1,211원이네요. 이 환율이 전날보다 1원 오른 것이라는 사실이, 저의 그리고 당신의 일상에 미치는 영향은 ('전혀'와 비슷한 수준으로) '거의' 없다해도 무방하겠죠. 그러나, --- 소주값의 출고가가 100원 인상된다는 것이, 제가 식당에서 이전보다 1,000원이다 더! 소주값으로 지불해야 하는 일을 만들어 내듯, 오늘 당장의 삶에 환율 1원 인상이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하여도 그 뒤에 자리하고 있는 수많은 경제주체들의 삶, 그리하여 결국엔 저와 당신의 삶에도 어떻게든 영향을 미치게 된다라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합니다. 그러하기에,
우리가 느끼지 못할 뿐, 환율은 우리 생활 곳곳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것은 환율의 영향력이 직접 표면화될 때도 있지만 대개는 깊게 숨어 있기 때문이다. (p350)
제 아무리 ('IMF 시기'라는 표현으로 대변되는) 1998년의 악몽같은 시기를 (어쨌든) 이겨내었다고는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 '도대체 왜 당시의 대한민국은 그와 같은 시련의 시기를 겪을 수 밖에 없었던건가, 앞으로 또 다시 그와 같은 위기가 올 가능성은 정말 없는 것인가'와 같은 의문에 대해, 우리 스스로 해답을 만들어낼 능력까지는 필요치 않다 하더라도, (일종의 아웃소싱 방식으로 그러한 해답을 만들어내는 자들이 납품해 오는 제품으로서의) 여기저기서 제시하는 해답들을 적어도 이해할 수 있는 정도로의 능력은 필요치 않겠나라는 자각을 가지는 것이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란 성경 구절에도 부합되게) 필요하다라 생각합니다.
"항상 깨어있는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것. 두번 지기는 싫으니까요."
- 영화 <국가부도의 날> 중, 한시현(김혜수 분)의 대사
………………………………………………………………………………………
교환의 매개체, 가치 척도, 가치 보전, 부의 축적과 유통의 수단으로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면 어떤 것이든지 화폐가 될 수 있다.(p21)
'어떤 것이든지'의 일례로 저자가 미크로네시아의 야프(Yap) 군도 사람들이 사용했던 '거대한 돌(거석)'을 들고 있듯, 화폐의 물질적 형태가 그 가치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미미합니다. 그 어떤 것이든 그것이 화폐로 기능하는/할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일종의) 사회적 약속으로부터 비롯되기 때문이지요.
"화폐란 믿음의 문제, 나아가 신념의 문제라는 점 … 화폐는 금속이 아니다. 화폐는 신뢰를 새겨놓은 대상이다. 어디다 새겨 놓았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 이제 전자 시대에 들어서자 무형물도 화폐로 기능하게 되었다."
- 니얼 퍼거슨,「금융의 지배」중 p34, 민음사, 2010.
그런 점에서, 이 책이 다루고 있는 환율 또한 (물론 화폐 또한 일종의 재화이기에 수요와 공급이라는 경제학의 기본 분석 구조에 따르긴 하나) 기본적으로 '신뢰/믿음'의 문제임을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이건, 금본위 제도 하에서 뿐만이 아니라,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한 명제이죠.
모든 화폐의 가치는 두 가지 요소에 의해 결정된다. 바로 교환대상의 가치와 대중의 화폐에 대한 신뢰 정도이다. 한 국가가 많은 상품을 보유하고 있고 신뢰할 만하다면, 그 국가의 화폐 가치는 높아진다. 반대로 보유하고 있는 상품이 매우 적거나 신뢰할 수 없다면 그 국가의 화폐 가치는 낮아진다. 이렇게 보면, 환율은 개별 화폐로 교환할 수 있는 상품 및 신뢰도의 크기를 상호 비교한 것이다.(p32)
·
·
·
화폐로 사과를 사기는 쉽습니다만, 사과를 들고 시장에 가서 화폐를 구매하는 것은 (사과 가게 주인이 아닌 한) 쉽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 원화로 미국 달러화를 구매하는 것은, 또한 미국 달러화로 원화를 구매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이 원하기 때문에 가치가 발생하는 것은 화폐의 핵심적인 속성"
- 김찬호,「돈의 인문학」중 p229, 문학과지성사, 2011.
결국, 우리가 화폐금융론에서 배웠던 화폐의 기본적인 기능들이 순수하게 '기능적'으로 작동하는 것보다, 화폐가 보유하고 있는 '궁극적인 권력'에 대한 수요가 화폐의 가치를 결정짓는다라는 것으로 인해, 우리 모두는 화폐의 소유를 원하게 된 것입니다.
"돈이 교환의 수단이 아니라 궁극적인 가치요 최종적인 획득 대상이 된다. 거기에서 사람들은 '돈만 있는' 삶을 맹렬하게 추구한다."
- 김찬호, 위의 책 중 p221.
일 개인의 수준, 혹은 그러한 개인들의 집합체로서의 사회가 '궁극적인 가치요 최종적인 획득 대상'으로서의 화폐를 추구한다라면, (「메이커스 앤드 테이커스」의 저자 라나 포루하의 표기를 따르자면, '거저먹는 자takers'들인) 금융세력/금융업 종사자들이 화폐를 매매하는 이유는 보다 구체적입니다. "이익실현과 리스크회피"(p48)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돈을 버는 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제품과 서비스를 생산해 부를 창조(wealth creation)하는 것이다. 또 다른 방법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면서 돈을 버는 부의 이전(wealth transfer)이다.
- '몇초만 보유한 주주에게도 같은 의결권 부여해야 하나?', 콜린 메이어 교수의 강연 중, DBR 131호, 2013.
우리가 목격하게 되는 환율의 변동은 기실, 화폐의 실질적인 수요과 공급에 따른 변동이라기 보다는, '거저먹는 자들'의 이익 실현을 위한 투쟁의 결과물인 겁니다. 그러니! --- 일반인들이 환율의 변동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 어려울 수 밖엔 없는 겁니다. 사과 농사가 흉년이어 사과의 값이 오른 것이 아닌, 흉/풍년 여부와 관계 없이 사과의 물량을 조절하는 세력으로 인해 사과 가격이 결정된다는, 뭐 그런 상황인 거니까요.
………………………………………………………………………………………
음모론의 최대 특징은 그것이 틀렸다고 증명할 수 없다는데 있다.(p298)
영화 <국가부도의 날>이 불편했던 이유는 그 영화가 미국의 음모에 의해 대한민국이 IMF의 시기를 겪었어야 한다는 뉘앙스를 너무도 대놓고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대한민국의 금융 관행을 그대로 놔둔 채, 영화 속 '정의(justice)'의 사도로 비춰지는 한시현(김혜수 분)의 주장처럼 (미국의 '음모'가 깃든 IMF의 구제금융을 받는 대신) 모라토리움을 선언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경제에 도움이 되었었을 것이라는 식으로 관객들을 호도하려는 감독의 의도는 정말 어처구니 없었었지요. 이런 식의 호도가 일반화되는 순간, 우리는 우리의 잘못을 냉정하게 분석하기보다는 외부의 누군가를 콕 집어 신나게 패주는 것으로 그 현상을 마무리짓게 되는 우(愚)를 또 범하게 되는 것이니까요.
누군가 '내일 태양이 동쪽에서 떠오른다'고 예측했다고 해서 그 사람이 그 현상을 일으킨 것은 아니다. 소로스는 흐린 날씨를 보고 한발 앞서 우산을 준비했을 뿐이지 그가 하늘에서 비를 내리게 한 것은 아니다. 환율위기의 근본 원인은 바로 불가항력적인 경제의 자연규칙에 있다. 붕괴될 것은 어떻게 해도 붕괴되고, 서구의 금융세력은 단지 불이 난 틈을 노려 재물을 훔쳤을 따름이다.(p296)
·
·
·
환율에 대한 저의 부족한 지식을 채우기 위해 펼쳐든 책이었었습니다. 누군가 환율에 대한 기본 지식을 쌓을 수 있는 책을 묻는다면, 선뜻 추천할 수 있을만큼, 환율의 기본이론에 대한 설명 또한 친절하게 되어 있습니다. 허나,
아시아 각국은 당시 금융위기로 적지 않은 교훈을 얻었다. 투자자들은 근본적으로 개발도상국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에 약간의 화폐 절하에도 혼란에 빠리고 약간의 위기 신호만 나타나도 철수할 궁리를 한다는 것이다.(pp271~272)
결국 경제는 '심리의 문제'라는 점을, 더 나아가 --- 문재인 대통령의 광복절 기념사 속 구절처럼,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우리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야 말로, 환율에 깃들어 있는 경제학 이론보다 더 중요하다는 점을 배우게 된 것이, 이 책의 독서가 제가 준 훨씬 더 큰 소득이 아니었나 싶네요.
※ 함께 읽어보길 권해보는 책들 :「금의 홍수」·「메이커스 앤드 테이커스」·「금융의 모험」·「불편한 경제학」·「돈의 인문학」·「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