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철학에 미치다 - 생각하는 힘, ‘수학’으로 키워라!, 개정판
장우석 지음 / 페퍼민트(숨비소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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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와 대학원생 시절, '필요에 의해서'라는, 사뭇 반강제적인 이유로 단순 계산, 즉 '산수'가 아닌, 진짜 '수학'(의 몇몇 과목들을)을 수강하다 보니, 수학이라는 학문이 결국엔 '생각하는 방법을 훈련받는 분야'라는 것을 자연스레, 별 의문 없이 받아들이게 되더군요. (물론 당시에는 그처럼 수학 자체의 아름다움에 빠져있을 만한 여유는 없었습니다. 그냥... 반복!하여 암기!해내야 한다는 과제만이 있었었을 뿐.) 이렇게 체험적으로, 허나 논리적이지는 않게 성립되었던 제 생각을, 수학교육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철학을 전공했다는, 현직 고등학교 수학교사인 저자는 데카르트의 유명한 말을 빌어 그 '철학과 수학의 연결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Cogito, ergo sum" --- 내가 존재한다는 최종적인 근거가 나의 생각에 있다는 뜻인 이 명제를 논리적으로 정직하게 밀어 붙이면 결국 "나는 생각하는 동안만 존재할 수 있다"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나의 일상을 돌아볼 때, 주어진 상황을 별 생각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회적 관습과 나의 몸의 관성에 따라 하루하루를 보내는 경우가 많다. 즉 생각 없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데카르트에 의하면 이러한 삶은 무의미한 삶이라기보다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 삶이다. …… 철학은 학문이라기보다는 사유하는 삶의 자세이다. …… 서양의 역사에서 수학은 철학적 사유의 원형으로서 철학을 이끌어왔다. 새로운 문제의 발견을 통한 인식의 틀의 확장, 그리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의 논리의 정교한 발전 등은 거의 모두 수학을 통하여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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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과 수학」처럼, 이 책 또한 일종의 수학사數學史를 다루고 있는 책이라 말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그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수학의 배경에 놓여있는 '철학'적 문제들을, 철학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인으로서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라는 수준까지 밝혀줌으로써, '이 정도면 완벽해'란 감탄까지를 자아내주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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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피라미드의 높이를 거의 정확하게 계산해 냈다는, 그리스의 철학자 탈레스가 최초로 증명한 여러 명제들 중 하나인 "원은 지름에 의하여 이등분된다"의 증명을 보는 순간, 여전히 제 마음 한 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더 좋은 것은 훗날에 남았으리'라는 작가 이문열의 구절이, 정말로 오랫만에 다시금 떠올랐더랬습니다.

● 탈레스의 증명 : 지름에 의하여 원이 좌우대칭되지 않는다고 가정해보자. 지름을 기준으로 접었을 때 포개지지 않는 부분이 존재할 것이다. 그런데 원은 중심에서 모든 점까지의 거리가 동일하다. 그렇지만 포개지지 않는 부분은 중심에서의 거리가 다르다. 이렇게 되면 이것은 원이 아니게 된다. 우리가 그린 것은 원이었다. 따라서 원은 지름에 의하여 정확하게 포개져야만 한다

'A라는 사실이 성립하지 않는다라고 가정해 보자'로 시작되는, 그야말로 '증명 방식의 기초'를 보여주고 있는 이 부분을 읽었던 순간, 지금으로부터 22년 전, 제가 '1+1=2'의 증명을 배우며 가졌었던, '세상에 뭐 이런 당연한 것을 어렵게 증명하나'란 불평이, 그렇게 22년간 불평으로만 남아있었던 그 마음이... 완전히 사라지게 되는, 그런 짜릿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당시엔... 그 누구도 '왜?' 이런 방식의 증명을 하고 있는지에 관해 알려주지 않았었던, 그저 암기의 대상으로만 여기게 했었던 것을, 이제 이 책을 읽을 수 있는 지금의 학생들은 최소한 그 '왜'라는 질문에 대한 확실한 답변을 가지고 있다라는 부러움이 그렇게... 저로 하여금 이문열의 위 구절을 떠올려주게 했던거지요. '왜?'가 생략된 '어떻게!'만의 암기는 그 생명력이 결코 길지 않다라는 걸... 말 그대로 '절박하게' 깨달았던 순간이 제게 있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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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스 이후 피타고라스로부터 파르메니데스를 거쳐 플라톤에 이어져온, '불면하는 세계에 완벽하게 적용되는 사유의 원리이자 존재의 원리'는 아리스토텔레스에 이르러 '논리'라는 이름으로 정식화되며, 드디어 철학과 수학 그리고 논리가 하나로 결합된 그리스 사유의 완성을 이루어내게 됩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 체계는 크게 다음과 같은 '삼단논법'과 '세 가지의 논리법칙'으로 요약될 수 있지요. 

<삼단논법> 

● 대전제 : 모든 사람은 죽는다

● 소전제 : 기영이는 사람이다.

● 결론 : 기영이는 죽는다.

 

<세 가지의 논리법칙>

(1) 동일률 (Principle of identity) : A는 A이다.

(2) 모순율 (Principle of contradiction) : A이면서 동시에 A 아닌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3) 배중률 (Principle of excluded middle) : A이든지 A가 아니든지 둘 중의 하나는 반드시 성립한다.

 

편집상의 문제 때문에 수학적 표기는 따로 표시합니다. 블로그 하면서 수식 기능까지 써보게 될 줄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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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A%5Ccap%20%5Ccombi%20%5E%7B%20c%20%7D%7B%20A%20%7D%3D%5Cvarphi%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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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세 가지의 논리법칙' 중, 모순율을 다른 모든 논리 법칙의 출발점으로 보았습니다. '대립된 것들이 동시에 참일 수는 없다'라는 믿음이야말로 이 세상의 모든 믿음 중 가장 확실한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지요. 이제 그는 이 모순율로부터 다음과 같은 논리로 배중률을 이끌어 냅니다.

이제 어떤 X가 있다고 하자. 이 X가 A와 같다면 모순율에 의하여 A 아닌 것이 될 수 없다(2). 즉 A와 A 아닌 것의 양쪽에 걸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X라 할지라도 A와 같거나 A 아닌 것과 같거나 둘 중의 하나여야 한다(3).

​이제 그는 모순율과 배중률로부터 세 가지 논리법칙의 최종 결론인 동일률을 이끌어냅니다.

모순률에 의하여 A면서 A 아닌 것은 없으며(3) 배중률에 의하면 A이거나 A가 아니거나 둘 중의 하나여야 한다(2). 이 두 가지를 종합하면 A는 A 이외의 다른 그 어떤 것도 될 수 없다(1).

 

​말장난으로도 보일 수 있는, 사뭇 너무도 당연해서 '논리학의 창시자'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름을 거론하는 것조차 민망할 수 있는 이상의 내용이 수학사에 있어 이토록 중요한 이유는 바로 그의 '삼단논법'과 '세 가지의 논리법칙'으로 인해, '기하학의 경전'이라 불리우는 유클리드의 「원론」이 탄생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클리드 「원론」의 의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 체계를 수학에 적용하여 스스로 성립하는 명백한 공준과 공리('삼단논법'의 대전제와 같은 것)를 찾고 이에 근거하여 논리적 추론으로(이 과정에서 동일률, 모순율, 배중률이 사용됨) 여러 새로운 정리('삼단논법'의 결론과 같은 것)를 유도해내는 공리주의(公理主義)라는 사유의 형식을 만들어낸 데 있다. ……   유클리드는 다섯 개의 공리(Axiom)와 다섯 개의 공준(Postulate)으로 이루어진 열 개의 전제와 아리스토텔레스가 확립한 논리법칙들을 이용하여 465개의 참임이 증명된 수학의 명제인 정리(theorem)을 체계적으로 유도했다. 이것이 <원론>의 체제이다.

유클리드의 뒤를 이은 아르키메데스는 수학을 구체적인 물리 문제에 적용시켜 '지레의 원리'를 발견해 내었고, 이로써 드디어 수학은 본격적으로 외부세계로의 진출을 시작하게 됩니다.

 

<지레의 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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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의 수학은 불변의 세계, 멈춤의 세계를 그 대상으로 가정하고 있었습니다. 근대과학의 시작점으로 평가되는 갈릴레오의 '낙하 법칙'을 시발점으로 이제 수학은 변화하는 세계, 움직이는 세계로 진출하게 되지요. 이는 단순히 수학의 분석 대상이 변화하였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만이 아니라, '진리를 현실에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진리를 끌어내는 새로운 과학'이 탄생되었음을 말해주는 것이었다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데카르트에 의해 발명된 직교좌표축은 도형의 문제(기하)를 방정식의 문제(대수)로 바꾸어냄으로써, 대수학을 중심으로 한 수학의 통일을 이루어 냅니다. 또한 이 시기에 정립된 함수 개념이 이 데카르트의 좌표와 연결됨으로써 우리는, 움직이는 현상(즉 함수 관계)을 움직이지 않는 좌표에 그림으로 나타낼 수 있게 되었고, 그 그림을 수식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된 것이지요.

 

함수라는 것은 '변화의 규칙'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함수를 분석한다는 것은 '변화를 이해한다'는 의미이며, 이 '이해함'은 ① 변화하는 방식(어떻게 변화하는가)에 대한 정보와 ② 변화한 결과로서의 총량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어야 완결될 수 있는 것이지요. 뉴턴과 라이프니츠에 의해 발명된 미분과 적분이 수학사에서 가장 위대한 발걸음이라 불리우는 이유가 바로, 이 두 가지의 '이해함'을 미분과 적분이 비로소 가능케 해주었으며, 그로부터 우리는 변화하는 자연현상을 보다 정밀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인 겁니다. (오랫만에 만나 본 미분과 적분의 유도 과정은 여전히 매력적!!!이더군요.)

 

이처럼 대수학으로 통일된 수학은 이제 단순하고 기계적인 절차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갑니다만, 여전히 그 배경에 깔려 있는 철학적 사고는 멈추지 않습니다. 칸토에 의해 발명된 집합이론(Set theory)은 여전히 인간의 추상적 사고력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보여주고 있는 극적인 실례로서, 17세기 이후의 수학의 역사에서 추상적 논리의 정점이 위치하고 있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지요.

 

이러한 추상적 사고의 발전은 브로우베르에 이르러서는, 이제까지 의심되지 않고 받아들여져 왔던 아리스토텔레스의 '배중률'에 대한 도전으로 나타납니다. 브로우베르는  '원주율 π = 3.141592 …… 의 소수 전개에서 9가 '연속적으로 '100회 나타날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통해, 모든 A에 대하여 'A가 성립하거나 성립하지 않거나 둘 중의 하나'를 주장하는 배중률의 사용은 유한의 경우로 제한되어야 함을 보여주었지요.

 

독일의 수학자 힐베르트는 간단한 응용문제를 통해, 수학의 본질은 어떠한 전제로부터 결론을 유도해내는 과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님을, 즉 수학은 전제로부터 결론을 유도해내는 '과정의 논리적 정당성(즉 형식)만을 탐구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렇게 전개되어 온 수학의 역사를 저자는 다음과 같이 간단하게 정리해줍니다.

 

 아리스토텔레스 (동일률, 모순율, 배중률) : 수학은 존재의 불변성을 탐구하는 학문

라이프니츠 (모순율, 충족 이유율) : 수학은 관계의 일관성을 탐구하는 학문

힐베르트 (무모순성, 완전성) : 수학은 규칙을 정해놓고 하는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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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었다는 미분과 적분을 제가 저의 실생활에서 사용할 일은 전혀 없습니다. 돈 계산을 위한 사칙연산 또한 핸드폰에 들어있는 계산기의 힘을 빌리면 됩니다. '돈만 셀 줄 알면 되지, 뭔 수학을 공부한다고 그래!'라는 옛 어른들의 말도 이젠 틀린 말이 된거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왜? 수학을 배워야만 하는 걸까요? --- 이 물음에 대한, 현직 수학교사로서 저자의 대답은 어느 한 곳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없을만큼 완벽합니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 자연수 n≥3일 때, 다음의 등식을 만족하는 자연수 a,b,c는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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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는 페르마가 이 문제를 제기한 지 350여년이 지나서야 증명되었다. …… 350년 동안 풀리지 않을 수 있는 문제를 낸 사람과 350년 만에 그 문제를 푼 사람 중에서 누가 더 대단한가? ……문제 제기 능력과 답을 찾는 능력은 모두 필요하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것은 문제 제기 능력이다. 문제가 있어야 풀 것 아닌가? 중요한 것은 주어진 문제의 답을 찾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질문을 던질 줄 아는 것, 그리고 그 답을 찾아 새로운 사유를 해보는 것, 바로 그것이다. …… 페르마의 예측을 증명하는 과정에서 현대 대수학의 많은 새로운 방법론들이 생겨났으며 전혀 관련 없다고 믿어졌던 영역들 사이의 관련성들이 밝혀졌다. ……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는 좋은 문제 하나가 얼마나 많은 생산적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를 보여준 실례이다. ……한국 사회는 기본적으로 질문이 별로 없는 사회이다. 뭔가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을 반기지 않는다. 이에 반해 정답은 '주여져' 있는 경우가 많다. …… 답은 내 생각과는 무관하게 이미 존재한다. …… 질문은 없고 정답만 존재하는 사회는 '사유'가 실종된 사회이다. …… 아이들의 싸가지를 욕하기 전에 우리 사회의 모습을 바꾸려고 노력하자. 그들의 싸가지 없음은 바로 우리 사회의 '사유 없음'의 결과물일 수 있기 때문이다.

수학은... 결국엔 '생각하는 방법을 훈련받는 학문'입니다. "삼각형의 세 내각의 합은 얼마인가?"라는 질문에 우리는 "180도"라 대답하지만, 수학자들은 이 대답을 틀렸다,라 말합니다.  왜 그럴까요? --- 한 마디로 수학의 발전사는 '왜?'라는 단순한 사고의 연속이었던 것이며, 그 '왜?'라는 질문이 결국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문명을 낳았다라는 사실... 이 간단한 진실을 이 책은 환상적인 지적 유희를 통해 저에게 알려주었습니다. (초반부에 나오는 그리스 철학과 수학과의 연계는 정말로 흥미로웠습니다만, 나중에 근대 철학만! 나오는 몇몇 부분들은 꽤나 어렵더군요. 읽고 다시 읽고를 해보긴 했지만, 그래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은 그저... 그렇게 이해되지 않는 것으로 남겨 두기로... --;;)

 

이 책은 '어떻게하면 수학을 더 잘할 수 있을까?'에 관해서는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내가 더 멀리 볼 수 있다면 그것은 내가 거인들의 어깨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라는 아이작 뉴턴의 말을 직접 느껴보길 원하신다면, 주저말고 이 책을 펼쳐보시길... 이라는 말을 하게만 되는, 읽는 내내 저를 말 그대로 '미치게' 만들어주었던 이 책 「수학, 철학에 미치다」입니다. 이런 멋진 선생님께 수학을 배우는 숙명여고 학생들이 그저 부러울 뿐이지만, 한편... 이 쌤이 내는 수학문제가 결코 만만하지는 않을 것도 같기에, 이 감상문은... '1+(-)1=0'의 수식으로 마무리 짓는 걸로. ^^;;

 

 

※ 수학에 관한 읽어본 다른 책 :문명과 수학

※ 경제학, 철학에 미치다 : 「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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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과 수학 - 세상을 움직이는 비밀, 수와 기하
EBS 문명과 수학 제작팀 지음, 박형주 감수 / 민음인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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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물에 대한 완전한 탐구, 모든 존재에 대한 통찰, 모든 비밀에 대한 지식을 제시하고자 이 글을 쓴다."라는 서문으로 시작되는, 람세스 2세의 무덤에서 발견된, 3,500년 전에 쓰여진 파피루스에는 삼각형 · 사각형 · 사다리꼴 · 원 등 도형의 넓이와 원기둥 · 피라미드의 부피를 구하는 법 그리고 단위 분수의 계산과 일차 방정식 풀이 등을 포함해 모두 84개의 문제가 담겨져 있다고 합니다. 바로 지금 초등학교 6학년인 종원군이 배우고 있는 것들이, 3,500년 전의 이집트 파라오에게는 '모든 사물에 대한 완전한 탐구'였고 '모든 존재에 대한 통찰'이었을 뿐 아니라 심지어 '모든 비밀에 대한 지식'이 되어주기도 했던 거지요. --- 이 책의 맨 처음에 나오는 이 문장을 읽으며, 이것이 바로!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우리의 역사 그리고 인류의 역사라는 '프리퀄'에 겸손해져야만 하는/감사해야 하는 ​이유를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봤었습니다.

"우리는 어디에서 시작해 여기까지 왔을까? --- 이 의문에 대한 해답을 구해가는 과정을 간략하게 보여주고 있는, 즉 일종의 수학사數學史에 관한 대중서로서, 저자에서 알 수 있듯이, 저도 2/3 정도는 올레TV를 통해 보았었던, EBS에서 방송되었던 프로그램의 내용을 한 권의 책으로 엮어 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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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가 '수학'이라고 부르고 있는 분야의 역사를 이 책은 고대 이집트로부터 시작하고 있습니다. 고대 이집트의 수학은 '문명은 현실적인 필요에 따라 질문을 했고, 수학은 그에 대한 답을 했으며, 통치자는 그 비밀스러운 답을 간직할 수 있었다'라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는데, 이것은 곧 당시의 권력이 수학의 여러 측면들 중 '유용성'이라는 점을 가장 중요시 했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당시 가장 중요했었던 통치 행위는 농민들에게 공평하게 땅을 나누어 주고, 이를 통해 세금을 거두는 것이었기에 '도형에 대한 연구', 즉 '기하'를 중심으로 수학이 발전하게 된 것이었지요.

뒤를 이은 그리스 문명에서는, '사물의 뒤에 숨은 보이지 않는 원리를 찾는 것'이 대유행이었던 당시 그리스 지식인들의 학문적 풍토를 따라, 추상적이고 사변적이기도 한 질문과 이에 대한 해답을 구하는 방식으로 수학이 발전하게 된다고 합니다. ​기하에 강했던 이집트 인들도 이미 직각 삼각형을 이루는 세 변의 비가 '3:4:5'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것이 왜! 직각 삼각형을 이루는 것인지, 왜! 어떤 수는 되고, 어떤 수는 안 되는지까지는 고민을 하지 않았었지요. 앞서 말했듯 이집트 문명은 오로지 '유용성'의 측면에서만 수학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피타고라스가 바로 이 왜!에 대한 해답을, '증명'이라는 방식을 통해 하나의 '법칙'으로 만들어내었기에. 진정한 수학의 시작은 바로 이 때, 피타고라스로부터 시작되었다라고 책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건 마치... '경제'에 대한 관념이 아담 스미스 이전의 사람들에게도 존재하고 있었었지만, 아담 스미스에 이르러서야 그가 그 흩어져 있던, 추상적이었던 관념들을 체계적으로 발췌 · 정리 · 해석해 내었기 때문에 그를 '경제학의 아버지'라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인 거겠지요.

 

​그리스 시대의 증명, 그것은 논리의 계단을 하나씩 하나씩 밟아 올라가는 과정이다. 비약은 허용되지 않는다. 완벽한 논리의 완성은 각 단계마다 엄정함을 요구한다. 하나를 건너뛸 수도 없고 지름길을 찾을 수도 없다. 이런 시대 정신이 고대 그리스라는 문명을 만들었다.

​이러한 그리스 문명에서 등장했었던 여러 사례들 - 무리수의 등장, 거북이와 아킬레스의 달리기 논쟁 등 - 은 수학이라는 학문이 단순히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산수calculus'가 아니라 왜 철학자들의 사유 대상이 되었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p69에 등장하는 "어떤 길이의 직선으로 정삼각형을 만들어라"라는, 지극히 단순해 보이는 이 문제에 대한 유클리드의 해답은 '생각하는 힘'이라는 것이 어디까지 극대화될 수 있느냐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아닐까도 싶더군요.  

뒤이어 책은 인도 수학에 대해 '현대의 위치기수법을 끌어올리기 위해 마중물을 부었다'라고 설명하고 있으며, 아랍 수학에 와서는 이전의 성과들이 한데 어울어져 기수법과 셈법, 대수학, 삼각법, 그리고 기하학 등에서 커다란 발전을 이루게 된다고 책은 말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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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산업혁명 과정에서 '수학'은 다시 유용성의 측면이 강조되어, 물리학과 천문학 등의 발전에 혁혁한 공을 세우게 됩니다. 하지만 19세기 이후에는 그 양상이 다시 크게 바뀌게 되는데, 이후부터는 수학이 어디에 유용한지에 대해 아예 염두에 두지 않고 그 자체의 자기완결성을 지닌 수학,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지닌 수학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해졌고, 이런 전통은 20세기까지 유지되었었지요.   

 

21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수학의 이러한 두 가지 측면, 즉 현실세계의 필요에 답하는 유용성의 측면과 우주 질서에 대한 추상적이고 사변적인 질문에 답하는 철학적 측면이 한 데 어우러지게 되어,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한 곳에서도 '수학'은 그 위력을 발휘하고 있게 됩니다.

 

21세기 문명은 어떤 수학을 발전시키고 있을까?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수학 이론은 그 폭이 방대하고 강력해 위기에 처한 인류의 큰 무기이며, 350년 난제였던 페르마의 마지막 문제를 해결한 와일스가 사용했던 타원곡선 이론은 오늘 날 우리 교통카드에 타원곡선 암호라는 모습으로 들어와 있다. 유용함을 염두에 두지 않은 추상적 이론이 가장 유용한 인류의 도구가 되기도 하고, 특정 목적으로 만든 수학 이론이 새로운 개념을 이끌기도 하는 것이다. 

…………………………

 

 

2002년 월드컵이 끝나고 얼마 후, 당시 월드컵으로 한창 주가가 올라있던 모 국회의원이 어느 TV 프로그램에 나와 했었던 다음의 말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당시엔 이 말이 무척이나 참신하다라 받아들여졌었거든요.) --- '훌륭한 정치가가 되기 위해선 먼저 정치꾼의 단계를 거쳐야 합니다. ​지금 국민들께서 보고 계시는 모습을 정치가가 되기 위한 정치꾼의 모습으로 이해해주신다면, 곧 우리의 정치도 진정한 정치가들을 갖게 될 거라 믿습니다'라는 내용이었었지요. (근데... 이번 지방 선거를 보니, 그 분의 모습은 자신의 말과는 달리, '정치꾼'의 단계조차 전혀 못 벗어나 있는 듯. --;;)  

'학문의 대중화'라는 것도 어쩌면 그가 말한 '정치꾼 - 정치가'의 모습을 띄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라는 생각을 이 책을 읽으며 해봤더랬습니다. --- 지식의 배경과 깊이의 스펙트럼이 천차만별인 불특정 대중을 향해, '알기 쉬운'이라는 단어를 충족해 낸다라는 건, 어쩌면 애초부터 불가능한 작업일지도 모릅니다. 수학 자체의 아름다움을 보여줄 수는 없다는 한계를 처음부터 지닌 채, '수학'이라는 학문에 대해 '이게 정말 대단한 거였구나!'라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라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라 말할 수 있을만큼 어려운 일이니까요. (정치꾼에게 정치가의 풍모를 기대할 수 없듯이!) 그러하기에 누군가를 만족시킬 수는 있겠지만, 또 그만큼의 불만족스러운 독자를 가지게 될 수 밖엔 없는 시도라는 것을 충분히 감안한다 하더라도 일종의 수학사를 다루고 있는 이 책은!!! 

애초에 제가 가졌었던 기대에 비한다면 그다지 만족스러운/재미있는/유익한 독서는 아니었다라고, (EBS에서 발간된 「지식e」시리즈나 「역사e」 시리즈에 비한다면) 사실은 좀 실망했었다라 말할 수 밖엔 없습니다. 저 개인적으로, '수학사'에서 단연코 가장 위대한 발견이라 생각하는 '미분과 적분'에 대해, 그 발견 당시의 에피소드를 제외하고는 딱히 두드러진 설명이 없다라는 점도 이해할 수 없었었고, 무엇보다! '대중 교양서'라면 기본적으로 독자들에게 ,이러이러하니까 수학을 좀 공부해보라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해도, 최소한 수학에 대한 흥미 정도를 일정 수준까지는 이끌어낼 수 있어야하지 않을까 싶거늘, 전적으로 의욕의 과다함과 편집상의 문제라 여겨지는 것들로 인해 초반부에선 흥미를 자아내었던 서술과 주제들이, 막판에 가서는 거의 중언부언의 수준으로 변질되어 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너무 많은 것을, 많지도 않은 공간에 한데 담아내려 하다보니 무엇 하나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 한 마디로 말해 '죽이라 말하기엔 좀 되고, 밥이라 말하기엔 지나치게 진 그 무엇'을 만들어 버렸다고나 할까요?

<부록>으로 실려있는, 본문에서 다루지 않았던 좀 더 심화된 내용들이​ 이러한 약점들을 어느 정도까지는 보완해주고 있다라는 것이 그나마 아쉬움을 달래주고 있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여전히... 이 책이 자신의 모태인 '방송 프로그램'의 훌륭함을 (전혀!라고는 차마 말하지 못하겠는) 거의! 담아내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을 버릴 수는 없었습니다. 100자평 식으로 요약해 본다면 --- 미분이 등장하기 이전까지의 부분들은, 중학교 1-2학년 정도되는 학생들에겐 '지금 내가 배우고 있는 수학'이라는 과목이 어떻게 탄생하였는가를 알려줄 수 있는 나름 유익하고 재미있는 소파에 앉아 읽어도 무방할 주말 독서용 안내서 정도는 되어줄 수 있을 듯...쯤이었다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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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일즈맨의 죽음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18
아서 밀러 지음, 강유나 옮김 / 민음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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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의 퇴근길은, 잊을 수도 잊혀지지도 않는, 지난 닷새 동안의 스트레스로부터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다라는 해방감스런 기분을 가져보게 되는, 그야말로 '노곤한 행복'이 느껴지는 순간이지요. 들어오는 길에 슈퍼에 들러 뭐 좀 사다줄래?라는 아내의 전화, 곧이어 날아온 '한 잔 할까?'라는 친구의 문자... 모두 그 '노곤한 행복함'을 배가시켜주는 것들이었습니다. 룰루랄라! 얼마만에 제 입에서 나오는 흥얼거림이었던지요. 그러나!!! --- 슈퍼 앞에는 이미 차들로 가득 차 주차할 곳이 없더군요. 할 수 없이 다른 슈퍼로 차를 돌렸습니다만, 그곳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약속 시간도 있고 해, 아내에겐 미안하지만 그냥 집으로 들어갔고, 약간의 눈총을 이겨내며, 옷을 갈아입기 위해 주머니 속 물건들을 꺼내는데, 아차차!!! 카드 지갑을 회사에 놓고 왔네요. 아내의 교통카드를 들고 마을버스를 타려 육교를 건너가고 있는데 썅!!! 딱 20초만 일찍 나왔더라면 탈 수 있었을 마을버스가 막 출발하고 있습니다. (버스 오는 쪽을 바라보며 서 있는 시간으로는 매우 길게 느껴지는 시간인) 5분쯤 기다린 후 다른 노선의 마을버스를 탔습니다만, 버스기사님은 배차 간격 때문인지 너무도 느릿느릿 운전을 하는 겁니다. 친구에게 왜 아직 안오냐는 문자가 왔고, 먼저 들어가 고기 굽고 있으라는 답장을 보냈으며, 여전히 느릿느릿 가고있는 버스에 그렇게 앉아 있는데, 갑자기... 왼쪽 발등이 간지러워 옵니다. 지금 신고 있는 운동화는 구두주걱 없이는 신기 힘든 것이라, 좀 참아보려 했거늘, 아... 안되겠네요. 신발을 약간 벗고 몸을 구부려 발등을 시원스레 긁는 순간 악!!! 운동이라곤 '보는 것' 말고는 일체 하지 않는 제 몸은, 그 약간의 구부림만으로도 오른쪽 어깨에 담이 왔었고, 잠시 잠깐 눈이 노래지면서 정신이 아찔해집니다. 등에는 식은 땀도 흐르구요. 아... 간만에 밖에서 술 한 잔 하겠다는데 참... --;;

…………………………………

 

주인공 윌리 로먼의 젊은 시절은 참으로 행복했었습니다. 세일즈 맨이었던 그는 적지 않은 돈을 커미션으로 받을 수 있었으며, 어딜 가나 많은 사람들로부터 환영을 받았었지요. 그의 아내는 그를 더없이 사랑했고, 어린 두 아들들은 아빠가 출장에서 돌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을 만큼 그를 따랐고 또 존경했습니다. 행복한 현재는 자신의 미래 또한 당연히! 행복할 것이라는 꿈을 그에게 가지게 해주었습니다...만. --- 세상은 변했고, 과거에 그려보았던 미래가 현실이 되어 있는 지금의 그는, 예순의 나이로 여전히 세일즈 맨일을 하고 있는, 허나 ​1100킬로미터를 달려서 가도 아는 사람 하나 없고 반겨 주는 사람도 없으며, 동전 한 푼 벌지 못한 채 다시 1100킬로미터를 달려 집으로 돌아오기를 밥먹듯 하고 있을 뿐이었지요.

 

그런 현실은 어느 순간, 그에게 환각과 환청속에서 과거의 인물들과 혼잣말을 나누게 되는 버릇 아닌 버릇을 가지게 해주었고, 두 아들들은 이런 아버지를 미쳤다라고까지 표현합니다만, 그의 아내 린다만큼은 여전히 그를 이해해주고 보듬어 줍니다.

린다 : 윌리 로먼은 엄청나게 돈을 번 적도 없어. 신문에 이름이 실린 적도 없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인품을 가진 것도 아니야. 그렇지만 그이는 한 인간이야. 그리고 무언가 무서운 일이 그에게 일어나고 있어. 그러니 관심을 기울여 주어야 해. 늙은 개처럼 무덤 속으로 굴러떨어지는 일이 있어서는 안 돼. 이런 사람에게도 관심이, 관심이 필요하다고, 너는 아버지를 미쳤다고 하지만 …… 그이는 지친 거야. …… 촌스럽고 바보같이 들리겠지만, 너희 아버지는 일생을 너희에게 바쳤는데 너희는 등을 돌렸어.

​많은 기대를 가졌었던 두 아들들은, 훌륭하게 자라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두 아들들마저... 평범에조차 미치지 못하는 어른들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도... 윌리는 여전히 두 아들들을 믿었으며, 활짝 피어날 앞날이 곧 두 아들들에게 올꺼라고 생각, 아니 바라고 있지요. 자신에게도 아직은 희망적인 일들이 있다고, 아니 있을 수 있다고 또한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숲이 불타고 있거든. 무슨 말인지 알아? 온 사방으로 산불이 번져 오고 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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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 너무 힘이 드는데, 이젠 더 이상 쥐어짜낼 힘도 내겐 남아 있지 않은데... 그럴 때 듣게되는 '힘내라. 조금만 더 힘을 내보자'라는 타인들의 위로의 말은 (위로를 건네어주는 이의 좋은 뜻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정녕, 죽어가는 이를 향해 발사되는 한 발의 총탄보다 훨씬 더 잔인한 것이 될 수도 있다라고 생각합니다. 너무나 목이 말라, 당장 한 모금의 물을 마시지 못하면 곧장 쓰러져 죽을 것 같은 이에게, '미안해, 나도 물이 없지만, 대신 우선 이거라도 먹고 있겠니'라며 바게트 빵 하나를 건네어 주는 친절과 (결과적으로만 보자면) 같다고나 할까요?

 

단지 생존만을 갈구하는 동물과는 달리 사람은... '삶의 목표'라는 걸 가지고 있지요. 그리고 그 '삶의 목표'는 많은 경우, 삶을 살아가는 '이유'가 되어 주기도 합니다. '나는 무엇이 되고 싶다/무엇을 이루고 싶다'라는 것이 곧 '나는 그렇기 때문에 산다'가 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만약... 그 '살아야하는 이유'라는 것이 사라져 버린다면, 그때 우리는 과연 어찌해야 할까요? 또 다른, 새로운 '삶의 목표'를 찾아내, 그것을 또 새로운 '삶의 이유'로 만들어 내면 된다구요?

 

즐거웠던 그날이 올수있다면
아련히 떠오르는 과거로 돌아가서
지금의 내심정을 전해 보련만
아무리 뉘우쳐도 과거는 흘러갔다

- 백현진이 노래한 '과거는 흘러갔다' 1절 - ​

'모든 지나간 시간이 더 나았다'라는 외국 시인의 말을 보는 순간, 머릿속이 찌릿!해졌을만큼 공감을 했었더랬습니다만, 그 짧은 문장에의 공감은 사실... 위 노래 가사에 쓰여져 있는 것과 같은, 그런 가슴 아픈 아쉬움/후회로부터 생겨난 거라는 걸... 저도, 주인공 윌리 로먼도 속으로는 다 알고 있을 겁니다. 알고는 있는데!!! '아무리 뉘우쳐도 과거는 흘러갔다'라는 걸 정녕 모르고 있지는 않는데!, 모르고 있지 않아서!!, 모르고 있지 않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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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목말라 죽겠는 그에게 결국 바게트 빵만을 내밀어 주었고, 자신 스스로에게서 '삶의 목표'를 잃은 그가, 마지막 버팀목으로 삼고 있었던 두 아들들마저 그에게 새로운, 대안으로서의 '살아가는 이유'가 되어주지 못함을 알게 된 그는...이 작품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결국 사고사를 가장한 자살을 선택하고야 맙니다.

 

"우습지 않아? 고속도로 여행, 기차 여행, 수많은 약속, 오랜 세월, 그런 것들을 다 거쳐서 결국엔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더 가치 있는 인생이 되었으니 말이야."

 

잘 죽기만 하면, 자살이었음이 들통나지만 않는다면 받을 수 있을, 2만 달러의 보험금이 그가 가족들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었습니다. 아내에게 명령조의 말만 했었었어도, 두 아들들에겐 말이 통하지 않는 아버지로만 보여졌어도... 그는 예전에도, 또 지금도, 언제나 자신의 아내와 두 아들들을 사랑했었고, 그들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않았었습니다. 그 마지막까지도, 자신의 죽음으로 받게 될 2만 달러라는 돈을, 아들 비프에게 유용한 사업자금이 될 것이라 생각하는 아버지 윌리 로먼...

 

윌리 : 난 해고당했고, 뭔가 조그만 좋은 소식이라도 들고 들어가 너희 어머니에게 얘기해 주고 싶다. 너희 어머니는 내내 기다려 왔고 마음고생을 했으니까.​

 

윌리 :  나는, 난 네가 성공한 모습을 보니 너무너무 기쁘다, 버나드. 너무 기뻐. 뿌듯한 일이지. 젊은이가 이렇게, 이렇게, 비프도 잘될 거야. 아주 …… (말을 잇지 못한다. 그리고 나서) 버나드 …… (감정이 너무 격해져서 다시 말을 잇지 못한다) …… (조그맣고 초라하게) 비결이 ……비결이 뭐냐? …… 넌 …… 어떻게 한 거냐? 왜 걔는 영영 못 따라오지?

…………………………………

어깨의 담은 오래지 않아 풀렸고, 오랫만에 만난 친구와의 술자리는 정말로 즐거웠었습니다. 연탄불에 고기를 구으며, 언제나 그러했듯 재미있는, 진지한, 사적인, 공공의 이야기를 나누었었고, 또한 언제나 그러했듯 음악을 들으러 Doors엘 가, 딱 두 병씩만!으로 시작되었던 맥주를, 기어이 각 여섯 병으로 마무리 짓고서야 일어났더랬지요. 그 시간을 만들어 내기 이전에 일어났었던, 일련의 짜증스러웠던 일들은 어느새 잊을 수 있었습니다...만. : 그냥 내리라는 제 말에 굳이 자기가 내겠다며, 결국엔 제 셔츠 사이에 친구가 넣어버리고 간 택시비가, 막상 요금을 내야하는 순간 도저히 찾아지지가 않는겁니다. 핸드폰으로 라이트를 켜고 찾아봐도 보이지가 않더군요. 결국...'혹시 나중에 어디 구석에서 찾으시거든... Merry Christmas!입니다'라 기사님께 말하고는, 안써도 되었던 돈을 썼어야만 했지요. 

​무엇이 잘못된 것이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하루가 지난 지금도 무엇이 잘못이었다라고 딱히 꼬집어낼 만한 것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술을 마시러 가기 이전 제게 생겼었던 일련의, 저를 짜증나게 해주었던 일들은 단 한 번도 그렇게 한꺼번에 일어났던 적이 없었었으며, 물론 택시 기사님에게는 무척이나 이른 Merry Christmas!였었겠지만, 저에게는 안써도 되었던 만 원을 결국 써야했던 것으로 마무리 되었던 어제의 저녁이 왜 그러했었던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기만 한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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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 로먼에게, 또한 저 스스로에게... 이제까지의 당신 인생에 무엇이 잘못된 것이었는지, 무엇 때문에 잘못되었는지를 한 번 생각해보라는 '지금'의 말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 지금 그에게 닥쳐와 있는 현실은, 자신이 살아있는 것보다는, 2만 달러와 자신의 목숨을 바꾸어 그 돈이라도 가족에게 남겨주는 것이 더 낫다는, 아니!!! 그 방법을 반드시 선택했었어야했을만큼, 그 방법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끌 수 없을 만큼 사방으로 번져가고 있는 산불이었던 겁니다. 당장은 빨리 산불을 꺼야 하고, 그 불을 다 끄더라도 이미 산에는 한 그루의 나무도 남아있지 않을 것이기에, 그렇다라면... 그 상황에서, 나의 행동과는 하등의 인과관계를 가지지 않는 원인으로 인해 발생된 산불을, 내 수준에선 완전히 조절 불가능한 외부적 원인과도 같은, '불 낸 범인'을 알아내는 것보다는, 일단은 어떻게 하면 하루라도 더 빨리, 한 그루라도 더 많은 나무를 심어, 다시 예전과 같은 모습의 숲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의 방안을 찾아내는 것이 훨씬 더 유용한, 도움되는, 단기적으로는 우선시 되어야하는 행동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 산불이, 외계인이 UFO에서 피다말고 던진 담배꽁초때문에 생겨났다는 걸 알게된다고 해서 달라질 건 아무 것도 없지요. 이 작품에서 주인공 로먼의 세일즈 맨이라는 직업이 예전과 달라진 이유가 미국의 '대공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걸 생각해본다면, 이 비유가 지나친 과장이라고만은 생각되지 않을듯)  반복되지 않는, 반복될 수 없기에 되돌릴 수도 없는 일에 대해서는 그 이전의 상황/모습에 대해 반성하는 것보다는 이제 그 상황을 어쩔 수 없는, 하나의 '주어진 조건'으로 간주하고 그 이후를 고민해보는 것이 분명! 더 '현명한 대처'일 테니까요. --- 물론 윌리 로먼의 선택을 물론 '현명한 대처'라 (공개적으로) 말할 수는 없겠습니다만 (그의 선택에 '현명한'이라는 형용사를 붙여보는 것 자체가 틀렸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 딱딱한 바게트 빵 이외엔 그에게 권해줄 수 있는 게 없다라는 거, '더 나은 대처'의 방안도 제겐 떠오르지 않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어쩌면 그래서... 이 작품이 이토록 슬프게 읽혀진 걸지도, 다시는 이런 이야기는 쫌!!! 읽지 않을 수 있으면 좋겠다라는, 역설적인 바램까지를 가져보기도 할 만큼 가슴 아팠던 이 이야기의 여운에서, 당분간은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는, 그러고 싶지 않아도 결국엔 그렇게 되고야 말꺼라는 생각을... 버릴 수 없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지난 금요일 저녁이 그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그때완 달리 모든 것이 매끄럽고 완벽했었더라면, 아마도... 그 다음 날 읽었던 이 작품에 혹여라도 다른 느낌을 받았을지도 모른다,라는... 이 허망한, 쓸데 없는 아쉬움을 끝까지... 놓지 못한 채 말입니다. --;;     

 

 

※ '대공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읽어본) 작품 : 존 스타인벡 作, 분노의 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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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유약진이다 - 늑대를 속여야 하는 한 남자 중국 당대문학 걸작선 5
류전윈 지음, 김태성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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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만의 언어' : 삶의 현장이 바뀌면, 그 '그들만의 언어'라는 것에 익숙해지기까지 꽤나 오랜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그 '오랜 시간'을 이미 지나보낸 사람은 그것을 '경험'이라 말하고, 그 '오랜 시간'을 장차 맞이해야 할 누군가에게는 '적응'이라 불리우기도 합니다. 칠판과 책만 바라보던 곳에서의 경험을 모두 뒤로 하고, 절단하고 용접하는 곳으로 왔었을 때에 제게 가장 어려웠던 것이 바로... 그 '그들만의 언어'에 적응하는 것이었지요. --- 위화와 모옌에 이어 세 번째로 만나본 중국 작가 류전윈을 통해 - 장안거와 Ji Li Jiang의 책들도 있습니다만, 그 책들은 문화대혁명 당시의 개인사를 그려내고 있으므로, 엄밀히 말해 '소설'이라 부를 수는 없지 않을까 싶네요 -  그들의 소설에도 분명 그런 '그들만의 언어'가 있다라는 걸 살짝 맛 본, 그 '경험'과 '적응'의 어중간한 지점에 서 있는 저에게도 중국 소설이 가지고 있는, 일본 작가들과는 다른, 우리의 작가들과도 분명 다른, 그 '그들만의 언어'는... 뭐라 꼬집어 표현할 수 없는 독특!한, 매우 강한 매력을 느끼게 해줍니다.

…………………………………​

​독자에게 '무언가' - 교훈, 감동, 재미 그 무엇이든 - 를 전달하는 것에, 작품의 분량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라는 걸 그간의 독서를 통해 배울 수 있었습니다. 줄거리가 짧으면 짧은대로, 길면 또 그 나름대로의 이유를 독자가 충분히 수긍할 수 있게만 해준다면, 등장 인물들의 심리를 바닥까지 까발려내듯 묘사를 하건, 혹은 압축된 몇 마디의 구절로 대신해 내건, 독자가 그 長·短을 온전히 이해해낼 수 있게만 해준다면, 작품의 길이는 단지 책의 무게와 그 작품을 완독해내는 시간에만 영향을 미칠 뿐, 그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메세지의 전달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걸 말입니다.

두 번째로 읽어본 류전윈의 작품인 「나는 유약진이다」는 주요 등장인물만 20여 명이나 되며, 500여 페이지가 넘는, '묘사'가 아닌 그야말로 '이야기의 서술'로 작품 전체를 이끌어 가고 있는 장편소설입니다. (다행히도 이름들이 짧아 기억하는 데에는 전혀 지장이 없습니다. 인씨, 고씨, 형씨 등으로 표현되는 인물이 절반쯤이고 주요 인물들의 이름도 대부분 두 세자에 불과하니까요. 남미나 러시아 쪽 소설에 이 정도의 등장인물들이 나왔다라면?은 상상만으로도 아찔하지요) 헌데 말이죠!!! --- '그렇다면 이 소설은 무척이나 복잡한 구조의 줄거리를 가지고 있겠구나!'라는 당신의 추측은, 누군가로부터는 '그렇습니다'란 대답을, 또 다른 누군가로부터는 어쩌면... '틀렸습니다'란 채점표를 받게 될지도 모릅니다.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이란 영화를 무척이나 인상깊게 봤었더랬습니다. 각기 다른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소단락들이 계속 보여지다가, 결국엔... 그 소단락들이 하나로 합쳐지며 끝이 났던, 그 영화와 마찬가지로, 이 작품 또한... 20여 명이나 되는 주요 등장인물들의 각기 다른 이야기들이 페이지가 넘어가면서, 마치 퍼즐이 완성되어 가듯 하나하나씩 연결되고, 결국 마지막 즈음에 가선 모두 다 만나지게 되는, 그런 구조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 엉켜있음(?)을 작품의 2/3쯤 되는 부분에서 작가 스스로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야기의 가닥이 너무 많아 유약진이 뒤죽박죽으로 말하지 않았는데도 마만려로서는 안개 속에 있는 것처럼 도무지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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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 나가면 온통 사람이 아니라 늑대들뿐이야. 함부로 나갔다가 까딱 잘못하면 잡아먹힌단 말이다"라는 구절이 암시하듯, 이 작품을 '걷는 놈 옆에 뛰는 놈이 있고, 그 뛰는 놈 위엔 나는 놈이, 나는 놈보다 더 높은 곳에선 어떤 놈이 비행기를 타고 있다'는 이야기로 바라볼 수도 있겠습니다만,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아마도... (제가 그러했듯)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종국에는 '나는 놈 아래 뛰는 놈, 뛰는 놈 아래에 기는 놈, 기는 놈 아래엔 땅굴을 파고 있는 놈이 있다'라는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구나, 라는 생각을 갖게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주인공 유약진이 '육만 원'을 받을 수 있는 차용증이 들어있는 가방을 소매치기 당하는 것으로부터 이 기나긴 이야기는 시작되고, 또 끝맺음 됩니다. 그는 이 기나긴 여정 동안 오로지 그 돈 '육만 원'을 되찾는 것에만 집착을 하지요. 헌데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사건들에 엮여지게 되며, '그' (정확히는 유약진이 소지하고 있는 '무언가')가 가지게 되는 돈의 가치는 적게는 몇 십만 원에서 많게는 (중국 돈으로!) 2억 원에까지, 심지어는 몇몇 사람들의 목숨을 좌지우지하게 되는 정도까지로 커지게 됩니다. 정작... 당사자인 유약진은 여전히 자신이 잃어버린 돈 '육만 원'에만 목매달고 있는데도 말이죠. ​

 

유약진은 그 육만 원이라는 돈에 수많은 구상을 갖고 있었다. 그 육만 원의 돈에 그의 나머지 반평생이 달려 있는 것이었다. …… (그 돈이 그토록) 중요한 것은 (그 돈으로 자신의 식당을 열게 되면) 남의 얼굴을 살피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 (그래서) 육만 원의 돈은 그를 대담하게 만들어주었고 그에게 든든한 밑천이 되어주었다. 그런데 이제 갑자기 돈을 잃어버리고 보니 잃어버린 것이 단지 돈뿐만이 아니라 마음 속에 있는 그러한 밑천이었다(라는 것 깨닫게 된 것이었다).

​이에 반해, 유약진을 제외한 다른 인물들에게는 유약진이 가지고 있는 '무언가'의 가치는 자신의 목숨까지를 요구할 수도 있는 어마어마한 것이었습니다. 그 '무언가'를 유약진이 가지고 있지 않다면, 그는 예전처럼 여전히 '작은 새우' 한 마리에 불과했었겠습니다만, 이제 유약진은... 그 '무언가'를 가지고 있음으로 인해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물고기'가 되어 있는 거지요. 허나... 자신의 모습을 거울을 통해 확인하지 못하는 유약진은, 여전히 자신을 단지 한 마리의 '작은 새우'일 뿐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양을 잃어버리고 나서 말을 주웠지만, 정작 그는 자신이 말을 끌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당나귀를 타고서 당나귀를 찾는 격이었다.

…………………………………​

 

소설을 읽을 때면... 나름 중요하다/인상깊다라 생각되는 구절, 혹은 이야기의 전개를 가능한 한 빼놓지 않고 적어 갑니다. (그러다보니 독서를 할 때, 노트북을 반드시 필요로 한다는 불편함을 가지게도 되었지요) 얼마 전 읽었었던 「금각사」의 경우에는 스토리의 전개에 관해서는 적어놓을 것이 거의 없었던 반면, 정말이지 이건 빼놓을 수 없어!라 느껴지는,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빼어난 문장들을 적어 놓느라 그 draft가 엄청나게 길어졌더랬습니다만, 반대로 이 작품 「나는 유약진이다」에서는, 상당히 여러 번 반복되어 등장하는, 아마도 작가 특유의 유머라 생각되어지는 '배에 흰 칼을 쑤셔 넣어 붉은 칼이 나오게 해주마'를 제외하고는, 그 어떤 주목할 만한 매력적인 표현이 없었음에도!!! 전개되는 이야기의 맥락만을 적어놓는 것으로, 아마도... 이제까지 작성했었던 것들 중 손에 꼽힐 정도로 긴긴 draft를 작성하게만 되더군요.  

이 작품의 서술 방식은 좀 특이합니다. 그런데!!! 하도 많은 등장인물들이 나오다보니 그러할 수밖엔 없었겠지만,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는 장면이 상당히 여러 번 나옴에도 불구하고 각 사건의, (전후가 섞여있는) 각 시간의 연결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기에, 읽어나감에 있어 혼란보다는 (때로는) 감탄!을 자아내게 해주지요.

 

어쨌든 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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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 나가면 온통 사람이 아니라 늑대들뿐이야. 함부로 나갔다가 까딱 잘못하면 잡아먹힌단 말이다"란 말을 주인공 유약진에게 해주었었던, 양을 잡아먹는 늑대로 살아가고 있었던, 그러하기에 나는 놈인 자신의 위엔 아무도 없을 것이라 생각했었던 조무상조차도, 비행기를 타고가는 놈들에겐 힘 한 번 제대로 써보지도 못한 채 지고야 맙니다. (그 비행기를 탄 놈들 사이에서조차, First class를 탄 놈이 Business class를 탄 놈을 죽이기도 하지요) 자신보다 느리고, 자신보다 더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에겐 더할 나위 없이 위협적인/때로는 존경의 대상이기도 했었던 그가, 더 빠르고 더 높은 자리를 꿈꾸었던 그였지만, 결국 권력이건 돈이건 그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었던 이들에겐 전혀 위협적인 존재가 되지 못했던 거지요. 마치... 양에겐, 사람에겐 1:1로 만나게 되는 늑대가 자신의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는 무서운 존재이지만, 사람이 총을 들게 되는 순간 그 늑대는... 일개 '사냥감'으로 전락되어버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반면, 뛰는 것도, 나는 것도 바라지 않았던 유약진은, 단지 자신의 밑에서 땅굴 파고 있는 놈만을 가지고 있던 유약진은, 비록 그 땅굴을 파고 있는 놈에게 몇 번의 시련을 당하기는 하지만 결국 '나는 그저 이제까지 걸어왔던대로 앞으로도 계속 걷기만 하겠다'란 인생의 목표를 버리지 않음으로써, 즉 그가 '걷겠다'라는 것을 끝까지 유지해냄으로써 비행기 타고 가는 자들까지를 끝내 이겨내게 되는, 일견 '최후의 승자' 자리까지를 차지하게 되었다라고도 보아질 수 있는 삶을, 그렇게 유지할 수 있게 됩니다. (그가 자신 스스로를 '최후의 승자'라 생각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하기에 일개 독자로서 그에게 '승자'라는 타이틀을 부여해도 괜찮을까?하는 의문을 잠시 가져보기도 했습니다만. --- 내부로부터든 외적인 환경으로부터 연유하는 것이든, 스스로 만들어 놓은 '삶의 목표'란 것이 타인의 관점에서 보아, 심지어는 자신조차 그리 거창하지는 않다라 생각 될/할지라도, 그것이 일단 한 개인에게 '삶의 목표'라는 의미를 갖게 되었다라면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존중받아야할 가치를 부여받게 된다라 생각하기에, 끝까지 그 '목표'를 잊지 않았고, 잃지도 않았던 유약진에게, 최소한 이 소설에 등장하는 삶의 시점까지는 그를 '승자'라 불러주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려봅니다. 이건 또한... 유약진의 삶의 엔딩 앞에 '해피'가 아닌 '새드'의 형용사가 붙어도 여전히 성립 될/해야만 하는 것으로, '삶의 목표'라는, 일종의 개인적 가치관은, 그 목표를 '이루었느냐'의 여부보다는 그것을 끝까지 '추구'하였었느냐의 관점에서 평가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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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도대체 무얼 말하고 싶었던 걸까요? --- 만약 제가 처음으로 접하게 된 중국 소설이 이 작품이었다라면, 아마도 전... '현재/현실에 충실하자'라든가, '정당하지 못한 수단은 결코 목표를 정당화해줄 수 없다'라는, 윤리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메시지를 끄집어내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러하기에 '늑대를 속여야 하는 한 남자'라는 제목 옆의 자그마한 표현을 끝내 이해할 수 없었겠습니다만!!! : (시간이 아까웠다라 느꼈던 모옌의 작품을 제외한다면) 위화의 작품들을 통해 제 머리에 각인되어진 렌즈를 통해 보자면, 이 작품은, '늑대를 속여야 하는'이라는 행위/필요가 늑대를 미워해서가 아닌, 늑대보다 더 힘센 존재가 되고파서도 아닌, 그저... 여전히 '양'으로 살아가고 싶기 때문에라는, 사뭇 생존의 절박함으로부터 생겨난 것이라는, 다시 말해, (최소한) 위화와 류전윈이 말하고 있는 '그들만의 언어'는 경제적으로, 대외적으로 나날이 커져만 가고 있는 중국이라는 나라에서 (중국인이건 제 3자이건)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보아야 할/관심을 가져야 할/걱정해야 할 대상은, 그러한 번성을 이끌어 가고 있는/그러한 번성의 혜택을 아쉬움없이 누리고 있는 몇몇 '늑대'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그 번성의 토대를 이루고 있는, 하지만 정작 그 혜택은 그들에게까지 돌아가지 않고 있는, 수많은 '양'들이어야 한다라는 것을 내내 강조하고있다... 라 받아들여지게 됩니다. (모옌의 「사부님은 갈수록 유머러스해진다」에 실려 있는 작품들 또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만, 그런 메세지를 위해 작가가 그려내고 있는 도식이 너무도 식상했기에, 정작 그 메세지까지도 진부한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라고 저 개인적으로는 생각합니다)   

그의 다른 작품, <1942년을 돌아보다>에 나오는, 중국의 역사에 대한 다음의 구절은... 그러하기에 이 작품 속에도 또한 녹아들어 있다라는 생각을 해보며, 제게 '이 작가가 지닌 매력의 끝을 보고싶다'는 욕심을 가지게 해준, 중국 작가 류전윈의 「나는 유약진이다」에 대한 감상문을 끝맺음 하겠습니다. 이 책의 뒷표지에 실려 있는, <중국 당대 문학 걸작선>의 다른 작품들에도 관심이 생겨 나네요. 조만간... 정말!로 중국 소설을 위한 책장의 한 칸이 더 필요해 질듯.

 

초라한 수많은 백성을 무시한다면, 중국의 파란만장한 혁명과 반혁명의 역사는 헛소리에 불과하다. 그들은 재난과 성공의 역사에서, 최대의 피해자이며 최종 수혜자인 것이다. 그러나 역사의 흐름은 그들과는 인연이 없었다. 역사는 화려하고 장엄한, 넓은 홀에서만 이루어졌다.

- <1942년을 돌아보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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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털 같은 나날
류전윈 지음, 김영철 옮김 / 밀리언하우스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미국에 가면 말이야, 거기에선 심지어 거지도 영어로 말한대!" --- 이 말에 무려! 십여 초라는 긴 시간동안 놀라움을 가졌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물론 그 십여 초 후, "당연하지! 미국 거지도 미국 사람이니까!!!"란 생각을 끄집어 낼 수는 있었습니다만, ​대한민국의 공식 교육과정을 모두 끝낸, 거기에 13-4년간이라는 사회생활까지가 더해져 있는, 마흔 여섯이라는 나이가 되어 있음에도 여전히 저에게 그 '십여 초'가 필요한, 아니 어쩌면 깨어나기까지 훨씬 더 긴 시간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게 여전히 있는 거더군요.

미국은 잘 사는 나라, 영어는 세계 공통어... 라는 생각에 지배당하고 있었던 그 시절, 예의 미국이라는 나라는, 그다지 잘 살지는 못하는 것 같은 대한민국이란 나라와는 아주 많이 다를 꺼라 믿었었으며, 그러한 믿음이 결국, '미국은 거지도 영어로 말한대'라는 당연한 사실을, 진심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이는 데 십여 초라는 긴 시간을 필요로 하게 만들어주었던 거였지요. --- '그들은 우리완 아주 많이 다를 것이다'라는 생각은 여전히 저의 머리속 어느 한 구석에 자리 자고 있어, 멀지도 않는, 명동에 나가면, 제주도행 비행기를 타면 지겨울 정도로 만나볼 수 있는 중국이라는 나라에 대해서도 예의 '그들은 우리완 아주 많이 다를 것'이고, 그러하기에 그들의 생각하거나 살아가는 것까지도 모두... 최소한 '나'와는 많이 다를 것이라 생각해었습니다...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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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 책을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집어들었었는지 명확히 기억은 나지 않습니다. 아마도 책의 뒷표지에 있는 황석영 작가의 '대단한 작가다!'라는 표현 때문에, 어쩌면 그다지 비싸지 않은 가격때문이었을지도... 여하이 처음 만나본, 중국 작가로는 세 번째가 되는 '류줜윈'(이 책의 표지에는 '류진원'이라 적혀 있습니다만, 공식적으로는 '류전윈'으로 표기하고 있는 듯)을, 이제 고작 단 한 권의, 세 편의 작품만을 읽었을 뿐임에도,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되었었던 미시마 유키오를 가볍게 제쳐낸... 저의 2014년 상반기 독서의 가장 커다란, 새로이 만나본 환희라고 도저히!!! 말하지 않을 수 없네요. (사실 「지구전설영웅」을 다 읽고, 박민규의 「카스테라」를 펼쳤었습니다만, 몇 십여 페이지를 읽다말고 그 책은 다시 알라딘에 되팔기로, 에밀 졸라의 「인간짐승」은 채 열 페이지조차 넘기지 못한 채, 저에게 좀 더 많은 정신적 여유가 허용될 때 읽어 보기로... 그렇게 어렵게? 제 손에서 펼쳐진 이 책이 말입니다.)

<닭털 같은 나날>, <관리들 만세>, <1942년을 돌아보다>, 이 세 편의 중편 소설들을 통해 작가 류전윈이 저에게 알려준 사실은, 사실! 별 것 아닐 수도 있겠는, 하지만 제가 차마 믿지는 못하고 있었던, 다름아닌 '사람이 사는/살아가는 방식은 중국이라고 해서 지금 네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과 크게 다르지 않단다'였었습니다. 아니! '다르지 않'을 뿐 아니라, 어떤 면에서는 너무도 똑같아, 마치 나의 복제 인간을 만나보게 될 때의 심정이 이러하지 않을까하는 생각까지를 떠올려 보았었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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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와 실재는 떼어버릴 수 없는 사이이다. 이미지가 실재를 압도하는 현대 사회에서는, 어쩌면 그림자가 주인일지도 모른다. 가상의 세계가 오히려 더욱 강력하게 현실의 세계를 압도하는 세상인 것이다. …… 류진운의 소설 세계는 중국의 현실 세계가 드리우는 그림자와 같다. 현실에서 떼어낼 수 없는 그림자는 오히려 더욱 깊이 있게 현실 세계의 구조와 논리를 드러내 보이고 있다.

- <옮긴이의 말> 중​ 

예의 그러 해왔듯, 책을 읽어가면서, 소설의 줄거리를, 수없이 많은 소설의 표현들을 적어놓았습니다만, "시간이 없어 길게 씁니다"란 말을 떠올려 보는 것조차 민망하게도, 세 작품의 표지에 인용되어 있는, 그야말로 각각이 그 작품의 핵심을 완벽하게 전달해 주고있는 문구들을 그대로 옮겨 놓는 것만으로, 거기에 그저 약간의 제 생각을 곁가지로 붙여놓는 것으로, 그러하기에 차마 감상문이라 말할 수조차 없을, '엄청난!!! 이 작가와 작품의 존재를 소개하는 것'에 그칠, 이 글을 끝마치려 합니다. 만약, 이전과 같은 방법으로, 어느 하나 그 대단함!의 크기를 비교할 수 없는, 정말로 대단한!!!, 이 세 작품들에 대한 감상문을 적어내려한다면, 진짜로... "너무 길게 써져서 시간이 없네요"란 말을 해야할지도 모르겠기 때문입니다. --- 어느 새... 이 작가, 류전윈의 다른 작품들을 이미 장바구니에 담아 놓았으며, 중국 작가들의 작품만이 놓여 있는 책장의 칸이 이내 곧 채워지게 되지 않을까 하는, 어쩌면!!! 조만간 한 칸을 더 늘려야할지도 모르겠다라는 생각을, 당연하다는 듯 하면서 말이죠. 

【 닭털 같은 나날 】

그날 저녁 아내와 아이가 잠든 뒤, 그는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아주 어두운 밤에 스스로 자기 따귀를 때렸다. "너는 왜 이렇게 능력이 없냐! 너는 왜 이렇게 살아가는 방법을 모르냐구!" 그러나 그는 아내가 깰까 봐 걱정이 돼, 세게 때리지도 못했다.

​(우리도 이렇게, 이런 일상을 살아가고 있을 겁니다. '아내'뿐만이 아닌, 나를 둘러싼,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많은 것들이 깰까 봐 걱정이 되어, 내 뺨조차 세게 때리지 못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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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들 만세 】

도대체가 결정적인 때가 되자 친구는 오지 않고, 적들이 모두 온단 말인가? 세상의 이치야말로 참으로 복잡한 것이다. 혁명의 대열은 정말 단순하지 않은 것이다. 대립하는 양쪽 진영조차 도무지 분명하지 않으니 말이다. 적군 속에 아군이 있고, 아군 속에 적군이 있는 것이다.

(타인의 이야기로 바라보기엔 재미있는 풍자입니다만, 그 안에 몸담고 있는, 몸담고 있을 사람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슬플 이야기가 아닐까 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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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2년을 돌아보다 】

​기아가 세상의 모든 것을 주도하는 것이다. 아홉 살 남자아이는 사백 원에 팔리고, 네 살 난 남자아이는 이백 원에 팔렸다. 처녀는 기생집으로 팔리고, 청년은 종종 군인으로 잡혀갔다. 청년들은 군인으로 잡혀가기를 원했다. 왜냐하면 군대에서는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슬프고... 그 다음에도 슬프고, 그리고 한 숨을 내쉬며 기어이 다 읽어내면 다시 한번 씁쓸하게 슬프기만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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