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물에 대한 완전한 탐구, 모든 존재에 대한 통찰, 모든 비밀에 대한 지식을 제시하고자 이 글을 쓴다."라는 서문으로 시작되는, 람세스 2세의 무덤에서 발견된, 3,500년 전에 쓰여진 파피루스에는 삼각형 · 사각형 · 사다리꼴 · 원 등 도형의 넓이와 원기둥 · 피라미드의 부피를 구하는 법 그리고 단위 분수의 계산과 일차 방정식 풀이 등을 포함해 모두 84개의 문제가 담겨져 있다고 합니다. 바로 지금 초등학교 6학년인 종원군이 배우고 있는 것들이, 3,500년 전의 이집트 파라오에게는 '모든 사물에 대한 완전한 탐구'였고 '모든 존재에 대한 통찰'이었을 뿐 아니라 심지어 '모든 비밀에 대한 지식'이 되어주기도 했던 거지요. --- 이 책의 맨 처음에 나오는 이 문장을 읽으며, 이것이 바로!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우리의 역사 그리고 인류의 역사라는 '프리퀄'에 겸손해져야만 하는/감사해야 하는 이유를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봤었습니다.
"우리는 어디에서 시작해 여기까지 왔을까? --- 이 의문에 대한 해답을 구해가는 과정을 간략하게 보여주고 있는, 즉 일종의 수학사數學史에 관한 대중서로서, 저자에서 알 수 있듯이, 저도 2/3 정도는 올레TV를 통해 보았었던, EBS에서 방송되었던 프로그램의 내용을 한 권의 책으로 엮어 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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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가 '수학'이라고 부르고 있는 분야의 역사를 이 책은 고대 이집트로부터 시작하고 있습니다. 고대 이집트의 수학은 '문명은 현실적인 필요에 따라 질문을 했고, 수학은 그에 대한 답을 했으며, 통치자는 그 비밀스러운 답을 간직할 수 있었다'라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는데, 이것은 곧 당시의 권력이 수학의 여러 측면들 중 '유용성'이라는 점을 가장 중요시 했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당시 가장 중요했었던 통치 행위는 농민들에게 공평하게 땅을 나누어 주고, 이를 통해 세금을 거두는 것이었기에 '도형에 대한 연구', 즉 '기하'를 중심으로 수학이 발전하게 된 것이었지요.
뒤를 이은 그리스 문명에서는, '사물의 뒤에 숨은 보이지 않는 원리를 찾는 것'이 대유행이었던 당시 그리스 지식인들의 학문적 풍토를 따라, 추상적이고 사변적이기도 한 질문과 이에 대한 해답을 구하는 방식으로 수학이 발전하게 된다고 합니다. 기하에 강했던 이집트 인들도 이미 직각 삼각형을 이루는 세 변의 비가 '3:4:5'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것이 왜! 직각 삼각형을 이루는 것인지, 왜! 어떤 수는 되고, 어떤 수는 안 되는지까지는 고민을 하지 않았었지요. 앞서 말했듯 이집트 문명은 오로지 '유용성'의 측면에서만 수학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피타고라스가 바로 이 왜!에 대한 해답을, '증명'이라는 방식을 통해 하나의 '법칙'으로 만들어내었기에. 진정한 수학의 시작은 바로 이 때, 피타고라스로부터 시작되었다라고 책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건 마치... '경제'에 대한 관념이 아담 스미스 이전의 사람들에게도 존재하고 있었었지만, 아담 스미스에 이르러서야 그가 그 흩어져 있던, 추상적이었던 관념들을 체계적으로 발췌 · 정리 · 해석해 내었기 때문에 그를 '경제학의 아버지'라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인 거겠지요.
그리스 시대의 증명, 그것은 논리의 계단을 하나씩 하나씩 밟아 올라가는 과정이다. 비약은 허용되지 않는다. 완벽한 논리의 완성은 각 단계마다 엄정함을 요구한다. 하나를 건너뛸 수도 없고 지름길을 찾을 수도 없다. 이런 시대 정신이 고대 그리스라는 문명을 만들었다.
이러한 그리스 문명에서 등장했었던 여러 사례들 - 무리수의 등장, 거북이와 아킬레스의 달리기 논쟁 등 - 은 수학이라는 학문이 단순히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산수calculus'가 아니라 왜 철학자들의 사유 대상이 되었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p69에 등장하는 "어떤 길이의 직선으로 정삼각형을 만들어라"라는, 지극히 단순해 보이는 이 문제에 대한 유클리드의 해답은 '생각하는 힘'이라는 것이 어디까지 극대화될 수 있느냐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아닐까도 싶더군요.
뒤이어 책은 인도 수학에 대해 '현대의 위치기수법을 끌어올리기 위해 마중물을 부었다'라고 설명하고 있으며, 아랍 수학에 와서는 이전의 성과들이 한데 어울어져 기수법과 셈법, 대수학, 삼각법, 그리고 기하학 등에서 커다란 발전을 이루게 된다고 책은 말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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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산업혁명 과정에서 '수학'은 다시 유용성의 측면이 강조되어, 물리학과 천문학 등의 발전에 혁혁한 공을 세우게 됩니다. 하지만 19세기 이후에는 그 양상이 다시 크게 바뀌게 되는데, 이후부터는 수학이 어디에 유용한지에 대해 아예 염두에 두지 않고 그 자체의 자기완결성을 지닌 수학,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지닌 수학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해졌고, 이런 전통은 20세기까지 유지되었었지요.
21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수학의 이러한 두 가지 측면, 즉 현실세계의 필요에 답하는 유용성의 측면과 우주 질서에 대한 추상적이고 사변적인 질문에 답하는 철학적 측면이 한 데 어우러지게 되어,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한 곳에서도 '수학'은 그 위력을 발휘하고 있게 됩니다.
21세기 문명은 어떤 수학을 발전시키고 있을까?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수학 이론은 그 폭이 방대하고 강력해 위기에 처한 인류의 큰 무기이며, 350년 난제였던 페르마의 마지막 문제를 해결한 와일스가 사용했던 타원곡선 이론은 오늘 날 우리 교통카드에 타원곡선 암호라는 모습으로 들어와 있다. 유용함을 염두에 두지 않은 추상적 이론이 가장 유용한 인류의 도구가 되기도 하고, 특정 목적으로 만든 수학 이론이 새로운 개념을 이끌기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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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월드컵이 끝나고 얼마 후, 당시 월드컵으로 한창 주가가 올라있던 모 국회의원이 어느 TV 프로그램에 나와 했었던 다음의 말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당시엔 이 말이 무척이나 참신하다라 받아들여졌었거든요.) --- '훌륭한 정치가가 되기 위해선 먼저 정치꾼의 단계를 거쳐야 합니다. 지금 국민들께서 보고 계시는 모습을 정치가가 되기 위한 정치꾼의 모습으로 이해해주신다면, 곧 우리의 정치도 진정한 정치가들을 갖게 될 거라 믿습니다'라는 내용이었었지요. (근데... 이번 지방 선거를 보니, 그 분의 모습은 자신의 말과는 달리, '정치꾼'의 단계조차 전혀 못 벗어나 있는 듯. --;;)
'학문의 대중화'라는 것도 어쩌면 그가 말한 '정치꾼 - 정치가'의 모습을 띄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라는 생각을 이 책을 읽으며 해봤더랬습니다. --- 지식의 배경과 깊이의 스펙트럼이 천차만별인 불특정 대중을 향해, '알기 쉬운'이라는 단어를 충족해 낸다라는 건, 어쩌면 애초부터 불가능한 작업일지도 모릅니다. 수학 자체의 아름다움을 보여줄 수는 없다는 한계를 처음부터 지닌 채, '수학'이라는 학문에 대해 '이게 정말 대단한 거였구나!'라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라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라 말할 수 있을만큼 어려운 일이니까요. (정치꾼에게 정치가의 풍모를 기대할 수 없듯이!) 그러하기에 누군가를 만족시킬 수는 있겠지만, 또 그만큼의 불만족스러운 독자를 가지게 될 수 밖엔 없는 시도라는 것을 충분히 감안한다 하더라도 일종의 수학사를 다루고 있는 이 책은!!!
애초에 제가 가졌었던 기대에 비한다면 그다지 만족스러운/재미있는/유익한 독서는 아니었다라고, (EBS에서 발간된 「지식e」시리즈나 「역사e」 시리즈에 비한다면) 사실은 좀 실망했었다라 말할 수 밖엔 없습니다. 저 개인적으로, '수학사'에서 단연코 가장 위대한 발견이라 생각하는 '미분과 적분'에 대해, 그 발견 당시의 에피소드를 제외하고는 딱히 두드러진 설명이 없다라는 점도 이해할 수 없었었고, 무엇보다! '대중 교양서'라면 기본적으로 독자들에게 ,이러이러하니까 수학을 좀 공부해보라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해도, 최소한 수학에 대한 흥미 정도를 일정 수준까지는 이끌어낼 수 있어야하지 않을까 싶거늘, 전적으로 의욕의 과다함과 편집상의 문제라 여겨지는 것들로 인해 초반부에선 흥미를 자아내었던 서술과 주제들이, 막판에 가서는 거의 중언부언의 수준으로 변질되어 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너무 많은 것을, 많지도 않은 공간에 한데 담아내려 하다보니 무엇 하나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 한 마디로 말해 '죽이라 말하기엔 좀 되고, 밥이라 말하기엔 지나치게 진 그 무엇'을 만들어 버렸다고나 할까요?
<부록>으로 실려있는, 본문에서 다루지 않았던 좀 더 심화된 내용들이 이러한 약점들을 어느 정도까지는 보완해주고 있다라는 것이 그나마 아쉬움을 달래주고 있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여전히... 이 책이 자신의 모태인 '방송 프로그램'의 훌륭함을 (전혀!라고는 차마 말하지 못하겠는) 거의! 담아내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을 버릴 수는 없었습니다. 100자평 식으로 요약해 본다면 --- 미분이 등장하기 이전까지의 부분들은, 중학교 1-2학년 정도되는 학생들에겐 '지금 내가 배우고 있는 수학'이라는 과목이 어떻게 탄생하였는가를 알려줄 수 있는 나름 유익하고 재미있는 소파에 앉아 읽어도 무방할 주말 독서용 안내서 정도는 되어줄 수 있을 듯...쯤이었다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