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유약진이다 - 늑대를 속여야 하는 한 남자 중국 당대문학 걸작선 5
류전윈 지음, 김태성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11월
평점 :
품절


'그들만의 언어' : 삶의 현장이 바뀌면, 그 '그들만의 언어'라는 것에 익숙해지기까지 꽤나 오랜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그 '오랜 시간'을 이미 지나보낸 사람은 그것을 '경험'이라 말하고, 그 '오랜 시간'을 장차 맞이해야 할 누군가에게는 '적응'이라 불리우기도 합니다. 칠판과 책만 바라보던 곳에서의 경험을 모두 뒤로 하고, 절단하고 용접하는 곳으로 왔었을 때에 제게 가장 어려웠던 것이 바로... 그 '그들만의 언어'에 적응하는 것이었지요. --- 위화와 모옌에 이어 세 번째로 만나본 중국 작가 류전윈을 통해 - 장안거와 Ji Li Jiang의 책들도 있습니다만, 그 책들은 문화대혁명 당시의 개인사를 그려내고 있으므로, 엄밀히 말해 '소설'이라 부를 수는 없지 않을까 싶네요 -  그들의 소설에도 분명 그런 '그들만의 언어'가 있다라는 걸 살짝 맛 본, 그 '경험'과 '적응'의 어중간한 지점에 서 있는 저에게도 중국 소설이 가지고 있는, 일본 작가들과는 다른, 우리의 작가들과도 분명 다른, 그 '그들만의 언어'는... 뭐라 꼬집어 표현할 수 없는 독특!한, 매우 강한 매력을 느끼게 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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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에게 '무언가' - 교훈, 감동, 재미 그 무엇이든 - 를 전달하는 것에, 작품의 분량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라는 걸 그간의 독서를 통해 배울 수 있었습니다. 줄거리가 짧으면 짧은대로, 길면 또 그 나름대로의 이유를 독자가 충분히 수긍할 수 있게만 해준다면, 등장 인물들의 심리를 바닥까지 까발려내듯 묘사를 하건, 혹은 압축된 몇 마디의 구절로 대신해 내건, 독자가 그 長·短을 온전히 이해해낼 수 있게만 해준다면, 작품의 길이는 단지 책의 무게와 그 작품을 완독해내는 시간에만 영향을 미칠 뿐, 그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메세지의 전달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걸 말입니다.

두 번째로 읽어본 류전윈의 작품인 「나는 유약진이다」는 주요 등장인물만 20여 명이나 되며, 500여 페이지가 넘는, '묘사'가 아닌 그야말로 '이야기의 서술'로 작품 전체를 이끌어 가고 있는 장편소설입니다. (다행히도 이름들이 짧아 기억하는 데에는 전혀 지장이 없습니다. 인씨, 고씨, 형씨 등으로 표현되는 인물이 절반쯤이고 주요 인물들의 이름도 대부분 두 세자에 불과하니까요. 남미나 러시아 쪽 소설에 이 정도의 등장인물들이 나왔다라면?은 상상만으로도 아찔하지요) 헌데 말이죠!!! --- '그렇다면 이 소설은 무척이나 복잡한 구조의 줄거리를 가지고 있겠구나!'라는 당신의 추측은, 누군가로부터는 '그렇습니다'란 대답을, 또 다른 누군가로부터는 어쩌면... '틀렸습니다'란 채점표를 받게 될지도 모릅니다.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이란 영화를 무척이나 인상깊게 봤었더랬습니다. 각기 다른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소단락들이 계속 보여지다가, 결국엔... 그 소단락들이 하나로 합쳐지며 끝이 났던, 그 영화와 마찬가지로, 이 작품 또한... 20여 명이나 되는 주요 등장인물들의 각기 다른 이야기들이 페이지가 넘어가면서, 마치 퍼즐이 완성되어 가듯 하나하나씩 연결되고, 결국 마지막 즈음에 가선 모두 다 만나지게 되는, 그런 구조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 엉켜있음(?)을 작품의 2/3쯤 되는 부분에서 작가 스스로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야기의 가닥이 너무 많아 유약진이 뒤죽박죽으로 말하지 않았는데도 마만려로서는 안개 속에 있는 것처럼 도무지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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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 나가면 온통 사람이 아니라 늑대들뿐이야. 함부로 나갔다가 까딱 잘못하면 잡아먹힌단 말이다"라는 구절이 암시하듯, 이 작품을 '걷는 놈 옆에 뛰는 놈이 있고, 그 뛰는 놈 위엔 나는 놈이, 나는 놈보다 더 높은 곳에선 어떤 놈이 비행기를 타고 있다'는 이야기로 바라볼 수도 있겠습니다만,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아마도... (제가 그러했듯)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종국에는 '나는 놈 아래 뛰는 놈, 뛰는 놈 아래에 기는 놈, 기는 놈 아래엔 땅굴을 파고 있는 놈이 있다'라는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구나, 라는 생각을 갖게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주인공 유약진이 '육만 원'을 받을 수 있는 차용증이 들어있는 가방을 소매치기 당하는 것으로부터 이 기나긴 이야기는 시작되고, 또 끝맺음 됩니다. 그는 이 기나긴 여정 동안 오로지 그 돈 '육만 원'을 되찾는 것에만 집착을 하지요. 헌데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사건들에 엮여지게 되며, '그' (정확히는 유약진이 소지하고 있는 '무언가')가 가지게 되는 돈의 가치는 적게는 몇 십만 원에서 많게는 (중국 돈으로!) 2억 원에까지, 심지어는 몇몇 사람들의 목숨을 좌지우지하게 되는 정도까지로 커지게 됩니다. 정작... 당사자인 유약진은 여전히 자신이 잃어버린 돈 '육만 원'에만 목매달고 있는데도 말이죠. ​

 

유약진은 그 육만 원이라는 돈에 수많은 구상을 갖고 있었다. 그 육만 원의 돈에 그의 나머지 반평생이 달려 있는 것이었다. …… (그 돈이 그토록) 중요한 것은 (그 돈으로 자신의 식당을 열게 되면) 남의 얼굴을 살피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 (그래서) 육만 원의 돈은 그를 대담하게 만들어주었고 그에게 든든한 밑천이 되어주었다. 그런데 이제 갑자기 돈을 잃어버리고 보니 잃어버린 것이 단지 돈뿐만이 아니라 마음 속에 있는 그러한 밑천이었다(라는 것 깨닫게 된 것이었다).

​이에 반해, 유약진을 제외한 다른 인물들에게는 유약진이 가지고 있는 '무언가'의 가치는 자신의 목숨까지를 요구할 수도 있는 어마어마한 것이었습니다. 그 '무언가'를 유약진이 가지고 있지 않다면, 그는 예전처럼 여전히 '작은 새우' 한 마리에 불과했었겠습니다만, 이제 유약진은... 그 '무언가'를 가지고 있음으로 인해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물고기'가 되어 있는 거지요. 허나... 자신의 모습을 거울을 통해 확인하지 못하는 유약진은, 여전히 자신을 단지 한 마리의 '작은 새우'일 뿐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양을 잃어버리고 나서 말을 주웠지만, 정작 그는 자신이 말을 끌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당나귀를 타고서 당나귀를 찾는 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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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을 때면... 나름 중요하다/인상깊다라 생각되는 구절, 혹은 이야기의 전개를 가능한 한 빼놓지 않고 적어 갑니다. (그러다보니 독서를 할 때, 노트북을 반드시 필요로 한다는 불편함을 가지게도 되었지요) 얼마 전 읽었었던 「금각사」의 경우에는 스토리의 전개에 관해서는 적어놓을 것이 거의 없었던 반면, 정말이지 이건 빼놓을 수 없어!라 느껴지는,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빼어난 문장들을 적어 놓느라 그 draft가 엄청나게 길어졌더랬습니다만, 반대로 이 작품 「나는 유약진이다」에서는, 상당히 여러 번 반복되어 등장하는, 아마도 작가 특유의 유머라 생각되어지는 '배에 흰 칼을 쑤셔 넣어 붉은 칼이 나오게 해주마'를 제외하고는, 그 어떤 주목할 만한 매력적인 표현이 없었음에도!!! 전개되는 이야기의 맥락만을 적어놓는 것으로, 아마도... 이제까지 작성했었던 것들 중 손에 꼽힐 정도로 긴긴 draft를 작성하게만 되더군요.  

이 작품의 서술 방식은 좀 특이합니다. 그런데!!! 하도 많은 등장인물들이 나오다보니 그러할 수밖엔 없었겠지만,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는 장면이 상당히 여러 번 나옴에도 불구하고 각 사건의, (전후가 섞여있는) 각 시간의 연결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기에, 읽어나감에 있어 혼란보다는 (때로는) 감탄!을 자아내게 해주지요.

 

어쨌든 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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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 나가면 온통 사람이 아니라 늑대들뿐이야. 함부로 나갔다가 까딱 잘못하면 잡아먹힌단 말이다"란 말을 주인공 유약진에게 해주었었던, 양을 잡아먹는 늑대로 살아가고 있었던, 그러하기에 나는 놈인 자신의 위엔 아무도 없을 것이라 생각했었던 조무상조차도, 비행기를 타고가는 놈들에겐 힘 한 번 제대로 써보지도 못한 채 지고야 맙니다. (그 비행기를 탄 놈들 사이에서조차, First class를 탄 놈이 Business class를 탄 놈을 죽이기도 하지요) 자신보다 느리고, 자신보다 더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에겐 더할 나위 없이 위협적인/때로는 존경의 대상이기도 했었던 그가, 더 빠르고 더 높은 자리를 꿈꾸었던 그였지만, 결국 권력이건 돈이건 그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었던 이들에겐 전혀 위협적인 존재가 되지 못했던 거지요. 마치... 양에겐, 사람에겐 1:1로 만나게 되는 늑대가 자신의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는 무서운 존재이지만, 사람이 총을 들게 되는 순간 그 늑대는... 일개 '사냥감'으로 전락되어버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반면, 뛰는 것도, 나는 것도 바라지 않았던 유약진은, 단지 자신의 밑에서 땅굴 파고 있는 놈만을 가지고 있던 유약진은, 비록 그 땅굴을 파고 있는 놈에게 몇 번의 시련을 당하기는 하지만 결국 '나는 그저 이제까지 걸어왔던대로 앞으로도 계속 걷기만 하겠다'란 인생의 목표를 버리지 않음으로써, 즉 그가 '걷겠다'라는 것을 끝까지 유지해냄으로써 비행기 타고 가는 자들까지를 끝내 이겨내게 되는, 일견 '최후의 승자' 자리까지를 차지하게 되었다라고도 보아질 수 있는 삶을, 그렇게 유지할 수 있게 됩니다. (그가 자신 스스로를 '최후의 승자'라 생각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하기에 일개 독자로서 그에게 '승자'라는 타이틀을 부여해도 괜찮을까?하는 의문을 잠시 가져보기도 했습니다만. --- 내부로부터든 외적인 환경으로부터 연유하는 것이든, 스스로 만들어 놓은 '삶의 목표'란 것이 타인의 관점에서 보아, 심지어는 자신조차 그리 거창하지는 않다라 생각 될/할지라도, 그것이 일단 한 개인에게 '삶의 목표'라는 의미를 갖게 되었다라면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존중받아야할 가치를 부여받게 된다라 생각하기에, 끝까지 그 '목표'를 잊지 않았고, 잃지도 않았던 유약진에게, 최소한 이 소설에 등장하는 삶의 시점까지는 그를 '승자'라 불러주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려봅니다. 이건 또한... 유약진의 삶의 엔딩 앞에 '해피'가 아닌 '새드'의 형용사가 붙어도 여전히 성립 될/해야만 하는 것으로, '삶의 목표'라는, 일종의 개인적 가치관은, 그 목표를 '이루었느냐'의 여부보다는 그것을 끝까지 '추구'하였었느냐의 관점에서 평가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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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도대체 무얼 말하고 싶었던 걸까요? --- 만약 제가 처음으로 접하게 된 중국 소설이 이 작품이었다라면, 아마도 전... '현재/현실에 충실하자'라든가, '정당하지 못한 수단은 결코 목표를 정당화해줄 수 없다'라는, 윤리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메시지를 끄집어내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러하기에 '늑대를 속여야 하는 한 남자'라는 제목 옆의 자그마한 표현을 끝내 이해할 수 없었겠습니다만!!! : (시간이 아까웠다라 느꼈던 모옌의 작품을 제외한다면) 위화의 작품들을 통해 제 머리에 각인되어진 렌즈를 통해 보자면, 이 작품은, '늑대를 속여야 하는'이라는 행위/필요가 늑대를 미워해서가 아닌, 늑대보다 더 힘센 존재가 되고파서도 아닌, 그저... 여전히 '양'으로 살아가고 싶기 때문에라는, 사뭇 생존의 절박함으로부터 생겨난 것이라는, 다시 말해, (최소한) 위화와 류전윈이 말하고 있는 '그들만의 언어'는 경제적으로, 대외적으로 나날이 커져만 가고 있는 중국이라는 나라에서 (중국인이건 제 3자이건)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보아야 할/관심을 가져야 할/걱정해야 할 대상은, 그러한 번성을 이끌어 가고 있는/그러한 번성의 혜택을 아쉬움없이 누리고 있는 몇몇 '늑대'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그 번성의 토대를 이루고 있는, 하지만 정작 그 혜택은 그들에게까지 돌아가지 않고 있는, 수많은 '양'들이어야 한다라는 것을 내내 강조하고있다... 라 받아들여지게 됩니다. (모옌의 「사부님은 갈수록 유머러스해진다」에 실려 있는 작품들 또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만, 그런 메세지를 위해 작가가 그려내고 있는 도식이 너무도 식상했기에, 정작 그 메세지까지도 진부한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라고 저 개인적으로는 생각합니다)   

그의 다른 작품, <1942년을 돌아보다>에 나오는, 중국의 역사에 대한 다음의 구절은... 그러하기에 이 작품 속에도 또한 녹아들어 있다라는 생각을 해보며, 제게 '이 작가가 지닌 매력의 끝을 보고싶다'는 욕심을 가지게 해준, 중국 작가 류전윈의 「나는 유약진이다」에 대한 감상문을 끝맺음 하겠습니다. 이 책의 뒷표지에 실려 있는, <중국 당대 문학 걸작선>의 다른 작품들에도 관심이 생겨 나네요. 조만간... 정말!로 중국 소설을 위한 책장의 한 칸이 더 필요해 질듯.

 

초라한 수많은 백성을 무시한다면, 중국의 파란만장한 혁명과 반혁명의 역사는 헛소리에 불과하다. 그들은 재난과 성공의 역사에서, 최대의 피해자이며 최종 수혜자인 것이다. 그러나 역사의 흐름은 그들과는 인연이 없었다. 역사는 화려하고 장엄한, 넓은 홀에서만 이루어졌다.

- <1942년을 돌아보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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