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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일즈맨의 죽음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18
아서 밀러 지음, 강유나 옮김 / 민음사 / 2009년 8월
평점 :
금요일의 퇴근길은, 잊을 수도 잊혀지지도 않는, 지난 닷새 동안의 스트레스로부터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다라는 해방감스런 기분을 가져보게 되는, 그야말로 '노곤한 행복'이 느껴지는 순간이지요. 들어오는 길에 슈퍼에 들러 뭐 좀 사다줄래?라는 아내의 전화, 곧이어 날아온 '한 잔 할까?'라는 친구의 문자... 모두 그 '노곤한 행복함'을 배가시켜주는 것들이었습니다. 룰루랄라! 얼마만에 제 입에서 나오는 흥얼거림이었던지요. 그러나!!! --- 슈퍼 앞에는 이미 차들로 가득 차 주차할 곳이 없더군요. 할 수 없이 다른 슈퍼로 차를 돌렸습니다만, 그곳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약속 시간도 있고 해, 아내에겐 미안하지만 그냥 집으로 들어갔고, 약간의 눈총을 이겨내며, 옷을 갈아입기 위해 주머니 속 물건들을 꺼내는데, 아차차!!! 카드 지갑을 회사에 놓고 왔네요. 아내의 교통카드를 들고 마을버스를 타려 육교를 건너가고 있는데 썅!!! 딱 20초만 일찍 나왔더라면 탈 수 있었을 마을버스가 막 출발하고 있습니다. (버스 오는 쪽을 바라보며 서 있는 시간으로는 매우 길게 느껴지는 시간인) 5분쯤 기다린 후 다른 노선의 마을버스를 탔습니다만, 버스기사님은 배차 간격 때문인지 너무도 느릿느릿 운전을 하는 겁니다. 친구에게 왜 아직 안오냐는 문자가 왔고, 먼저 들어가 고기 굽고 있으라는 답장을 보냈으며, 여전히 느릿느릿 가고있는 버스에 그렇게 앉아 있는데, 갑자기... 왼쪽 발등이 간지러워 옵니다. 지금 신고 있는 운동화는 구두주걱 없이는 신기 힘든 것이라, 좀 참아보려 했거늘, 아... 안되겠네요. 신발을 약간 벗고 몸을 구부려 발등을 시원스레 긁는 순간 악!!! 운동이라곤 '보는 것' 말고는 일체 하지 않는 제 몸은, 그 약간의 구부림만으로도 오른쪽 어깨에 담이 왔었고, 잠시 잠깐 눈이 노래지면서 정신이 아찔해집니다. 등에는 식은 땀도 흐르구요. 아... 간만에 밖에서 술 한 잔 하겠다는데 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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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윌리 로먼의 젊은 시절은 참으로 행복했었습니다. 세일즈 맨이었던 그는 적지 않은 돈을 커미션으로 받을 수 있었으며, 어딜 가나 많은 사람들로부터 환영을 받았었지요. 그의 아내는 그를 더없이 사랑했고, 어린 두 아들들은 아빠가 출장에서 돌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을 만큼 그를 따랐고 또 존경했습니다. 행복한 현재는 자신의 미래 또한 당연히! 행복할 것이라는 꿈을 그에게 가지게 해주었습니다...만. --- 세상은 변했고, 과거에 그려보았던 미래가 현실이 되어 있는 지금의 그는, 예순의 나이로 여전히 세일즈 맨일을 하고 있는, 허나 1100킬로미터를 달려서 가도 아는 사람 하나 없고 반겨 주는 사람도 없으며, 동전 한 푼 벌지 못한 채 다시 1100킬로미터를 달려 집으로 돌아오기를 밥먹듯 하고 있을 뿐이었지요.
그런 현실은 어느 순간, 그에게 환각과 환청속에서 과거의 인물들과 혼잣말을 나누게 되는 버릇 아닌 버릇을 가지게 해주었고, 두 아들들은 이런 아버지를 미쳤다라고까지 표현합니다만, 그의 아내 린다만큼은 여전히 그를 이해해주고 보듬어 줍니다.
린다 : 윌리 로먼은 엄청나게 돈을 번 적도 없어. 신문에 이름이 실린 적도 없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인품을 가진 것도 아니야. 그렇지만 그이는 한 인간이야. 그리고 무언가 무서운 일이 그에게 일어나고 있어. 그러니 관심을 기울여 주어야 해. 늙은 개처럼 무덤 속으로 굴러떨어지는 일이 있어서는 안 돼. 이런 사람에게도 관심이, 관심이 필요하다고, 너는 아버지를 미쳤다고 하지만 …… 그이는 지친 거야. …… 촌스럽고 바보같이 들리겠지만, 너희 아버지는 일생을 너희에게 바쳤는데 너희는 등을 돌렸어.
많은 기대를 가졌었던 두 아들들은, 훌륭하게 자라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두 아들들마저... 평범에조차 미치지 못하는 어른들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도... 윌리는 여전히 두 아들들을 믿었으며, 활짝 피어날 앞날이 곧 두 아들들에게 올꺼라고 생각, 아니 바라고 있지요. 자신에게도 아직은 희망적인 일들이 있다고, 아니 있을 수 있다고 또한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숲이 불타고 있거든. 무슨 말인지 알아? 온 사방으로 산불이 번져 오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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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 너무 힘이 드는데, 이젠 더 이상 쥐어짜낼 힘도 내겐 남아 있지 않은데... 그럴 때 듣게되는 '힘내라. 조금만 더 힘을 내보자'라는 타인들의 위로의 말은 (위로를 건네어주는 이의 좋은 뜻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정녕, 죽어가는 이를 향해 발사되는 한 발의 총탄보다 훨씬 더 잔인한 것이 될 수도 있다라고 생각합니다. 너무나 목이 말라, 당장 한 모금의 물을 마시지 못하면 곧장 쓰러져 죽을 것 같은 이에게, '미안해, 나도 물이 없지만, 대신 우선 이거라도 먹고 있겠니'라며 바게트 빵 하나를 건네어 주는 친절과 (결과적으로만 보자면) 같다고나 할까요?
● 단지 생존만을 갈구하는 동물과는 달리 사람은... '삶의 목표'라는 걸 가지고 있지요. 그리고 그 '삶의 목표'는 많은 경우, 삶을 살아가는 '이유'가 되어 주기도 합니다. '나는 무엇이 되고 싶다/무엇을 이루고 싶다'라는 것이 곧 '나는 그렇기 때문에 산다'가 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만약... 그 '살아야하는 이유'라는 것이 사라져 버린다면, 그때 우리는 과연 어찌해야 할까요? 또 다른, 새로운 '삶의 목표'를 찾아내, 그것을 또 새로운 '삶의 이유'로 만들어 내면 된다구요?
즐거웠던 그날이 올수있다면
아련히 떠오르는 과거로 돌아가서
지금의 내심정을 전해 보련만
아무리 뉘우쳐도 과거는 흘러갔다
- 백현진이 노래한 '과거는 흘러갔다' 1절 -
'모든 지나간 시간이 더 나았다'라는 외국 시인의 말을 보는 순간, 머릿속이 찌릿!해졌을만큼 공감을 했었더랬습니다만, 그 짧은 문장에의 공감은 사실... 위 노래 가사에 쓰여져 있는 것과 같은, 그런 가슴 아픈 아쉬움/후회로부터 생겨난 거라는 걸... 저도, 주인공 윌리 로먼도 속으로는 다 알고 있었을 겁니다. 알고는 있는데!!! '아무리 뉘우쳐도 과거는 흘러갔다'라는 걸 정녕 모르고 있지는 않는데!, 모르고 있지 않아서!!, 모르고 있지 않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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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목말라 죽겠는 그에게 결국 바게트 빵만을 내밀어 주었고, 자신 스스로에게서 '삶의 목표'를 잃은 그가, 마지막 버팀목으로 삼고 있었던 두 아들들마저 그에게 새로운, 대안으로서의 '살아가는 이유'가 되어주지 못함을 알게 된 그는...이 작품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결국 사고사를 가장한 자살을 선택하고야 맙니다.
"우습지 않아? 고속도로 여행, 기차 여행, 수많은 약속, 오랜 세월, 그런 것들을 다 거쳐서 결국엔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더 가치 있는 인생이 되었으니 말이야."
잘 죽기만 하면, 자살이었음이 들통나지만 않는다면 받을 수 있을, 2만 달러의 보험금이 그가 가족들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었습니다. 아내에게 명령조의 말만 했었었어도, 두 아들들에겐 말이 통하지 않는 아버지로만 보여졌어도... 그는 예전에도, 또 지금도, 언제나 자신의 아내와 두 아들들을 사랑했었고, 그들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않았었습니다. 그 마지막까지도, 자신의 죽음으로 받게 될 2만 달러라는 돈을, 아들 비프에게 유용한 사업자금이 될 것이라 생각하는 아버지 윌리 로먼...
윌리 : 난 해고당했고, 뭔가 조그만 좋은 소식이라도 들고 들어가 너희 어머니에게 얘기해 주고 싶다. 너희 어머니는 내내 기다려 왔고 마음고생을 했으니까.
윌리 : 나는, 난 네가 성공한 모습을 보니 너무너무 기쁘다, 버나드. 너무 기뻐. 뿌듯한 일이지. 젊은이가 이렇게, 이렇게, 비프도 잘될 거야. 아주 …… (말을 잇지 못한다. 그리고 나서) 버나드 …… (감정이 너무 격해져서 다시 말을 잇지 못한다) …… (조그맣고 초라하게) 비결이 ……비결이 뭐냐? …… 넌 …… 어떻게 한 거냐? 왜 걔는 영영 못 따라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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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의 담은 오래지 않아 풀렸고, 오랫만에 만난 친구와의 술자리는 정말로 즐거웠었습니다. 연탄불에 고기를 구으며, 언제나 그러했듯 재미있는, 진지한, 사적인, 공공의 이야기를 나누었었고, 또한 언제나 그러했듯 음악을 들으러 Doors엘 가, 딱 두 병씩만!으로 시작되었던 맥주를, 기어이 각 여섯 병으로 마무리 짓고서야 일어났더랬지요. 그 시간을 만들어 내기 이전에 일어났었던, 일련의 짜증스러웠던 일들은 어느새 잊을 수 있었습니다...만. : 그냥 내리라는 제 말에 굳이 자기가 내겠다며, 결국엔 제 셔츠 사이에 친구가 넣어버리고 간 택시비가, 막상 요금을 내야하는 순간 도저히 찾아지지가 않는겁니다. 핸드폰으로 라이트를 켜고 찾아봐도 보이지가 않더군요. 결국...'혹시 나중에 어디 구석에서 찾으시거든... Merry Christmas!입니다'라 기사님께 말하고는, 안써도 되었던 돈을 썼어야만 했지요.
무엇이 잘못된 것이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하루가 지난 지금도 무엇이 잘못이었다라고 딱히 꼬집어낼 만한 것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술을 마시러 가기 이전 제게 생겼었던 일련의, 저를 짜증나게 해주었던 일들은 단 한 번도 그렇게 한꺼번에 일어났던 적이 없었었으며, 물론 택시 기사님에게는 무척이나 이른 Merry Christmas!였었겠지만, 저에게는 안써도 되었던 만 원을 결국 써야했던 것으로 마무리 되었던 어제의 저녁이 왜 그러했었던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기만 한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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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 로먼에게, 또한 저 스스로에게... 이제까지의 당신 인생에 무엇이 잘못된 것이었는지, 무엇 때문에 잘못되었는지를 한 번 생각해보라는 '지금'의 말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 지금 그에게 닥쳐와 있는 현실은, 자신이 살아있는 것보다는, 2만 달러와 자신의 목숨을 바꾸어 그 돈이라도 가족에게 남겨주는 것이 더 낫다는, 아니!!! 그 방법을 반드시 선택했었어야했을만큼, 그 방법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끌 수 없을 만큼 사방으로 번져가고 있는 산불이었던 겁니다. 당장은 빨리 산불을 꺼야 하고, 그 불을 다 끄더라도 이미 산에는 한 그루의 나무도 남아있지 않을 것이기에, 그렇다라면... 그 상황에서, 나의 행동과는 하등의 인과관계를 가지지 않는 원인으로 인해 발생된 산불을, 내 수준에선 완전히 조절 불가능한 외부적 원인과도 같은, '불 낸 범인'을 알아내는 것보다는, 일단은 어떻게 하면 하루라도 더 빨리, 한 그루라도 더 많은 나무를 심어, 다시 예전과 같은 모습의 숲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의 방안을 찾아내는 것이 훨씬 더 유용한, 도움되는, 단기적으로는 우선시 되어야하는 행동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 산불이, 외계인이 UFO에서 피다말고 던진 담배꽁초때문에 생겨났다는 걸 알게된다고 해서 달라질 건 아무 것도 없지요. 이 작품에서 주인공 로먼의 세일즈 맨이라는 직업이 예전과 달라진 이유가 미국의 '대공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걸 생각해본다면, 이 비유가 지나친 과장이라고만은 생각되지 않을듯) 반복되지 않는, 반복될 수 없기에 되돌릴 수도 없는 일에 대해서는 그 이전의 상황/모습에 대해 반성하는 것보다는 이제 그 상황을 어쩔 수 없는, 하나의 '주어진 조건'으로 간주하고 그 이후를 고민해보는 것이 분명! 더 '현명한 대처'일 테니까요. --- 물론 윌리 로먼의 선택을 물론 '현명한 대처'라 (공개적으로) 말할 수는 없겠습니다만 (그의 선택에 '현명한'이라는 형용사를 붙여보는 것 자체가 틀렸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 딱딱한 바게트 빵 이외엔 그에게 권해줄 수 있는 게 없다라는 거, '더 나은 대처'의 방안도 제겐 떠오르지 않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어쩌면 그래서... 이 작품이 이토록 슬프게 읽혀진 걸지도, 다시는 이런 이야기는 쫌!!! 읽지 않을 수 있으면 좋겠다라는, 역설적인 바램까지를 가져보기도 할 만큼 가슴 아팠던 이 이야기의 여운에서, 당분간은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는, 그러고 싶지 않아도 결국엔 그렇게 되고야 말꺼라는 생각을... 버릴 수 없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지난 금요일 저녁이 그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그때완 달리 모든 것이 매끄럽고 완벽했었더라면, 아마도... 그 다음 날 읽었던 이 작품에 혹여라도 다른 느낌을 받았을지도 모른다,라는... 이 허망한, 쓸데 없는 아쉬움을 끝까지... 놓지 못한 채 말입니다. --;;
※ '대공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읽어본) 작품 : 존 스타인벡 作, 「분노의 포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