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풀 마인드
실비아 네이사 지음, 신현용 외 옮김 / 승산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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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재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우리와 똑같지만 양적으로 우리를 압도하는 천재이고, 다른 하나는, 분명, 남다른 인간적 섬광을 지닌 천재이다. 4분 이내에 1마일을 달릴 수 있는 천재가 있지만, 우리 모두 늦게라도 달릴 수는 있다. 그러나 <위대한 G단조 푸가>와 비견되는 것을 늦게라도 누구나 창작할 수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 수학자 폴 핼모스


● 다른 모든 사람들은 어딘가에 있는 산길을 찾아 하나의 산봉우리에 오르려고 했다. 내쉬는 다른 산봉우리에도 올라가서, 당초의 산봉우리를 멀리서 서치라이트로 비춰보려고까지 했다. - 수학자 도널드 뉴먼

 

● 존 내쉬는 20세기 후반의 가장 주목할 만한 수학자이다. …… 우리들 다수는 기존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우리는 남들이 닦아놓은 길을 간다. 그러나 우리들 대부분은 내쉬가 만들어낸 것에 비견되는 어떤 것도 만들어낼 수 없다. 그것은 번개가 치는 것과 같다. 심리학적으로 볼 때, 그가 무너뜨린 장벽은 참으로 환상적인 것이다. - 수학자 미하일 그로코프 

이 책은 1994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존 내쉬 John Forbes Nash Jr. 의 삶을 그리고 있는 전기 문학입니다. 비록 그가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고는 하나, 기본적으로 그는 (위에서 인용해 놓은 바대로) 순수 이론 수학자였었기 때문에 (그런 이의 일대기인) 이 책은 애초부터 매우 한정적인 독자를 대상으로 할 수 밖엔 없었을 거라 생각됩니다. 게다가 이 책을 읽는 기간 내내, 들고 다니기조차 싫었었을만큼 너무나도 무거운, 본문만! 무려 720 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이 과연 몇 권이나 팔릴 것이라, 출판사는 예상했었을까마저 살짝 궁금하기도 했더랬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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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5부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한 사람의 저자가 써내었다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만큼 방대한 양의 기록들을 기초로 쓰여져 있습니다. 내쉬의 비교적 평범했었던 유년 시절, 그의 천재성이 발휘되었던 프린스턴 대학의 수학과 시절, 그리고 그가 '편집증적 정신분열증'을 앓으며 정신병원에의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던 시절, 그리고 그의 노벨 경제학상 수상에 얽힌 여러 비화들과 수상 이후 현재까지의 삶으로 구분되어져 있지요. 

 

1928년에 태어난 존 내쉬의 삶은, 대한민국에서 교육을 받고 자란 저의 눈에는 그야말로 '비정상'의 연속입니다. 그의 천재성을 알아 보고, 그 천재성을 해치지 않으며 더욱 발전시키려는 미국 대학교육의 시스템도 (부러워 죽겠을만큼) '정상적이지 않아'보였고, 그가 보여주었던 동성애 기질, 그리고 결혼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를 낳았으며, 이후 그 아이를 전혀 돌보려 하지 않았다라는 사실도, 또한 그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내쉬와 결혼을 하려는 (한 마디로 퀸카!였었던) 여자가 있다라는 것도 예의 쉬이 이해되지는 않았더랬습니다. 게다가 내쉬가 정신병원을 들락날락하는 와중에도 끝까지 그를 금전적 · 학문적 · 정서적으로 도와주며 그의 재능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던 동료들의 행동들 또한 쉽사리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도/지극히도 헌신적이었었지요. --- 이 책의 앞에 실려 있는 각종 언론매체들의 평가는 부인 앨리샤의 헌신적인 사랑을 이 책의 포인트로 말하고 있습니다만, 저 개인적으로는 딱히 그 부분이 그다지 감동적이라거나 인상깊지는 않았습니다. 그냥 약간 감동적이고 약간 더 인상깊었다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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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에 경제학과에 입학해 1995년에 대학원에 입학하기전까지, 제 기억에, 학부에서는 그저 4학년 후생경제학 수업시간에 들었었던, '게임 이론이란 것이 있다!'라는 정도가 제가 배운 지식의 전부였었습니다. 대학원 1학기의 미시경제학 수업에서야 처음으로 기본 모형들에 대해 배웠었었고, 2학기 때 본격적으로 배울 수 있었던 게임 이론은, 그 첫 수업부터 '내쉬'라는 단어를, 게임 이론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일종의 '고유 대명사'스럽게 취급하고 있었었지요. 게다가 바로 직전 해인 1994년의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가 바로 존 내쉬였었었으니, 저는 처음부터 그를 당연히! 경제학자라 생각하며 처음 만났었던 겁니다. (물론 나중에 그가 사실은 수학자라는 걸 알게는 되었었으나, 그럼에도 일정 수준의 경제학적 백그라운드는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더랬습니다만, 이 책을 읽고 나니 존 내쉬가 배운 유일!한 경제학은 학부 시절에 수강했었던 '국제 무역론'이 그 전부였다더군요.)

 

존 내쉬에게 있어 '게임 이론'은 그의 박사 학위 논문의 주제였었다는 것 이후로는 사실 거의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했습니다. 그의 학문적 일생은 사실 '삽입 이론 embedding theory, 홀더 연속성의 선험적 추산, 유체운동의 수학적 해석, 비선형 편미분 방정식, 실대수 다양체 real algebraic varities' 등, 어지간한 수준으로 수학을 전공하지 않고서는 사뭇그 이름들을 받아쓰기조차 힘들 듯한 분야들로 이루어져 있었었지요. 그러했기에 1994년 그가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것에 대해, 프린스턴의 수학과가 낳은 또 다른 천재라는 존 밀너 교수는 "내쉬의 게임 이론 업적은 그가 이룬 순수 수학 업적에 비하면 사소하다"라고까지 (질투라 해야할지, 폄하라 해야할지 모르겠는 뉘앙스의) 말했었다고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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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나이 서른 살 즈음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정신분열증은, 비록 그가 여러 번의 회복의 과정 중에 뛰어난 논문들을 발표하기는 했었으나, 결국엔 그를 수학계에서 거의 잊혀진 인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후 1980-1990년대의 존 내쉬는 프린스턴 대학에서 일명 '파인홀의 유령'이라 불리우며, 그저 컴퓨터로 뭔가를 엄청나게 열심히 하고만 있는, 그런 존재로 전락해 있었었지요. (그 당시, 프린스턴 학 경제학과 박사과정에 계셨었던 제 은사님 한 분께서 말씀하시길, 누군가가 맨날 컴퓨터 랩에서 뭔가를 하고 있길래, 저 사람은 대체 누구냐라 물어보았는데, 그 사람이 바로 '한때 천재'로 불리웠다는 존 내쉬였었다라고...) 하지만!!! 다들 여전히 그가 정신병으로부터 완전히 회복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1990년 가을, 프린스턴  대학 수학과의 사르낙이라는 교수가 우연한 기회에 내쉬와 수학 이론에 관해 심도있는 이야기를 나눈 후 "여기 분명 거인이 있는데, 그는 수학계서 완전히 잊혀져 있었다. 그런 홀대의 사유는 더 이상 타당하지 않았다. 그런 사유가 (한때) 있기는 있었다 치더라도"라는 말을 했었을만큼 그의 천재성은 여전히 남아있었던 겁니다.

 

1980년대 후반부터 유명 경제학 저널들에 실린 논문들에 드디어 존 내쉬의 이름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 사실 '게임 이론' 자체는 프린스턴 대학의 수학과 교수였던 존 폰 노이만의 '최대 최소 정리(1928)'로 부터 시작되었었지요. 비록 폰 노이만이 이처럼 게임 이론의 창시자적 위치를 가지고는 있었으나, 사회적 존재간의 연합과 협력을 강조하는, 즉 인간을 항상 의사소통을 하는 사회적 존재로 파악했던 그의 모델은 현실 세계를 설명해 내는 데에는 많은 취약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존 내쉬는 협력 게임과 비협력 게임을 분리하였고, 협력과 경쟁이 혼합된 게임으로 확대시켰을 뿐 아니라, 참여자의 수와 상관없이 모든 비협력 게임non-cooperative games에는 '끝까지 지속되는 경향이 있는 자연적 휴지점natural resting point'로서의 균형equlibrium이 있다라는 것을 밝혀냄으로써, '게임 이론'이 수학의 영역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후 경제학은 물론 정치학, 사회학, 진화 생물학 등에도 적용되어질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책은 설명하고 있지요.



경제적 선택이 문제는 다른 행위자가 아예 없거나 아주 많으면 훨씬 단순화된다고, 프랑스 경제학자 앙투안 오귀스탱 쿠르노가 1세기 앞서 갈파한 적이 있다. 로빈슨 크루소처럼 외딴 섬에 혼자 있다면, 자기 행동의 결과에 영향을 미치게 될 타인의 존재를 염려할 필요가 없다. 아담 스미스가 언급한 푸줏간 주인과 빵집 주인의 경우의 경우도 (그 반대의 의미에서 또한) 그러하다. 즉, 주변에 너무 많은 행위자가 있으면 결국 서로의 영향력이 상쇄되어 버린다. 그러나 행위자가 너무 많아 각각의 영향력을 무시해도 좋을 정도는 아니지만 두 명 이상의 행위자가 있을 경우, 전략적 행동을 하게 되면 일견 해결 불가능한 문제가 야기된다. …… (따라서) 거대 합병, 거대 정부, 대규모 해외 직접투자, 도매업의 사기업화 차원, 즉 소수의 참여자가 각자 타인의 행동을 고려하며 각자 최선의 전략을 추구하는 세계에서는, 게임 이론이 부각될 수밖에 없었다. - 본문 pp20-21, p6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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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게임 이론'을 밥벌이의 밑천으로 삼고 싶었었던 저에게 이 책의 하이라이트는 단연코!!! 존 내쉬의 노벨 경제학상 수상 뒷이야기들을 담고 있는 이 책의 <5부>였었었지요. 존 내쉬의 이름이 노벨 경제학상 후보에 오르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중반이었다고 책은 밝히고 있습니다.  

 


노벨상은 뛰어난 개인에게 주는 상이 아니며, 평생의 업적을 기려서 주는 상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노벨상은 특정 업적, 발명, 발견을 치하하기 위해 주는 상이다. 그 업적은 이론일 수도 있고, 분석 방법이나 순수 경험 결과일 수도 있다.

존 내쉬가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하기 이전까지 노벨 경제학상은 폴 사뮤엘슨, 캐네스 애로우, 제임스 토빈 등, 누가 봐도 '명백한' 경제학자들에게 수상이 되었었으나, 경제학의 좀더 새로운 분야를 찾고 있었던 노벨 위원회는 당시 경제학계에서 한창 뜨겁게 논의되고 있었던 게임 이론에 주목하게 됩니다. 이에 1984년과 1988년 두 차례에 걸쳐 게임이론에 대한 외부 보고서를 외뢰했었던 노벨 경제학상 '5인위원회'는 결국 모두 존 내쉬를 게임 이론의 발전에 있어 1순위로 적혀져 있는 결과물을 받아들게 되지요. 하지만 존 내쉬는 1950년대에 이미 게임 이론에 대한 연구를 그만두었었으며, 그에게 정신병력이 있다라는, 게다가 여전히 완치가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5인위원회'를 주저하게 만듭니다. 그래 1989년 직접 존 내쉬를 만나 그의 상태를 확인하기위해 존 내쉬가 있던 프린스턴 대학으로 바이불 교수를 보냈었는데, 당시 존 내쉬를 만났던 그의 회고 중, 다음의 문장은, 이를 읽는 순간은 그야말로 짜릿!하 그 자체... 였었었지요.   


(교수 식당에서 점심을 먹기 위해 들어가기 직전) 내쉬는 우물쭈물하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들어가도 될까요? 나는 교수가 아닌데요." --- 이 위대한, 위대한 학자가 자기 자신을 교수 클럽에서 식사할 자격조차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은, 바이불이 보이게 마땅히 바로잡아야 할 너무나 부당한 사태였다.

이후 책은, 게임 이론의 유명 학자들의 이야기와 더불어 결국 존 내쉬가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하게 되는 - 경제학, 그 중에서도 게임 이론에 관심 많은 분이라면 필히! 읽으시길 권해드리는 - 드라마틱한 과정들을 흥미진진하게 기술해놓고 있습니다. (1994년의 노벨 경제학상은 존 내쉬와 더불어 라인하르트 젤텐, 존 하사니의 3인 공동수상이었습니다. 책에도 기술되어 있듯이, 젤텐과 하사니 역시 게임 이론으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대가들이기는 하나, 노벨 위원회가 존 내쉬의 정신병을 염려하여, 노벨 연설을 대신할 누군가를 원해 '공동 수상'을 결정했다라는 이야기를 제게 게임 이론을 가르쳐 주셨던 교수님으로부터 듣기도 했었었네요.)

 

(이 책에 나와있듯이) '5인위원회' 중 리더격이었던 린드벡의 회고처럼 대부분의 노벨상 수상자들은 이전에도 이미 저명했으며 충분히 존경을 받는 학자들이었었죠. 즉, 노벨상이 이미 영예로운 자에게 월계관을 씌워 주는 것일 뿐이라는 비난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했었던 겁니다. 하지만 존 내쉬는 (50여년 전 발표했었던 그의 이론을 제외하고는 최소한 경제학계에서는) 완전히 잊혀진 존재였었었기에, 1994년 당시 그가 완치되지 않은 정신병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더불어 여러 모로 화제가 되었었다라 책은 또한 밝히고 있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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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하고 나면, 하다못해 그의 (이미 비쌌었었던) 강연료마저도 엄청나게 뛰어오른다고 합니다. 그러나! 노벨상 수상자가 수상 이후, 무언가 그에 필적할만한 새로운 학문적 기여를 했다라는 소식을 듣기는, 최소한 경제학계에서는 찾아보기 매우 힘들지요. 이런 두 가지 면에서, 존 내쉬의 다음 두 일화는, ① 과연 존 내쉬를 괴팍한 천재로만 보아도 되는 것인가, 또한 그에게 여전히 '정상이 아님'이라는 표현을 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을, ② 한때! 학자로서의 인생을 꿈꿔보았었던 저에게, 그리고 공부는 안하면서 폭넓은 사회적 인간 관계에만 신경 쓰고 있는 적지 않은 우리나라 대학의 선생님들에게, 너희들 모두는 과연 '학자'로서 이러한 길을 걸으려 했었던 적이 있기는 했었었느냐/(있었다라면) 기억은 하고 있느냐라는 가슴 시린 질문을 던져주고 있다 생각합니다.

 

너무도 세세한 기록/구술들의 나열에, 정신병에 관한 지나친 전문적 설명들에, 읽어내기에 수월하지 않았던, 가끔은 지루하기도 했었던 책이었습니다만, 이 책을 읽지 않았었더라면, 비록 지금은 그 꿈을 완전히 버렸다해도 한때! 제게 꿈이기도 했었던 분야의 최고 학자에 대해 아는 것이 전무하다고 했었어야 했다라는 창피를 면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그래서! 그것만으로도!!! 이 책이 제게는 상당히 유익한 독서였었었다 말하지 않을 수 없네요.

 

(노벨상 수상자로 발표된 날 오후, 프린스턴 수학과가 있는 파인홀에서 열렸던 조촐한 축하연에서 내쉬가 했던 말) 연설을 하고 싶지는 않지만, 세 가지 할 말이 있다고 그는 말했다. 첫째, 노벨상이 신용 등급을 높여줄 테니 이제 신용카드를 갖고 싶다. 둘째, 상을 나눠 갖게 되어 정말 기쁘다고 말해야겠지만, 돈이 너무나 필요하기 때문에 혼자 수상했으면 더 좋을 뻔했다. 셋째, 게임 이론 공로로 상을 받게 되었는데, 게임 이론은 초끈 이론 string theory과 닮은 점이 있는 듯하다. 오늘날 대단히 본질적인 지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초끈 이론을 세상 사람들이 유익하게 활용할 수 있기를 바라마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내쉬는 (그의 나이 67세인) 1995년 프린스턴 대학 출판부에서 3만 달러를 제시하며 그의 전집을 출판하겠다는 것까지 거절했다. "나는 오랫동안 연구 결과를 발간하지 못했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부담을 느낀다. …… 나는 (지금은) 전집을 발간하고 싶지 않다. 아직 나는 활발히 연구중인 수학자라고 생각하고 싶고, (최소한) 그런 수학자인 척이라도 하고 싶기 때문이다. 나는 남들이 월계관이라고 말하는 것에 안주하지 않겠다. 물론 전집을 지금 내지 않는다 해도 후일 언젠가는 출판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때 그 전집에 새로운 멋진 것을 보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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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웬지 가슴 짠~해졌었던,

"숫자를 다루는 일에는 신이 부럽지 않을 만큼 능란했으나 인간관계의 함수를 파악하는 데는 갓난아기처럼 서툴렀던"으로 묘사되고 있는 그의 

노벨상 수상 이후 현재까지의 삶... 이 참 많이 부럽기도 하네요.

 

결혼은 인간관계 가운데 가장 신비한 것이다. 일견 피상적으로 보이는 애착 관계가 놀라울 정도로 깊고 지속적인 관계가 될 수도 있다. 내쉬와 앨리샤 사이의 유대관계도 그러하다. …… 그는 자기가 천재라 해도 모든 문제의 권위자일 수야 있겠느냐고 농담조로 말한다. 다시 집을 저당 잡히고 대출을 받는 일이나, 가스 보일러를 놓을 것인지 기름 보일러를 놓을 것인지 선택하는 일이 생길 때 그는 익살스럽게 투덜거리곤 한다. 그가 "노벨상으로 빛나는 …… 경제학의 현자"라는 것을 앨리샤가 진지하게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 스톡홀름에서 내쉬의 노벨상 수상 소식을 전해왔을 때, (존 내쉬와 앨리샤의 아들인) 조니는 정신병원에 있었다. 내쉬와 앨리샤는 먼저 조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조니는 부모님이 자기를 놀린다고 생각하며 전화를 끊어버렸다. 나중에 조니는 CNN 뉴스를 통해 아버지의 얼굴을 보았다. …… (아내 앨리샤는 수상 이후에도 여전히 생활비를 벌기 위해 직장 생활을 계속 하고 있으며) 이제 조니를 돌보는 것이 내쉬의 주된 삶의 과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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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증명 증명 시리즈 3부작
모리무라 세이치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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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제목으로 이만큼 거창한 것이 있을까 싶었던 책이었기에, 참 여러 번을 읽으려 들었다 놓았다를 했었더랬습니다. 물론 이 책만의 두께도 만만치 않다는 이유도 있었습니다만, 뒤를 잇고 있는, 같은 작가의 「야성의 증명」과 「청춘의 증명」도 연달이 읽어야만 할 듯한 자발적인 압박감이 결국엔 이 책을 내려놓게만 만들어 주었었지요. 헌데...  다음 읽을 책을 고르던 차, 웬지 이번만큼은 도저히 이 책의 제목이 발하고 있는 궁금증을 견뎌내지 못하겠더군요. 그래서 읽어보게 된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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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쿄의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한 흑인이 칼에 찔린 채 죽는 장면으로 소설은 시작됩니다. 예의 그 범인을 밝혀내려는 일본과 미국 경찰들의 추리가 이 소설의 뼈대를 이루고는 있습니다만, 영화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처럼 몇 개의, 처음에는 완전히 별개의 것으로 여겨지는 사건/인물들이 결국엔 모두 한 자리에서 만나게 되는 구조를 지니고 있는, 요약해 내기에 그리 간단치않은 줄거리의 작품입니다. (뭐... 그렇다고 줄거리가 막 복잡한 건 아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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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께끼 같은 말을 남기고 죽은 흑인 청년.

인간을 믿지 않는 고독한 형사 무네스에.

사라진 아내의 흔적을 쫒는 오야마다.

어두운 범죄의 그늘로 접어든 교헤이와 미치코.


그리고 상처를 지닌 인간들 앞에 펼쳐진 병든 세계.

그들에게 마지막 남은 것은 무엇인가?

 
 

 

 

 

  

책의 뒷표지에 적혀 있는 이 문장이, 이 소설의 전체적인 내용을, 적절히 표현해내고는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를 읽고는, 그 책에 나와있던 표현들이, 그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 자체가 신선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오로지! 제가 너무도 늦게 그 책을 읽었다라는 이유 때문에, 이미 다른 곳에서 (그 책에서 인용/영향받은 듯한) 그런 표현들과 그 말하고자 하는 바들로부터 딱히 새롭다!란 감흥을 받지 못했었던 것이 오히려 작가에게 못내 죄송해지는, 그런 경험을 했었더랬지요. 이 책 「인간의 증명」 또한 단순히 소설의 줄거리 만으로 표현되어져야하는 작품이 아닌 것만큼은 분명하나,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이 작품이 발표되었던 1970년대 중반에는 어떠했을지 모르겠지만, 2014년의 저에게는 새롭다라거나 독특하다라는 느낌은 젼혀 주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이 책의 제목에까지도, 「인간의 증명」이라기보다는 「모성의 증명」이 되어야 맞지 않을까 싶은 의문마저도 가져보게 되더군요. 

 

재미있게, 그리고 술술 읽혀가기는 합니다만, 또한 중간중간 일본과 미국 사회에 대한 작가 나름의 날카로운 해석이 있기도 합니다만, 그러한 장점들조차 '사회파 미스터리의 양대 산맥'이라 불리운다는 평가나, 은근히 꼬장꼬장 하실듯한 모습의 아우라를 풍기는 작가의 사진에는 많이 못미치는 수준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작품이라고 밖에는 생각되지가 않습니다. --- '인간이 가진 인간에 대한 믿음 · 한 인간에게 공존하고 있는 선과 악 · 보여지는 것과 보여지지 않는 것의 괴리 · 물질과 명예에 관한 인간의 욕망 · 가정의 의미 · 유년 시절 충격적 기억의 크기' 등등... (굳이 끄집어내 보자라면) 뭔가 작가가 이 작품을 통해 말하려 하는 것들은 참 많기도 하거니와, 나름 중요한 것들인듯도 한데, 희한하게 그 모든 것들이 전혀 새롭지가 않았으며, "인간에게 묻는다.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가?"라는 출판사가 적어놓은 문구는 (저 개인적으로) 단연코! 과도하게 부풀려져 있는 것이고만 생각되는, 명색이 추리 소설이라 불리움에도... 암튼! 추리의 과정도 많이 엉성하기도 한, 한 마디로 말해 그다지 만족스러운 독서는 아니었었네요. 일본 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로열 패밀리>라는 제목의 드라마로도 제작되었다는 걸 보면, 이 작품에 뭔가가 있기는 한 듯 한데, 제가 그걸 끄지어내지 못한 걸지도 모른다는 쉴드를 미리 쳐보기는 하겠습니다. 뭐... 이쯤.에서, 그나마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문구를 옮겨보며 불평은 이제 그만! 하기로... --;; (아! 마지막에 드러나는 형사 켄의 정체는, 이 책의 만족도를 그나마 2에서 3으로 올려주었을만큼 상당히 찌릿!합니다.)

 

저는 가족이나 친구들은 편대를 짜서 함께 날아가는 비행기 같은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비행기가 고장 나거나 조종사가 부상을 입어 비행이 불가능해도 동료가 대신 조종해줄 수는 없죠. 옆으로 다가가 기운을 북돋아 주는 게 고작입니다. 실질적으로 아무 도움도 되지 않죠. 아무리 격려하고 응원해도 고장난 기체는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고 조종사가 회복되는 것도 아닙니다. 결국 비행기를 날게 하는 건 온전히 자신의 몫입니다. 인생은 홀로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는 과정이 아닐까요. 설령 기체가 고장 나도 남의 비행기에 옮겨 탈 수는 없고, 대신 조종해달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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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중국 당대문학 걸작선 1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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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영화 <살인의 추억> 도입부에서, 서울에서 온 형사 김상경이 어떤 여자를 도와주려는 장면을, 성폭행하려는 것으로 오인한 형사 송강호가 보고는 김상경에게 달려들며 하는 말이 있었죠. (정확하지는 않습니다만, 대충) "사람이 개냐? 여자만 보면 달려드냐?" --- (개가 사람보다는 하등의 동물이라는, 부인할 수 없는 전제 하에서 보자면) 어쩌면!!! 송강호가 말한 의미에서의 '개'가 속은 훨씬 편할 지 모릅니다. 뭐 그냥... 먹고 싶으면 먹고, 싸고 싶으면 아무데서나 싸고, 섹스하고 싶으면 첨 보는 개하고도 섹스하자 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사람은 개가 아니기에,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인간의 본능마저를 이러저러한 이유들로 인해 억제해야 하는 경우가, 그 본능을 마음껏 표출해낼 수 있는 상황보다 훨씬 더 많지요. 미팅 자리에서도 '난 저 여자가 맘에 드는데!'라 생각하지만, 또! 그 여자도 '난 저 남자가 맘에 드는데!'함에도, 타인의 시선이라든가 자존심 등등의 이유로 자신의 솔직한 속내를 털어놓지 못해 그 호감을 끝내 연결시키지 못하는 경우도 있거니와, 심지어는 본능과는 전혀 상관없는, 단순한/선의의 호의조차 어떠어떠한 조건하에서는 (본능의 음흉한 발현으로 오해되어) 범죄가 되어버리기도 하는, 참으로... (솔직하게 표현하자면) '존나  피곤한!' 삶을 살아가야,만 하기 때문이지요. (홍길동의 유명한 말,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가 현재에는 가족관계를 벗어나, 일반 사회 생활에서 수도 없이, 각자의 마음 속에서 되내어지고 있는거라 전 생각합니다. 회식자리에서 속옷이 보이는 부하 여직원에게 속옷 보이니 주의해라,라는 말을 해주었다가 성희롱으로 판결받았다는 어느 직장 상사의 뉴스도, 넓게 보면 고래 적 소설 속의 인물인 홍길동이 겪었었던 '억울함'과 별반 차이가 없다라고 보기 때문이지요.)

 

헌데 말입니다!!! (물론 넓게 보면 물론 다 '인간 이성'이 발현된 것에 속하기는 하겠지만) 타인의 시선이라든가, 사회의 규범, 혹은 인간의 양심 등에 의해, 자신 스스로 그 본능을 억제하는 일반적인 경우가 아니라, 오로지 자신이 추종하고 있는 사상·이념 혹은 계급적 지위만으로 인간의 본능을 억제하여야 한다면, 과연 어떠한 일이 생겨나게 될/생겨날 수 있을까요? --- 처음으로 만나보는 중국 작가 옌렌커의 소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바로... 이러한 경우를 상정하여 그려내고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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爲人民服務

 

1.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2. 1944년 중국 최고지도자 마오쩌둥이 발표한 유명한 정치 슬로건

3. 개인의 행복보다 혁명의 대의와 사회 공익을 위해 일해야 한다는 중국군의 책무를 담은 국민적 구호 

중국군의 핵심 권력에 자리하고 있는 어느 한 사단장 사택의 취사 담당병사인 주인공 우다왕은, 마오쩌둥의 어록을 통째로 외우고 있을 뿐 아니라 뛰어난 미각과 요리 실력을 갖추고 있는, 그야말로 최고의 모범적인 군인이자 요리사입니다. 그는 사단장의 사택으로 배속받기 전 교육받았었던, '묻지 말아야 할 것은 묻지 않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은 하지 않으며, 하지 말아야 할 말은 하지 않는다. 사단장님의 가정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바로 인민을 위해 복무하는 것임을 명심하라. 거기에 더해 말에 책임을 지는 것, 모든 말을 실행에 옮기고 구호를 실천에 옮겨야 한다'라는 원칙을, 말 그대로 그 원칙을 위해 산다라고 할 만큼 철저하게 지켜 왔지요. 그러한 이유로, 중국군의 편제 축소 개편에서 사단장이 사택의 다른 경비·관리 인원들은 모두 내보냈었음에도 우다왕만큼은 계속 그의 곁에 두었던 겁니다. 한편, 오십 줄에 이르러 있는 이 사단장에게는 젊고 아름다운 아내가 있었었으니...

 

사단장이 출근하고 나면 …… 이 병영의 양옥 건물 안에는 서른 두 살인 사단장의 아내 류롄과 스물여덟 살인 취사병 겸 공무원 우다왕만이 남게 되었다. 마치 커다란 꽃밭에 신선한 꽃나무 한 그루와 호미 한 자루만 남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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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뭔가 B급 에로영화같은 줄거리를 기대하게 해주지 않나요? --- '슬픈 예감'만이 틀리는 적이 없는 게 아니라, 이러한 야릇!한 추측도 때로는 우리의 기대를 져버리지 않기도 하지요. 맞습니다!!! 사단장의 부인은 우다왕에게는 그야말로 하늘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최소한 그 사택안에서 내려지는 그녀의 명령은 곧 사단장의 명령과 동일한 무게를 갖고 있는 것이었지요. 어느 날 사단장이 두 달여간의 장기출장을 떠나게 되었고, 그리하여 우다왕과 류롄, 단 둘만이 남게된 다음 날, 아침 식사를 마친 류롄이 우다왕에게 말합니다. 

 

"우다왕, 앞으로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라는 이 팻말이 원래 있던 자리에서 벗어나 있거든 내가 볼 일이 있어 찾는다는 뜻이니 위층으로 올라오도록 해."

 

사단장은 이전에 우다왕에게 자신의 아내가 무슨 말을 하기 이전에는 위층에는 절대 올라가지 말라고 명령했었었고, 우다왕은 그 명령에 따라 단 한 번도 사단장과 류롄의 사적 공간이었던 2층에 올라가본 적이 없었습니다만... 이제! 그 명령의 전제 조건 자체가 아예 허물어져 버린거지요. 마당에서 채소 작업과 허드렛일을 마치고 주방으로 돌아온 우다왕은 드디어?/!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라는 팻말이 원래 있던 자리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져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소설에서는, 이전부터 류롄이 창문을 통해 우다왕의 일하는 모습들을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라는 의미심장한 서술을 미리 깔아놓았습니다. 마치 에로 비디오에서 마님이, 장작을 열라 패고 있는 변강쇠의 땀에 젖은 상반신을, 육욕어린 애절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처럼 말이죠. ^^;;) 그렇게... 류롄이 있는, 이제껏 단 한 번도 올라가보지 않았던, 미지의 세계, 2층으로 올라가는 우다왕의 마음은...


가슴 한 구석에서 달콤한 맛을 품은, 뭐라 말할 수 없이 미세한 신비감과 긴장이 밀려왔다.…… 우다왕이 혼돈에 사로잡에 있는 사이에 애정의 도화선은 이미 그녀의 손에 의해 조용히 점화되고 있었다.…… 쿵쾅쿵쾅 억제되지 않는 심장이 제멋대로 뛰고 있었다. 류롄을 만나러 가는 이 심장의 박동은 혁명 군인의 각오와 입장에 위배되는 것이고 진보를 원하는 그의 속마음과 사상에 위배되는 것이었다. …… (하지만) 그의 언행의 가장 중요한 지침은 수장의 가족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바로 인민에게 복무하라는 것이라는 대명제뿐이었다.

자칫! B급도 못되는, 예전 같았으면 세운상가에서나 살 수 있었던 비디오에나 나올 법한 장면들을 글로 옮겨 놓은 듯한 표현들이 이후 줄줄이/흥미 진진하게 이어집니다. 이 감상문이 좀 길어지는 것을 감수하고라도, 이 포스트를 읽으시는 남성분들은, 어쩌면 여성분들도 또한! 이런 서술이 있어주기를 바라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하지만 그보다는!!! 이러한 장면들의 묘사가 (중국 작가들 특유의 언어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면) 저에게는 기막!힌 유머가 가득한 것들이라 생각하기에, 좀 길지만, 또한 별 내용이 없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굳이!!! 다음의 부분을 인용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그녀가 몸에 걸치고 있는 것이라곤 빨간색과 파란색 꽃무늬가 뒤섞인 얇은 실크드레스 잠옷 하나뿐이었다. 실크드레스는 품이 너무 크고 헐렁헐렁해서 언제라도 그녀의 몸에서 흘러내릴 것만 같았다. …… 선풍기가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었고 바람이 그녀 쪽으로 불 때마다 류롄의 드레스가 흩날렸다. …… 바람이 드레스 자락을 들칠 때마다 그녀의 허벅지는 아름다운 산수가 제 모습을 드러내듯 그대로 드러났다. 하얗고 늘씬한 데다 적나라하게 탄력이 넘치는 허벅지 살이 남김없이 노출되었다. 실사구시적으로 얘기하자면, 우다왕이 실크드레스를 입은 여인을 보는 것은 이번에 생전 처음이었다. …… 부풀어 오른 드레스의 옷깃 사이로 그의 눈이 순간 경계심을 잃은 사이에 그만 그녀의 젖가슴이 드러나고 말았다. 그녀의 가슴은 하얋고 큰 것이 마치 원을 그린 것처럼 둥글고 풍만했다. 밀가루 반죽이 잘 되고 화력도 가장 좋을 때 자신이 사단장을 위해 쪄냈던, 사단장이 가장 즐겨 먹는 따끈하고 속이 빈 하얀 찐빵과 같았다. …… 류롄의 커다란 유방을 본 우다왕은 자신이 쪄낸 크고 따끈한 찐빵을 떠오리며 순간 손을 뻗어 만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그는 누가 뭐래도 중학교 교육을 받은 사람이었고 부대 안에서도 이상을 갖고 있는 인물이었다. 숭고함을 쟁취하고자 하는 인물이었고 사단장과 부대의 조직으로부터 신임을 받는 인물이었으며 공산주의를 위해 평생 분투하기로 뜻을 세운 사람이었다. 자신의 성이 무엇이고 이름이 무엇인지 기억하는 것처럼 그는 자신이 단지 사단장 사택의 공무원 겸 취사병일 뿐, 사단장의 아들도 조카도 아니며 류롄의 친동생도 사촌동생도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이고 하지 말아야 할 말이 무엇인지도 잘 알고 있었다. …… 우다왕은 눈 깜짝할 사이에 혁명의 뛰어나고 빛나는 이성으로 자산계급의 비이성적이고 황당한 욕념을 극복해냄으로써 하마터면 벼랑 끝에 놓일 뻔한 자신의 영혼을 구해냈다.

그런 옷차림을 한 채, 별 것 아닌 일을 시킨 류롄은 당황스레 서있는 우다왕에게 앞으로 둘만 있을 때엔 자신을 사모님 대신 '누나'로 부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라는 말이 이 사택에서 일하고 있는 우다왕에게 어떤 의미인지 아느냐 묻지요. 우다왕은 대답합니다. "사단장님과 사단장님의 가정을 위해 복무하는 것이 바로 인민을 위해 복무하는 것과 같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대답을 마치고 1층으로 내려가려는 우다왕의 뒤를 향해 류롄은 다시 야릇!한 한 마디를 던지지요.


"매일 자기 전에 목욕은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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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에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 중의 일부를, 또한 작가의 표현 그대로 옮겨 보는 것이, 제가 그 내용을 요약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것 같기에, 여전히 길고 긴, 하지만 커다란 읽는 재미를 선사해 줄 수도 있다 생각하는 부분들을 (편집하여) 인용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길지만... 최소한 읽기에 지겹.지는 않으실 듯. ^^;; 

 

채소를 들고 주방에 들어서는 순간,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문구가 새겨진 팻말이 부뚜막 위에 놓여 있는 것을 본 그는 그 자리에 몸이 굳어버렸다. …… 우다왕은 곧 무슨 일이 일어나리라는 것을 예감했다. 도화선에 이미 불이 댕겨져 절대로 끌 수 없는 상황이었다. 사랑이 폭발성 화약처럼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발밑에 지뢰를 하나 묻어두고 있었다. 문제는 발밑에 지뢰가 묻혀 있다는 것을 분명히 의식하고 있음에도 눈 앞에 놓인 그 지뢰를 밟고 지나가야 한다는 점이었다. …… 그는 지뢰를 피해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확실한 것은 눈앞에 놓인 지뢰를 밟고 지나가야 한다는 사실뿐이었다. 더 곤혹스럽고 고통스러우며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사실은 그가 이 지뢰를 밟은 뒤에는 몸과 명예를 더럽히고 도저히 회복할 수 없는 지경까지 파괴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골수 깊은 곳, 아무에게도 드러낼 수 없는 가장 비밀스런 곳에서는 수시로 지뢰를 밟고 싶은 욕망과 충동이 샘솟고 있었다. …… 그는 바로 그런 무모한 용기를 걱정하면서도 동시에 흥분하고 있었다. …… (류롄의 명령대로 드디어 그녀를 '누님'이라고 부른 우다왕) …… 이처럼 가벼우면서도 뜨거운 누님이라는 호칭이 두 사람 사이에 가로놓여 있던 만리장성과 산맥을 뒤집어버렸다. …… 이 순간 우다왕은 자신의 그런 호칭이 그쪽에서 오래 기다리고 있던 쇠사슬에 마침내 열쇠를 던져준 것이나 다름없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이 순간 사랑의 문과 울타리가 성지의 대문처럼 활짝 열렸다. …… (류롄이 우다왕에게 건넨 첫 마디) …… 씻었어? …… 왜 몸을 씻어 땀냄새를 없애고 와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난처한 표정이 역력했다. …… (하지만 이내 곧) 그는 신속하면서도 민첩하게, 자세하면서도 진지하게 몸을 닦았다. 발가락 틈새와 은밀한 부분까지 모두 그의 열정과 세심한 손길을 누렸다. …… 그는 함정 안으로 달려가는 자신의 욕망과 열정을 통제할 수 없었다. 그녀의 하얀 피부가 국수 가락처첨 굶주린 거지 하나를 유혹하고 있었고 갸름하고 불그스레한 그녀의 얼굴이 농익은 참외처럼 그의 갈증난 목과 초조한 손을 끌어당기고 있었다. (그가 목욕을 할 때부터) 달콤함에 유혹된 불타는 욕망과 불을 향해 뛰어드는 나방의 충동은 이미 사랑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겠다는 용기로 변해 있었다.

 

(자신의 알몸까지를 드러내고 유혹하는 류롄을 끝내 외면하고 나온 우다왕은 사단장을 떠올리고는 이내 그 용기가 고민으로 변해버렸고) 그는 사랑과 성욕, 혁명과 생존의 정의, 그리고 성장의 도덕과 이익의 원칙을 탐구하고 있었다. …… (이내) 먹구름이 사라진 것처럼 그의 머릿속에 남은 것은 두 가지 뿐이었다. 하나는 류롄의 하얗고 뽀얀 피부와 유혹적인 몸이었고 다른 하나는 자신이 정말로 그녀와 그런 관계를 맺게 되었을 때 사단장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까 하는 문제였다. …… 주요 모순의 한 쪽은 달콤함을 주고 상리를 초월한 현모함에 빠지게 하며 현실의모든 이유를 잊게 해주는 반면, 다른 한 쪽은 자신을 두려움과 공포로 몰고 가 마치 형장이 기다리고 있는 미래를 떠올리게 했다. …… 순간 그는 망설임에서 벗어나 류롄과 그런 관계를 맺지 않고 혁명 전사로서의 제 모습을 지켜야겠다고 마음먹었다. …… 그는 이미 사병으로서 아주 간단하고 간편한 방식으로 여인의 유혹에서 벗어나 군인으로 돌아와 있었다. 호연지기와 정기가 온몸에 흘렀다.

아마도... 작가의 의도인 듯 한, 매우 유치찬란한, 한 다발의 표현들로 우다왕이 그녀의 유혹을 이겨낸 과정이 이처럼 서술되어 있습니다. 「롤리타」와 마찬가지로, 이 소설은 '(인간의 이성으로 판단해 볼 때) 맺어져서는 안 되는' 남녀 관계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작가 옌렌커는, 극상의 문학적 현란함으로 그 관계를 묘사해 내었던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와는 정반대로, 오글거려 미치겠을 정도의 유치함을 선택함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이처럼... 또 다른 독서의 묘미를 즐길 수 있게 해주고 있지요. 사람은... 꽤나 자주/종종 오히려 이런 류의 유치함에서 이유 모를 절정의 쾌감을 느끼기도 하니까요. (저... 만 그런가요? 사실 제가 <웃찾사>의 '짜이호'를 보면/따라하면 서 완전!히 뒤로 자빠지며 웃는 취향이긴 합니다만... --;;)

  

어쨌!든 우다왕은 이처럼 결국 류롄의 유혹을 이겨내었으나 그 과정 속에서, 그가 이미 결혼을 해 아이까지 있는 유부남이기 때문이라는 사회적 도덕도, 상사의 부인과 성적 관계를 가지면 안 된다라는 인간의 이성적 판단 등도 전혀 작동되지는 않았었지요. 다만!!! (제가 이해하기로는) 군인으로서의 계급적 한계, 그리고 혁명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라는 군인으로서의 그의 사상 등만으로 류렌의 유혹을 이겨냈던 겁니다. 우다왕의 사리는... 앞으로도 이렇게 내내 몸 속에 쌓여가기만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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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다왕의 몸 속에서는 물론! 사리가 전혀 쌓이지 않습니다. 곧! 그야말로 화려하고 쾌락적이며, 본능에 충실했었다라는 의미로 지극히 '인간적'이라 표현할 수도 있겠는 둘 만의 유희를 즐기게 되었으니깐요.

 

 

사랑의 아름다움 때문에 필연적으로 광기가 도출되는 것인지 아니면 성적 본질이 아름답기 때문에 사랑이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 어떤 일은 전후의 인과관계를 따질 필요가 없다. 발생했으면 그냥 발생한 것이다.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이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이 가는 것이다. 우다왕과 류롄의 정욕도 항상 이런 식으로 이루어졌다. …… 그 짧은 한 달 동안 두 사람은 본능의 주인이 되었고 동시에 본능의 노예가 되었다. 성의 유희가 두 사람 삶의 거의 전부이자 인생의 목표가 되었다.

이 소설의 대부분은, 이처럼 두 사람의 관계가 시작되는 순간의 미묘함, 그리고 관계의 황홀함/격렬함을 표현하는 것에 할애되어 있습니다. 뭐 그냥... 지금이라도 당장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 있을 듯한, 그렇고 그런 야설과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을 듯 보이기도 하지요.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이 소설에게 (비록 이 출판사만의 분류인 듯 싶기는 합니다만) <중국 당대문학 걸작선>이라는 타이틀을 안겨 준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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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왜 류롄이 우다왕을 유혹하려는 했는가를 보죠. 류롄은 사단장의 두 번째 부인이었습니다. 즉, 사단장은 재혼을 했다는 거지요. 하지만 젊은 류롄에게는 사단장의 많은 나이도, 처녀인 자신이 재혼의 상대가 된다라는 것도 모두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오로지! 사단장의 권력, 그리고 그 권력이 가지고 있는 부와 힘에 자신의 나머지 인생을 걸기로 했었기 때문이었죠. 헌데... 결혼 하고보니! "사단장은 사단장일 뿐, 남자는 아니"었다라는, 바로 그 이유로 첫 번째 부인이 사단장을 떠났었다라는 걸 알게 됩니다. 하지만 여전히! 류롄은 사단장이 가지고 있는 권력과 부를 뿌리치고 떠날 마음이 없었습니다. 대신!!! 우다왕이 '자산계급의 비이성적이고 황당한 욕념'이라 표현했던 그 '인간의 성적 본능'을, 우다왕을 통해 해소하고자 했던 거지요. 그녀에겐 여전히... (최소한 남들에게 보여지기에는, 이성·윤리 등과도 합치되는 사단장과의 결혼 생활을 유지해가는 댓가로 누릴 수 있는) '권력과 부'의 달콤함이 더 중요했었으며, 그렇게 '더 중요한 것'을 지키며 '남들은 볼 수 없는' 곳에서 자신의 본능을 충족시켜줄 대상을 드디어 찾아냈던 겁니다.

 

그렇다면 우다왕은 왜 또 갑자기 그녀의 유혹을 받아들이게 되었던 걸까요?  --- "그는 물이 흘러 도랑이 생기는 이치를 깨달았다. 물이 흐르는대로 자연스럽게 두지 않고 오히려 막아 역행시키려 했다가는 결과를 예측하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나중에 메우기도 어렵다는 말을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 말이, 그저 '인간의 본능에 충실하자'라는 뜻으로 쓰인 것은 아닙니다. 우다왕은 자신의 꿈인, 자신이 당 간부가 되어 아내와 아이의 호구를 도시로 옮기겠다는 것이, 지금과 같은 생활로는 과연 실현시킬 수나 있을지, 실현된다 해도 하 세월을 필요로 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류롄이 사단장에게 한 마디의 말만 해주면 그 꿈은 내일이라도 당장 이루어질 수 있다라는 것 또한 알고 있었던 겁니다. 결국 그는 "이른바 도덕이나 윤리의 투쟁은 없었고 단지 운명을 향해 도전하는 용기와 힘"만으로 류롄의 유혹을, 또한 자신의 욕망을, 물이 흐르는대로 자연스럽게 두기로 걸심했던 거지요. 하지만 그보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라는 마오 주석의 지상명령이, 그에게는 사단장님의 가정을 위해 봉사하는 것을 의미한다라는 걸, 다시금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었던 겁니다. 지극히 추상적인 한 문장의 표어가, 하나의 절대적인 행동강령이 되어, 무조건적이고도 완벽하게 복종해야만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누군가에게는 현실적으로, (원래 그 표어가 의미하고자 했던 바와는) 완전히 다른 의미가 되어버리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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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롄과 우다왕은 이미 사흘 밤낮을 1호 원자에서 알몸으로 보냈다. 두 사람은 이미 인간의 본질로 돌아와 있었다. 그리고 그 원초적인 즐거움이 극치에 도달한 다음 뒤따라 찾아온 것은 피로였다. …… 피로한 육체는 사흘 밤낮을 이런 식으로 보내기 이전에 맛보았던 야수 같은 사랑의 기묘함과 생기 넘치는 쾌락을 누리지 못하게 되었다. 실패가 그림자처럼 두 사람의 애정 행위를 뒤쫒아다녔다. 실패가 피로가 되고 피로는 다시 정신의 피곤을 불러왔다.

이 소설은 여러 가지 면에서, 읽는 내내 제가 좋아하는 작가인 주제 사라마구를 떠올리게 해주었었습니다. 우선 인간의 심리를 지극히 평범한 언어로, 하지만 나름 집요하고 정확하게 묘사해 내고 있다라는 점에서 비슷했었고, 두 번째로는 전지전능한 관점이 가끔씩 등장한다라는 점, 그리고 그 전지전능한 관점은 또한 소설의 흐름 앞뒤에 상관없이 자신만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툭툭 던져준다라는 거였지요. 자주는 아니지만, 매우 중요한 대목에서 예의 이 전지전능한 관점은 앞으로의 줄거리에 대한 방향을 미리 독자들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바로... 위에 인용해 놓은 부분처럼 말이죠. 이제 그 둘에게는 '정신의 피곤'만이 남게 된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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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장은 내일 돌아온다. …… 왜 그런지 알 수도 없고 뭐라고 딱 꼬집어 말하기도 어려웠지만 그는 갑자기 울고 싶었고 정말로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이 크지도 작지도 않은, 위대하다고도 말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결코 평범하다고도 할 수 없는 애정의 레퍼토리 가운데 처음으로 그가 먼저 흘리는 눈물이었다. 말할 필요도 없이 일이 처음 시작될 때부터 그는 이 일의 결말을 알고 있었고, 사단장이 돌아오면 서둘러 놀이마당을 거두고 연극의 막을 내려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쩌면! 두 사람의 애정 행위에 처음관 다르게 실패가 계속 일어났던 이유도 또한... 그 두 사람의 머리속에 '이 쾌락의 연극도 언젠간 끝이 나야하며, 그 끝은 그리 멀지 않았다'라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어서였을지도 모릅니다. (전적이기까지는 아니라해도 최소한 무시하지 못할 만큼의 영향은 있었겠죠.) 그렇게 두 사람에게 다가온 '정신의 피곤'은 급기야 그 둘로 하여금, 지고지존의 대상인 마오쩌둥의 석고상과 초상화, 그의 어록 등 그와 관련된 모든 것을 부숴버리는 것으로 자신의 사랑이 상대방의 사랑보다 더 크다라는 것을 증명하려는, 사뭇 절규와도 같은 행동을 하게 만들지요. (즉! 서로... 내 비록 너와의 섹스에서 예전과 같은 흥분을 느끼지도, 주지도 못했지만 내 마음만은 결코 식지 않았다,라는 것을 무언가 엄청난 일을 저지르는 것으로 증명해 보이려는, 역시나 인간 본성의 한 측면 - 유치한 측면- 이 나타났던 겁니다.)

 

임신을 한 것 같다라는 말을 하는 류롄에게, 우다왕은 그렇다면 지금의 아내와 이혼하겠다라는 발언을 하고 맙니다. 이 발언은 물론 그녀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겠으나, 자신의 꿈, 즉 아내와 아이의 호구를 도시로 옮기겠다는 것을 위한 것이기도 했지요. (어느 것이 더 크게 작용했는가에 대해서는 판단을 할 수 없겠더군요.) --- 류롄의 유혹을 이겨내었던 그 애초부터 사실, 유다왕에게 자신에겐 아내와 아이가 있다라는 현실은 거의 작동되질 않았더랬습니다. 그는 오로지 '군인이라는 계급적 한계와 그가 좇고 있는 사상'으로써 그녀의 유혹을 물리쳤었던 거였었죠. 헌데 그랬던 그가!!! 마치 영화 속 건달들이나 할 법한, '나도 이혼할 테니, 누나도 이혼하고 나랑 둘이 어디 조용한 곳으로 도망가서 같이 살자!'라는 말을 했다라는 거지요. 이제 우다왕에겐 혁명의 뛰어나고 빛나는 이성따위는 그야말로 'out of 안중'이 되어버린, 사단장과의 이혼은 곧 류롄에게 아무런 부와 권력도 남지 않게된다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산계급의 비이성적이고 황당한 욕념만이 남아 그를 지배하고 있다는겁니다. 이게... 정녕 '사랑의 힘' 인/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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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히 써낼 수도 있었던 작품입니다. 상관의 젊고 매력적인 부인이 '앞으로 우리 둘이 있을 땐 날 누나라고 불러. …… 내 방으로 잠깐만 와볼래? …… 나 어때? …… 결국 그 둘은 퐈이야!!!' --- 이 한 줄이면 이제까지 써낸 그 모든 이야기들이 다 요약되는 거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작가의, 뭔가 느릿느릿한 듯 하면서도 요소요소에서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그야말로 콕콕 찝어내는 표현들 자체를 즐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읽어 볼 가치가 있다 생각되었고, 어쩌면! 그 표현들이야말로 이 작품의 첫 번째 매력 포인트가 아닐까하는 마음에 이토록 주저리주저리 써낼 수 밖엔 없었던 듯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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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외삼촌」을 읽고... '인간에게 과연 사상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에 대한 생각을 해보았었다라 적었었지요. 이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이 책의 뒷표지에 표현되어 있듯이, '혁명의 성聖스러운 언어'이기도, 또한 '낭만의 성性스러운 수사'이기도 합니다. --- '사상'과 '본능', 이 두 가지를... 이 작품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분명! 기가 막히게 연결시키고 있다라는 게 느껴지기는 하는데, 그 연결을... 어떠한 단어로 적어낼 수 있을지는, 도저히 제게 떠오르질 않네요. 우다왕, 그리고 류롄... 과는 아무 관계 없는, 어느 한 병사가 써놓은 다음의, 흡사 삼단논법스러운 글귀가 혹여! 제가 표현해 내지 못하겠는 그 무언가를 말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라는 생각을, 약간의 취기와 함께 가져도 봅니다. (저녁 먹으며 막걸리 한 병 마신 후, 두 시간동안 맥주 세 캔 마시며 썼... --;;) 이 소설... 어쩌면, 「롤리타」와 같은 극단적인 호·불호를 자아낼지도 모르겠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최소한! 저에게는... 매우 인상적으로 남는군요.

 

 

   
 

큰 바다를 항해할 때는 조타수에 의지한다. 조타수는 파도와 물의 흐름에 순종한다.

물이 동쪽으로 흐르면 나도 동쪽으로 향한다. 군인의 운명은 바람처럼 흘러간다.

 
   

 

 

우다왕과 류롄의 사랑은 말이죠... 이제까지 서로를 알지 못하고 살아왔던, 그 서로가 상대에게, '왜 이제야 내 앞에 나타났느냐'고, '이렇게 늦게 내 앞에 나타날 꺼였다면, 차라리 나타나지나 말지, 왜 하필 우리 서로 (각자 이미 누군가의 남편이고 아내인) 이런 모습/위치에서 바라볼 수 밖에 없게 나타난거냐'는... 그런, 원망을 할 수 밖엔 없는, 참으로 안타(!)까운 사랑이었다라는 생각을 하게만 됩니다. 그런 사랑은... 인간의 이성, 도덕, 사회적 규범, (스스로의) 양심, 그 무엇으로도 이겨내기 힘들 듯 한데, 하물며! 그 실체조차 불분명한 '사상/주의'이라는 것 때문에 시작조차 주저했었어야 했으며, 결국엔 끝맺음까지도 해야했던 두 사람의 마음은... 얼마나 아팠.을까요. 소설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는, 한참의 세월이 흐른 뒤, 류롄이 우다왕에게 건네준 쪽지, 그리고 우다왕이 류롄에게 전달해 달라 (사택의 위병에게) 건네어주는, 하지만 알고보면 사실은 그녀에게 다시 '되돌려 주는' 것인 그 무언가... 는 정말, 가슴 좀 찌릿/뭉클! 하면서도 이내 시려오기도 하네요. 이제 우다왕은... 더 이상 류롄에의 미련을 마음 속에 가지지 않겠다,라는 뜻 같아서 말이죠.

 

 

 

 

(읽어본) 중국 문화대혁명 시기를 이야기하는 책들

- 위화 作 : 「허삼관 매혈기」 ·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간다」 · 「인생」 · 「형제 1·2·3

- Ji Li Jiang 著 :  「Red Scarf Girl

- 장안거 著 : 「붉은 땅의 기억」​

 

※ 본문에서 인용되었던 책들

-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作 : 롤리타」​ 

- 이주인 시즈카 作 : 「아버지와 외삼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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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의 홍수 - 황금의 지배자
에드윈 르페브르 지음, 박성준.김희균 옮김 / 레디셋고 / 2013년 4월
평점 :
품절


 

 

두 시간 정도의 집중이면 다 읽어낼 수 있는, 두껍지도 복잡하지도 않은, 꽤나 흥미진진한 내용의 소설입니다만... 다음의 사전 지식 정도는 미리 갖추고 있는게 이 소설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기는 합니다. 우선!!! 이 소설이 지금으로부터 무려 109년 전인 1905년에 쓰여진, 그야말로 옛날의 이야기라는 점. 헌데 중요한 건 그 시절엔 호랑이도 담배를 폈었었...었다라는 데 있는게 아니라, 그 시절이 이른바 태환화폐의  금화본위제(gold coin standard) 시절이었다라는 점이지요. 그러니까! 은행에 지폐를 가지고 가서 금으로 바꾸어 달라고 하면 은행은 그 지폐가 정상적이기만 하다면 무조건 그에 해당하는 금액만큼의 금을 지급해 주어야했었었으며, 동전은 무려!!! 진짜 금으로 만들어진 금화였었던 시절의 이야기라는 겁니다. 물론 한참 뒤, 호랑이가 폐암으로 죽게 되었을 즈음엔...

1944년 탄생된 브레튼우즈 체제로부터 달러를 중심으로 하는 금환본위제를 시작되었다. 미국 달러는 금 1온스 당 35달러고 고정됐고, 다른 주요 통화들은 고정환율로 달러에 고정됐다. 미국은 당시 세계 금 보유고의 80%를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브레튼우즈 체제에 서명한 국가들은 미국의 지급능력을 의심하지 않았다. …… 이 당시의 화폐는 이처럼 여전히 금이라는 물질의 양에 묶여 있었던 것이다. 화폐의 유통량이 은행의 금 보유량보다 훨씬 많기는 했지만 고객이 요구하면 언제든지 화폐는 금으로 바꿀 수 있는 태환화폐였었다. …… 1960년대 중반 베트남 전쟁의 비용을 조달하기 위해 미국이 달러를 지나치게 많이 찍어내자 이에 적잖은 불안감을 느낀 프랑스 드골 대통령은 프랑스의 중앙 은행에 달러가 생기는 대로 금으로 바꾸라는 명령을 내렸고, 이에 다른 나라들도 가세하자, 사태를 그냥 두었다가는 미국의 금 재고가 머지 않아 바닥날 것이라 판단한 닉슨 대통령이 1971년 8월 15일, 결국 '신경제정책'이란 걸 통해, 달러의 금 태환을 정지를 선언하고, 외국 정부가 달러를 금으로 교환해 줄 것을 요구해도 응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금본위제도가 폐지된 것이다. 

- 네이버 캐스트 '금본위 제도' 와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에서 인용 · 편집

……………………………

 

암튼, 호랑이가 한창 골초였었었.던, 그... 랬었던 시절의 어느 날! 그린넬이라는 이름의 한 젊은 사내가 월 스트리트 최대의 은행에 와 10만 달러를 예치하겠다며 은행장 도슨을 만나게 해달라고 합니다. 도슨의 입장에서 10만 달러는 별 것 아닌 금액이었지만, 그린넬이 내밀었던, 도슨도 잘 알고 있는 대학 교수의 소개장때문에 그를 만나주기로 했었지요. (당시의 은행은, 아무 은행의 아무 지점에나 달랑 1,000원만 들고가도 통장을 신규로 개설할 수 있는 지금과 같은 시스템은 아니었던 듯.) 근데 말입니다!!!

 

그린넬이 들고 온 것은 달러 화폐가 아니라, 재무성에서 발행한 금 예치소의 수표였었습니다. 즉, 그린넬이 실제 금괴를 가지고 있었었다라는 거지요. 게다가 그는 앞으로도 지속적이고 또한 정기적으로 이 은행에 똑같은 수표를 입금시키겠으며, 그 예치금을 건드리지도 않겠다라 말하기까지 합니다. 그리곤... 일주일 후, 진짜로 또 15만 달러의 금 예치소 수표를 입금시키지요. 이후 매주 목요일 25만 달러를 시작으로, 50만 달러, 그리곤 100만 달러까지를 입금시킵니다. 급기야 은행장인 도슨은 그린넬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묻습니다. 너 뭐하는 놈이냐? 

 

이에 그린넬은, 자신은 29살의 독신이며 대학에서 광산학을 전공했고, 민주 정부의 공화정 체제를 지지한다는(지금의 표현으로 바꾸자면 '나는 진보다!' 쯤 될 듯), 도슨의 질문의 본질과는 아무런 관계 없는 대답만 해대며, 단호한 어조로 그 이외의 사생활에 대해 아무것도 말하지 않겠다라고 하지요. 그리곤 태연하게 250만 달러의 금 예치소 수표를 또 다시 내밉니다. 은행장 입장에선 썅!!! 미쳐 돌아버리는 거지요.

 

은행장은 혼란스러웠다. 이 일은 월 스트리트도, 또 그 자신도 얼떨떨하게 만들어 버렸다. 그는 이런 비상식적인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해결하지 않으면 위험해질 것 같았다.

두 달이라는 초! 짧은 기간 동안 그린넬이 이 은행에 예금한 총 액수가 1,000만 달러에 다다르자, 도슨은 결국 사립탐정을 고용해 그린넬의 주변을 샅샅이 조사해봅니다. 그리고 그린넬이 맨 처음에 들고 왔었던 소개장을 써준 대학 교수에게도 그에 대해 물었습니다만, 그 두 곳에서 모두 특별한 점을 발견해내지는 못합니다. 단지 그의 집으로 화학 제품과 실험 기자재들을 파는 상점의 트럭이 정기적으로 배달을 온다라는 것, 그리고 그의 집에서 매주 월요일 상당한 양의 금괴가 트럭에 실려 나간다라는 점, 그가 학창 시절 라듐에 관한 연구에 독보적인 재질을 보였었다라는 점 등이 도슨이 알아낸 거의 전부였었었지요.

 

여기서 잠깐! 자신이 은행장으로 있는 은행에 거액의 예금자가 나타났는데, 은행장이 쾌재를 부르지는 못할 지언정 왜 혼란스러워지는거냐구요? --- 그가 금을 가지고 있다는 게 문제다. 돈은 단지 돈일 뿐이지만, 금은 화폐 가치의 기준이 된다. …… 예측할 수없는 초과 공급 때문에 벌어질 수 있는 재난의 가능성은 끝이 없었다. …… 만약에 이 청년이 금을 너무 많이 풀어서 화폐 가치에 혼란이 온다면 세상은 엉망이 될 것이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로.

 

여기에다가 그린넬이 언뜻 언뜻 비치는 그의 정치적 성향 또한 은행장 도슨을 더더욱 돌아 버리게 만듭니다. 이 빨갱이 시키!!!

 

저는 막대한 부를 가진 자의 의무에 대해 신중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 제가 할 수 있는 한 세상에서의 좋은 일을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정말 엄청난 부자가 될 작정입니다. 물론 4,500만 달러로 편안하게 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안락하게 사는 것 이상의 일을 하려고 합니다. 인간이라면 종종 무시를 당해 온 동료를 위해 어떤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가치 있게 돈을 쓸 사람의 손에 무제한의 부가 들어 있다면 이타적인 사람들의 꿈을 이뤄줄 수 있을 겁니다. 유토피안, 사회주의자, 몽상가 같은 사람들에게 말이죠. 그들은 성선설을 믿는 사람들이죠. 그게 바로 세상에 큰 변혁을 일으킬 사람들입니다. …… 어쨌든 최대 다수에게는 최대 다수의 행복이 좋을 수밖에 없습니다. …… 예를 들어 누군가 2억이나 3억 달러를 가지고 은행을 연다면 그 사회에 중요한 많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요? …… 은행은 주주에게 배당금을 많이 주려고 존재하는 게 아닙니다. 서민을 보호하는 동시에 사업가와 전체 공동체를 돕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요. 한 해에 25만 달러의 수입이면 사람들의 가장 호사스러운 취향을 만족시킬 수 있는 충분한 액수입니다. …… 나머지는 인간의 선을 위해서 헌신하는 데 쓸 생각입니다. …… (하지만) 지금 현재로서는 아닙니다. 단순히 좋은 동기만으로는 안된다는 걸 깨닫고 있습니다. 저는 그런 은행의 수장으로서 좋은 일을 하게 될 겁니다. 하지만 아직 그런 일을 할 능력이나 경험이 부족합니다.

이에 은행장 도슨은 그린넬에게, 만약 너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그러니까 너가 사고든 뭐든으로 인해 죽게 되면 그 금은, 너의 계획은 어떻게 될 것 같냐?라는... 사뭇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집니다...만! 그린넬은 한 술 더 떠줍니다. 내가 만약 죽게 된다면 내 계획은 차례로 누군가가 계속 이행하도록 되어 있는데, 그 중 한 놈은 정말 골수 사회주의자다, 만약 그 녀석이 내 계획을 이어가게 된다면 그땐 정말... '금의 홍수'가 일어날꺼다! 란 어마무시한 대답을 해주지요. 도슨의 입장에선 그린넬을 이젠 정말... 어찌 건드리지도 못하게 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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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장 도슨은 세계 최고의 갑부이자 투자가인 멜런에게 그린넬에 관한 모든 것을 털어놓고야 맙니다. 그 둘이 가지고 있는 정보를 합친다면, 세상의 거의 모든 금괴의 이동들이 보여진다 해도 무방함에도, 그린넬이라는, 이제까지 듣도 보도 못한 젊은 놈이 갑자기 나타나, 매주 엄청난 액수의 금괴를 수표로 바꿔와 은행에 입급시키는 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 둘은 결국... 그린넬을 만나 묻지요. 너... 금 어디서 났냐? 

 

하지만 금의 출처에 대해 끝끝내 함구하는 그린넬을 향해 도슨과 멜런은, 이제까지의 여러 정황 증거로부터 결국 그가 집안에서 직접 금을 만들어내고 있을꺼라는, 거의 확신에 가까운 의심을 가지게 됩니다. 물론! 그린넬은 그런 그들의 의심에 코웃음을 치지요. 여기서 다시 한번 경제학으로!

 

어떠한 재화/용역이든 공급이 늘어나면 그것의 가격은 하락하게 됩니다. (공기가 대표적이죠. 원래부터 무한정으로 있으니 그 가격은 당연히 0원. 물론 공기의 소유권이 부재한다는 점도 있겠지만.) 금의 공급이 늘어난다는 것은 곧 시장에서의 금값이 하락하게 될 거라는 걸 의미하며, 만약 (사회주의자적 성향을 가지고 있는!) 그린넬이 자기 집안에서 금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 공급의 한계마저도 알 수 없게 되니, 결국 금이 화폐 가치로서의 의미를 상실하게 되는 건 그야말로 '시간 문제'가 되어버리는 거지요. 투자가인 멜런도 다음과 같은 이유로 인해 그린넬의 등장에 대해 또한 엄청난 불안감을 느끼게 됩니다. 

 

채권은 현재 표준 순도의 금 시세로 원금과 이자를 지불해야 한다. 만약 그린넬의 작업으로 인해 금이 쇠처럼 헐값이 된다면, 1,000달러짜리 채권은 50온스의 가치밖에 안 될 것이다. …… 채권에 대한 이자는 폭락한 금값을 기준으로 지불해야 한다. 결국 채권 보유자들은 망하게 될 것이다. 주식 보유자들은 다른 사람의 손실에서 이득을 볼 것이고. 

이러한 이유로, 도슨과 멜런은 결국 자신들이 음으로 양으로 보유하고 있는 엄청난 액수의 채권들을 모두 (음으로만) 내다 팔고, 그 돈으로 (또한 음으로) 주식을 매입하기로 결정합니다. 예를 들어, 철도 채권을 팔아 그 돈으로 즉각 철도 주식을 사는 식이지요. 일반적으로 채권의 가격과 주가는 역의 방향으로 움직이는데, 이는 (아주 간단히 말해) 채권의 가격이 떨어지게 되면, 시중의 돈이 채권 시장으로부터 주식 시장으로 옮겨가 결과적으로 주가가 상승하기 때문입니다. (이 소설의 쓰여진 1905년 경이면, 자본의 투자처라고는 채권, 주식 그리고 부동산 정도가 아니었을까 싶네요. 즉 돈이 투자를 위해 갈 곳이 별로 없었다는 거지요.)

 

새로 쏟아지는 매도 물량으로 시장은 미친 듯이 요동쳤다. 한 주 동안 월 스트리트에서 벌어진,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채권 가격의 급락 사태는 '저가 사냥꾼'들을 혼란에 빠트렸다. 채권이 왜 이렇게까지 싸졌는지 그 까닭도 모르면서, 그들이 채권을 사들이도록 홀릴 때까지, 가격은 계속 하락하고 있었다. ……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중들은 채권을 매도하기보다는 매수를 더 많이 했다. 반면 주식은 매수보다 매도를 더 많이 했다. 그런데도 채권은 계속 폭락하고, 주식은 자꾸 뛰었다.  …… 결국 주식을 산 사람은 가장 현명한 도슨과 멜런이었다. (금값이 떨어질 것이고, 그러면 채권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이익이 현저하게 줄어들게 된다라는 사실을 모르는) 어리석은 대중들은 주식을 비싼 값에 팔아 채권을 싼값에 사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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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mith와 더불어 경제학사에서 Top 2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경제학자이자, 최고의 주식 투자가이기도 했었던 J.M.Keynes는 '결국 경제는 인간의 심리에 달려있다'는, 현재에도 여전히 그 통찰력을 잃지 않고 있는 주장을 했습니다. --- 금융 시장의 작동 원리를 그린넬, 도슨 그리고 멜론이라는 각기 다른 입장의 세 사람을 통해 단순·명쾌하게 보여주고 있는 이 책은, 비록 100여 년 전에 쓰여진, 게다가 통화제도 자체도 현재와는 판이하게 다른 상황을 묘사하고 있습니다만, 복잡해 보이는, 실제로도 무지 복잡할 것 같은 현재의 금융 시장에도 예의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는 교훈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여전히... '경제는 인간의 심리에 달려 있다'라는 거지요.

 

비록 이야기의 전개가 속도면에서 약간씩 건너 뛴 부분들/급한 감이 없진 않지만, 약간의 경제학 지식만 있다면 상당히 재미있게 읽어내게 될/읽어낼 수 밖에 없는 내용임에는 틀림 없는... 소설입니다. 그... (살짝이) 짜릿!한 반전은 직접 이 책을 읽어보실 분을 위해 여기서는 밝히지 않는 걸로... ^^;;

 

 

※ 소설의 형식을 빌어 경제학을 이야기 하고 있는 (읽어본) 또 다른 책 : 애덤 스미스 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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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의 경제학 카페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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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경제학과 1학년생들이 배우는 <경제원론>과 크게 보아 기본적으로 별반 다르지 않은 구성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1부 : 인간과 시장>에서는 미시경제학 분야를, <2부 : 시장과 국가>는 거시경제학, <3부 : 시장과 세계>는 국제경제학을 다루고 있지요. 저자 유시민은 서문에서 이 책이, 물론 경제현상에 관심이 있는 일반인들을 위한 책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대학에서 전공이나 교양 과목으로 경제학 원론 강의를 듣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고 밝히며,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대학에서 쓰는 경제학 교재와 강의는 학생들을 주눅들게 만든다. 수학적 논증방법도 그러려니와 경제학의 토대를 이루는 철학과 사회적 배경에 대한 설명을 하지 않고 곧바로 미시적인 연습문제 풀이 기술을 가르치기 때문이다. …… 경제학이 어떤 철학적 토대 위에 서 있으며, 그것이 실제 경제현상을 어디까지 얼마나 설명할 수 있는지. 그 장점과 한계를 알면서 공부하면, 무미건조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수학적 개념과 모형에서도 사람 냄새를 맡을 수가 있다.

저자 유시민은 또한 이 책의 목적으로, 손님들에게 맛있는 커피를 파는 것보다는 커피를 맛나게 끓이는 방법에 관해 이야기 하고 싶다,라는 은유적 표현으로써, 교과서에서는 가르쳐주지 않는, 좀 과하게 표현해보자면 말해주지 않으려하는 것들을 알려주기 위해서라고 적고 있기도 합니다. (저자 스스로 이 책에는 경제학과 경제전문가를 향한 야유와 조롱을 담고 있다고 말하고 있기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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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에는 경제현상의 연구목적과 방법에 따라 실증경제학(positive economics)과 규범경제학(normative economics)의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실증경제학은 현실의 경제사회에 존재하는 경제법칙의 구명을 목적으로 경제현상을 사실(what is) 그대로 기술하고 분석한 결과로 얻은 일련의 체계적 지식이다. 즉, 실증경제학이란 현실 경제하쇠의 여러 경제변수(예 : 재화의 가격, 수요량, 공급량과 같은 미시변수와 물가수준, 고용, 국민소득과 같은 거시변수) 사이에 존재하는 함수관계를 발견하고 그 성질을 구명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흔히 경제학 또는 경제이론이라고 할 때는 이 실증경제학을 가리킨다. 한편, 규범경제학은 마땅히 있어야 할 경제상태(what ought to be)가 무엇인가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 기준에 관한 이론으로, 가치판단을 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 두산백과, '경제학' 중 발췌 : 네이버 검색

기본적으로 '교과서'라는 용도로 만들어진 책은 보수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이때의 '보수적'이란 말은 '진보 VS 보수'에서의 보수가 아니라, '누구나가 확실하게 인정한다'라는 의미이지요. 그 '누구나가 확실하게 인정하는' 이론의 발전과정을 이야기하면서 그 이전의 '지금은 틀린 것이라 판명된' 이론들을 소개할 수는 있겠습니다만, 그런 것들은 중요하게 다루어지지도, 또한 시험에 절대 나오지도 않지요. 이는 사실 교과서라는 책이 가지는 의의이기도, 또한 한계가 되기도 할 겁니다. 교과서의 1차 목적은 이론의 소개/설명에 있으며, 독자/학생들은 교과서가 말해주는 그러한 이론들을 습득한 후에야, 비로소 눈에 보이는 실제 현상들에 대해 정확한 가치판단을 할 수 있는/을 것이며, 이론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내려지는 섣부른 가치판단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그것에 대해 쉽사리 동의하지는, 동의해서도 않되겠지요. (예를 들어, 의학적 지식이 환자를 치료하기에 충분히 갖추어져 있는 의사만이 제대로 된 진료와 처방을 내릴 수 있다라는 것과 마찬가지이듯.)

예를 들어 A와 B라는 국가가 있다고 해보죠. 이 두 국가의 대통령들 모두 저소득층의 생계에 대한 경제적 지원책을 시행하려고 하기에, 그 적절한 방법에 대한 자문을 경제학자들에게 의뢰했습니다. ①이에 경제학자들은 '현물보조'와 '현금보조'라는 두 가지 방안이 있다는 보고서를 A와 B의 대통령에게 똑같이 제출했습니다. '현물보조'는 쌀이나 급식쿠폰 혹은 의복이나 생필품등의 현물을 직접 국가에서 저소득층 국민에게 지급해주는 것이고, '현금보조'는 현물의 값어치만큼 현물대신 현금을 직접 보조해주어 물품의 선택을 피지원자가 직접 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것이지요. 여기에 경제학자들은, 경제학적 분석에 따르면 아무래도 선택권을 직접 가질 수 있는 현금보조가 이론적으로는 피지원자에게는 더 커다란 만족을 주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돈을 직접 보조해주다보니 그 돈으로 피지원자들이 (보조의 원래 목적이었던) 생계유지에 필요한 쌀 등의 생필품을 사지않고, 술이나 담배 등에 사용해버릴 수도 있는 부작용 또한 있을 수도 있다라는 '중요참고항목'을 달아놓았더랬습니다. ②똑같은 보고서를 받아들었지만, 각각 나름의 고심 끝에 A국의 대통령은 현물보조를, B국의 대통령은 현금보조를 저소득층의 생계유지에 대한 지원책으로 선택했습니다. 물론! 경제학자들이 덧붙여놓은 '중요참고항목'을 충분히 검토한 후 내린 결정이었지요.

아주 정교한 예라고는 할 수 없을지 모르겠지만 ①번은 '실증경제학'을, ②번은 '규범경제학'을 각각 보여주고 있습니다. 즉!!! ②번과 같은 (개인/기관의 주관이 개입된)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①번과 같은 이론적 함의를 충분히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거지요. 그러하기에 ①번의 내용만을 담고 있는 <경제학 원론> 교과서들은 태생적으로 (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의 이들을 대상으로 쓰여진 책이다보니)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러한 이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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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나는 우선 대학에서 전공이나 교양 과목으로 경제학개론 또는 경제학원론 강의를 듣는 학생들을 이 카페로 초대하고 싶다"라는 저자 유시민의 말에는 도저히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물론... 이 책이 비교적 쉬운 설명으로, 즉 수학적 표현의 도움없이 (저자가 적당한 수준에서 걸러/뽑아낸) 경제학의 기초적 이론들에 대해 나름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기는 합니다만, 그 이론들의 설명 뒤에는 항상!!! 그 이론들이 뒤에 자리잡고 있는 현실들에 대한 저자의 (주관적) 해석이 붙어 있기에 최소한!!! (이 책이 우선적 타겟으로 삼고 있다는 독자층인) <경제원론>으로 경제학을 처음으로 접하게 될 이들에게는 오히려 이 책이 (보수냐 진보냐의 방향성이 문제가 아니라) 자칫 편향적인 사고를 무의식중에 가지게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론조차 완전히 습득되지 않은 이들에게, 그 이론이 함유하고/배제하고 있는 이야기들을 (그 이론에 관한 설명보다 훨씬 더 fancy하게) 들려준다라는 것이 과연... 옳바른 교수법일 수 있을까요?

(책 자체에 대한 불만이 아닌, 이 책이 표방하고 있는 대상과 목표와 이 책의 내용은 전혀 맞지 않는다,라는 것이 불만인) 이 책이 '규범경제학'의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라는 건 1부와 2부의 목차/내용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미시경제학에 비해 가치판단의 영역이 상대적으로 넓은 거시경제학을 다루고 있는 2부는 비교적 교과서가 다루고 있는 내용들과 목차/내용면에서 별 차이가 없는 반면, 미시경제학을 다루고 있는 1부의 목차/내용은 교과서의 그것과는 상당히 다르지요. 만약 이 책이 '일상 생활에서 볼 수 있는 경제학의 직관' 같은 걸 다루고 있다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내용들이겠습니다만, 최소한 저자 스스로 경제학이 어떤 철학적 토대 위에 서 있으며, 그것이 실제 경제현상을 어디까지 얼마나 설명할 수 있는지. 그 장점과 한계를 알게 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 썼다,라는 책으로서는 (저 개인적으론) 사뭇 고개를 갸우뚱하게만 만들어 줍니다. 야구에서 뭐가 스트라이크고 볼인지도 모르는 이에게 인필드 플라이를 설명하는 격이라고나 할까요? (이 책이 인필드 플라이를 설명하는 데에는 나름 성공했다고 생각하나, 그 설명을 듣는 대상을 볼-스트라이크가 뭔지도 모르는 이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면 분명! 이 책은 실패작이라 보아야 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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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튼!!! 이래저래... 정말로 오랫만에 경제학 전반 - 사실 <경제원론>이란 책이 쓰기에/공부하기에 만만한 책은 아닙니다. 경제학의 어지간한 분야는 모두 다 담고 있으/어야하니까요. - 에 대해 ​다시 공부를 하고나니, 기분이 좋긴 하네요. 솔직히 말해... 고등학교 사회 시간이 기억나지 않는다거나, 혹은 <경제원론> 수업을 들어보지 않았다,라는 분들에게는 분명! (제 아무리 쉽고 쉽게 설명하려했다한들) 읽어내기에 (최소한) 부분부분 쉽지만은 않은 내용들이 있기는 한 책이겠습니다만, '교과서'가 아닌 책으로 그나마 경제학 전반에 관해 이정도로 무난하게(보이도록) 설명해놓은 책을 찾아보기도 또한 쉽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감상문도 아마 그러하겠지만) 앞으로 읽으려 하는 몇 권의 책들이... 경제학을 공부한 분들에겐 흥미로울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에겐 그저 Pass!를 외치게 만들지도 모르겠듯이. ^^;;

(읽어본) 유시민의 책들 : 내 머리로 생각하는 역사 이야기」 · 「어떻게 살 것인가」 · 「후불제 민주주의」 · 「국가란 무엇인가」​

※ 경제학을 공부하는/했던 분들에게 강추!드리는 책 : 홍기빈 著, 「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 ​· 류동민 著, 「프로메테우스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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